Road to Vntrve Kvlt
콩브레과자점
Trve Kvlt에 대해서
배의 한 쪽에는 “Trve Kvlt”라는 단어가 무지갯빛 그레이디언트로 새겨져 있다. 보는 사람마다 “어떻게 읽어?” 혹은 “무슨 뜻이야?”라고 물어본다. 어떻게 읽느냐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만,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어! 너 그 타투 어떻게 읽어? 트루브 크불트? 독일어야?”
“아니, 브이를 유처럼 읽으면 돼. 트루 컬트. 독일어는 아니야.”
“아 정말? 그게 무슨 뜻인데?”
“음… 내가 듣는 음악 장르에서 자기들끼리의 집단을 가리키는 거야.”
“아, 너 듣는 메탈?”
“응. 조금 더 정확하게는 블랙메…탈.”
그리고 대화는 아무 상관이 없는 다른 주제로 흘러간다.
아무도 더 물어봐 주지는 않아서, 그리고 물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 더 말하는 것은 수줍어서 밝히지 않은, 저 타투의 비밀이 몇 가지 더 있다. 일단 “Trve Kvlt”는 블랙 메탈 팬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팬덤이 아니다. (물론 많은 팬덤들이 이미 컬트적인-종교집단 같은- 성향을 보이기는[→ 보이기는] 하지만, 어떤 밴드의 팬이라거나 블랙메탈의 청취자라는 이유로 “Trve Kvlt”에 속할 수는 없다. (또한, “Trve Kvlt”라고 스스로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Trve Kvlt”가 일반 팬덤과 다른 점은, 팬덤은 내가 어떤 아티스트가 좋다고 인정하고 선언하면, 본인을 그 팬덤의 일원이라고 선언할 수 있지만, “Trve Kvlt”에서는 “Trve Kvlt”를 자처하는 다른 사람들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즉, 서로의 승인으로 연결된 집단이다.
그 승인은, 우습게도 매우 현대적인 방식으로,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물론 블랙 메탈 자체가 메탈 가운데 강세인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찾고자 하는 욕망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Trve Kvlt”는 페이스북 그룹이라던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이상의, 실재하는 이념인 양 여겨졌다.
“Trve Kvlt”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트루 블랙 메탈(True Black Metal)을 듣는 사람만이 저 이름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트루 블랙이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블랙 메탈은 왜 트루하지 않은지, 그 판단 기준이 없다. 그저 “Oh man, that’s so trve.(오우 맨, 그것 참 트루한걸.)”라는 말이 향하는 대상이면, 트루한 앨범, 밴드, 팬으로 격상된다.
“Trve Kvlt”가 우상시하는, 혹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최소한의 요건으로 “추위에 강함”, “자연 친화”, “늑대 같은 바이킹” 등을 찾아볼 수 있기는 하다. 한겨울에 나무가 빽빽한 산에서 반팔티-물론 밴드 티셔츠다-를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남녀 할 것 없이- 징이 가득 박힌 아대는 팔에, 탄띠는 허리에 차고 (소위 알통 자랑이라고 부르는)있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각주: 숲을 좋아하는 차원에서의 자연 친화도 있지만, 자기 몸에 대해서도 매우 자연 친화적이다. 남녀 할 것 없이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기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Emo, Scene, Grunge 등의 음악에서 파생된 스타일처럼, “Trve Kvlt”도 일단은 특정한 종류의 모습을 갖고 있고, 그것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 모습을 하고 있기를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Fvlse(false)로 배척된다. “트루”하지 않으면 “폴스”가 되며, “폴스”는 (그들끼리의 농담으로는) 처벌, 처단의 대상이다.
수줍어서 친구에게 말하지 못한 또 다른 비밀은, “Trve Kvlt”를 무지개색으로 새기는 것은 엄청난 “폴스”라는 것이다. “Trve Kvlt”는 오직 검정과 하양만을 허용한다. 얼굴을 시체처럼 분장하는 “콥스 페인팅(Corpse Painting)”, 블랙 메탈 리스너의 전리품인 밴드티셔츠도 오직 검정과 하양으로만 만들어진다. 이분법적인 색의 규칙에서 벗어난 “Trve Kvlt”의 사용은 반역이었다.
이런 모반을 작게나마 배에 품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터놓고 말하면, “Trve Kvlt”는 그 장르에 심취한 사람들이 만든, 심심풀이 집단이다. 다만 어느 집단이 그렇듯, 그 집단만의 다소 오그라드는 전통과 콘셉트가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Trve Kvlt”라는 종교집단 같은 이름은 메탈 리스너 간의 유대감을 강화할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Trve Kvlt 밈(meme)에서 드러나듯, 약간은 우스운 집단으로 전락하기까지 했다.
모반 개시
그렇다면 나는 왜 “Trve Kvlt”에 대해 은밀한 반란을 저지르게 되었는가?
“Trve Kvlt”가 단순히 온라인 친목 단체였다면, 반감을 갖진 않았을 것이다. “Trve Kvlt”는 친목 단체 같은 느슨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때때로 아주 숭고한 정신으로서 실체를 갖곤 했다. 숭고한 정신으로 드높여진 “Trve Kvlt”는 구성원을 옥죄는 굵은 밧줄이었다.
그 밧줄의 주름에는 반기독교적인 색채가 서려 있다. 이것은 “Trve Kvlt”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트루” 블랙 메탈 밴드의 영향이다. “Trve Kvlt”가 줄줄 읊는 (신들의 계보와 같은) 그들의 족보의 제일 위에는 늘 Burzum과 Mayhem이 있다. “트루”한 옛날의 블랙 메탈만을 인정하고, 나머지는 완고히 거부하는 “Trve Kvlt”는 별수 없이 옛날 블랙 메탈의 동향인, 반기독교적이고 사타닉한 길을 걷게 될 수밖에 없었다. (각주: 블랙 메탈 모두가 반기독교적인 성향을 띠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인 이념과는 관계없이 중세적인 분위기나 자연을 주제로 하는 블랙 메탈의 분파가 대부분이며, 현대에 들어서는 그 분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요즘 들어서는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나, 농담으로 소비하기에도 내 신념이 개조되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색깔을 허용하지 않고, 오직 흑과 백만이 허용되는 컬트. 이것은 비단 블랙 메탈뿐만 아니라 메탈 자체의 문제이기는 하나, 유색 인종의 음악은 “트루”하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 집단의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가?”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배척적인 “Trve Kvlt”의 이런 분위기는, 비유럽권 메탈 레이블에게는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신념으로서의 “Trve Kvlt”가 화두에 오르기만 하면, 나의 음악 취향은 어떤 방식으로든 “폴스”(“fvlse”)한 것이 되었고, 나의 지역적 위치 때문이든, 인종 때문이든, 성별 때문이든 나는 Fvlse로 판정되어 수없이 많이 (*장난으로)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평화로운 “Trve Kvlt”의 낮 동안에는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음악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유대감으로 얽힌 단체일 뿐이었다. 그런데, 밤이 오면 이상함을 계속 맞닥뜨려야 했다. 재미있지 않았던 교회 방화에 대한 농담, Burzum의 범죄에 대한 영웅적 추앙, “폴스”로의 매도. 그래도 이게 위협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달이 높이 솟으면, 나는 조금 숨었다. 위협은 나에게 직접 찾아오지는 않았다.
Myrkur라는 여성 블랙 메탈 원맨밴드가 등장했다. 그녀의 음악은 굉장히 “트루”하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미는 예쁘지 않아요. 미는 피부에 와 닿는, 잔인한 자연과 같은 것이에요.”(각주: “Beauty isn't pretty, beauty hits you in the face, beauty is like nature - it's just brutal.” New York Post Interview with Myrkur.)라고 말하는데, 이런 종류의 비인공성, 자연성이 “트루”한 블랙 메탈의 기본 조건이다[기본 조건인 줄 알았다]. 그런데 Myrkur가 처음 메탈 씬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트루”로 칭송되기는 커녕, 블랙 메탈 순수주의자-이들이 사실상 “Trve Kvlt”라고 말할 수 있다.-들에게 지독한 살해 협박을 받았다.(각주: “Danish multi-instrumentalist Amalie Bruun has endured an onslaught of Internet hate and even death threats from black-metal purists since she formed her Myrkur project in 2014.” Revolver Magazine Interview with Myrkur.) 그녀는 “Trve Kvlt”를 더럽히는 어두운 마녀(각주: “Myrkur”는 아이슬란드어로 어둠이라는 뜻이다.)라고 조롱당했다.
이때의 사건 이후로, “Trve Kvlt”를 그저 친목 단체로써 이용하고 있던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Trve Kvlt”라는 이름표를 붙이기가 곤란해졌다. 암묵적으로 “Trve Kvlt”는 인종적, 성적인 배제를 약간은 품고 있었지만,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적은 처음이었다. “Trve Kvlt”는 블랙 메탈의 음악적 고립을 넘어 인종적, 성적 혐오를 낳았고, 결국 그 뿌리에서 NSBM (National Socialist Black Metal - 사실상 나치 블랙 메탈로 알려져 있다)을 낳아버리고야 말았다. 이런 극단을 마주한 “Trve Kvlt”의, 고립적인 늑대 놀이만을 즐기던 많은 구성원들은 더 이상 자랑스럽게 “Trve Kvlt”를 외칠 수 없게 되었다.
Vntrve Kvlt
나는 완전히 “Trve Kvlt”에 속하지는 못했던 사람이었다. (“Trve Kvlt”의 광신적인 달이 떠오르면, 나는 배제되었다고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애초에 어느 정도 “폴스”였던 내가 “트루”하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폴스”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트루”하지 않을 뿐, “폴스”는 아니다.
그럼에도 “Trve Kvlt”를 완전히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완전히 속해있지도 못하면서, 일부의 극단주의와 가끔씩 떠오르는 달의 악몽이 “Trve Kvlt” 전체를 오염시키는 것, 얼룩지게 만드는 것은 블랙 메탈 씬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은 “Vntrve Kvlt”였다. 더 이상 “Trve Kvlt”를 지지하지 않지만, 그것의 역사, 존재는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부정의 방식.....
나의 무지개색 “Trve Kvlt”는, “Trve Kvlt”에 대항하는, 은밀한 반발이었고, “Vntrve Kvlt”로의 이행의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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