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다영이 22살이 될 즈음엔
<며느라기> 리뷰
Kㅏ구
*본 글은 2017년 10 월경에 작성되었습니다.
**2018 년 1 월의 추신이 덧붙여졌습니다.
무다영이 22살이 될 즈음엔
<며느라기> 리뷰
Kㅏ구
*본 글은 2017년 10 월경에 작성되었습니다.
**2018 년 1 월의 추신이 덧붙여졌습니다.
2000년의 놀이
여기에서의 이름은 ‘Kㅏ구’인 덕분에 나는 꽤 많은 것들을 말할 수 있다. 가령 이 이름에 기댄 동안은 누군가에게는(혹은 자신에게) 버거운 이야기를 담백하게 끄적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할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버겁더라도 언제고 했어야 할 이야기이다.
그런데 막상 들어보면 알겠지만, 내가 겪은 일들이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극악하지는 않다. 이 글에 관심이 있을 (혹은 없을) 누구나 소위 ‘큰집’이라 불리는 공간에서 한 번씩은 겪어 봤을 법한 것들이다. 나의 경험은 대부분 어떤 ‘놀이’와 관련된 것들인데, 대여섯 살이 되던 무렵에서부터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하는 ‘놀이’들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박스 서너 개에 가득 찬 목기를 닦는 일이었다.
나에게 이 놀이를 가르쳐준 사람은 내가 가장 좋아하던 사촌 언니였다. 우리 둘이 함께 짝을 지어 목기를 닦고 있으면, 그 모습을 본 집안 어른들은 지나가며 한마디씩 던져주곤 했다.
‘아이고 우리 00이 시집가도 되겠네’
‘쪼꼬만게 손들이 야물딱지네~’
… 같은 것들. 여자아이라면 한 번씩 들어보았을 법한.
n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장면들의 촉감이나 소리 같은 파편들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가령 행주로 닦아내기 전의 목기는 늘 찐득찐득하다는 것/ 옆에 언니가 있다는 것/ 제기의 목을 잡고 빙빙 돌려가며 닦아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빙-빙-돌릴수록 어른들이 칭찬을 해주고, 웃어준다는 것 따위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이유들로 그 놀이를 꽤나 좋아했던 것 같다.
하루는 할머니에게 제사 준비 돕지는 않고 소파에서 ‘빈둥댄다’는 이유로 크게 혼난 적이 있다. 옆에서 ‘쉬고 있던’ 오빠는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순하고 큰 눈은 열심히 끔벅이고 있었지만, 그 몸은 여전히 소파에 기댄 채였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하던 ‘놀이’는 실상 잘할수록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꾸지람 듣는 일임을 체득했다. 돌이켜 보니 그 놀이에 오빠는 없었다.
할머니가 무서웠지만 속은 부글거렸고, 오빠가 밉지는 않았지만 또 영문을 모른 채 슬펐다. 아마 그때가 처음으로 ‘억울하다’라는 단어를 익힌 날이 아닌가 싶다.
또 중학생이 된 언니는 할아버지 집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었던 때였으며, 그 무렵 나는 내가 놀이를 배우던 즈음 태어난 사촌 동생들에게 다시 그 놀이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2017년의 놀이
아이는 설날을 맞아 큰 할아버지 집에 왔다. 엄마랑 박기동 할머니랑 민사린 아줌마랑 밥을 먹고 이제 tv를 본다. 엄마는 부엌에 있다. 심심하다. 할아버지들과 오빠들 틈 사이에 낑겨본다. 할아버지들은 tv만 보고, 옆의 사촌 오빠들은 자기들끼리 게임기에 빠져있다.
아이는 무언가 떠오른 듯이 행주를 집어 들고는, 상을 닦는 시늉하기 시작한다. 곧 어른들의 “아유~”하는 소리가 뒤따른다. 어른들이 거드는 소리 몇 마디에 더 신이 나, 아이는 “뜩딱뜩딱” 소리를 내가며 두 손을 더욱 열심히 움직인다.
그 소리란,
“다영이 잘하네”
“시집 잘~가겠네”
“시집가도 되겠다”
<며느라기> 9.7회, ‘설날’ 中
같은 것들. 여자아이라면 한 번씩 들어보았을 법한.
그러나 곧 엄마가 소리친다. 화가 난 것 같다. 아이는 놀라 멈칫한다.
“무다영 누가 그런 일 하래. 이리와!!”
“며느라기”
여느 때보다도 긴 추석 연휴였다. 간혹 외국 친구들에게 명절을 설명해야 할 때가 오면, ‘Korean national holi..day’라며 주춤거리며 답하곤 한다. 망설인 이유는 명절의 사전적 정의가 ‘holiday’일지언정, 눈앞에 펼쳐지는 ‘우리네’ 풍경은 결코 ‘holiday’의 스틸 컷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모두가 즐거워야 할 명절이 누군가에게는 소위 ‘헬’이 되는 것일까? 아니, 이제 명절에 마냥 즐거운 사람이 있을까? 이러한 고민 없이 마냥 즐거운 사람이 있다면 그를 찾아보는 편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여기 결혼 후 맞는 첫 명절이 마냥 즐겁지 않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그리고 몇 십만 명의 팔로워가 그녀가 올린 SNS 게시글을 받아 보며 그녀와 함께 했다. 위근우 기자의 서두를 빌려 적자면, 그녀의 일상을 넘겨보는 사람들은 “또 어떤 속 터지는 일이 벌어질까.” 1 하는 심정으로 그녀의 새로운 피드를 기다렸을 것이다. 바로 만화<며느라기>의 주인공, 민사린의 이야기이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연재되고 있는 <며느라기>는, 그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며느리의 며느리에 의한 며느리를 위한”이라는 모토 아래, 3개월 차 ‘며느리’로서 민사린이 겪는 일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갈등이 만화의 서사를 이끈다.
대학 동창으로 만나 연애를 하고, 이제 결혼한 지 갓 3개월이 된 민사린과 그녀의 남편 무구영은 여느 신혼부부가 그러하듯이 그들이 꾸린 작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로 충만하다. 그러나 무구영의 원가족과 맺는 관계(시댁)로 넘어가면 사린의 온전한 행복은 위협받는다.
그 관계 안에서, 그녀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요구받지만, 동시에 외부인으로서 겪는 차별도 감수해야만 한다. 만화는 주로 이 괴리가 빚어내는 불합리성을 다룬다.
한편 그러한 차별이 엄동설한에 김장 100포기를 시킨다거나, 김치로 따귀를 때리는 장면들을 연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보니 막장극에서는 김치로 하는 일들이 참 많다.) 오히려 사린이 벙찌거나 당황하거나 민망한 상황들은 ‘어머니의 생신’, ‘시부모님의 결혼기념일’, ‘할아버님 제사’와 같이 평범한 며느리가 시댁 안에서 겪을 법한 이벤트에서 펼쳐진다. 당하는 당사자가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일상에 스며든 부조리를 <며느라기>는 요란하지 않게, 대신 유달리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가령 사린은 자신의 해외 출장 소식에 염려나 격려 대신 ‘아들 아침밥 차릴 사람의 부재’부터 걱정하는 시어머니(박기동)의 모습을 보며 섭섭한 표정을 감출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녀는 ‘미역국 끓여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다’는 시누이(무미영)의 메시지에 꼭두새벽부터 생신상을 차리지만, 정작 사린은 식탁 위 ‘그들만이 아는’ 대화에서 소외된다. 묵언수행을 감행한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먹어 치워야 할’ 사과 조각이거나 ‘푹 익은 무 조각’이다.
<며느라기> 4-4회, ‘결혼기념일’ 中
=자 이제 ‘고구마 먹인다’ 대신 ‘무 먹인다’라고 해보자
그렇다고 사린이 악의 없이 사과 조각을 건네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집안 분위기’를 망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무씨 집안의 가족이지만 무씨가 아닌, ‘며느리’ 사린이 처하는 상황은 ‘개인’ 민사린이 자연스럽게 수긍하기에는 부조리하며, 분노하자니 본인만 예민한 사람이 되는 너무나 사소한 것들이다.
그러나 분명 사린에게 그 미묘하고 사소한 찰나들은 내가 나 자신을 지켜내지 못한 불쾌하고 아픈 기억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자신을 지켜내야 할 상황’으로 몰아가는 악당은 누구인가? 악당에게 잘못의 책임을 묻고 그를 처단하면 끝날 일이겠지만, 애석하게도 <며느라기>에 악당은 없다.
돌이켜 보면 시어머니 기동 역시 하루 종일 차례상을 차리는 노동을 하고도 남편으로부터 “고생은 무슨” 따위의 소리나 듣는 처지이고, 제사가 끝난 후 뻐근한 어깨를 두드리면서도 ‘자식들이 잘 돌아 갔는지’부터 걱정하는 보통 어머니일 뿐이다.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남편(무남천)은 어떠한가. 며느리가 ‘직장 다닌다는’ 사실을 존중해주는 시아버지이자, 과음한 딸의 아침을 걱정하는 자상한 아버지이다.
‘모든 것이 무구영 탓이다’라는 댓글의 그 구영 역시, 힘들어하는 사린을 보면 맘이 편치 않고, 부모님과 사린의 사이에서 곤란하기는 하지만 그녀를 도우려 한다. 심지어 그는, (작은아버지가 부르시면 갈 수 밖에 없지만) 무씨 집안 남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부엌에 들락거리는 인물이 아닌가? 나쁜 맘을 먹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들은 자각하지 못한 채 고구마를 끊임없이 쪄내고 서로에게 먹일 뿐이다.
위근우 칼럼니스트는 작품이 포착해낸 이 ‘고구마 잔치’를 두고 “선의로 이뤄진 진흙탕”이라 표현하며, 이 진흙탕 위에 세워진 것이 한국의 생활세계, 가부장제임을 지적한다. 그들은 부모님께 마땅히 지켜야 할 “효와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같은 미덕을 앞세워” 서로가 서로를 진흙탕으로 끌어들인다.
가령 사린의 경우조차, 그녀가 진흙탕으로 오기까지 과정에는 ‘시부모님께 최선을 다하자’는 그녀의 선택이 포함되어 있다. “효”는 개인이 지켜야할 인륜이자 동시에 개인을 구속하는 구조적 폭력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2
나아가 그는,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진흙탕에 있는 모두가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는 안일한 결론에 이르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맞는 말이다. 같이 진흙탕에 있을지라도, 걔 중에는 ‘내가 나를 지켜야할 순간’도, 지키지 못한 후회와 자책도 겪어 보지 않았을 제도의 수혜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진흙탕을 메울 방안은 무엇인가? 그 이전에 무엇이 이 불합리한 순환을 유지시키는가? 많은 질문들이 머리를 스친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독자들은 사린과 함께 ‘억울함’을 자각하고 우리가 속한 구조의 모순을 돌아보기 시작한 단계이다.
작가는 이러한 ‘선의로 이루어진 진흙탕’이 진흙탕에 갇힌 개개인의 탈주로 해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대망의보스몹 ‘설날’ 에피소드에서 명확히 드러내며,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하는 “규범의 내면화를 통한 착취가 정당화와 착취를 통해 존속되는 구조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어린 ’무다영‘의 모습을 통해 투명하게 보여준다.
시집가도 되겠네
2017년의 놀이에 등장한 아이는 구영과 사린부부에게는 6촌 조카쯤 되는 ‘무다영’이다. 상술한 부분은 ‘설’에피소드의 한 부분이다.
“시집가도 되겠네.”라는 말이 일차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가족들이 한 데 모인’ 자리에서 어린 여자아이에게 할 만한 칭찬 거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영과 똑같은 말을 들었던 아이가 자라서 ‘그 놀이가 놀이가 아니었음’을 곱씹어 보는 수기를 적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말이다.
다음의 문제는 ‘선의로 이뤄진 진흙탕’의 물이 기혼 여성인 민사린뿐만 아니라, ‘며느라기’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어린 무다영에게까지 튀었다는 점이다. 즉, ’며느라기‘가 내포하는 모순은 단순히 기혼 여성뿐만 아니라, 무씨 집안의 일원인 어린 다영에게도 적용된다. 어른들이 다영에게 건넨 말들에 분명 악의는 없다. 악의는 없지만(그렇지만 어쩌면. 선의도 없다), 이 의미 없는 ‘칭찬’에는 어린 아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무서움이 있다.
다영이 그런 일을 할 때만 기특한 아이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칭찬은 다영을 그런 일을 할 때에나 기특한 아이로 만들어버린다. 엄마의 걸레질을 따라 하는 아이는 큰 할아버지 집에서는 어떤 일을 해야 가장 쉽게 예쁨 받을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다시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 억울함을 느꼈던 그때보다도 머리가 더 큰 지금, 내 눈에 비친 다영 또래의 아이들은 제 본심을 숨기는데 서투른 존재들이다. 그 작은 마음의 동요 하나하나가 너무 쉽게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저 관심을 받고 싶은 어린아이가 스스로 걸레를 쥐고 ‘시집가도 되겠다’는 칭찬을 갈구하게 만드는 상황은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무구한 아이에게 벌어지는 쓰라린 풍경이다.
기껏해야 예닐곱 살 정도의 무다영이 ‘시집가도 되겠네’라는 말을 너무나 당연한 칭찬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어린 아이의 학습 과정을 유추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아이는 제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을 곧 자신이 살아가야할 일상으로 빠르게 흡수한다. 이미 ‘제사’ 에피소드에서 다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전을 부치고 상을 닦는 일을 민사린과 박기동, 그리고 자신의 ‘엄마’ 채은영을 포함한 여성의 일, 양복을 입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남성의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해내면 칭찬을 받는다.
그래서 무다영은 행주질을 한다. ‘엄마를 따라 행주질을 하면 칭찬을 받으니까.’ ‘행주질을 하는 것은 다영이가 자라서 될 엄마의 일이니까.’ 작가는 이러한 ‘학습’을 비단 별도의 교육이나 외압에 의해서 일어나는 비극이 아님을, 어린 아이의 모습을 통해 세련되고도 쉽게 풀어낸다.
결국 어린 다영은 일상과 규범 속에 숨어있는 폭력성을 그 구성원이 어떻게 내면화해가는지, 그리고 부조리한 구조가 구성원의 내면화를 통해 어떻게 존속되는지를 그 초기 단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작가가 그려낸 무다영과 민사린, 채은영, 박기동이 함께하는 설날 풍경은 돌을 깨는 노인이 곧 돌을 깨는 젊은이의 미래일 것(쿠르베)이라는 암시 내지는 경고와 비등한 힘을 얻는다. 예컨대 사린은 남성과 여성이 따로 차려진 밥상에서 식사하는 장면을 마주하고는 벙쪄버리지만, 다영은 그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는다.
사린에게 이 식탁의 광경은 tv속 아침드라마에서나 보던 생경한 것이지만, 6살 다영에게는 큰 할아버지집에서의 식사는 ‘늘 그래왔던’, 보다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조의 대물림은 일상의 반복을 통해 더욱 공고해진다.
<며느라기> 6-4회, ‘제사’ 중 한 장면(좌)과, 6회 ‘제사’ 분량이 끝난 후, 민사린의 계정에 올라온 다영의 그림(우)
= 보이는 대로 그렸든, 이제 ‘알게 된 것’을 그렸든 간에 아이가 그린 제사의 풍경은 남성과 여성의 복장과 업무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명명백백히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이다.
여기까지, 작가가 그려낸 사린의 일상은 ‘그러니까 왜 이 구조적 폭력을 뿌리치지 못 하냐고’ 사린 개인을 힐난하는 것으로 무마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간혹 ‘며느라기’라는 특정 시기에 근거하여, ‘며느라기’ 자체가 착한여자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며느리들 개개인에게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도 묻고 싶다. ‘며느라기’가 며느리들만의 극복기가 되어야 하는 문제인가요?
앞서 언급했지만 작가는 이 악의 고리를 단절하는 데 있어, 며느리들 개개인의 탈주 내지는 며느리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데, 친절히 ‘미움받을 용기’를 실천하는 ‘정혜린’의 존재가 그 방증이다. 사린의 동서인 혜린은 평론가 조경숙이 언급한 “나라도 살기 위해 ‘나쁜 며느리’가 된” 대표적인 예를 보여주는 인물로, 팔로워들 사이에서는 작중에서 유일하게 할 말 다 하는 ‘사이다’로 여겨진다.
시댁과의 분리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보호하기로 한 혜린의 결정은, 그녀를 ‘사람이 나쁘진 않지만 제 멋대로인 형수’로 불리게 한다. 주위의 반응에서 한계를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혜린은 이러한 반응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혜린이 부재하는 진흙탕의 현장에는 다른 며느라기들이 남아 있다. 혜린도 그것을 알고 있다. 다른 며느라기들이 남겨진 곳에서 그녀의 선택은 ‘유별난’ 것으로 회자된다. 그녀가 쏘아 올린 공은 애꿎은 곳에 고꾸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행보는 무남천, 무구영, 박기동(과 그녀의 친구들), 무미영 등의 입을 오르내리면서 ‘반면교사’가 되어 다른 며느라기들에게 튕겨지는 것이다. ‘착한 너는 그렇지 않겠지?’라는 무언의 압박과 함께.
결국 여전히 고되고 억울한 그네들의 화살은 혜린에게 향하도록 하기도 하며, 온전한 행복을 향하여 결단을 내렸던 혜린은 여전히 ‘미안함’이라는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녀가 갖는 일말의 미안함에서, 혜린이 낸 의미 있는 용기가 현재의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이 드러난다. 대신 작가가 꿈꾸는, 내지는 진흙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는 ‘#며느라기’에 있다.
#며느라기
인스타그램이라는 SNS를 매체로 취한다는 특징은, 일상에 스민 구조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며느라기>가 반짝이는 또 다른 지점이다. (<며느라기>야말로 인스타그램의 ‘여러 장 보기’ 기능이 일구어낸 희대의 수확일 것이다)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31만 6천 명, 페이스북에서 19만 5700여 명이 그녀의 계정(@min4rin)을 팔로우 중이며, #며느라기 #며느리라는 태그 아래 운집해 사린의 ‘며느라기’에 같이 공감하고,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응원한다. 작품은 만화가 연재되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이 주인공 민사린이 직접 운영하는 sns 계정이라는 설정을 충실하게 유지 중이다.
가령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운동 후 사진(그림)이나 구영과의 귀여운 셀카 같은 지극히 ‘민사린’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올라온다거나, 작가는 사린을 대신하여 집들이, 크리스마스, 새해 기념 피드를 올려 작중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식이다. 개인적으로 이 점이 가장 흥미롭다. 그 피드 아래에는 ‘화이팅!’ ‘사린씨 운동하시는 거 멋져요!’등의 댓글이 올라온다.
며느라기를 검색해 보면 연관검색어로 늘 ‘민사린 실화’ ‘며느라기 실화’가 따라붙고, 다영의 그림이 업데이트 되었을 때는 작가의 농간(?)질에 의해 댓글에는 친구를 태그하여 ‘@0000 헐 이거 진짠가봐’라는 반응을 속속들이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느껴지는 작가님의 희열…!) 이는 사린의 피드를 구독하는 이들은 ‘사린’을 자신과 동등한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 #부부스타그램. 사린님도 굿나잇~!
여기에서 <며느라기>가 SNS를 선택한 영리함이 드러난다. 작가가 실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상황을 내용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해낸 점도 그렇지만, 또 그것을 전하는 매체가 SNS라는 형식은 <며느라기>가 작품 밖의 독자들과 연결되고자 분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SNS의 텍스트는 엄밀한 논픽션도 아니고, 허구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이야기도 아닌 그 중간 단계 내지 경계의 특징을 보인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그 텍스트를 작성하는 사린의 존재적 지위에 관한 것이다.
가상 인물인 민사린은 사린과 같이 ‘며느라기’에 힘들어하는 여러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가능성을 지닌다. ‘민사린’은 분명 익명의 목소리가 더해져 탄생한 무형의 존재였지만, 그녀는 본인의 계정 @min4rin을 통하여 하나의 인격체로 가시화되며, 계정에 자신의 일상을 게시하고 이에 대한 응답을 받음으로써 팔로워들로부터 그 정체성을 인정받는다.
여기에 SNS매체의 새로운 특징이 더해져 시너지를 일으킨다. 바로 ‘공유’이다. SNS 매체에는 기존의 일방향의 의사소통으로 이루어져 있던 영화나 책, 방송과 같은 텍스트와는 달리 ‘해석’ 이외의 ‘공유’라는 다른 층위의 과정이 나타난다. 3 개인은 SNS의 공유 기능을 통해 타인의 피드를 수신하게 되는데, 이때 발신자의 포스팅(일상)은 인스타그램의 경우 최대 10장이라는 분량(올해 2월 이전에는 1장)에 맞추어 편집된 것이다. 따라서 수신자는 생략된 발신자의 서사를 해석하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타인의 삶을 상상할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신자의 텍스트와 자신의 삶 간의 유사성을 찾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린에게 남기는 ‘화이팅!’ ‘멋져요’와 같은 격려나 그녀에게 묻는 안부의 댓글들은 누군가의 작은엄마였고, 며느리였고, 시어머니이고, 조카였던 대한민국의 수많은 민사린에게 남기는 메시지이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유되는 사린의 며느라기는 비단 사린만이 겪는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무다영이 22살이 될 즈음엔...
나는 ‘놀이’에 관한 이야기를 되도록이면 어머니 앞에서 꺼내지 않았다. 언젠가 그 이야기를 무심코 꺼냈을 때의 어머니의 표정을 본 이후로는 더욱 삼가게 되었다. 그 표정이 자아내는 처참함의 정도는 흐르고 넘쳐 바라보는 나까지 적실 만큼이었다.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늘 조심했다. 적어도 눈 앞의 어머니의 평안을 위하여.
또는 내 쪽에서 피해왔다는 말도 맞을 것이다.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녀의 표정이 무엇의 감정을 담고 있는지 헤아리는 일이, 또 나의 어머니가 왜 나의 추억에 대해 그녀 스스로 ‘방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죄책감을 갖는지,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는지 그 연유를.
그러나 어린 다영이 멈칫하는 순간에 나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무다영 누가 그런 일 하래. 이리와!!”
그러니까, 이 한 문장도 말하지 못 했던 것이구나.
나의 어머니는 말하지 못했다. 그녀에겐 불쾌할 여유가,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다른 엄마들처럼 주방의 한 구석에서 다른 며느리들과 함께 허리를 수그린 채 하루 종일 기름붙이들과 씨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도 감히 완전히 헤아린다고는 말 못하겠다. 1,2년이 아니라 n십년간 지속되었던, 그녀의 며느라기 만큼이나 깊이 침전되었을 감정을.
스스로 ‘며느리’가 되거나 어머니가 되어 ‘모성’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녀와 같은 죄책감을 갖기까지 전까지는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었다. 만일 2000년의 놀이를 하던 내가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면, 그 얼굴은 행주질 하는 다영을 바라보는 다영 엄마의 표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제서야 그려질 뿐이다. 이렇게 그 표정을 그려보고 나서야, 며느리도 어머니도 아닌 나는 그녀가 말하던 '방치'가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민사린의 피드를 팔로우하는 50만 여명의 사람들 모두가 사린과 같은 기혼 여성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린이 겪는 불합리한 순간에 같이 불쾌해하고, 분노하고, 또 그녀를 응원하며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나가며-곱씹기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는 문장은 참 간결하고 ‘옳다’. 이 문장을 곱씹는 결결이 생각하곤 한다. ‘이 짧은 문장이, 문장만큼이나 쌈박하게 내 것이 되면 참 좋으련만.’ 그러나 바람과는 다르게, 내 것이 되기는커녕 마음을 들쑤셔 참 불편하고 어수선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의 의미를 계속 곱씹어야 한다. 촌스럽다만, 그래야 겨우 소화가 되는 것이다. 이 지리한 글도 곱씹기의 일환이었다.
사린의 인스타그램에는 지금까지 당연’했던’ 일상이 공유된다. ‘며느라기’가 지닌 모순이 며느리들만의 문제이거나, 특정한 지위 특정한 시기에만 발생하지 않다는 점에서 민사린의 공유가 뜻깊다. 많은 평론가들이 ‘남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고 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내가 무다영 나이 때의 일들이 그랬다면, 지금은 어떨까? 작가가 <며느라기>에서 그려낸 사린의 일상에 비추어 보면, 아직까지 우리의 명절은 “시집가도 되겠다”는 말이 당연한 칭찬처럼 남발되는 현실이지만, 이제는 자신의 아이에게 “그런 일을 관두고 이리 오라”고 소리칠 수 있는 다영의 엄마 ‘채은영’이 있다.
비록 피드의 사각형 테두리 안에서 그녀의 다그침은 갑작스러운 변덕 내지는 짤막한 히스테리로 여겨지지만, 그 테두리 밖에는 같이 “다영아 집에 가자!”고 다그치는 수많은 팔로워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그 시절 엄마의 다그침을 듣지 못했던 또 다른 무다영들도 있다.
그래서 기대해본다. 무다영이 22살이 될 즈음엔 좀 더 다른 덕담이 들리기를, 진정 ‘holiday’에 걸맞는 명절이 펼쳐지기를.
추신 (2018.01.26. <며느라기>의 마지막회를 읽으며...)
작가는 ‘며느라기’(期)를 며느리들이 “시댁 식구에게 예쁨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시기로 정의한다. 부연 설명에 따르면, 이는 사춘기나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것으로, 보통 1,2년이면 끝나지만 사람에 따라 10년 넘게 걸리기도, 안 끝나기도 한단다.
생애주기가 연속되는 수많은 단계들로 나뉘어진다고 할 때, 개인의 삶은 현재의 지위를 벗어나 다음 지위로 이행하는 과정의 무수한 반복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사춘기’와 ‘갱년기’등의 이름은 특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단계에 붙여진 것들이다.
아동에서 청년으로, 성년에서 노년으로 성숙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신체적인 변화뿐 아니라 인지/정서적인 변화로 인해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된다. 특히나 이 발달단계에서 개인은 ‘내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고뇌하며, 그 과정에서 정체감을 확립하리라 기대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갈등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겪어야 할 당연한 관문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렇지만, ‘사린’은? 그녀는 ‘며느라기’를 거쳐 어떤 지위를 얻게 된단 말인가? ‘며느라기’의 문제에 저 막연한 기대를 그대로 적용 시키기가 꺼려진다. 분명히 미끄러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사춘기와 갱년기를 대하는 태도 그대로 며느라기를 본다면 사린의 문제는 미결인 채로 잠식될 것이다. “갓 결혼한 사린은 지금 지극히 혼란(지랄)스러울 수 밖에 없고, 이 시기를 잘 견뎌(버텨)내면, 자연스레 베테랑 며느리가 될꺼야”라는 위안과 함께 말이다. 따라서 이런 늪에는 빠지지 말자는 ‘자기 경고’의 의미로 이 긴 글을 작성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화를 본 이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작가가 풀어낸 ‘며느라기’의 정의에 미끄러지는 부분은 있을지언정, 어떠한 풀이보다도 더 탁월하다고...‘며느라기’ 개념에 사춘기나 갱년기를 끌고 온 것 말이다.
아니 일단, 이 미끄러지는 부분을 짚는 것에서부터 이 긴 글도 시작되지 않았는가. (이게 잘 된 일인지는 모르겠다... )
다시 '00기' 에 대한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의 설명을 끌어 오자면, 소위 '질풍노도'의 과도기에서 자신에게 제일의 가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인식하면 정체감을 획득한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역할 혼란에 빠지고 만다.
즉 사춘기 따위의 단계 역시 세월과 함께 자연스레 진화되는 하나의 소동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 안은 한 켠에서는 자기상(self image)를 확립해나가는 고군분투가, 또 다른 한 켠에선 어떤 체념이 끊이지 않는 치열한 현장에 가깝다.
과도기는 가만히 기다린다고 지나가지 않는다. '며느라기'라고 하여 예외는 아닐 것이다.
참고자료
한혜원, 문아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은유적 특성 연구」,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15(5), 2004, pp. 621-630.
<며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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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어보기
서지영, 며느라기│① 올해 추석에도 다시 일어날 일들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7092513307297481
위근우, 남편들이여, 아내를 위해 추석 때 가족에게 이 만화를 권해보시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100&artid=201709292147005#csidx24c48ca78b03fc9b23265e13b2a0e95
조경숙, <며느라기>-며느리라는 ‘원죄’를 끊기 위하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3&aid=0000035658&sid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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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페미니즘에 대한 앎의 수준에 있어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앎을 부지런히 하지 않은 게으름은
제가 이 글을 써 나가는 동안 커다란 장벽이 되어 저를 머뭇거리게 했고,
또 스스로를 검열하는 엄격한 기준으로 작용했습니다 .
그러기에 이 문장들이 너무나 사사롭고 부족한 글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곱씹는 일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더욱 힘내어 곱씹어 보려고 합니다.
고로 여러분의 도움을 소심히 요청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