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nkle
L'Arche de Noé racontée par Van Cleef & Arpels
시나인
1.
옅은 푸른 빛이 흐르는 어두운 공간에 도착했다. 동 트기 전 새벽 같은 느낌이었다. 반짝임은 아직 숨어있었다. 어디 있는 것인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돌연 공간을 울리는 천둥 소리에 놀라 동그랗게 눈을 뜨고 멈추어 서버렸다. 어둠을
무서워하기 때문이기도, 천둥을 무서워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공간은 이런 나의 두려움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이 조용해졌고 그 고요함에 나는 추워졌다.. 이 어둠에서 나를 보호해줄 무언가가 절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반짝임을 빨리 찾아내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일렁거리는 푸른 빛을 따라서 작고 좁은 터널을 지나서야 반짝이는 것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 <반클리프 아펠이 들려주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 전시
2.
나는 분명 반짝임을 쫓아 이 곳에 왔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어둠과 비를 피해 들어온 공간은 조금 갑갑할 만큼이나 포근하였다.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까지도. 눈으로만 봐도 부드러웠다. 벽을 따라서 공간을 더듬으며 반짝임을 향해 걸어갔다.. 어떤 것들은 내 눈높이에서, 다른 어떤 것들은 내 위에서, 또 다른 어떤 것들은 내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반짝임을 쫓는 내 모습이 아마도 출렁이는 파도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아니다. 마치 배가 파도를 만나 울렁거리는 모양새와 비슷했겠다.
:<반클리프 아펠이 들려주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 전시
3.
나를 다독이는 포근함과 반짝임도 잠시, 천둥과 함께 번개가 찾아왔다. 그와 동시에 반짝이는 것들을 비추던 빛은 요동쳤다. 그와 동시에 그것들을 잃어버릴까 걱정되었다. 다시 찾지 못하게 될까 불안했다. 이곳에 존재하는 반짝임들도 결국 선택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선택은 우연하고 깊은 이유라곤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곳까지 침범한 천둥과 번개가 미웠다. 한 차례 소동이 끝나고 은은하게 다시 반짝임은 나타났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반지를 장갑 속에서 찾는 기분이 이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안도감과 함께 다시 빛나게 된 내 손가락을 보며 미소가 피어나는 기분. 어둠으로 인해 반짝임은 사라지지 않고 다시금 더 영롱한 빛을 내주었다. 그저 반짝임 자체에 매료되어 흐르듯 바라보았다. 그곳의 반짝임과 일렁임에 익숙해졌을 때쯤 그들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졌다.
4.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빛이었고 한 발자국 다가갔을 때에는 반짝임이었으며, 한 뼘보다도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는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이 반짝임들은 제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쌍을 이루고 있었다. 한 손에 쥐어질 정도로 작은 그것들은 큰 힘을 갖고 있었다. 마구 움직이다가 멈춘 듯 유연하고 역동적이었다. 저마다의 얼굴을 갖고 있었는데 눈의 빛깔도 모두 달랐다. 쌍을 이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 눈이 나로 하여금 그 자체와 마주하게 만들도록 하는 것 같았다.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기도, 걱정 말라며 위로를 하기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과시하기도. 마흔 여덟 쌍의 반짝임이 각자의 언어로 어둠으로부터 날 다독여주었다.
5.
반짝임이라고 부른 것들은 모두 동물들이었다. 그것들을 하나같이 빛나고 있었고 그 자체로 유일함이라는 가치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노아의 방주’라는 거대한 이야기가 없이도 어둠으로부터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존재였으며 세상에서 오래도록 존재 가치를 지닐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 이야기보다 더 큰 경험을 주는 반짝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눈을 맞추고 오래도록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하나하나 천천히 바라보며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형태와 빛깔 그리고 섬세함으로.
: 반클리프 아펠의 하이주얼리 컬렉션 '라크 드 노아'는 미국 LA 폴 게티 미술관에 있는 얀 브뤼헬의 그림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는 동물들'(1613)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6.
한 반짝임은 서로 얼굴을 기대고 발의 끝부분이 애정 어리게 맞닿아 있었다. 그들이 딛고 서있는 코랄 컬러는 그들의 사랑스러움을 더 돋보이게 하는 듯 하였다. 도톰한 검은 몸통은 사실적으로 그것을 나타내주었고 투명한 눈빛에서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존재로 버텨낼 것 같은 의지를 보여주는 듯 하였다.
: <펭귄 클립>
다음 반짝임은 생기 가득한 노란빛이었다. 봄을 알리는 개나리처럼 눈에 띄는 뾰족한 귀와 무언가 궁금한 듯 곧게 세운 자세가 참 앙증맞았다. 그런 친구를 바라보는 다른 반짝임은 잔뜩 움츠린 자세는 긴장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은 당혹스러움이 아니라 함께 휴식을 했으면 하는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까만 눈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길가에서 만난 고양이와 눈을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렸다. 나를 경계하다가도 그 만남에 대한 정중한 인사를 받아들이고 다가와주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온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듯 좋을 뿐이다. 이 반짝임을 만난 그때에도 난 온 머릿속이 노란 반짝임으로, 애교를 부리는 듯한 작고 까만 눈빛으로 가득해지는 기분이었다.
: <페넥스 클립>
귀여운 두 동그라미는 명랑한 색깔로 빛났다. 작고 소중해서 두 손에 고이 안아주어야 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반쯤 펼친 날개는 날아가기 위함이 아니라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사려 깊은 표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거리가 만남의 설렘을 느끼게 했다.
: <코치넬 클립>
이외에도 많은 반짝임이 있었고 각각이 줄 수 있는 행복을 나에게 주었다. 많은 동물들 가운데 비슷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모두 섬세하게 빛깔과 표정, 눈빛이 달랐다. 이를 내 눈으로 직접 만나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토록 감성적으로 그들과 교감한 것 말이다. 문득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위적인 감상은 아닌지 의심스러워 졌다.
: <카나드 클립>, <지브라 클립>, <카카토에스 클립>
7.
동물들의 섬세한 표현 때문에 그리고 그것들이 내뿜는 사랑스러움과 반짝임에 나는 빠져들었다. 사진과 글로 전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것들은 동물 자체가 아니다. 사람을 장식하는 반짝이는 장신구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토록 집중하여 감상하는게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반찍이는 그들과의 교감은 억지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과 함께 그것들에게 더 애정을 느끼고 감성에 젖어 감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을 만든 사람의 노고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고 작은 것이 모여 큰 반짝임을 만든 기막힌 기술력은 숨막힐 정도였다. 이토록 반짝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그런 돌부터 하나하나 깎아나가는 것, 거칠고 단단한 어떤 것을 반짝이고 유려하게 원하는 형태대로 다듬어 나가는 것 때문이다. 그 긴 시간을 담고 있는 반짝임이기 때문에 어둠과 천둥 속에서도 그 자리에서 계속 빛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내 삶에서의 소란과 어둠에도 나의 빛을 잃지 않는 법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마음 가득히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8.
꿈같은 감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이 마주하고 있는 것들은 꿈과 너무나 달랐다. 지금까지의 감상에 어느 정도 공감을 했길 바라며 조금 딱딱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반클리프 아펠이 들려주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 전시는 장신구 전시이다. 과연 장신구가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기획 전시를 할만한 것이 되는가? 아마도 이러한 하이 주얼리나 경제적 가치가 높은 반짝임이 아니라면 미술관에서 만나기란 참 어렵다. 오히려 지나가는 길에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액세서리 가게 뿐만 아니라 문구점에서 만나는 일상이 더 자연스럽다. 예술작품 중에 일상에서 많이 소비되고 생산되는 장신구의 영역에 대한 작은 바람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다. 스스로를 꾸미는 수단이 아니라 한번쯤 그 반짝임이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반짝임과 만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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