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 PICK - 키워드 ‘시작’>
푸른수염 :
조르주 멜리에스, <달세계 여행>, 1902
영화사의 시작점에 위치한 작품들 중 가장 아끼는 영화. 사람들이 우주선을 뚝딱뚝딱 만들어서 달에 도착하지만 달에 사는 외계인들에게 된통 당하고 지구로 다시 돌아온다는 매우 귀여운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 있으면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 상상력이 구현된 결과물은 더더욱 사랑스럽다.
이르름 :
어퓨 물광 틴트 CR01_덜익은자몽
흰끼와 낮은 채도가 안 받는 나는 주구장창 쨍한 색을 발라왔다. 하지만 이제는 발랄함만을 추구하는 것을 멈춰야할 때…… 자연스러우면서 차분한 덜익은자몽과 함께 나의 이십대 중반이 시작되었다.
네이버웹툰 <계룡선녀전> (글/그림 돌배)
대학에서 늘어난 몇 안되는 것을 꼽아보자면 nerdy함을 빼놓을 수 없다. 오랜 인연의 시작점을 찾아가는 선녀의 전생과 관련된 사람들이 (하필이면) 대학 교수와 대학원생들이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은 너디함이 느껴지는 유머를 맛볼 수 있다. 따뜻한 그림체와 귀여운 캐릭터들은 덤!
레몬밤 :
하이라이트 - 시작 ♬
‘시작이 설레지만은 않을 그대들에게’
하이라이트의 첫 번째 미니앨범 “Can you feel it?”의 수록곡.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가사처럼 보이지만, 오랫동안 함께했던 ‘비스트’와 이별한 뒤 새 이름으로 시작해야 했던 이들의 마음이 담긴 노래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것을 두고 새 시작을 하는 것이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다. 변화와 시작이 조금은 두렵지만, 웃으며 옛 것을 추억할 수 있도록. 특히 용준형의 담담한듯 담담하지 않은 송랩이 일품.
왕수박 :
Perfume - One Room Disco (2008)
가장 작은 거주 단위인 ‘원룸’은 새로운 시작을 앞둔 젊은이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혼자 살기 시작하며 느끼는 설렘과 두려움. 모든 고민을 떨쳐내고 원룸에서 디스코를 춘다는 가사는 우리 모두의 풋풋하고 또 힘겨웠던 시작을 응원한다. 새학기 즈음 일본 음악방송에 단골로 등장하는 오리콘 1위 넘버로, 16비트의 단순하지만 웅장한 인트로 드랍 이후 반전되는 청량한 디스코 사운드가 매력포인트.
DAY6 - 아 왜 (I Wait) (2017)
외모는 한 순간. 음악을 파는 그룹은 수명이 길다. 콘서트 세트리스트를 상술로 만드는 탄탄하고 두터운 디스코그래피가 있다면 금상첨화. 공연 수익은 더욱 장기전으로 간다. 그리고 여기에 아이돌 보이밴드의 형식을 빌어 새로운 셀링포인트를 모색하는 밴드가 있다. 모던 락을 내세우던 기존 타이틀에서 벗어나 대중성을 한껏 가미한 편곡과 멜로디로 2017년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린, 첫 싱글 다운 첫 싱글. 아 왜 더 잘안됐을까. 아 왜…
이제로 :
다음웹툰 <두번째 집> (글/그림 우현)
관계의 시작에 관한 웹툰. 그림체도 화려하지 않고, 대사도 거의 없으며 박진감 넘치는 서사도 없지만 시선과 침묵, 그리고 빛이 그 모든 것을 압도한다. 작가는 이제 막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시선을 예민하게 그려낸다. 또한 작가는 상당한 수준으로 빛을 묘사하는데, 빛의 온도차로 그만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특기인 듯하다. 감성적인 웹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추천!
방탄소년단-Save Me (2016)
필자가 방탄소년단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다. 방탄소년단 특유의 애절한 분위기가 폭발하는 곡. 사운드, 가사, 보컬 어느 하나 애절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내가 떨어지기 전에 그 손을 내밀어달라는 그들의 외침은 귀에, 그리고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황량한 벌판 위에서 처절하게 춤추는 그들의 원테이크 퍼포먼스는 덤이다. 2016년 10월, Save me M/V를 클릭함과 함께 내 덕질인생도 시작되었다.
Kㅏ구 :
스니커즈 맥스(高) 카카오
1.한정판 + 은색 포장지
2.카카오 ‘MAX/高’함량이 주는 다크 초콜릿 풍미! 약간의 씁쓸함이 지나친 단맛을 중화.
3 ... 알잖아요 초코바 맛있는 거 이건 더 맛있음.
누군가의 작업은 한 밤중에 시작한다. ‘시작’이 조금 늦은(?) 이들에게 바치는 PEEP PICK템. 사실 우리도 알고는 있다. 밤은 새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밤새 붙잡았던 일들은 실상 몇 시간 전의 자신이 (그것도 더 효율적으로) 끝낼 수도 있던 것이고, 밤새 불태운 모든 덕질에는 타인의 인정이나 금전적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밤샘이란, 다 알면서도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것.
이러한 ‘밤샘 작업’들은 ‘초코바’라는 비상식량을 먹어야만 하는 명분으로 삼기엔 소박하고 염치없지만, (초코바가 무엇인가. 그 태생은 체력 소모가 심한 운동을 하거나, 전투 중 제대로 식사하기 어려운 군인들이 먹는 비상식량이 아닌가) 그래도 밤새 당 떨어진 자신에게 맥스 카카오를 먹여 보면 어떨까. 꾸덕하고 달달한 이것을 우물대는 순간만큼은 한명의 치열한 생존자가 될 것이다.
맥스 카카오는 구하기도 쉽다. 한정판이라더니 필자 눈에 띈 것만 몇 달 째이다. 한정판이라면서 한정판이 아닌 초코바. 어디에서는 ‘MAX CACAO’고, 어디에서는‘最高の カカオ’인 이름. 폴리페놀 향(?)이 나는 맛있는 고칼로리 초코바. 늦은 시작을 앞두고 자조와 환멸이 교차할 때, 내일의 피폐함이 두려울 때. 이럴 때에는 맥스 카카오를 한 손에 쥐고 앙 베어 물자. 우걱우걱 씹어 삼키자. 이 이율배반적이고 맛있는 것을. 오늘도 누군가는 밤을 지새운다.
예청그릴스 :
FKJ- Instant Need (2013)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은 종종 특별한 한 곡에서 시작된다. FKJ의 Instant Need 역시 바로 그런 곡. “Take me in yours ~” 라고 몇번이고 외쳐대는 절절한 가사와 멜로디는 당시 실연의 아픔을 음악으로 이겨내던 누군가의 달팽이관을 후벼팠더랬다. FKJ의 뜻을 알고 나면 더욱 충격적인 이 아티스트는 올해 한국에 온다. 아싸!
르네오 :
박우진 춤 영상 'Crush'
돌이켜보니 본격적으로 우진이 덕질을 시작하게 만든 영상. 프로듀스 101 무대를 가벼운 마음으로 보다가 섹베오레(십점 만점에 십점 무대) 장면을 보고 충격 받아서 누군지 검색해봤는데 정보도 거의 없고 당시 방송에서 그렇게 주목을 받는 연습생도 아니었어서 떡밥이랄게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관심이 덕질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태에서 ‘와 이 사람 너무 좋다’고 스스로 인정하게(?) 만든 영상. 워낙 춤을 좋아하고 오래 춰 온 사람이라 youtube에 과거 춤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영상이다. 긴 팔이 돋보이는 의상을 입고 팔을 휘적거리고 흐느적거리는데 그게 또 각이 딱딱 맞아서 보고 있으면 따라서 내적 댄스를 추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