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이번엔 제발 탈케이팝하게 해주세요.

양장피

 

 

출처: http://www.keepcalmandposters.com/poster/5888952_i_cant_keep_calm_cause_i_love_kpop

 

먼저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서 글이 두서 없기 짝이 없는 고해성사임을 유념해주시길 바란다. (그러나 글쓴이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마음의 짐이 많지만 차마 성당에 찾아가 이런 얘기를 용기는 없어서 가상의 신부님께 고백하는 형식을 선택했다. 천주교 신자 여러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글은 혼돈의 케이팝 판에서 짧은 시간- 판의 수많은 고인물 여러분들에 비하면 비교적으로- 몸담으며 느낀 온갖 감정들, 혼란과 분노와 절망과 자책과 그럼에도 놓을 없는 일말의 기쁨을 140자의 트윗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답답하여 늘어놓게 일종의 신세 한탄이다. 따라서 생산적인 결론 같은 것은 없으니 부디 편한 마음으로 징징대는 글을 읽어주시길 바란다. 글의 울분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같이 손잡고 울어주신다면 감사할 것이다.

 

 

신부님, 주님께서 오늘도 저를 시험에 들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은혜로운 얼굴을 가진 이들에게 가무로 저희를 즐겁게 하는 소명을 내리사 저희의 일상에 단비를 내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갤러리 n 장의 사진과 유투브 추천영상의 풍요 속에서 잠시 현실을 잊고 말초적 자극에 미소 지었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화면만 보면 웃을 있다는 얼마나 은혜인지요. 제가 이렇게 누군가를 사랑할 있는 사람이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안에 숨쉰다는 것을 깨달은 것까진 좋았는데, 사랑이 루키즘에 근거한 것이었던 문제였을까요? 좋자고 시작한 일에 빠져들수록 고민만 많아지는 합니다. 

 사실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취미임을 알고 있습니다. 일단 아이돌은 사람을 가지고 하는 장사가 아니던가요? 대상화와 상품화의 정점에 있는 산업의 생산품을 소비한다는 자체가 따져보면 비윤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아이돌 산업은 단순히 춤과 노래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그들의 외모와 성이 상품화되는 것은 이제 당연하고 일상생활, 인격, 인간관계까지 각종 예능을 통해 완벽히 대상화되어 소비되고 있지요. 우리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하고 시장은 욕구에 응답합니다. 아이돌 시장은 결코 대중이 개인의 어떠한 재능의 결과물을 향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재능 있는 개인 자체, 그의 존재를 소비합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가수아이돌 구분하는 여러 기준 하나로도 제시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주제와 출연진의 다양화로 아이돌이 아닌가수' 정의되는 사람들도 예능을 통해 아이돌과 유사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긴 하지만요. 아무튼 신부님께 고백하고 싶은 것은 아이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의 고뇌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식의 기형성과 그것에 일조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자본주의 사회의 대상화 논리에 적극 기여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대중과 팬들이 원하는 이미지로 박제되어 남아있어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사라진 사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성적 대상화의 불쾌함을 아이돌이라는 직업인들에게 선사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이고 그렇기에 편리한 의견을 제시하자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돌 시장의 완전한 소멸입니다. 그건 제가 미워하는 사람을 그만 미워하기 위해서 그를 죽여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요? 신부님, 압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겠지요. 그리고 제가 산업의 종사자들에 대한 사랑을 버릴 없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제가 자극에 약한 단순한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하거니와(아이돌 동지 여러분들을 비꼬려는 의도가 결코 아닙니다. 그냥 제가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애정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놓을 있는 감정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저는 점진적인 문제 개선을 위하여 가지 실천을 결심했었습니다. 공항 사진 보지 않기, 공식 스케줄 수행을 제외한 목격담 소비하지 않기, 아이돌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찰 해보기, 아이돌 음악과 시장에서 발견되는 정치적인 이슈들에 대하여 발언하기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벽은 당연하게도, 실효성의 부재였습니다. 아이돌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결정권을 쥐고 있는 연예기획사는 이러한 실천이 지향하는 바를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제작자의 입장에선 그러한 것들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편리하게 생산할 있는 컨텐츠의 폭이 좁아질 테니까요. 음원 하나보다는 사진 하나를 찍거나 아이돌 개인의 사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쉽고 편리합니다. 어쩌면 화제성도 더욱 크고요. 그러나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같을 있습니다. 아이돌 산업의 여러 부조리한 지점들을 말랑하고 부드러운 환상의 일부로 포장한 것은 그것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화려함입니다. 그러나 결국 기획사가 이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주류 문화로 세우기를 허락한 것은 한국 사회 전반의 분위기였습니다.

아이돌의 기본적인 활동인 춤과 노래는 시청각을 자극합니다. 더욱이 인간의 몸을 활용하는 퍼포먼스를 수행하며 타자의 시선에 해당하는 매체인 카메라에 비춰지기 때문에 거의 필연적으로 대상화됩니다. 카메라를 통해 대상화된 이미지는 소비자의 눈을 마주하며 한번 대상화됩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이미지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다는 점에서 아이돌 산업의 부조리함을 방관합니다. 오히려 자극적인 이미지를 요구하고, 외모뿐만 아니라 발언과 태도까지 편리하게 대상화할 있게 재단하여 제공하기를 원합니다. 아이돌 전문 리얼리티 예능의 증가가 이와 연관되어 있다고 있겠죠. 그리고 한국 사회에 범람하는 습관적인 대상화의 구체적인 사례들은 한국 사회의 다른 사회적 문제들과 필연적으로 연결됩니다. 부분에서 특히 페미니스트로서의 저의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한국 방송계에서 여자 아이돌을 대우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여성혐오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아이돌 산업 자체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는 백래시적인 성격을 가질 밖에 없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화면 속의 여성은 주체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성적인 매력이라는 요소를 표현의 방식에서 제외시킬 없고 남성 소비자의 시선을 피할 없으니까요. 스스로 그렇게 보여지기를 선택했다는 말은 순진하고 게으른 책임전가입니다. 아이돌 시장 내의 여성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자신을 꾸며야 하고, 성적인 매력을 직간접적으로 어필해야 합니다. 노래 가사, 의상, 안무가 모두 그러한 목적을 가지도록 관습화되어 있지요. 그리고 이것이 남성 소비자(이자 동시에 제작자) 시선에서 만들어졌음은 자명합니다. 여자 아이돌들은 성공한 직업인이 되기 위해 이를 필수적으로 수행해야만 합니다. 대중은 그동안 이를 성공을 위한 자의적인 선택이라고 여기며 여자 아이돌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왔습니다. 현재 일부 페미니즘 진영도 여자 아이돌들은 여성 억압을 재생산하는 페미니즘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관습화된 시장의 룰에서 자유로울 없는 여성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엉뚱한 곳에 돌을 던지는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남자 아이돌도 여자 아이돌처럼 성적 대상화를 당하기에 아이돌 산업이 특별히 여성 억압적이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자 아이돌의 대상화와 소비는 남자 아이돌의 그것보다 한층 복잡하고 심각한 사안이지 않나요? 성차별의 유구한 역사가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말이죠. 이는 2천년 넘게 남성으로 정의되고 계신 주님이 누구보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페미니즘 담론만 끌어들여도 아이돌 산업에는 비판점이 차고 넘칩니다. 

 

출처 https://blog.kpopviral.com/post/167301519446/k-fan-exposes-dark-side-of-kpop-talks

한편, 아이돌의 산업의 가장 단단한 뿌리이자 강력한 소비자인 팬덤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유효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서 결정권을 것이 기획사이기에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들이 실효성을 가지지 못해 피로감을 느낀다고 고백한 있습니다. 사실 벽은 기획사뿐만이 아닙니다. 아이돌 상품화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모순점을 인지하지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팬덤 다수입니다. 혹은 이를 인지한다 해도 침묵합니다. 저처럼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어떤 이들은 아이돌의 직업윤리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팬의 덕목을 특정한 사건에만 적용하여 문제를 더욱 모순적으로 만듭니다. 아이돌의 연애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팬들의 집착이 그러한 사례 하나입니다. 아이돌은 화면 속에만 존재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이자 직업인으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는 전제까진 좋습니다. 하지만 전제는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가령 아이돌을 팬들에게 성장서사와 유사연애를 제공하는 직업이라 정의한다면, 아이돌의 공개연애는 직무유기다, 라는 결론이 나와버립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아이돌 팬들의 모든 실천은 결론적으로 모순을 마주하게 됩니다. 모든 덕질은 대상화되고 박제된 특정인의 이미지 또는 재능에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과정엔 소비자 개인의 판타지가 작용하고 있죠. 하지만 아이돌과 사이에 아무리 정제된 대상화의 레이어가 겹겹이 쌓여있다 해도, 그들의 관계는 본질적으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것입니다. 따라서 팬은 높은 확률로 아이돌에게 흥미 이상의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성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말입니다. 다시 말해 100% 순수한 대상화를 기반으로팬질 하기란 어렵습니다. (물론 아이돌은 오로지 얼굴이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팬들도 존재하긴 하지만요. 대다수의 경우를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팬들은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당신을 응원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착취하는 거야라니 이건 무슨 고전 야오이의 집착공 같은 태도인가요. 그런데 제가 역할을 맡고 있는 같습니다. 주님께서 죄를 사해주실까요? 

문제는 기획사와 팬덤과 아이돌 당사자 모두가 크리피한 관계를 내면화했고 그래서 내부 비판이 차단되었다는 겁니다. 마치 종교 언어처럼, ‘아이돌계 언어는 안에서만 통용되는 논리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아이돌과 팬의 관계와 팬덤의 유대는 같은 대상에 대한 유사한 감정의 공유를 기반으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자들이 종교적 체험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종교인들의 간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팬덤에 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가 정확히 어떤 경험과 감정을 지시하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이돌을 향한 애정어린 언어는 이해한다 치더라도, 개인 팬이 아닌팬덤이라는 집단의 행동방식과 논리를 정의하는데 있어서는 확실히 그러합니다. 아이돌 팬덤 문화는 한국 사회의 주류 문화라 있을 정도로 널리 확산되었지만 여전히 폐쇄적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돌 산업과 팬덤 문화에 대한 비판은 더욱 차단됩니다. 따라서 유효한 비판을 이끌어내고 공론화하기 위해선 팬덤 문화를 재정의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과정에는 내부자들의 풍부한 논의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거대한 하위 문화(이자 이제는 주류 문화) 대표자들을 선출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미 팬덤 내에선 성향이 다른 집단들이 형성되어 있고 집단의 규율이 비공식적으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집단들 사이에서의 갈등도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고요. 기본적으로 합의할 있는 사항들을 추려서 아주 간단한 아이돌 인권 조례라도 만들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그게 성공한다 하더라도 기획사와의 협상이 어려울 겁니다. 기획사와 아이돌 당사자, 팬덤이라는 아이돌 산업의 구성요소들이 자리에 모여 나라의 문화를 개선할 건설적인 얘기를 하는 풍경을 주님의 땅에선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천방지축 얼렁뚱땅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을 바라보며 결국 아무 말도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아이돌을 좋아하냐는 질문에잘생기고 예뻐서 좋아한다’, ‘실력이 좋아서 좋아한다’, ‘인성이 좋아서 좋아한다 어떤 대답도 없게 되었습니다. 가지 모두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빈약한 상상력이 다른 대답은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케이팝이 주는 말초적 자극엔 분명 뭔가가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언어로는 설명할 없는 그런 가치가 있는 해요. 하지만 이제 저는 모르겠습니다. 가치가 다른 가치보다 우선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지켜내야 모르겠어요. 그래서 일단은, 당장 앞에 보이는 위로와 기쁨을 찾습니다. 저는 자극에 약한 사람이고 지금 글을 쓰느라 머리가 아프니까요. 그래서 트위터에올해는 진짜 탈케이팝 한다.’라고 다음 음악방송 직캠 영상을 리트윗했습니다. 나태함이 7 죄악 하나 아니던가요? 아무래도 지옥행은 확정인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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