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옥수: 모은 같은 록곡

레몬밤

 

누구에게나 전세계에 들려주고 싶은 가수의 수록곡이 있다. 타이틀곡 위주로 돌아가다 못해 점점 디지털 싱글화 되고 있는 한국 음악 시장에서, 프로모션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간 타이틀곡보다 수록곡이 좋은 경우도 왕왕 존재한다. 그래서 가끔은 외치고 싶다. 세상 사람들이여, 앨범 속에 숨어있는 띵곡 들어달라고. 필자의 띵곡리스트를 오늘 공개해본다. 타이틀이 아닌 이상한 노래들, “근데 이게 수록곡이죠?” 외치게 만드는 노래들, 그만큼 매력 있는 수록곡의 세계로 -수록곡샬트 붕괴가 오기 전에- 들어가보자.

* 타이틀곡이 아니더라도 2 이상 방송 무대에 오른 노래는 수록곡 리스트에서 제외하였다.

 

 

(여자)아이들-MAZE

신인 아이돌 (여자)아이들의 데뷔 앨범 <I am> 3번째 트랙. 데뷔 앨범 자체가 꽤나 괜찮다. (그룹 이름 빼고 괜찮은 같기도.) 분위기도 세련됐다. (그렇다. 필자는 다시 큐브에 치여버린 것이다.) 리더 소연의 찰진 랩핑이 곡과 너무나 어울린다. 우기와 미연의 보컬도 몫하고.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곡은 소연의 랩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무방. 찰떡같이 곡에 붙는 그의 랩이 궁금하다면 어서 들어보시길.

 

 

청하-Drive

인트로의 경쾌한 기타 소리가 바다 고속도로에서 맞는 바람처럼 청량하다. 번째 미니앨범을 발매하는 청하에게 필요했던 것은 “Why don’t you know” – “Rollercoaster” – “Love U” 이어지는 비슷비슷한 느낌의 타이틀곡 3연타가 아니라 분위기 전환이었다. (물론 이런 노래 스타일로 청하가 것은 맞지만) 조금 색다르게 “Drive” 타이틀로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믿고 듣는 청하라면 어차피 음원 순위도 충분히 높았을텐데.

 

 

SHINHWA-SUPER POWER

도대체 이게 수록곡이죠? (억울) 신화의 13 타이틀 “Touch” 함께 끝까지 타이틀 경쟁을 했던 . 신화 측에 의하면 “SUPER POWER” 이전 앨범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색다른 느낌을 주고자 “Touch” 타이틀곡으로 정했다고 하는데, 제대로 선택 미스다. 이전 타이틀 곡들과 같은 느낌을 전혀 주지 않을 뿐더러 후렴구도 -기존 신화의 곡들과는 달리- 귀에 들어와서 “Touch”처럼 어렵지도 않다. 나중에 콘서트 무대를 보고 타이틀 곡으로 선정하지 않았는지 이해는 갔지만…(- 신화는 주변 고인물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 다시 흥할 없다. 여기엔 안무가도 포함이다. 좋은 안무를 그렇게 지루하게 짜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무대 영상 보는 것보다 노래만 듣는 훨씬 지루할 정도.) 다소 유치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강렬한 신화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곡이다. 신화 13 <UNCHANGING> 3번째 트랙.

 

하이라이트-Take on me

하이라이트 미니앨범 <CELEBRATE> 3번째 트랙. 하이라이트가 했던 기존 댄스곡과는 느낌이 다르다. 대세에 맞게 (사실 발짝 느리게) 나름대로 트로피컬한 느낌의 곡을 내놓았는데, 후렴구도 귀에 쉽게 들어오고 반복되는 멜로디도 신이 나서 쿠바에서 모히또 먹고 흔들고 싶은 느낌을 준다. 트로피컬 스타일이라 그런지 중남미로 날아가 살사를 추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런 풍의 음악이 먹히던 여름 케이팝 시장에 등장했어도 선방했을 . 전체적인 일관성이 부족한 <CELEBRATE> 앨범에서 눈에 띄는 수작. <CELEBRATE> 타이틀 어쩔 없지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이어) B 감성 2연타였기 때문에 식상하게 느껴졌는데, 그런 타이틀 곡에 밀리기엔 너무나 아까웠던 .

 

NELL-타인의 기억

NELL 멤버들(특히 김종완) 지금처럼 행복에 안주한 작곡을 하기 일보 직전에 나온 6 <Newton’s Apple> 3번째 트랙. (- 요즘 NELL 하는 음악을 들으면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듣는 같은 기분이 들어 너무나 아쉽다.) ‘섬섬옥수 꼽힌 곡들은 주로 선율적인 측면에서 타이틀 곡을 능가하거나 타이틀곡에 맞먹는 곡들이 많은데, 곡은 선율적인 측면에서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다. 그렇다고 가사도 심금을 울릴 정도는 아닌 같은데, 이별을 하고 나면 결국 모두가 타인의 기억으로 남아버린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후에 노래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뭉글뭉글해진다. 보편적인 감정과 생각을 집어냈기 때문일까.

 

SHINHWA-Midnight Girl

신화(혹은 신혜성) X 박창현 = 진리공식을 다시 보여주는 . 신혜성 혼자 부른 어쿠스틱 버전도 있지만 원래 버전이 낫다. 타이틀을 대체할 정도는 아니지만 신화의 비트감 있는 발라드 중에서는 TOP 3 안으로 꼽을 있다. 글을 쓰면서 다시 들어도 너무 좋다. 발매된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세련됐다. 중독성 있는 코러스 “Love for midnight girl, every day I feel” 꿈만 같은 피아노 선율. 좋다. 뭐라 형용할 없어서 안타까울 지경. 필자가 꼽은 수록곡들 중에서도 강력 추천하는 곡이니 들어보시길. 신화 8 <State of the art> 8 트랙.

 

샤이니-...(Love Should Go On)

샤이니 데뷔 앨범 <누난 너무 예뻐 (Replay)> 4 트랙. 필자에게 SM 노래들, 특히 f(x) 샤이니의 노래들은 특히나 난해하게 다가오는데, 노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꺼내 듣는다. 제목은 유치하고 (SM 원래 그렇지 않나.) 랩이 낯설게 느껴질 있지만 후렴구가 이를 상쇄시켜줄 것이다. 이런 곡이 데뷔 앨범에 실렸다니 놀라울 따름. 타이틀 곡이었어도 나갔을 같은 .

 

태연-Circus

태연 미니앨범 3 <Something New> 5 트랙. 아련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가사처럼- “더없이 아름다운태연의 목소리가 잔잔히 깔린다. 노래는 선율적으로 좋아서 이상 뭐라 형언할 수가 없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달빛 아래 찬란하게 홀로 그네를 타는 곡예사의 빛나는 모습을 보는 같달까. 노래가 전체적으로 반짝인다.

 

비스트-dance with u

2014 비스트( 하이라이트) 6번째 미니앨범 <GOOD LUCK> 번째 트랙. 1 트랙 답게 앨범 세계로 청자를 이끈다. 그래서인지 노래만 들으면 괜히 판타지 소설의 도입부를 읽어야만 같다.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주니까. 타이틀 곡인 “Good Luck” 밀리지만 세컨 타이틀로는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방송에서 “We Up” 대신 무대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노래. 댄서들과 함께하는 커플 안무도 “We Up”보다 매혹적이다.

 

선미-곡선

선미의 미니앨범 <WARNING> 3 트랙. 선미의, 혹은 선미가 추구하고 있는 분위기와 어울린다. 앨범명인 <WARNING>과도 컨셉이 맞고 앨범 커버의 이미지와도 가장 어울리는 곡이다. 몽환적인 피아노 선율과 비트가 어우러져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 선미의 약점으로 꼽힐 수도 있는 보컬(혹은 음색) 또한 충분히 보완되었기 때문에 선미의 목소리가 부담스러웠던 이들도 번쯤 들어 만한 .

 

Wanna One(워너원)-묻고 싶다(One Love)

Wanna One(워너원) 번째 정규앨범이자 마지막 앨범 <1¹¹=1 (POWER OF DESTINY)> 5 트랙. 비트감이 좋다. Wanna One(워너원) 노래들은 보통 랩파트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노래는 랩을 뽑았다. 비트와 어우러지는 박우진의 랩이 노래를 계속 듣고 싶어지게 만들 정도. 보컬 파트 분배도 알맞게 이루어졌다. 각각의 파트가 멤버들의 목소리와 찰떡같이 어울린다. 마지막 앨범에 실린 곡들 가장 좋은 노래.

 

비스트-잘자요

비스트로서 마지막 앨범인 3 <Highlight> 11번째 트랙. 이름대로 자장가로 쓰기 좋다. 나른하게 반복되며 뒤에 깔리는 피아노 선율과 힘을 보컬들. 밑에 깔리는 비트도 부담스럽지 않다. 귀에 들어오는 후렴구인데 필자가 선호하는 파트는 verse 1, 그리고 화음이 깔리며 허밍(?)(- 정확하게 허밍은 아니다. ‘어어우워하는 부분이지.)하는 부분. 윤두준과 용준형의 보컬과 송랩 또한 비음기가 많이 빠졌기 때문에 보컬적인 측면에서의 단점도 크게 없다. 피곤에 몰려 침대에 쓰러진 채로 잠이 듣고픈 노래 1순위.

 

 

숨수(숨은 수록곡) 말고숨띵(숨은 명곡)”

수록곡 외에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타이틀 혹은 후속곡들이 존재한다.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쉬워서 6곡만 뽑아보았다.

 

파란(PARAN)-Don’t Cry

앨범 전체를 추천하고 싶은 파란 3 <U.R.M.S> 4번째 트랙. 드디어 파란만의 색깔을 찾았다 싶어서 반가웠는데, 앨범을 마지막으로 파란은 해체와 다를 없는 (-작년에 라이언, 피오, 에이스가 뭉쳐서 음원을 발매하기도 했으니 정말로 해체는 아니다.) 기나긴 휴식기에 들어간다. (필자는 하필 입덕해서 10 제대로 라이브 보지 못했다고 한다…) 메인보컬 에이스의 음색, 폭발적인 성량 그리고 현악기의 웅장함이 어울리는 락발라드. 라이브 영상을 보면 AR 따위 깔지 않고 CD 씹어 먹는 모습을 있다. 파란과 관련해서는 단독으로 글을 하나 있을 정도로 애정이 깊지만 여기서는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발자국”, “양복 좋은 수록곡들도 많은 앨범이다. 가창력 좋은 남자 보컬 그룹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앨범을 정주행하길 바란다.

 

트리플H-365 FRESH

이제는 이상 없는 전설의(?) 그룹 트리플 H(현아, 펜타곤(후이, 이던)) 앨범 <199X> 타이틀곡. 컨셉도, 노래도, 안무도 역대급이었는데 떴다. 심지어 음악방송 의상도 예뻤는데! 노래 스타일이랑 발매 타이밍도 맞았는데! <프로듀스 101 시즌2>까지 출연하며 열일했는데! 떴다! 왜죠? (오열) 왜긴 왜야 같은 큐브가 이상한 언플만 했기 때문이지

진짜 좋아하면 좋아하는지는 구구절절 설명을 수가 없다. 세상 사람들 제발 노래를 들어주세요. 음원으로만 들어도 좋고 청량한 안무 연습 영상을 봐도 좋고 의상 보는 재미가 있는 무대편집영상을 봐도 좋다. 섹시 컨셉이 아닌 현아의 모습을 마음껏 있다. 365 언제 들어도 이름대로 FRESH하다. 그러니까 제발 들어주세요. 아니, 지금 당장 들어라. (단호)

 

체리필터-head up

체리필터 1 <Head-up> 타이틀곡. 보컬 조유진의 엄청난 기교를 체감할 있다. 듣다보면사람 목소리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지?”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조유진의 휘슬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필수로 들어야 . 스크래치, 그로울링, 휘슬까지 그가 가진 모든 보컬 스킬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곡은 라이브 영상으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웃으면서 고음을 뽑아내고 목소리를 긁는 것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니까.

 

프리스틴 V- 멋대로(Get it)

프리스틴 유닛 프리스틴 V 싱글 <Like a V> 타이틀. 블랙 위도우 컨셉과 너무나 어울리는 곡이다. (- 프리스틴의 노래 “Black Widow” 곡이 있음.) 세련된 사운드, 친근한 verse 간단한 후렴구로, 다소 난해하게 들릴 있는 프리스틴의 다른 곡들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아 보이는데 화제가 많이 되지 않아 아쉬운 . 프리스틴 V 멤버에 시연까지 합세해서 곡으로 데뷔를 했다면 어땠을지?

 

에이핑크-내가 설렐 있게

에이핑크 3 <PINK REVOLUTION> 타이틀곡. 에이핑크치고는 성적이 많이 좋지 않았던 곡인데,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없다. (의상은 별로긴 했다.) 90년대 느낌 물씬 풍기며 센치함과 아련함, 청순함이 느껴지는 . 곡이 망하는(?) 바람에 핑순이들은 다시 “Five” 같은 발랄한 댄스곡으로 선회하게 된다. 언제까지나 발랄하고 신나는 노래만 수는 없을 , 이번에 “1 없어 흥한 만큼 다시 컨셉을 밀고 나오는 어떨런지. 겨울쯤 나오면 계절감도 맞고 좋겠다. ”LUV”내가 설렐 있게같은 성숙하면서도 아련한 컨셉으로 나오면 이번에는 흥할 같은데. 필자가 꼽은 베스트 파트는 verse 2.

 

스피카-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

스피카의 데뷔 앨범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 타이틀 . 작곡가 스윗튠이 해내는가 싶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떠서 슬픈 노래. 이런 멋진 곡을 주고도 애들을 뜨게한 소속사 당신은 대체그룹은 해체했지만띵곡 남는다. 멤버들의 시원시원한 보컬과 하모니가 절경이고 장관이며 신이 주신 선물이다. 후렴에서 김보형과 김보아가 함께 화음 넣는 부분( 이렇게라도 너를 잡아야겠어 ) 킬링파트. 제목만 보면 자꾸 레드벨벳 노래가 떠오를 테지만 듣고 나면 확실히 스피카의러시안 룰렛으로 각인될 것이다.

 

 

이상 필자 혼자 마음 속으로 간직해온 수록곡 소개의 시간이었다. 소개랄 것도 없이 그냥 사담을 주절대는 전부였지만. 당신의 마음 켠에 자리잡은 숨은띵곡 무엇인가? 오늘만큼은 고이 모셔둔 노래를 꺼내 친구에게 스리슬쩍 이어폰을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사소한 말들로 부르는 보편적인 노래 - 브로콜리 너마저 1집의 언어

시몬느

 

 브로콜리 너마저의 1집은 ‘끝나버린 노래’들이다. 더 이상 음원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없고, 음반도 중고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가끔씩 팔린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컬인 계피가 소속사 문제로 밴드를 나간 이후로 계피 목소리가 들어간 1집 음원에 대한 접근이 전부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우연인지 가사에서도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없다며 앵콜요청금지를 외치는데, 사실 나는 그냥 계속 다시 불러줬으면 한다.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1집에는 보편적인 노래부터 안녕까지 총 12개의 수록곡이 실려있다. 대부분은 이별 노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슬프지는 않다.연극의 클라이맥스와 결말 이후, 등장인물이 나중에 어떻게 살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갈등이 결국 스쳐가고, 더 이상 인생이 극적이지 않을 때, 아주 잔잔하고 사소한 ‘아무거나’일 때. 그때의 순간을 포착하는 노래들이다.

 

 친구가 내게 말을 했죠, 기분은 알겠지만 시끄럽다고.

 음악 좀 줄일 수 없냐고. 네, 그러면 차라리 나갈게요.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 찬 방과, 그 방에 담겨있는 ‘나’와 룸메이트의 실랑이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별 후 힘든 나날도 지나고 고통도 지났는데 왠지 모를 애틋함과 우울함이 남아서 음악을 듣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순간에, 주인공은 방을 박차고 나간다. 룸메이트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을 수도 있고, 환기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래 알고 있어 한심한 건 걱정 끼치는 건 나도 참 싫어서

 슬픈 노래 들으면서 혼자서 달리는 자정의 공원 그 여름날

 밤 가로등 그 불빛 아래 잊을 수도 없는 춤을 춰

 

 자정의 공원은 어떤 냄새가 날까, 하루가 마무리되어 모든 게 가라앉는 무거운 냄새가 날까, 혹은 또 다른 하루가 시작할 때 풍겨올 만한 상쾌한 냄새가 날까. 탄천을 걸을 때 맡았던 흙, 강, 풀 등의 냄새가 떠올랐다. 희미하게 빛나는 가로등 불빛이 날 것의 냄새들과 뒤섞여 정말 있었던 것인지 기억도 안 나는 오래전의 향수가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노래를 들으며 가로등 불빛 아래서 춤을 추는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옛사람과 춤을 춘 적이 있을까? 그때는 둘이었고 지금은 혼자인 상태로 옛날을 추억해보는 걸까? 어찌 되었든, 주인공은 밤 가로등 아래에서 춤을 춘다. 이별 후의 클리셰, 울고,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후회하고, 그런 자잘한 감정들을 직설적으로 뱉어내기엔, 장면 혹은 순간 그 자체가 더 감각적이다. 별거 아닌 말다툼에서 시작하여 자정의 공원으로 이어지는 행동의 흐름은 강렬하지는 않지만 저절로 스며드는 무언가가 있다. 어딘가 묻어있는 구질구질함, 내가 아무리 슬퍼도 어쩔 수 없이 밖에 나와야 하는 때가 있다는 민망함, 그럼에도 슬픈 건 어쩔 수 없는 짜증스러움. 이런 감정들은 표현되지는 않지만 가사를 통해, 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통해 어렴풋이 느껴진다.

 음악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선율도 뜬금없이 발랄하다. 이별 노래라고는 믿기지 않는 통통 튀는 리듬과 멜로디 라인이 보인다. 심지어 이 노래는 어린 유승호가 나오는 야쿠르트 CF의 주제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uMMkuf9WcU)

 밝은 멜로디는 노래의 정서와는 모순되지만 가사와는 잘 어울린다. 춤추는 박자대로 드럼과 피아노가 울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굳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내키는 대로 이상한 춤을 추는 어떤 사람의 마음. 그 마음과 잘 어울리는 곡조다.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내 기준으로 너무 많이 인용돼서 쓰면 부끄러울 것만 같은 이 가사를 어떻게든 이 자리에 써본다. 이 말도 역시 헤어진 이후, 끝내고 싶은 마음 혹은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그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담긴 말들이다. 상황이 있고, 대화가 있고, 잠시 멈췄다 입을 떼는 그 순간이 있다. 동시에 노래가 시작하고 ‘안돼요’라는 대답이 울리는 순간, 우리는 다시 그 순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차마 지나칠 수 없었던 사소한 순간들에 대해서, 구질구질하지만 애써 참고 숨기려고 했던 감정들에 대해서.

< Take this Waltz : 그 틈을 완전히 메울 수는 없겠지만 >

르네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원제는 <Take this Waltz>다. 4분의 3박자의 경쾌한 음악에 맞춰 두 사람이 원을 그리며 도는 춤인 왈츠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과 같은, 인생의 행복한 순간들을 응축시켜 표현하는 낭만적인 춤으로 여겨진다. 이 영화에서도 왈츠는 사랑에 대한 비유이다. 그런데 영화가 왈츠에의 비유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응축된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축 늘어진 권태의 시간이다. 영화 속에서 왈츠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충만한 순간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충만함을 조금씩 풍화시키는 시간의 흐름 혹은 반복되는 일상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의미가 겹쳐지면서 왈츠는 두 사람 사이 강렬한 감정들로 꽉 채워졌던 시간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흩어지고 끝내 권태의 시간에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Take this Waltz>는 이처럼 사랑의 시작이 곧 해피엔딩인 영화들이 보여주지 않는 사랑의 씁쓸한 이면, 열병 같은 사랑이 식고 난 후의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미 매력적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보고 싶을 만큼 좋아한 이유는 영화의 주제 자체보다도 주제를 다루는 방식 때문이었다. 영화는 분명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여러 상징적 장면들을 통해 사랑의 유효기간과 권태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결국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이란 무의미한 것인지, 사랑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에 대해 단정내리지 않는다. 단지 권태의 시간 앞에서 어쩔 줄 몰라 괴로워하는 인물들의 감정 상태와 그들이 주저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후회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 속 여러 비유적 장면들은 사랑에 관하여 미리 정해진 결론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랑이 변색되어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감정 상태를 세밀하게 그려내는 과정 자체를 통해 사랑의 한계에 대해 사유해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결론은 우리 각자가 내려야 할 것으로 열어둔 채 말이다. 따라서 이 글 역시 사랑은 어떤 것이라는 혹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필자의 주관적 믿음은 일단 차치해 두고, 영화의 주요 장면들이 묘사하는 감정들을 따라가는데 주안점을 두려 한다.

   이쯤에서 밝혀야 할 사실은, 영화 속에서 왈츠가 스토리 전개를 위한 핵심적 소재로 등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마고와 남편 루가 왈츠를 추는 장면이나, 마고와 대니얼(각 - 마고가 루와의 결혼생활에서 권태를 느끼던 중 호기심을 갖게 된 남자이다. 루이스버그 여행 중 마주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옆 자리에 앉게 되며, 알고 보니 마고의 앞집에 살고 있었다는 우연이 겹치면서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진다.)이 왈츠를 추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왈츠를 떠올리게 만드는 시퀀스는 영화 후반부에, 마고가 루에게 이별을 고하고 대니얼을 찾아가 대니얼의 스튜디오에서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 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레오나드 코헨의 ‘Take this Waltz’가 배경음악으로 나오면서, 카메라는 마치 왈츠를 추듯, 서로를 애무하는 마고와 대니얼을 둘러싸고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카메라가 한 바퀴 돌아 건물 기둥을 지나칠 때마다 마치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의 장면으로 전환된다. 초반의 장면들은 마고와 대니얼이 사랑을 나누는 나날들을 보여주지만, 카메라가 몇 바퀴 더 돌면서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마고와 대니얼의 몸동작은 점차 굼떠지고, 어느새 둘 다 옷을 걸치고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장면에 이르게 된다. 또 다음 턴에서는 마고와 대니얼이 각자 소파에 누워 책을 읽거나 쉬고 있는, 정적인 일상의 장면이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두 사람이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대신 TV를 보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각 - 비슷한 장면이 영화 전반부에서 마고와 루의 권태에 빠진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때 마침 음악이 끝나고 그에 맞춰 카메라 움직임도 멈춘다. 이 왈츠 장면은 6분 정도의 음악이 재생되는 짧은 시간 동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스파크가 튀던 날들이 어느새 모든 긴장이 사라진 푹 퍼진 일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빨리 감기로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과 ‘일상의 반복’,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권태’. 이런 주제를 다루거나 암시하는 장면은 왈츠 장면 외에도 영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고와 제리(각 - 마고의 시누이, 즉 루의 누나이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가 수영장 샤워실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은 아주 직접적으로 그러한 주제를 다룬다. 제리가 자신의 외적 상태에 대해 무관심해진 남편 이야기를 하며 한탄하자, 그 옆의 친구가 “가끔은 새로운 것에 혹해. 새것들은 반짝이니까.”라고 말한다. 반대편에서 샤워를 하고 있던 노년의 여자들 중 한 명이 대화에 끼어들어, ‘새것도 헌 것이 된다’고 말한다. 제리는 잠깐 생각에 빠지더니 “그러네요. 헌 것도 원래는 새 것이었죠.”라고 말한다. 그러자 카메라는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늙은 그녀들의 몸을 보여준다. 그녀들의 몸은 마고나 제리의 몸과 분명히 대조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의아한 점은 ‘새 것도 헌 것이 된다’고 말하는 그녀들이 우울하거나 허무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들은 새것이 헌 것으로 변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경험했고, 그녀들의 육체 역시 낡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들의 표정은 허무하고 씁쓸하기보다는 담담하다. 오히려 그녀들은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면서 자신들이 한 말을 가볍게 넘겨버린다. 그에 반해 마고와 제리는 ‘새것도 헌 것이 된다’는 그 말에 동조를 하면서도 그녀들의 담담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해한다. 지금 추고 있는 왈츠가 점점 느려지고 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마고와 제리는 불안하고 두렵고 이미 조금은 허무하다. 그런데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겪었을 저들은 허무해 하지 않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한 번도 상실을 겪지 않은 사람마냥 명랑한 걸까?

   새것도 언젠가는 헌 것이 된다는 주제는 영화의 또 다른 배경음악인 ‘Video Killed the Radio Star’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래 제목부터 이미 새것(비디오)이 오래된 것(라디오)을 대체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이 노래는 마고와 대니얼이 데이트의 마무리로 스크램블러를 타는 장면에서 삽입된다. 마고와 대니얼의 데이트 장면은 마고와 루 사이의 권태를 보여주는 장면 바로 다음에 나오기 때문에 그 대비가 더욱 두드러진다. 결혼기념일 5주년을 맞이한 마고와 루는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마고는 자신이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 루에게 서운함과 외로움을 느끼고는 왜 아무런 말이 없냐고 루에게 불평한다. 루는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습관처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마고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다음날 마고는 대니얼을 찾아가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마고의 표정은 그 전날과는 달리 설렘으로 가득하다.

 

 

   데이트의 마무리로 마고와 대니얼은 스크램블러(각 - 2명이 앉을 수 있는 놀이기구들 여럿이 중앙기둥을 중심으로 빠르게 도는 놀이기구)를 타러 가는데, 이때 스크램블러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동시에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재생된다. 끊임없이 바뀌는 어두운 조명 아래 빠르게 돌아가는 기구 안에서 마고와 대니얼은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고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다 마고는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며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듯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갑자기 음악이 멈추고 창백한 흰 색 조명이 켜지면서 스크램블러가 멈추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러고는 마고와 대니얼이 어색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스크램블러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꽤 오랫동안 담긴다. 음악이 갑자기 끊긴 후 정적 속에서의 어색한 분위기는 마고와 대니얼의 사랑마저 진부해져 버리는 왈츠 장면을 예고하는 것 같다.

 

 

   마고와 대니얼이 스크램블러를 타는 장면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이 퇴색되어가는 점진적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긴장과 설렘이 넘치던 순간과 그것들이 모두 사라진 순간 사이의 간극을 부각시킨다. 그 결과 사랑과 열정이 응축된 시간으로서의 왈츠가 끝난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 외로움, 불안과 같은 감정들이 전면에 드러난다. 그런데 왈츠 혹은 놀이기구가 끝나는 순간은 관계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순간이라기보다는, 두 사람의 결합이 느슨해지고 그사이의 간격이 드러날 때마다 어김없이 불쑥 덮쳐오는 순간들일 것이다. 그리고 마고에게는 그처럼 느슨해진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이 관계의 끝만큼이나 두렵고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점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도 사랑일까>는 마고가 루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거리감과, 그로 인해 마고의 불안과 외로움이 불어나는 과정을 영화 곳곳에서 차곡차곡 묘사하고 있다.

   하염없이 짓궂은 농담들을 주고받는 마고와 루는 죽이 잘 맞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마고는 루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고 – 더 정확히는 자신들의 관계가 정말 사랑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 불안해한다. (적어도 영화에서 비춰지는) 루는 그들 사이에 오가는 장난이 사랑의 확실한 징표라도 된다는 듯이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다. 루는 마고가 샤워할 때마다 몰래 찬물을 끼얹는 장난을 10년 후까지 계속하려 생각했을 만큼 마고와의 사랑에 대해 안정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마고는 루와 공유하는 장난스러운 일상들로는 메워지지 않는, 둘 사이의 간격을 종종 느끼고 불안해한다. 마고는 루가 닭 요리책을 쓰기 위해 등을 보이고 요리를 할 때마다 너무 쉽게 불안해져서, 자기를 봐 달라고 떼쓰는 아이처럼 루의 등에 매달리거나 화를 내버린다.  

 

   이 간격은 마고가 대니얼에게 흔들리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지치지 않고 마고의 뒤를 따라오고 마고의 사소한 행동들의 이유를 궁금해하는 대니얼과, 마고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려서 둘이 껴안을 때 마고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요즘 마고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루가 분명히 대비되기 때문에, 그 간격은 마고에게 더욱 두드러져 보였을 것이다. 마침내 마고와 루가 크게 싸운 후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둘 사이에 더 이상 메울 수 없는 간극이 그려진다. 루는 창문 안쪽에서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마고를 바깥쪽 테라스에서 바라보면서 마고를 따라 고개를 흔들고 입 모양을 따라해 보지만, 마고가 듣는 음악은 루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마고는 루를 옆에 두고 왜 그렇게 불안해하고 외로워하는 걸까? 마고가 말하듯 루는 한결같은 좋은 남편이기 때문에, 사소한 것들로 그렇게나 불안해하는 마고가 너무 어리석거나 히스테릭해 보일 수 있다. 혹은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은 마고와는 달리, 루는 상대방과 반복되는 일상을 공유하면서 점점 그 자체로 일상이 된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둘은 처음부터 사랑의 방식이 너무 달랐던 것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들은 잠시 제쳐두고 왜 그토록 마고가 쉽게 불안을 느끼고 외로워했는지 그 마음을 가늠해보자.

   마고가 루와의 관계에서 감지한 간격이 대니얼의 등장으로 점점 더 벌어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대니얼을 알게 되기 전부터 이미 마고는 루와의 관계에 있어 불안정한 상태였던 것 같다. 마고와 루의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첫 장면에서부터 마고는 침대 위에서 루에게 등을 보인 채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도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겠다’는 (거짓말인 게 분명한) 말을 한다.

 

   마고의 불안정한 상태는 영화 도입부에서부터 강조된다. 영화는 마고와 대니얼이 루이스버그에서 처음 마주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만나 대화하는 시퀀스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마고는 이제 막 알게 된 대니얼에게 자신의 특이한 공포증에 대해 털어놓게 된다. 루이스버그 성에서는 멀쩡히 걸어 다니던 마고가 공항에서는 승무원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에 타는 모습을 본 대니얼이 그 이유를 물었기 때문이다. 마고는 적당히 둘러대다 결국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비행기를 갈아타는 게 무서워요. 이 비행기에서 저 비행기로 가느라 잘 모르겠는 곳을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시간 안에 갈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도 두려워요. 제 시간에 못 가면 길을 잃고는 공항의 버려진 터미널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서 썩어가겠죠?...[그렇지만] 비행기를 놓치는 것이 두려운 건 아니에요. 비행기를 놓칠까봐 걱정하는 상태가 두려워요. 사이에 끼어서 붕 떠 있는 게 싫어요.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상태가 제일 두려워요.’ 

 

마고가 느끼는 두려움은 비행기를 놓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결과를 예기하면서 느끼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그런 두려움의 감정을 느낄까봐 걱정하는 마음, 그런 감정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달리 말하면 마고는 언제든 길을 잃고 중요한 것을 놓칠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는 상태 자체가 두려운 것이다. 마고는 루의 마음이 언젠가는 식을까봐, 언젠가는 둘 사이에 어떤 감정도 남지 않을까봐 불안해지는 상태를 견딜 수가 없어서 그토록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루와의 관계야말로 마고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그런데 마고가 자신의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또 다른 장면을 보면, 마고의 불안은 루를 만나기 전부터도 항상 존재했던 것 같다. 대니얼은 마고와 몇 차례 만나면서 마고에게 장난스럽고 명량한 상태와 불안한 상태가 공존함을 발견한다. 대니얼은 마고에게 왜 그렇게 항상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안해하는지 묻는다. 이때 마고는 뜬금없이 사촌 토니의 이야기를 꺼낸다.

 

   ‘토니가 계속 우는데 왜 우는지 이유를 도저히 찾아낼 수 없을 때가 있어요. 가끔 보도 위로 한 줄기 햇살이 떨어지면 그냥 눈물이 날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은 금방 끝나고, 어른이니까 순간적 멜랑콜리에 빠져 울면 안 된다고 마음먹어요. 토니도 아마 가끔 그런 순간에 처했던 것 같아요. 왜,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없고, 누가 더 나아지도록 해줄 수도 없는 상태. 살아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는 상태...’ 

   이 대사는 마고의 당시 상황과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루와의 관계에서 권태와 외로움을 느끼는 한편 대니얼에게 조금씩 흔들리는 과정에서 마고가 느끼게 됨직한 불안과 두려움은 이유가 분명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루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며 루와의 관계가 곧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루와의 관계가 이제는 식어버린 사랑을 감추기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는 두려움 등. 그렇지만 마고는 자신이 불안해하고 종종 울고 싶어지는 이유를 특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고의 불안은 특정한 종착지에 도달하지 못할까봐 느끼는 두려움, 혹은 구체적인 두 선택지 사이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갈팡질팡하면서 느끼는 불안이 아니다. (각 - 그런 점에서 마고의 불안을 이해한다는 듯 말하는 대니얼은 사실은 마고의 불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니얼은 ‘사이에서 붕 뜬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말을 루와 대니얼 사이에서 고민하는 마고의 상황이나 루와 마고 사이에 끼어서 애가 타고 있는 자신의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이라는 의미로 특정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고가 토니 이야기를 꺼내며 이유를 알 수 없이 엄습해오는 불안의 존재에 대해 말했을 때 대니얼은 ‘어쩌면 당신이 그 이유를 아직 모르는 걸 수도 있죠’라며 그 가능성을 일축해버린다.) 나아가 마고는 그처럼 문득문득 마주치게 되는 불안과 멜랑콜리의 상태가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되는 보편적인 상태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마고의 불안은 루와의 느슨해진 관계 때문에 비로소 생긴 것이라기보다는 그 전부터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불쑥불쑥 찾아오는, 어떤 견디기 힘든 상태인 것 아닐까?

   마고가 느끼는 불안, 외로움, 멜랑콜리가 특정한 관계에서 느끼는 것이기 이전에, 살아있는 한 겪게 되는 ‘실존적 불안’ 같은 것이라면, 앞서 마고가 가장 두렵다고 말했던 ‘사이에 붕 뜬 상태’ 혹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상태’ 또한 비슷하게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마고가 두려워하는 그 상태란 두려워할만한 무언가가 있는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감정상태가 아니라, 이미 항상 마고와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잊고 있다가도 금세 불쑥 찾아오는 감정상태인 것이다. 그 이유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마치 사이에 붕 뜬 것처럼 기반을 잃어버린 느낌을 주는 그 상태는 우리를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편하고 괴롭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얼른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붙잡아줄 구체적인 기반을 찾아 나선다. 마고에게는 그 기반이 사랑이었던 것일 테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사랑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기반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반이 되어주길 바라는 관계에서 오히려 메워지지 않는 간격을 발견할 때마다 견딜 수 없는 그 감정상태가 다시금 마고를 덮쳐왔을 것이고, 그 때문에 마고는 항상 그토록 불안해했을 것이다.  

   이쯤 되니 처음의 주제였던 사랑과 권태로부터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마고가 루와의 관계에서 외로움과 권태를 느끼게 된 이유가 소위 ‘실존적 불안’ 때문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마고는 분명 루의 특정한 행동과 말들로 인해 그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일상이 루로 하여금 마고를 관성적으로 대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혹은 설령 반복되는 일상이 루의 행동이나 속마음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마고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마고와 루 사이의 간격이 드러날 때마다 마고를 덮쳐온 불안은, 루가 더 이상 마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만으로 환원시켜 설명할 수는 없다는 점이 앞서 마고의 대사들에서 분명해졌다. 마고에게 사랑은 익숙해지고 진부해질 수 있는 것이지만, 불쑥 찾아오는 불안의 상태만큼은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의 상태야말로 사랑이 느슨해지는 권태의 시간이 못 견디게 두려운 이유다. 마고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권태의 시간 앞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생각해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즉 우리는 눈앞의 사랑이 언젠가 진부해질 것이고 그 결과 혼자가 되거나 혼자나 다름없는 외로움 속에서 길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듯 보이지만, 사실 불안과 외로움이라는 틈은 이미 항상 우리 안에 있었고 사랑이라는 특별한 관계가 그 빈 공간을 잠시나마 채워주고 있던 것이라는 생각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불안이 이 영화에서 사랑만큼이나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사실이 더 이상 뜬금없지는 않은 것 같다.

   흥미롭게도 영화 속에서 불안이라는 주제를 마고와 공유하는 인물은 루도 대니얼도 아닌 제리이다. 앞서 언급했듯 수영장 샤워실 장면에서 제리는 새것이었던 남편과의 사랑이 헌 것이 되어가는 과정을 불안하고 허무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당시 제리는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금주 중이었는데, 하루는 마고에게 자신이 잘 견디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누군가 자신이 결국 실패하기만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제리가 대체 무엇을 견디기 위해 술에 의존하게 되었는지는 언급되지 않지만, 그녀가 마고만큼이나 불안하고 비틀거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해 보인다. 영화 중반부쯤 제리는 목표한 금주일수를 달성하여 축하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런데 마고가 루를 떠나고 꽤 시간이 흐른 뒤에 제리는 다시 술에 취해 사고를 치게 되며, 이때 마고는 루의 연락을 받고 그녀를 찾아온다. 제리는 오랜만에 마고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다가 자신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마고에게 화가 나서는, 루를 떠난 마고야말로 자기보다 큰 실수를 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이렇게 말한다.

 

   ‘인생엔 당연히 빈틈이 있게 마련이야. 그걸 미친놈처럼 일일이 다 메울 순 없어.’

 

 

   제리가 말하는 빈틈이 마고가 말하는 ‘사이에 붕 뜬 상태’와 같은 것이라면, 마고와 마찬가지로 제리 역시 그런 상태가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불안의 상태에 빠지는 것이 두려워 루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약간의 틈도 견딜 수 없었던 마고에게, 제리는 매번 새로운 것에 기댐으로써 그 틈을 메울 수는 없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점은, 마고를 비난하는 제리 역시 자기 앞에 드러난 빈틈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다시 술에 의존하는 선택을 해버렸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제리의 비난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비난처럼 들리기도 한다. 혹은 그 틈을 일일이 다 메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틈 사이로 덮쳐오는 불안을 견디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나 역시 또 이런 선택을 해버렸다는 푸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제리가 가족들에게 기대어 불안이 새어나오는 빈틈을 메워보려 시도하지만 다시금 벌어지는 틈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술에 취한 채 나타나는 결말은, 마고가 자신의 틈을 메워줄 새로운 사랑을 선택하지만 결국에는 그 사랑 역시 권태에 빠져 다시금 불안과 외로움을 마주하게 되는 결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두 인물 모두 불안과 외로움의 상태에서 시작해서,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간다. 영화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그 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마고가 컵케이크를 구우면서 우울한 표정으로 오븐 속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동일한 장면으로 끝난다. 그동안 사랑의 상대는 바뀌었지만, 결국 마고는 그때와 같은 외로움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결말은 앞으로도 마고의 외로움과 불안은 그 어떤 특별한 관계를 통해서도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며, 잠시 메워졌던 틈이 벌어지면서 그 사이로 불안은 또 다시 덮쳐올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결국 사랑은 아무 의미 없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세우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영화의 진짜 마지막 장면은 마고 혼자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스크램블러를 타는 상상적 장면이다. 스크램블러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마고는 두려운 듯 경직되어 주위를 살피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그러다 어느새 눈을 감더니 미소를 지으며 스크램블러에 몸을 맡긴다. 마고가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지 아니면 쓴웃음을 지으며 자포자기한 상태인지 분명치 않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음악이 끊기지 않은 채 바로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때문에, 어쩐지 마고가 타고 있는 스크램블러가 영원히 돌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마고는 눈을 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마고의 표정은 결국 누구와 사랑을 하더라도 다시 자기 안의 불안을 오롯이 혼자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 표정 같기도 하다. 아니면 한결같았던 옛사랑을 떠난 것을 후회하는 표정일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마고의 옅은 미소는 언젠가 끝날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불안을 덮어주는 관계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즐기는 표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마고는 앞으로도 자꾸만 벌어지려 하는 틈들을 잠시라도 메워줄 새로운 관계들에 기꺼이 뛰어들 수 있을까? 다시 왈츠를 추고 또 추고 또 추게 될까?

 

 

 

 

 

 알래스카는 안돼요! - 다시 시작된 검정치마의 공백을 맞이하여 되돌아보는 그의 앨범들.

밤톨뿡

 

 2017년 5월 30일, 그 날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바로 검정치마(본명: 조휴일)의 3집 <Team Baby>가 발매된 날이다. 무려 6년 만의 기다림 끝에 나온 정규앨범이었기에 헤드폰을 쓰고 첫 번째 트랙인 <난 아니에요>를 들으며 눈물을 세 방울 흘렸었다.

  2011년 정규 2집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 이후 매해 ‘빠르면 올해 안에 앨범이 완성될지도’, ‘올해 여름에는 성실하게 일하겠다.’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작업물은 내놓지 않아 팬들을 애타게 하다가 2015년 4월 9일, 4년 만에 <Hollywood>라는 싱글앨범을 냈다. 팬들은 어마어마하게 화가 나있었지만 노래가 너무 좋아서 잠시 조용해지는 듯싶었으나.... (각 - 팬들이 얼마나 열이 받아있었는지는 당시 멜론 리뷰창에서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이 ‘야 이 X 발 새 끼 야 앨범 내라’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벤트성 싱글 한 장을 뿌려놓고 다시 검정치마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리고 그 해 11월, ‘올해에도 앨범을 못 내면 망해서 알래스카로 이주하겠다.’라는 말까지 했으나, 정규 앨범은 나오지 않았고 분노한 팬들은 ‘조휴일 빨리 알래스카로 떠나라’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계속해서 보내기 시작했다. 2015년 12월 16일, 조휴일은 이메일 폭탄에 자극(?)을 받았는지 블로그에 게시물을 남긴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저번 달부터 작업실 구해서 엄청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 3~4시나 되야 집에 들어가요. 출근 시간이 좀 늦긴 하지만, 그전에도 안 한건 아닌데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공백이 좀 길었어요. 올해도 거의 다 끝나가고. 아 모르겠다. 새 앨범 정말 좋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해도 소용없겠죠. ‘조휴일 빨리 알래스카로 떠나라’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11월부터 지금까지 몇 통이나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중 반은 애증담긴 팬 메일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의 분노가 담겨있더군요. 그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만, 지금 알래스카 날씨가 어떤 줄은 아세요? (중략) 곧 빠른 시일 내에 (wink) 기쁜 소식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후략)

 

 그리고 2016년 1월, 13일, 하이그라운드 페이스북에서 ‘알래스카 가시겠다는 조휴일씨를 붙 잡아 저희 하이그라운드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검정치마가 하이그라운드 소속이 되었음을 알리고, 검정치마는 그해 1월 29일에 <Everything>, 3월 15일에 <내 고향 서울엔>이라는 싱글앨범을 연달아 낸다. 사실 조휴일은 본인의 입으로 직접 자신은 정규앨범 밖에 사랑하지 못하는 20년대의 purist라고 했으나, 분노한 팬들을 달래려면 싱글이라도 던져주는 것이 그에게도 이로웠다. 그토록 기다리던 정규앨범은 아니지만, 그래도 검정치마의 컴백이 머지않았다는 기대감에 팬들을 들떠있었다. 하지만 조휴일씨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마는데! 하이그라운드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알래스카의 눈물: 검정치마> 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검정치마 2집이 발매되고 지금까지 올림픽 두 번, 월드컵 한번, 총선 두 번이 지나갔다. (오바마 재임과, 트럼프 당선도 있었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올해 발매예정이던 앨범이 내년으로 미루어질 것 같다는 (...) 슬픈 소식을 알린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몇 개월은 엄청 짧은 시간이었고, 팬들은 ‘일해라 조휴일!’을 외치며 다시 기다렸다. 그리고 <Team Baby>라는 3집 앨범이 나왔고 팬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게다가 3집이 총 세 개의 파트로 이루어져있으며, <Team Baby>이후에 나올 노래가 20개 더 남았다는 사실이 팬들을 더욱 기쁘게 했다.

 

 

 

 

 

 

 

 

<알래스카의 눈물 : 검정치마>

 

 

정규 2집 자켓 사진.

 

  이렇게 오랜 시간 팬들을 기다리게 하고 나온 3집 앨범은 어땠을까? 확실히 1집과 2집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정규 1집 <201>이 나왔을 때, 조휴일의 나이는 26살,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였다. 1번 트랙 <좋아해줘>에서는 너무 당당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자기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구한다. (각 - 날 좋아해줘. 아무런 조건 없이 니 엄마 아니면 아빠보다 더), 6번 트랙 <Tangled>에서는 자신을 떠나는 여자친구를 향해 '사랑을 외던 끈적한 입술에 바르던 분홍색 다른 입술로 번지려 하네. X발 나 어떡해.' 라고 찌질하게 욕을 한다.

 이러한 검정치마 특유의 찌질한 감성은 12번 트랙 <Fling; Fig From France>에서 정점을 찍는데, 자신을 가지고 노는 여자에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좋다고 말하고, 밤에 그 여자를 찾아서 헤매기까지 한다. (각 - 날 가지고 노는 걸 알아. 그래서 난 니가 좋아, 푸른 달 아래 널 찾아 헤매.) 3번 트랙 <강아지>에서는 자신은 아직 개 나이로 3살 반이라며 극악무도한 가사로 젊음과 사랑을 노래한다. (각 - 실제로 조휴일은 방송에 이 노래가 나갈 때 일부 가사를 수정해서 불렀다. ‘우리가 알던 여자애는 돈만 쥐어주면 태워주는 차가 됐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개가 되려나봐 손을 댈 수 없게 자꾸 뜨거워 / 반갑다고 흔들어 대는 것이 내 꼬리가 아닌 거 같아 / 사랑은 아래부터 시작해 척추를 타고 올라온거야’ 라는 가사를 ‘우리가 알고 있던 애는 손만 쥐어주면 정말정말 좋아했고 / 나는 언제부터인가 곰이 되려나 봐 손을 델 수 없게 자꾸 뜨거워 / 반갑다고 흔들어 대는 것이 곰이 꼬리가 어디 있나 / 사랑은 발끝부터 시작해 척추를 타고 올라온거야’라는 이상한 내용으로 부른다.) 1집에서 <강아지>와 <tangled>는 다소 외설적인 가사와 욕설로 인해, <I like watching you go>도 ‘어느 아빠나 마음은 똑같겠지만 / 이게 어딜 봐서 비슷한 걸까 / 나는 이마 대신 입에 맞추네’라는 가사가 근친상간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고 결국 이 세 곡 모두 19세 판정을 받는다.

 이렇게 1집에서 검정치마는 20대의 철없고 찌질한 사랑과 그 때의 아련함을 필터링 없이 과감한 언어로 노래했다. 검정치마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부른 <좋아해줘>가 자해공갈 느낌이라고 말했는데, 1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필자는 1집을 전체 재생한 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길 정중앙에서 징이 박힌 라이더 자켓을 입고, 장발을 흔들며 불러야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악을 쓰거나 점프를 하면 더욱 신날 것 같다.)  

 

정규 1집 리패키지 버전 자켓사진

 

 

 

1집 초판본. 중고 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정규 2집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을 냈을 때 조휴일의 나이는 29살, 거의 서른이었다. 2집의 트랙들을 순서대로 들어보면, 1집에 비해서 전반적인 노래 분위기가 차분해지고 가사도 많이 얌전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집에서는 젊은 날의 패기와 철없음을 노래하지만, 2집에서는 좀 더 달콤하게 사랑을 노래한다. 이는 <Ariel>, <젊은 우리 사랑>, <이별노래>, <international love song>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1집에서는 정말 찌질한 사랑을 노래한다면, 2집에서는 성숙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장난스럽게 사랑을 노래한다. 대표적으로 <기사도>와 <무임승차>를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약간의 ‘장난기’는 검정치마의 노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요소이다.

 한편, <음악하는 여자>는 ‘음악하는 여자는 징그러 시집이나 보면서 뒹굴어 아가씨’라는 가사로 인해 논란이 된다. 팬들은 미술을 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곡이라서 음악하는 여자가 싫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과거 검정치마의 구성원이었고, 현재는 따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뮤지션인 ‘야광토끼’를 저격한 곡이라고 한다. ( 각 - 실제로 야광토끼는 이 곡이 나온 이후에 <왕자님>이라는 역저격곡을 냈다. 또한 검정치마와 야광토끼가 연인 사이였다는 궁예도 있다.) 이 문제는 공론화되지 않은 채 팬들의 쉴드에 묻혀갔고, 조휴일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떠오르는 대로 노래를 만들고 수정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을 진지하게 누군가를 지목해서 훈수를 두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각 - 인터뷰 대답 전문: ‘음악하는 여자는 징그러’라는 가사 뒤에는 이런 노랫말도 나오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 안 하는 게 좋을텐데. ‘가삿말에 진심을 담지마’(웃음). 음악 하는 여자들 가운데는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거나 자기 노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오버다. 원래 떠오르는 대로 노래를 만들고 수정도 잘 안하는 성격이라 쭉 써내려갔지만 누군가를 지목해서 진지하게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는 노래로는 해석이 안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실제로 음악하는 여자들에게 매력을 못 느끼는 건 사실이다. 기자님도 글 쓰는 남자 싫지 않나? NBA선수도 WNBA선수랑 서로 안 사귀는 거랑 비슷하다. - W korea 2011.8.25. 인터뷰) 검정치마를 좋아하면서 유일하게 가려운 구석으로 남아있는 부분이다...

 정리하자면, 전체적으로 성숙해졌지만 조금은 장난스러운 2집은 1집처럼 길 중간에서 악을 쓰며 부르는 것이 아니라, 번화가에서 버스킹으로,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들과 적당한 장난을 치면서 부르는 느낌이다.

 

  

정규 2집 자켓 사진. 현재 조휴일씨의 부인인 김신혜씨가 작업했다.

 

과거에 키보드를 맡았던 야광토끼

 

 그리고 3집 <Team Baby>, 검정치마는 결혼 후 자식까지 낳은 영향인지 이전의 앨범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성숙해진 가사로 사랑을 노래한다. 자해 공갈단처럼 사랑을 노래하던 철없고 혈기왕성한 20대는 사라지고, 안정되고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36살의 남자만 남았다. 이 남자는 길고 긴 공백기 동안 어떤 여자의 남편이자 어떤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더 이상 찌질하고 장난기 넘치는 사랑노래는 하지 않는다. 진지하고, 진실된 사랑을 노래한다. 실제로 3집이 나오기 전 피키캐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전 앨범의 과감하고 공격적인 가사들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조휴일은 이제는 성숙해져서 그런 가사들은 기억이 안 난다며, 그 당시에는 홍대를 자양분 삼지 않고, 한국에 연고가 없어서 표현이 자유로웠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각 - https://r.pikicast.com/s?fr=&t=RALCKGn&m=lk&c=ws&v=sh&cid=on3&i8n=kr)

 <한시 오분>에서는 오래된 연인과의 관계를 ‘같은 템포, 다른 노래’로 비유하고, 매일 다른 이유로 연인을 사랑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Diamond>에서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다이아몬드와 자신의 사랑이라고 노래하고, <나랑 아니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말한다. 이렇게 로맨틱한 가사들과 검정치마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 그리고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음이 합쳐져서 청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노래들을 모두 믹서기에 갈아서 뿅! 하고 만든 것 같은 노래가 있는데, 바로 <Everything>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3집의 베스트 트랙이며 <Antifreeze>를 이어 한국 인디음악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사랑 노래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검정치마 3집 어때요?” 라는 질문을 하면 “<Everything>을 들어보세요. ^.^”라는 말이면 충분하다. 그가 노래하고자 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3집의 전체적인 노래분위기가 어떤지 설명할 수 있는 노래다.  

 3집을 들으면 그에게 연애편지를 받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의 연인이 부러워지기 시작한다. 필자는 이렇게 검정치마의 3집을 들으면서 연애에 대한 모든 로망을 형성했다. ( 각 - TMI: 필자는 조휴일이 결혼한 것을 뒤늦게 알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연인이 너무 부러워서! 방 커튼도 <Everything> 싱글앨범 커버에 나와 있는 분홍색 커튼으로 하려다가 가족의 만류로 인해 결국 암막커튼을 달았다.) 1,2집과 달리 3집은 더 이상 길에서 부르는 느낌이 아니다. 둘만 있는 방안에서, 연인과 누워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느낌이다. 방 안이 몽환적인 음으로 가득차고, 몸이 젖어들면 나른한 느낌과 함께 마음이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verything> 싱글 앨범 자켓
3집 컴백 후 홍대 상상마당 공연 모습

 

 조휴일이 나이를 먹어감과 동시에 그가 만드는 음악의 느낌도 달라져왔다. 지금까지 나온 3개의 정규 앨범은 모두 다른 느낌이며 각각의 특징이 있다. 그리고 2집과 3집 사이의 텀이 길었던 만큼, 3집의 음악들은 기존의 검정치마의 음악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다. 그리고 어색하지 않다.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에 그의 새로운 앨범을 기다리는 것은 보람도 있고, 일하라고 다그치는 것도 더 이상 괴로운 일이 아니라 팬들 사이에 하나의 재미로 자리잡았다.

 사실 괴로운 일이 아니라는 건 거짓말이다... 팬들은 검정치마의 신보를 항상 기다린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에 노래를 하나씩 내줬으면 좋겠고, 이름은 휴일이지만 휴일 없이 일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고 6년의 공백을 겪어봤기에 이제는 조휴일씨가 그냥 일하고 싶을 때 열심히 일해서 좋은 노래를 적당한 시기에 던져준다면 만족할 것 같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기존에 냈던 노래들을 복습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는데, 왜 검정치마는 거의 6년의 긴 공백기를 만들면서 팬들의 속을 타게 한 것일까? 본인의 말로는 2집을 내고 새로운 취미를 갖고 싶어서 무턱대고 게임기를 샀는데 게임을 하다보니까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1년이 되고, 1년이 2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집에서 영화를 보며 지냈다고. 모든 팬들이 이 말을 듣고 속이 부글부글 거렸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사태를 겪은 후에 그는 앞으로 열심히 일해서 다시는 긴 공백을 가지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각 -  https://r.pikicast.com/s?fr=&t=RALCKGn&m=lk&c=ws&v=sh&cid=on3&i8n=kr)

 3집 Part 1. <Team Baby> 이후 1년하고 반년 정도가 지난 이 시점에, 검정치마는 인스타그램으로 3집 Part 2.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전하고 있지만, 발매일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조휴일씨, 당신 덕분에 기다림에는 도가 텄습니다. 추워질 때 돌아온다고 했는데 이미 너무너무 춥습니다. 제발 파트 투를 빠른 시일 내에 던져주세요. 앨범 안 내고 알래스카로 떠나면 안 됩니다. 일해라 조휴일!!!

+) 3집 파트 투 <Thirsty>가 2월 말에 발매된다는 소식을 1월 11일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전했다. 일했다 조휴일!!! 꺄!!!!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시나요? 

히가시노 게이고 읽기의 기록

아게추

 

 

* 아주 주관적인 독해와 감상에 기반하고 있는 글임을 밝힙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주요 작품들의 줄거리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현저히 독서량이 줄긴 했으나 한때 하루에 권씩 책을 읽기도 했던 나의 독서 편력을 기억나는 시점부터 기술하는 것은 너무나 지루한 일이겠지만, 그중에서 개의 터닝 포인트를 발견할 있다면 아마 가장 최초의 것은 일본 추리소설과의 만남일 것이다. (각주 1: 여담이지만 개인적인 회고를 위해 첨언하자면 번째는 사르트르의 『구토』이다. 번째는 배수아의 『북쪽거실』이었다.)

셜록 홈즈로 생애 추리소설을 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기점으로 일본 추리소설의 열렬한 독자가 되었다. 3 위의 언니와 같은 책을 읽었으니 당시 나이(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시절에 일본 추리소설을 가장 열심히 읽었다)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을 텐데, 많은 사춘기 아이들이 그렇듯 그때는 자신이 굴었으므로 다소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을 일종의 훈장처럼 여기기도 했던 같다.

나는 글의 이해도와는 관계없이 글자를 읽는 속도 하나만큼은 빠른 편이었고, 게다가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모조리 읽어야 성에 찼기 때문에 좋아하는 몇몇 추리소설 작가들의 작품들을 섭렵하듯이 읽어댔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에서 시작하여 이사카 고타로, 오츠 이치나 아야츠지 유키토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 아주 조악하고 주관적인 분류이긴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과학적 전문성을 소재로 삼아 이론적으로 치밀한 추리소설을 쓴다면 미야베 미유키는 조금 인간적인 면모를 중시하는 추리소설을 쓴다는 대립적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미지는 내가 이후 접하는 작품들을 분류하는 스펙트럼의 양극을 이루었다.

 

 

2. 내가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들의 성격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블랙 코미디: 『흑소소설』, 『독소소설』, 『괴소소설』

갈릴레오 시리즈: 『탐정 갈릴레오』, 『용의자 X 헌신』, 『예지몽』, 『갈릴레오의 고뇌』, 『성녀의 구제』, 『한여름의 방정식』

가가 형사 시리즈: 졸업』, 『잠자는 숲』, 『둘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그를 죽였다』, 『거짓말, 개만 더』, 『악의』, 『붉은 손가락』

과학/의학적 소재에 상상력을 더한 작품군: 『레몬』, 『숙명』, 『변신』, 『플래티나 데이터』(절판된 2018 『미등록자』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라플라스의 마녀』

사회 문제를 소재로 삼은 작품군: 『방황하는 칼날』, 『붉은 손가락』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작품군: 『백야행』, 『환야』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대표작인 『용의자 X 헌신』이 처음 국내에 발행된 것은 2005년이지만, 내가 처음 접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 경향 속에서도 예외적인 블랙 코미디 『흑소소설』(2007)이었다. 뒷맛이 씁쓸한 웃음을 주는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작품들인 『흑소소설』, 『독소소설』, 『괴소소설』을 접한 뒤에야 그의 데뷔작인 『방과후』를 읽었는데, 전자와 후자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 이게 같은 작가가 거라고? 하며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아래는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가지 지점들에 대한 코멘트이다.

 

몇몇 추리소설 작가들은 소설 속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인물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전에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같은 것을 삽입하여 추리에 필요한 요소는 모두 갖추어졌으니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보라는 요청을 하기도 하며,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이런 실험을 행한 적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품 속에서 내세우는탐정역할의 인물로는 대표적으로갈릴레오유가와 마나부와가가 형사가가 교이치로가 있는데(아가사 크리스티에게 포와로, 코난 도일에게 홈즈 같은 존재라고 있다), 가가 형사 시리즈의 몇몇 작품들(『둘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그를 죽였다』 ) 사건의 진상과 범인을 밝히지 않고 끝난다. 추리를 독자의 몫으로 돌린 것이다. 작품 뒤에 붙어 있는 부록에도 힌트가 법한 내용만 아리송하게 쓰여 있을 뿐이다. 

사실 나는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를 붙였다기보다 매력적인탐정인물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라 이런 류의 추리소설에서는 결국 범인을 알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사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추리를 제시하고 있어 참고할 있을 테지만, 사실에 생각이 미쳐 책을 검색해보았을 때는 이미 책을 읽은 시간이 너무 지나 등장인물들이 누가 누군지 분간할 없게 후였다.

 

추리소설에서 명석하고 이지적인탐정 다정한 성품에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파트너의 존재는 셜록 홈즈와 왓슨 이래로 거의 필수적인 요소가 듯하다. 갈릴레오 시리즈에서 유가와와 쿠사나기, 다른 일본의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에서 히무라와 아리스가와( 작가는 자신의 필명과 같은 이름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관계가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 역시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작품들에서 유미노스케와 헤이시로라는 인물들을 통해 관계성을 구현하고 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고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에서는 과학 분야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갈릴레오 시리즈, 특히 『예지몽』 같은 작품이 그러했고, 『변신』에서는 사고 때문에 이식을 받은 주인공이 본래의 자신을 잃어가고 이식받은 주인의 사고와 성격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편 『플래티나 데이터』는 모든 국민의 DNA 국가가 관리하게 사회에서 정말로 DNA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의 문제를 다룬다. 

이렇게 과학적 소재를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이것이 초래하는 사회적 결과에 초점을 맞춰 히가시노 게이고는 현대의 체계의 한계에 대한 통찰을 작품에 담아내기도 했다. 자신의 딸을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들을 대신 심판하려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면서 법이 범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복수는 정당화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방황하는 칼날』이 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다수는 영화나 연극 등으로 제작되어, 원작과 이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표적으로는 『용의자 X 헌신』이 일본에서 영화로, 한국에서 동명의 뮤지컬과 <용의자 X>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된 있다. 또한 『유성의 인연』이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는데, 드라마에서는 묘한 개그 코드와 빠른 사건 전개로 원작보다 뛰어난 편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플래티나 데이터』는 일본에서 영화화되었는데 원작과는 인물 설정을 조금 바꾸고 원작의 복잡한 인물 관계를 간결하게 만들었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갑작스러운 교훈 전달은 어색하지만 감안할 만하다. 사실 좋아하는 영화라 봤다. 

『방황하는 칼날』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영화로 제작되었으나 책만 읽었고,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라플라스의 마녀』도 영화화되어 2018 일본에서 개봉했다. 한국에서도 개봉한다는 소식이 작년부터 있어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백야행』은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영화화되었는데, 한국판 <백야행> 손예진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했다. 

가장 최근에 제작된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영화는 아마 <매스커레이드 호텔> 것이다. 지금은 해체한 아이돌 SMAP 멤버였으며 배우로도 활발히 활동해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으로, 2019 1 18 일본에서 개봉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읽지 않게 되었는데, 한때 한국에 번역된 작품들에 약속이라도 것처럼 불륜을 저지르는 유부남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언제쯤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권의 책에 연속해서 그런 소재가 등장하자 그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과는 심정적으로 작별을 하고 말았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으로 책을 고르는 취향이 바뀌기 시작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3. 그런데 한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과 거리를 두고 있었던 나에게도 그의 유명세를 분명히 느끼게 작품이 있었다. 바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이전에도 추리 소설 층에게서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던 히가시노 게이고를 대중적인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있을 것이다. 작품은 2012 처음 출간된 이후 국내의 각종 서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일본에서는 영화, 한국에서는 연극으로 만들어져 인기를 누렸다. 작품을 계기로 국내 번역 문학 시장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 불패 신화가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를 보다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 이렇게 인터넷 서점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점하고 있는 위치를 살펴보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2019 1 23 기준 1주일간 가장 많이 판매된 ) 4위에 올라 있다. 6위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인 『마력의 태동』이다.

 

 

알라딘 스테디셀러 15위에 올라 있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인터파크에서는 2018 베스트셀러 10위에 올라 있었다. 내친김에 2017 베스트셀러를 찾아보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순위가 조금 높아 7위였다. 2012년에 처음 책이 출간된 것을 감안하면 정말 꾸준한 인기라고 있다.

 

특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인기는 한국에서 이례적인 것으로, 일본에서는 이정도의 인지도는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일본 아마존 홈페이지에서 문학 도서 분야의 랭킹을 살펴보면,

 

순위권에 올라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작품은 『매스커레이드 호텔』이다. 이는 최근 일본에서의 영화 개봉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40위까지 살펴보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랭킹은 2019 1 23 9시경을 기준으로 것이며, 아마존에 따르면 시간마다 갱신된다고 한다).

 

이쯤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지 않은 독자(바로 나처럼)라면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대체 어떤 책이길래? 그래서 글의 초기 목적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한국 독자들에게 이렇게나 어필할 있었던 이유를 나름대로 고찰해보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아주 열심히 읽었다가 그러지 않게 후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유명세를 탔기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지 않았었고, 도대체 어떻길래 이렇게 인기가 있나 하는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 동안이나 읽지 않고 버텼던(이쯤 되면 스스로에게 이상한 고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나로서는 작품이 그토록 유명해진 특별한 이유를 짐작해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작품성이 부족하다거나 재미없다는 의미의 평가는 결코 아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는

1)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20 전과 현재의 시간이 만난다는 비현실적인 요소와

2) 20 전의 시점에서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 상담을 보내는 사람들과 20 폐점한 나미야 잡화점에서 고민 상담에 답장을 쓰는 아이들이 자란 보호 시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가 밝혀지는 과정이 기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적절히 섞여 있어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있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경향에 비추어 보았을 , 본격 추리소설과는 조금 거리를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있으면서 나름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으로 읽혔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앞에서 언급한 분류 항목 중에서 어떤 것에도 만족스럽게 들어맞지 않는다. 굳이 비교할 만한 작품을 찾자면 『유성의 인연』과 비슷한 느낌이라고도 있겠으나 『유성의 인연』에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등장하지 않으며, 『유성의 인연』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보다 조금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유는 아닌 듯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체 작품 경향 속에서도 꽤나 예외적인 작품인 셈인데, 바로 이런 사실이 한국에서의 성공 요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머리를 굴려서 알리바이와 트릭을 검토하지는 않으면서 적당히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낄 있고, 마지막에는 따뜻한 감동이 전해지는 .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 나미야 씨는 익명의 고민 투고에 진지하게 고민한 따뜻한 답장을 주는 인물이다. 그의 성품과 업은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쇼타, 아쓰야, 고헤이라는 인물들에게로 이어진다. 이들은 일종의 강도 짓을 20 폐업한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드는데, 나미야 잡화점에서 몸을 숨기는 밤의 시간 동안 과거로부터 고민 상담을 받아 그에 답장을 쓰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란 고아원을 누군가가 사들여 러브호텔을 세우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사업가의 집에 숨어들어가 강도 짓을 상태이고, 답장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고민 상담을 상대가 바로 자신들이 해코지를 사람이며 사람은 러브호텔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비리와 방만 운영으로부터 구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식으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모든 이야기가 결국에는 연결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방식은 악의나 분노, 증오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애정과 타인을 향한 온기 어린 마음 씀씀이이다. 이러한 요소가 단발적으로 반짝 등장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마치 유산처럼,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다는 점은 상당히 희망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나미야 같은 인물이니까 이런 일을 있었던 거야, 아니라 누구나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까닭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가진 이러한 분위기는 많은 추리소설들이 범인이 밝혀진 씁쓸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는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한국 사람들이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나 류의 도식적인 결론이나 국민성을 운운하는 결론을 내고 싶지 않아, 한국 번역 문학 시장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성공을 한국 독자들의 특성과 연결 짓는 식의 논의를 쓰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느꼈던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들의 경향을 정리하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특징은 어떤지를 살피는 선에서 글을 마무리하여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나름의 개론을 세울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한국 번역 문학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인기를 누리는 역시 사실이므로, ‘가장 인간적인 증오나 분노가 아니라 애정, 연대, 보살핌 등의 요소에서 찾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힘이 얼마나 오랜 영향력을 가질지 기대해볼 일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시나요, 그의 작품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위기에 처한 보컬로이드 음악의 방향을 묻다.

- wowaka ≪world0123456789≫ 음반 리뷰 -

마노

 

#0. 읽기 전에

* 보컬로이드가 일본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이다 보니 이 글에서는 일본어가 빈번하게 사 용되었습니다. 이 글에서 한문 또는 가나 문자로 표기된 일본어는 한 번 ‘한글(원어)’의 형 식으로 표기한 후, 한글로만 표기하겠습니다. 또한 일본에서 로마자를 사용해서 표기하는 고유명사의 경우, 창작자가 한문 또는 가나 문자로 표기하지 않는 의도를 존중하여 있는 그 대로 표기하겠습니다. 특히 로마자 표기의 경우 고유명사임에도 불구하고 첫 글자를 소문자 로 표기하는 사례가 몇몇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의도를 존중하여 그대로 표기하겠습니 다.

* 이 글에서 음반명은 ≪≫안에, 곡명은 <>안에, 음악이 아닌 영화와 TV 시리즈 등의 작 품명은 안에 표기하겠습니다.

#1. 보컬로이드

‘보컬로이드’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2차원에 관심이 아예 없으시다면 관련된 지식이 전혀 없을 수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청록색 양갈래머리의 하츠네 미쿠(初音ミク)라 는 캐릭터는 어디선가 한 번 정도 보신 적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07년 8월 31일에 공개된 후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고, 옛날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인기 있 는 이 캐릭터를 저는 참 좋아합니다.

보컬로이드는 야마하에서 개발하여 2003년에 처음 발표한 음성 합성 프로그램입니다. 인 간의 음성을 합성하는 기술은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보컬로이드는 일상 언어가 아닌 노래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초기의 보컬로이드는 보컬리스트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의 아마추어 작곡가를 위한 툴 정도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5년 마 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의 정규음반 ≪Light + Shade≫에 인간 보컬 대신 보컬로이 드가 사용되는 등의 사례가 있긴 했지만, 어색한 기계 합성음 때문에 보컬로이드가 실제로 사용된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2. 흥망성쇠

그러다가 2007년 크립톤 사의 하츠네 미쿠를 기점으로 ‘이미지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도 입되면서, 보컬로이드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일종의 악기이자 작곡 도구 였던 보컬로이드가 캐릭터 상품으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2007년 9월 초에 <Ievan Polka> 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위 ‘파돌리기송’이 일본의 동영상 사이트 니코니코 동화(ニコニコ 動画)에 업로드된 것을 시작으로 해서 하츠네 미쿠를 필두로 한 보컬로이드는 엄청난 인기 를 누리게 됩니다. 2007년부터 활동한 작곡가들인 ryo1)나 cosmo@폭주(暴走)P 등의 초기 보컬로이드 음악들도 분명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보컬로이드의 황 금기는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진(자연의 적P)(じん(自然の敵P))이 아지랑이 프로젝트 (カゲロウプロジェクト)의 첫 번째 곡 <인조 에네미(人造エネミ-)>를 투고한 2011년 초 에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보컬로이드는 소위 오와콘2) 위기론이 제기될 정도로 점점 내리막길을 겪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작곡가를 위한 음성 합성 프로그램이었던 보컬로이드가 인기 를 끌게 되면서 점차 진입장벽이 높아졌고, 이와 더불어 상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점차 ‘캐릭 터 상품’화 된 것이 위기의 단초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위기상황은 앞서 언급한 아지 랑이 프로젝트의 애니메이션 메카쿠시티 액터즈(メカクシティアクターズ)(2014)가 작품 성과 상업성 양쪽에서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확실히 보컬로이드 기 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만, 이를 바탕으로 한 보컬로이드 문화는 오히려 쇠퇴하고 있 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보컬로이드 문화사 자체(흥망성쇠?)에 관해서 하고 싶은

1) 이후 supercell이라는 팀을 만들어서 활동하게 됩니다.
2) 일본에서 끝장난 콘텐츠(終わったコンテンツ)를 의미하는 인터넷 줄임말입니다.

이야기도 정말 많습니다만, 이에 관해서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글을 써보도록 하고, 서론은 이쯤에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3)

#3. wowaka

2010년 2월 7일 발표된 wowaka의 두 번째 인디 음반 ≪world0123456789≫는 제가 정 말로 좋아하는 음반입니다. 안타깝게도 판매처인 토라노아라에서 품절되어 현재 신품으로는 구할 길이 없고, 제가 아는 한 국내에서 음원 서비스도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 음반 제목을 검색하면 전곡을 들을 수 있는 영상이 하나 나오기는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큰 노력 없이 이 음반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차고 넘치는 음반들 가운데 ≪world0123456789≫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정말 좋은 음악들이 수록된 음 반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저평가는커녕 평가받을 기회조차 별로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상업적으로 잘 팔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기 엔 전통적으로 권위 있는 장르들에 밀리는 음악을 누군가는 선입견 없이 들어줬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3) 사족입니다만, 보컬로이드 음악은 아마추어 작곡가들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작품들부터 음원 동영상이 인터 넷에 공유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음악 스타일이 아래에서부터 시작되어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완벽하게 추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사족의 사족으로 저는 ‘보컬로이 드 음악’은 여러 장르의 음악이 보컬로이드라는 악기를 공통분모로 하여 묶여있을 뿐 하나의 장르로 간주해서 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보컬로이드 작곡가 시절(2009년에서 2011년 사이)의 wowaka를 정말로 좋아합니 다. 그때가 보컬로이드의 초창기를 막 넘어 황금기에 접어드는 시대이기도 했고, 다른 뛰어 난 작곡가와 명곡들도 많습니다만, 그중에서도 특히 wowaka를 좋아하는 이유는 개성이 상 당히 분명한 작곡가인데다가 보컬로이드를 인간 보컬리스트의 하위 호환 대체재 느낌이 아 닌 독자적인 가치를 가진 악기의 느낌으로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0 BPM 정도의 몰아치는 듯한 속도감, 일반적인 인간의 안정 음 역대를 벗어난 고음이 보통 wowaka 보컬로이드 음악의 특성으로 정의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게 다는 아니라고 봅니다. 분명 보컬로이드도 안정 음역대와 BPM이 제시되어있는 음성 합성 프로그램이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여러모로 버거워지기 때문에 이런저런 재가공이 필 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오토튠으로 떡칠을 한 상업적 음악하고 이게 뭐가 다른가?' 하는 딜 레마에 부딪힙니다. 보컬로이드 음악의 퀄리티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오히려 인기는 감소 하는 원인 중 하나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감정이 없는, 확실히 인간이 아닌 것이 노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 는 것이 wowaka 보컬로이드 음악 전반에 깔려있는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위에 서 말한 속도감과 고음도 포함되겠네요. '혼자서 이렇게 완벽한 음악을 만들 수 있구나' 하 는 생각에 보컬로이드 음악에 뛰어들었다는 wowaka의 이야기를,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이 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디스코그래피

보컬로이드 애호가들에게 wowaka의 대표곡을 뽑으라고 하면, 아마도 <롤링걸(ロ-リン ガ-ル)>, <겉과 속의 러버즈(裏表ラバ-ズ)>, <월즈 엔드 댄스홀(ワ-ルズエンド・ダンス ホ-ル> 정도가 거론될 것 같습니다. wowaka의 두 번째 인디 음반인 ≪world0123456789 ≫의 치명적인 한계라면 소위 ‘대표곡’이 한 곡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니코니코 동화에 공개적으로 업로드된 음악은 두 곡밖에 없습니다. 이 음반이 희귀반 아닌 희귀반이 되어버린 데는 이런 이유가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world0123456789≫를 wowaka의 음반 중에 가장 좋아합니다. wowaka가 록 밴드 히토리에(ヒトリエ)로 프로 데뷔한 후의 음반들까지 모조리 합치더라도 이 음반을 가장 좋아합니다.

wowaka의 첫 번째 인디 음반인 ≪the monochrome disc≫(2009)는 wowaka가 초기에 니코니코 동화에 업로드했던 음악들을 단순히 모아놓았다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음질이 최악입 니다. 분명 음악을 음질로 듣는 건 아닙니다만, 인디 음악인 걸 감안해도 ≪the monochrome disc≫는 심각합니다. 의도적으로 로우파이 음악 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21세기에 발표 된 음원의 음질에 대한 제 개인적인 마지노선인

supercell의 인디 시절 첫 번째 셀프 타이틀 음반(2008)과 넬 인디 1집 ≪Reflection of≫ (2001) 보다 심각한 수준입니다. 지금은 잘 나가는 아티스트의 초창기 덜 다듬어진 음악을 들으면서 ‘그래, 나도 음악 할 수 있어!’라는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저는 어느 정도 즐기면 서 듣는 음반입니다만, 강력하게 추천하기는 어려운 음반입니다.

 

 

세 번째 인디 음반인 ≪Seven Girls' Discord
≫(2010)는, wowaka의 대표곡이라고 할 만한
<롤링걸>과 <월즈 엔드 댄스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니코니코 동화에 업로드된 적
은 없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곡인 <천칭, 시계,
전화(天秤・時計・電話)>라는 곡도 있습니다.
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장르인 일렉트릭 기타를
중심으로 한 연주곡인 <도쿄 조크(東京ジョ-
ク)>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같은 곡의
다른 표현으로 봐도 무방한 느낌의 두 곡, <의식의 가격(意識の値段)>으로 열어서 <비밀 의 가격(秘密の値段)>으로 닫는 수미상관 구조도 멋집니다. 하지만 제가 ≪Seven Girls' Discord≫를 ≪world0123456789≫의 뒤로 미루는 이유는, 트랙 개수를 음반 타이틀로 가 져온 것부터 해서 수미상관 구조와 연주곡이 삽입된 것까지, 전부 ≪world0123456789≫에 서 먼저 시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Seven Girls' Discord≫의 성취한 것들의 영광은 거 의 ≪world0123456789≫에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 wowaka의 유일한 보컬로이드 정규 음반인 ≪Unhappy Refrain≫(2011)은, 분명 컴 필레이션이 아닌데도 컴필레이션이란 느낌입니 다. 분명 음질이 인디 음반에 비교하자면 엄청나 게 개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비인간적인 것 특 유의 날카로운 느낌을 잃지 않았습니다. (개인적 으로 히토리에 데뷔 후 나오는 곡들은 그런 면 에서 조금 아쉽습니다.) 특히나 마이 블러디 발 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의 라이브를 연상

시키는 Disc1의 8번째 트랙인 <라인 아트(ラインアート)>는 큰 볼륨으로 꼭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곡은 ≪the monochrome disc≫에 수록된 초기버전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 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박살 내버릴 듯한 느낌의 슈게이징 음악을 필수 교육과정에 넣어서 라도 전 세계인이 꼭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보 통은 이쪽부터 들어보라고 권할 만한 ≪Unhappy Refrain≫이 뒤로 밀리는 이유는, ‘음반’으 로서의 구성은 ≪world0123456789≫에 비해 재미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첫 곡이 타이틀인 신곡이고, 앞의 두 인디 음반에서의 재미였던 연주곡도 수미상관 구조도 없어졌습니다. 그 러다 보니 분명 컴필레이션 음반이 아닌데도, ‘지금까지 잘 팔렸던 곡들’을 기계적으로 모아 서 나열해놓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wowaka의 보컬로이드 음악을 곡 단위로 들을 거라면 분 명 ≪Unhappy Refrain≫을 권하겠습니다만, 음반을 듣는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 world0123456789≫입니다.

#5. 트랙가이드

 

≪world0123456789≫에는 총 10개 트랙이 수록되어 있고, 그걸 음반 타이틀이 0~9까지 의 숫자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뒷면에는 0~8까지의 트랙이 표기되어 있고, 5분간의 묵음 후 하나의 파일로 묶인 히든 트랙 2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추천하는 트랙은 ★을 붙이겠습니다만,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이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0. 흰 탑(白塔)

음반을 여는 2분 11초 분량의 오프닝입니다. 피아노 반주의 느긋한 록 발라드라는 점에 서 <손바닥>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번호도 0번이고, 뭔가 미완성인 느낌입니다만, 이 트랙 이 재미있는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겠습니다.

1. 지반 침하(地盤沈下) ★

하츠네 미쿠가 아닌 메구포이드(통칭 GUMI)가 사용된 트랙입니다. 앞의 <흰 탑>에서는 따뜻한 느낌으로 들리던 이디오폰으로 불안한 느낌을 주는 F#-G-E-B의 멜로디를 연주 하며 페이드인 되다가, 이어서 잔뜩 뭉개진 퍼즈 기타 소리가 작렬합니다. 이 사이키델릭한 기타 소리는 곡 전체를 지배합니다. 여기에 신시사이저로 어지러운 기타 소리와는 아무 상 관없는 듯이 기계적으로 연주된다는 인상을 주는 D-C-A-C-D, F#-E-C, D-C-A-C-D, A 테마가 계속 반복됩니다. 이디오폰과 피아노 반주가 곡을 보조합니다. 여 기에 GUMI의 절규하는 듯한 보컬이 끼어듭니다. 템포와 사용된 악기들을 놓고 봤을 때는 <흰 탑>과 연속되는 트랙입니다만, 분위기가 180도 반전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더 큐어 (The Cure)의 <Want>라는 곡을 연상하게 되는 트랙입니다. 특히 반쯤 인사불성인 상태에 서 연주한 것 같은 기타 소리에 절규하는 듯한 보컬을 아주 좋아합니다.

2. 집짓기 놀이의 인형(積み木の人形)

이 음반의 두 곡뿐인(Retake 버전인 <손바닥(テノヒラ)>을 제외하면 유일한) 니코니코 동화에 업로드된 트랙입니다. 전반적으로 wowaka 특유의 빠른 템포에 신시사이저와 피아노 로 연주되는 트랙인데, 앞의 두 곡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 오히려 전작 ≪the monochrome disc≫에 더 어울릴 것 같은 느낌입니다.

3. 흔들흔들(ゆらりふらり)

<집짓기 놀이의 인형>이 끝나고, ≪world0123456789≫는 실험적 재즈 즉흥 연주를 연 상시키는 불안한 느낌을 주는 피아노 소리로 문을 열며 다시 피아노와 금속성 이디오폰의 발라드 트랙으로 돌아옵니다. 곡의 느낌은 <흰 탑>이나 <손바닥>과 비교해도 더 깔끔하 고 읊조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4. 소녀에 대하여(少女について) ★

다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트랙입니다. 그럼에도 이 곡은 <집짓기 놀이의 인형>과는 다 르게 음반에 유기적으로 어우러집니다. <흔들흔들>에서의 선명한 피아노 소리에 대비해 아 득한 곳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로 시작되는 이 곡은 이내 신시사이저를 포함한 풀 세션 의 록 트랙으로 변모합니다. <지반 침하>와 비교하면 더 깔끔하고 일반적인 일본 펑크 (Funk)/얼터너티브 록 느낌입니다. 상대적으로 평범할 수 있는 곡이지만, 저는 이 곡을 정

말로 좋아합니다. 후렴에서 ‘笑って(웃어줘)’를 반복하며 절규하는 보컬은 <지반침하>를 연 상시키고, 깔끔한 세션 느낌의 펑키한 기타 소리와 지저분한 느낌으로 연주되는 록 기타 소 리가 곡 전반에 혼재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산탄총과 텔레캐스터'4)의 소리입니다. 개인 적으로 ≪world0123456789≫에서 단 한 트랙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소녀에 대하여>를 뽑고 싶습니다. 초기 wowaka의 곡에서 사용되던 신시사이저와 시간이 지나면서 도입된 기 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거의 유일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듣기에는 <롤 링걸>과 같이 잘 알려진 곡에도 밀리지 않을 만한 트랙입니다.

5. 손바닥 -retake-(テノヒラ -retake-)

<손바닥>은 니코니코 동화에도 투고되었고, 음반에 수록된 것만 무려 3가지 버전이 존 재하는 곡입니다. ≪the monochrome disc≫의 3번째 트랙으로 수록되었고, ≪ world0123456789≫에는 retake 버전으로 다시 수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컴필레이션 음반 같은 ≪Unhappy Refrain≫에도 6번째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흰 탑>에서 설명했 듯, 피아노 반주의 느긋한 발라드곡입니다. 무슨 아쉬움이 남아서 3번이나 같은 곡을 다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보컬로이드 작곡가 시절 wowaka의 스타일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에 유념하면서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발라드라서 그런지 보컬로이드 팬들 사 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이라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습니다.

6. 미주 불꽃놀이(迷走花火)

정해지지 않은 길로 달리는 불꽃놀이가 뭘까요? 속도감이 느껴지는 록 트랙입니다. 곡의 50초부터 1분 17초까지의 신시사이저 솔로가 인상적입니다. 2분 18초의 짧은 러닝 타임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는 곡입니다만, <집짓기 놀이의 인형>과는 다른 의미로 이 음 반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Seven Girls' Discord≫의 <천칭, 시계, 전화> 나 <리버시블 돌(リバシブルドール)>과 함께 있어야 더 빛을 발할 트랙인 것 같습니다.

7. 세계의 전부(せかいのすべて)

다시 느긋한 발라드입니다. 앞에서 발라드라고 설명한 모든 트랙과 유사하게 피아노와 신 시사이저의 반주에 느긋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곡입니다.

8. 쫓아가다(追いかける)

도입부에서 익숙한 이디오폰 소리가 들립니다. 바로 <흰 탑>에서 들었던 그 소리입니다. <흰 탑>과 <쫓아가다>는 러닝 타임도 2분 11초로 같고, 곡의 형식과 '追いかける(쫓아가 다)'를 반복하는 가사, 미쿠를 포함한 사용된 악기 등, 모든 면에서 살펴보았을 때 같은 곡 의 서로 다른 표현 같은 느낌입니다. <흰 탑>을 ‘쫓아간다’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고, 아직 미완성이라 1이 아닌 0이었던 곡이 <쫓아가다>를 통해 완성된다는 인상도 줍니다. 한 곡 을 쪼개서 음반의 시작과 끝에 배치하는 게 그렇게까지 새로운 시도는 아닙니다만, 곡 단위 로 음악이 소비되는 21세기에 이런 식으로 완성된 느낌을 주는 음반은 보기 드물다고 생각 합니다.

4) ≪Unhappy Refrain≫에 수록된 동명의 타이틀곡의 첫 번째 구절입니다.

9-10. omake ★

<쫓아가다>가 끝난 후, 정확히 5분간의 묵음이 계속된 후에 또렷한 느낌을 주는 피아노 반주가 나오고, 클린 톤의 기타가 뒤를 따릅니다. 곧이어 드럼, 베이스, 신시사이저가 소리 의 탑을 쌓았다가 해체했다를 반복합니다. 발라드가 많이 수록된 ≪world0123456789≫에 선 드물게 활기찬 느낌을 주면서도 피아노와 기타의 절묘한 솔로를 들을 수 있는 연주곡입 니다. 이 피아노와 클린 기타의 곡은 7분 35초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의 묵음이 흐르다가 7분 58초에 갑작스럽게 <지반 침하>를 연상시키는 잔뜩 왜곡된 기타 소리가 튀 어나옵니다. 사람이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를 포함한 반주가 곡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지만, 기타 소리가 곡을 압도해버리는 느낌입니다. <지반 침하>에 사용하기 위해 녹음되었지만 너무 마구잡이로 연주되어서 버려진 파일 중 하나를 재활용한 것 같다는 인상도 줍니다. 개 인적으로 이런 사이키델릭한 느낌의 기타 연주곡을 아주 좋아하는데,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 는 비인기 장르라서 아쉽습니다. 말 그대로 선물 같은 느낌으로 ‘끼워주는’5) 히든 트랙이지 만,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상반된 느낌의 두 연주곡은 일부러라도 꼭 들어볼 가치가 있 습니다. 어쨌거나 제목이 암시하는 ‘10개의 트랙’은 omake를 2곡으로 간주했을 때도 성립 하고, 0에서 시작해 9로 끝나는 숫자는 <흰 탑>이 <쫓아가다>로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설명이 됩니다.

#6. 정리

5) omake는 값을 깎음, 덤, 경품이라는 뜻의 일본어 お負け와 발음이 같습니다.

≪world0123456789≫는 상당히 재미있는 음반입니다. 아직 덜 다듬어진 전자음 위주의 ≪the monochrome disc≫와 이후 히토리에로 데뷔한 후의 음악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은 ≪Seven Girls' Discord≫의 과도기에 해당하는 음반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보 다 ‘보컬로이드 작곡가로서 wowaka의 완성’이라고 감히 정의하고 싶습니다.

≪world0123456789≫의 수록곡 대다수가 웬만한 보컬로이드 팬이라고 해도 익숙하지 않 은 니코니코 동화에 업로드되지 않은 곡들이고, wowaka하면 연상되는 빠른 템포의 록이 아 닌 발라드 트랙이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렇다고 발라드 음반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사이 키델릭하고 거친 느낌을 주는 <지반 침하>와 wowaka의 숨겨진 명곡 <소녀에 대하여> 같 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음악적으로는 전자음 일변도였던 전작에서 발전해 피 아노와 기타가 적극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world0123456789≫가 발표된 지 정확히 1주 일 뒤인 2010년 2월 14일에 업로드된 <롤링걸>은, 개인적으로 이 음반에서의 피아노와 기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시도가 응축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던 곡이라 고 생각합니다.

#7. 뒷이야기

≪world0123456789≫ 이후 wowaka의 음악은 점점 기타 위주의 록 음악으로 색채가 변 해갑니다. <월즈 엔드 댄스홀>을 포함한 ≪Seven Girls' Discord≫는 전반적으로 트윈 기 타를 앞세운 전형적인 일본 록이라는 느낌입니다.6) 저는 이러한 사실이 전곡을 기계적으로 모아 재가공하여 만들어진 음반 ≪Unhappy Refrain≫ 때문에 간과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wowaka 음악의 발전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보컬로이드 인디 음반 3장을 순서 대로 들은 다름 히토리에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wowaka가 하츠네 미쿠 10주년
기념 음반 ≪Re:Start≫(2017)의
타이틀 트랙 <언노운 마더 구스(ア
ンノウン・マザ-グ-ス)>를 발표
하면서 Deco*27와 함께 했던 인터
뷰에서 그때 당시 ‘(보컬로이드 음
악으로 성공하려면) wowaka처럼
음악 만들면 되겠지’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던 상황이 더
이상 보컬로이드 음악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7) ≪ world0123456789≫를 듣다 보면 이 음반이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보고자 했던 일종의 실험을 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wowaka 하면 당장 생각나지는 않는 슬로 템 포의 발라드 트랙들과 히든 트랙 <omake>를 들으면 특히 더 그렇습니다. 이후 트윈 기타 를 앞세운 록 밴드 히토리에로 데뷔하면서 보컬로이드 작곡가 시절에 보여주던 특유의 비인 간적이고 날카로운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습니

6) 피아노가 상대적으로 강조된 <롤링걸>은 예외입니다만, 개인적으로 이 곡은 ≪world0123456789≫와 더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7) 인터뷰 원문은 https://natalie.mu/music/pp/wowaka_deco27

다.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합니다만, <소녀에 대하여>에서 보여준 악기들의 절묘한 조합을 이후로도 선보였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요.

#8. 위기, 그리고 방향

wowaka는 2012년 이후로는 록 밴드 히토리에 활동에 집중하고 있고, 하츠네 미쿠 10주 년 기념 음반의 수록곡 <언노운 마더 구스>를 발표한 것을 제외하면 더 이상 보컬로이드 음악을 작곡하지 않고 있습니다. wowaka 이외의 많은 작곡가에게도 보컬로이드는 음악의 최종 지향점이라기보다는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도약하기 위한 일종의 발사대에 가까웠던 것 으로 보입니다. 보컬로이드의 최초 목적이 보컬리스트를 구하기 어려운 아마추어 작곡가를 위한 음성 합성 프로그램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런 현상은 아쉽기는 해도 어느 정도는 당연 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보컬로이드가 음성 합성 프로그램 중에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된 요인 인 ‘이미지 캐릭터’의 도입이, 오히려 지금 와서는 보컬로이드 음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노래가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만, 기술의 발달로 이러한 생각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보컬로이드는 그 런 관점에서 봤을 때 분명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악기’가 아 닌 ‘캐릭터 상품’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는 보컬로이드 작곡가에게 작사, 작곡 뿐만이 아닌 이미지와 영상까지 요구하게 되고, 이로 인해 진입장벽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졌 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마추어의 진입이 힘들어지고 어느 정도의 자본이 투입되는 상업적 접 근을 부채질하게 되었습니다만, 이는 결코 건강한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마추 어 작곡가들의 거칠지만 날카로운 인상을 주던 음악들을 접할 수 있었던 보컬로이드 음악계 는 시간이 지날수록 질적으로는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람들은 떠나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wowaka의 보컬로이드 작곡가 시절 음악들은 ‘확실히 인간이 아닌 것이 노래하고 있다’는 느낌을 숨기려고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음악적으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wowaka가 업로드한 영상들도 보컬로이드 음악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캐 릭터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흑백의 추상적인 정지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에 그치고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영상도 거의 업로드하지 않고 완성 된 음반을 만드는데 집중한 ≪world0123456789≫는 ‘위기에 처한 보컬로이드 음악이 어디 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캐 릭터를 바탕으로 하여 일러스트,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의 수많은 파생 문화현상들을 낳 을 수 있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보컬로이드는, 그럼에도 근본적으로는 음악을 만들기 위한 ‘음성 합성 프로그램’입니다. 보컬로이드가 처해있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이 지점으로 돌아가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9-10. 덤

* wowaka가 보컬 겸 리듬 기타를 맡고 있는 록 밴드 히토리에의 공식 유튜브 계정(ヒトリ エ / wowaka)에서 wowaka가 니코니코 동화에 투고했던 11곡 및 하츠네 미쿠 10주년 기념 으로 작곡한 <언노운 마더 구스>를 들을 수 있습니다. 따로 재생목록이 만들어져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wowaka의 보컬로이드 작곡가 시절 음악들을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들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 2차원은 아무래도 취향이 아니라거나 하는 여러 가지 장벽이 더 있겠지만, (특히나 초기 의) 보컬로이드 음악을 들을 때는 기계적으로 합성된 음성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 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취향에 안 맞는다고 바로 음악을 끄기보다는 지금 들리는 멜로 디라인이 보컬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악기라고 생각하면서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들어보기를 권해드립니다. 당신에게 신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wowaka의 음반 의외에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음반은 보컬로이드를 록 음악에 도입하려는 최초의 시도 정도에 해당하는 supercell의 ≪supercell≫, 확실히 인간 아닌 것이 노래하고 있다는 측면 에서 wowaka와 더불어 언급할 만한 작곡가인 cosMo@폭주P의 ≪하츠네 미쿠의 소실(初音 ミクの消失)≫(2010), ≪별의 소녀와 환주낙토(星ノ少女ト幻奏楽土)≫(2012) 정도가 있습 니다. 보컬로이드 기술이 어느 정도 발전한 후 황금기의 음악을 듣고 싶다면 진(자연의 적 P)의 ≪MEKAKUCITYRECORDS≫(2013)를 권해드립니다. 심지어 이 음반은 국내 정발되 어 있습니다. 최근 보컬로이드 음악이 처한 상황을 알고 싶다면 요네즈 켄시(米津玄師)라는 이름으로 프로 데뷔한 하치(ハチ)가 하츠네 미쿠 10주년 기념으로 발표한 곡 <모래의 행성 (砂の惑星)> 영상을 찾아서 가사와 더불어 감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개인적으로 블로그에 작성했던 리뷰를 바탕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너는 이제 이곳에 없다. 

내가 사랑하는 박상영의 소설들

: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재희> 편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오버더펜스

 

퀴어 영화를 찍어 칸영화제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가졌으나 망해먹은 삼류 영화감독과 콩쿠르 입상에 실패한 필라테스 중독에 빠진 현대무용가의 연애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돌보는 인스타 스타와 공황장애를 앓는 군인의 불륜기, 집이 망한 몸을 팔게 남창과 애인이 자살한 뒤로 섹스 중독에 빠진 게이 컨설턴트의 동거담, 영원히 데뷔하지 못하는 아이돌 연습생과 자살 연습생의 연애담 등이 담겨 있는 상큼 발랄한 소설집입니다. (각주 2 : http://ch.yes24.com/Article/View/37093, yes24와의 인터뷰)

도대체 어떻게 작가의 소설들을 설명해야 하나 머리를 싸매고 있던 중에, 작가 본인의 완벽하고 컴팩트한 설명을 찾아냈다. 박상영의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대강의 줄거리는 저러하다. 무릇 소설이라 한다면 이러저러한 설정의 인물들이 사건을 겪기 마련이다. 사건을 겪고 그들은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거기서 추출한 나름의 진실로 인해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없음을 자각하게 되고, 어찌할 모르는 엉거주춤의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그것이 문학, 구체적으로는 소설을 쓰는 하나의 방법론이자 해석론이라 배웠고, 나에게 그것은 거의 전범(典範) 가까웠다. 문학을 읽는 일은 그렇게 함으로써 겨우 윤리적일 있었고,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간접적 경험으로써 효용적이었다. 

그러한 함의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훌륭한 작품들은 지루하기 마련이다. 좋은 작품이 산출해내는 경험이 가지는 보편적 호소성은 교훈적이고 감동적이지만 흥미롭지 못할 때가 있다. 그렇다. 우리는 좋은 작품들에질리곤한다. 서론이 길었다. 박상영은 건강한 문학작품들에 무감해진 문학 덕후들에게캡사이신같은 자극이 만한 작가다. 

고백하자면 나는 핍에 여태껏 실린 중에서그토록 짙게 남은 불행의 잔상들에 대하여 :『릴리슈슈의 모든 것』 리뷰’(각주3 :http://peeppeep.tistory.com/13?category=655540) 가장 좋아한다. 글은 동일한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가 나에게투척했던’(그래서 무력하게 수동적이고 일방적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던) 감정과 잔상을 복기하고 연장시키는 성공했다.(각주4 : 건방지게 글을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글의 저자가 의도했던 지점에 공감할 있어서 기뻤음을 표현하고 싶다.) 글은 영화의 구조나 내러티브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지만, 나는 어쩐지 글의 다른 부분에 끌렸다. ‘매혹적인 주관이라고 정의해보면 되려나. 작품에 대한 훌륭한 이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글쓴이의 주관[자기투영이기도 하고 경험이기도 하고 태도이기도 ] 내가 가장 쓰고 싶던 글이기도 했다. 그토록 충만[하다못해 넘쳐흐르는] 자의식이라니! 그동안 숱하게 봐온 객관적이고 점잖은 분석들은 분명 훌륭한 인식들을 산출했으나, 결정적으로 내가 설득되지는 못했다. 

그것은 결국 남의 일에 대해 남의 이야기니까. 

마치 성공한 친구나 사회의 어른이 해주는 현명한 충고를 들을 때의 기분. 

머리가 버린 지금 듣기에는 다소 지루한 .

「알려지지 못한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이하 「자이툰 파스타」)에는 위의 맥락과 비슷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주인공은동성애를 훈장처럼 전시하지도, 대상화해 신파로 소모해버리지도 않는 순도 퍼센트의 퀴어 영화를 만들리라다짐하고, 야심차게 영화를 만들지만 보기 좋게 실패한다. 출품한 영화제의 뒤풀이에서 심사위원들에게현실적이지 못하다 평가를 듣기에 이르는 주인공은그들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하는 보편적 사랑이 뭔지를 너무 알고 있는 눈치였다.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특별한 사랑을 하고 산다는 건지, 동성애자인 나조차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이성애자가 연루되면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라고 (마음속으로) 응수한다. 그는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고, 이것은 온전히 작가 박상영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는 전방위적으로 자신을 투영하고 투사한다. 작가가 이렇게 나온다면, 독자 입장에선 거부하기가 힘들어진다. 

시에는 시의 이름으로 아닌 것들을 솎아내는 야금술의 길이 있고 아닌 것을 모아 시를 만드는 연금술의 길이 있다다고 신형철은 말했는데, 박상영에게 말을 적용해보자면, 그는 소설, 넓게는 문학장()에서 배제되어온 소재나 화법으로 소설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라고 말해볼 있다. 재료들은 구체적으로 실패와 사랑, 유머 그리고 옐로저널리즘 정도로 정리해볼 있을 같다. 결국 실패하는 인간들이 사랑을 하고 그것을 옐로 저널리즘적 태도로 유머러스하게 탐사하는 소설, 그것이 박상영의 연금술이다.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소설을세상천지 온갖 청춘들의 이야기 썼다고 했는데, 결국 청춘들의 삶을 들여다본 글로 쓴다면 위의 키워드들로 정리될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되겠다.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이 쓰는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자의식 과잉인 인물들이 실패를 하고, 사랑을 하고, 다시 실패를 한다는 것이다. 박상영의 세계에서 실패는 거의 당연하고 필연적인 숙명이자, 존재의 기본 조건처럼 보인다. 「자이툰 파스타」의 주인공은 세상에 없었던 퀴어 영화를 찍기 위한 제작비를 모으기 위해 자이툰으로의 파병을 지원하고, 거기서 왕샤(왕씨 성을 가졌고, 샤넬 향수를 좋아해 주인공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라는 인물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정체화를 거부하는 왕샤와 이미 정체화를 마친 주인공은 번의 육체적 관계를 갖지만, 결국 서로에게 가닿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각각 현대무용과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이루는 완벽하게 실패하고 한국에서 다시 만난 둘은성적 욕망이 걷힌, 맑고 투명한 관계로 남아 인생의 가장 고단한 시절을 함께하는 사이 되고, 소설에 등장하는 온갖 부끄러운 일을 자행하고 다닌다. “술에 취하면 더욱 빠른 속도로 취해야 한다 공통적인 주사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샤넬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 주인이 시간을 짧게 주었다는 생각에 마이크를 훔쳐 나오고, 비욘세 순대국밥에서 마이크에 붙은 상표 스티커를 떼다 노래방 주인의 아들에게 걸리고 만다. “우리 완벽히 졌어. 마이크 하나 제대로 훔치지 못했어.” 그들은 실패의 동물이기에. 소설에서 그들이 성공적으로 해내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한심한 패배자로만 그려진다는 것은 아니다. ‘자기 연민이나 광기가 예술의 조건이었다면 우리는 이미 세계적인 예술가가 됐어야 했다라는 극에 달한 자조톤의 서술 뒤에 우는 왕샤를 달래기 위해 길거리에서 유채영의 노래를 틀고 정신없이 춤을 추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때는 몰랐었어. 누굴 사랑하는 .’ (왕샤와 주인공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가사는 의미심장하다. 아니나 다를까 가사는 소설집 단행본의 후면에 주요카피로 소개되고 있다.)

왕샤가 인정하는 최고의 아티스트 유채영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그들은 예술로 슬픔을 달랜다. 바닥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가 순식간에 몸을 ,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동작을 반복하는 그들은 현대무용을우리는 세상의 작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라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제목으로 명명한다.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인생을 걸었지만, 결국 가장 두려워했던 결말을 맞이한 그들. 소설의 마지막은 혹독하다 싶을 정도로 엄정한 진술로 끝난다. 

우리는 애초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며, 그러므로 영원히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구절들로 마무리되는 소설의 결말부를 읽고 나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과거의 비극적인 사연과 현재의 희극적인 상황이 교차되면서 특정하기 힘든 복잡한 정서를 자아내던 소설이 지나치게 허무주의적으로 끝맺어지면서, 능수능란하게 독자의 감정을 교란하는 좀처럼 마주하기 쉽지 않은 작가의 재능이 마지막에 와서 쉬운 방식으로 마무리 같아서였다. 박상영 작가의 다른 소설 중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결말지어지는 예가 있다. 단행본에는 실리지 않은, 「재희」라는 소설이 대표적이다.

#재희

「재희」 역시 박상영이 아니라면 어떤 작가가 있었을지 상상하기가 힘든 소설 하나다. 게이 남성화자와 재희라는 여성의 눈물겨운 우정을 그린 소설은, 여러 면에서 「자이툰 파스타」의 왕샤의 이야기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물론 「재희」는성적 욕망 전혀 투여되지 않은 다른 형태의 사랑 이야기이다. 같은 학과출신인 주인공은 서로 얼굴만 아는 대학생활을 하던 , 화자가 주차장에서 다른 남성과 열렬히 키스를 하던 모습을 들키는 것을 계기로 급속히 친해지게 된다. 

아예 먹어라.” 

(…)

학교 사람들한텐 비밀로 해줄 거지?” “당연하지. 내가 돈은 없어도 의리는 있다.”

근데 안놀랐어? 내가 남자랑……” “전혀.”

언제부터 알았어?” “처음 순간.” (p.12)

재희와 나는 정조 관념이 희박하고, 아니 희박하다 못해 아예 없는 편이며 그런 방면에서는 각자의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p.14)

게이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의 우정은 이렇게 서로를 알아보면서 시작된다. 그들의 동행은 여러 면에서 한국 문학에서 전에 없던 장면들을 만들어내는데, 자취를 하는 재희가 신원불명의 남성에게 위협을 느끼자 화자가 재희의 집에 들어가 같이 살게 되는 부분이 특히 그러하다. 여기서 재희의 성별이 각자에게 유리하게 활용되는 장면들은 정말이지 고유한 상황들이다. (‘ 군에 입대해, 관물대에 재희와 찍은 사진들을 붙여 재희가 여자 친구인 하고, 재희는 남자친구에게룸메이트 지은이라고 소개한다. 이러한 부분들에서 다시 박상영은 단순히 등장인물이 퀴어라는 점을 넘어서는 퀴어 소설의 새로운 계보를 시작한다.) 서로를 위해 각각 말보로와 블루베리를 냉동실에 항상 비치해두는 이들의 관계는 서로의 일상과 남자를 공유하며 함께 품평하고, 낙태 수술을 위한 산부인과에 동행해주고, 매일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나에게이번에는 죽지 않을 애로 고르렴.’이라고 충고를 해주는 (‘에겐 연애와 유사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죽은 K3라고 불리던 남자가 있었다) 사이로 그려진다.

세계에서 그야말로 유일한, 누구도 틈입해올 없을 거라 믿고 있던 이들의 관계는 그러나, 그리고 역시나 종착점을 맞게 된다. 결혼 제도와 가장 거리가 인물인 같았던 재희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 겪어본 없던 혼란을 경험한다. 번도 흔들릴 것이라 생각해 없던 관계에 궁극적이고 불가역적인 균열이 발생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동요(動搖)하기 시작한다.

영아, 앞으로 바람피우지 않고 있을까?”

(…)

있잖아, 재희야…… 나도 그게 걱정이긴 .” (p.51)

재희에 대한 걱정으로 표면화되었던 불안은, 그러나 결국 대한, 아니우리 대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결혼식 당일에 축가를 부르게 이번에는 핑클의 노래를 부른다.

항상 나의 곁에 있어줘. 너에게만 꿈을 맡기고 싶어.”까지 부르자, 눈물이 터질 같아 이상은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재희야, 진짜 혼자 이렇게 가버리기냐. (…) 재희가 드레스를 질질 끌며 달려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더니 나머지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맘에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 

다른 곧잘 하는 재희는 노래만큼은 더럽게도 불렀고, (…) (p.54)

결혼식이 끝나고 홀로 집에 돌아온 , 냉동실에서 블루베리 봉지를 꺼내보던 비로소 홀로 됨을 실감한다. 한동안 헤어 나오기 힘들 상실감에 휩싸인 모습은 다음과 같은 진술로 한층 엄혹(?)해진다. 

그때, 영원할 알았던 재희와 나의 시절이 영영 끝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 

언제나 때를 맞춰 블루베리를 사다놓던 재희,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연애사의 외장하드 재희.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며, 가당찮은 남자만 골라 만나는 재희. 

모든 아름다움이라고 명명되는 시절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재희는, 이제 이곳에 없다.’ 

김형중은 「재희」의 이러한 상황을 두고이성애도 동성애도 양성애도, 그렇다고 (통속적인 어법의) 사랑도 우정도 아닌 어딘가에서 (대문자) ‘사랑 발생하는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마지막 문장에 의해 「재희」는 (대문자) ‘사랑 발생하고 소멸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리는 소설이 되기도 하리라. 역사적으로 수많은 소설들이 품어온 주제를 「재희」가 다룰 새로워지는 지점이 있는가. 만약 그러한 부분이 존재한다면 역시나 (대문자) ‘사랑 관한 부분이 텐데, 재희와사이에 오고 가는 감정을 언어화할 우정이란 단어는 지나치게 안전하고, ‘사랑 기성적인 의미와의 위화감이 유발된다. 김형중이 지적했듯이, 「재희」는 그러한 위화감을 통속적인 어법의 사랑의 경계를 새로운 영역까지 확장 시켜 나감으로써 해소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당연하게 규정내재되어 있던성별-섹슈얼리티내지관계 양상 무너뜨리는 방식에 의해 달성된다. 이들의 관계를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부를 있겠는가. 

「자이툰 파스타」의 주인공과 왕샤가 그러했듯, ‘ 재희 역시 한없이 부끄러운 시절을 함께 견디면서 자신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서 서로에게 곁을 내주는 유일한 (便) 되어준다. 「자이툰 파스타」의 주인공들은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무너져버린”(각주 5 :박세미, 「벽 없는 집」)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채로, 여전히 같이 시절을 버텨나가겠지만, 「재희」에서는 관계의 축을 담당하고 있던 재희가 그들의 세계에서 이탈하게 됨으로써 종합적으로 무너져버린 세계를 오롯이 혼자 감당하게 된다. 지난 호에서 윤이형의 「루카」에 대해 쓰면서 사랑은결여의 발견으로서의 응답이며 서로의 결여를 분유(分有)하지 못하고, 자신의 결여를 부끄러워하게 , 사랑은 상실되고 만다고 적었다. 

그의 결여가 못나 보여서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여 때문에 그를 달리 보게 되는 . 발견과 더불어, 나의 결여가, 사라졌으면 싶은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결여와 나누어야할 어떤 것이 된다.’(각주 6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사람은 결여를 고통으로 간주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생을 살아갈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사랑은 나를완전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온전하게 만들 수는 있는 이다. 「재희」의 재희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온전하게 있었지만, 그들의 세계에 균열이 발생한 지금, ‘ 이제 이상 예전과는 같을 없다. 

도대체가 불가능하고 대체 불가능한”(각주 7 : 김녕, 「상품과 사랑의 변증법」) 그들의 세계는 이제, 이곳에 없다. 그들이 축조했던 세계의 붕괴는 정확하게 사랑의 상실에 대응한다. 그렇다면 「재희」는 숱하게 쓰여 사랑의 상실이라는 주제를 새로운 주체와 감정 동력(動力) 가지고 다시 다루어 봄으로써, 익숙하지만 여전히 정서적으로 유효한 고전의 전범(典範) 겨루면서 동시에 계승해나가는 소설로 읽어볼 수도 있다. 

내용적인 측면 외에, 「자이툰 파스타」와 유사한 소설의 마지막이 유발하는 정서에 대해선 첨언이 필요해 보인다. 단편소설에서 자주 목격할 있는 이러한 갑작스러운 결말 방식은 장편소설과 구별되는 그것의 고유한 성격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있다. 장편과 단편 소설의 본질을 따지기에 앞서, 각각을 읽고 뒤의 정서가 사뭇 다르다는 점을 우선 지적해야 같다. 일반적으로, 총체적인 성격의 장편소설은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맺어지는 동안 독자가 의미를 충분히 정리할 있을 만큼의 여유와 여지를 준다. 반면에 단편소설은 (물론 작품차가 있지만), 문득 무언가가 발생할 같은 순간 내지는 어떤 예감으로 가득한 장면에서 멈추는 경우들이 종종 목격된다. “편소설은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 묻고 삶에서 하나의 파열선을 발견해내는 작업에 만족할 , 장편소설은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다', '주체가 진실에 응답한다'라는 3단계의 '진리의 윤리학' 서사화한다.”라는 다소 도식적인 구분을 받아들인다면, 「자이툰 파스타」 「재희」에서 두드러지는 단호한 끝맺음 역시 성급한 마무리가 아니라 그네들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발견되는 상실과 체념의 정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라 보아도 좋을 듯하다. 적어도 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재희는 이제 이곳에 없다.’ 

작가-등장인물과 함께했던 유쾌하고 떠들썩했던 술자리가 파하고, 홀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아무 걱정 없이 즐겁기만 했던 시간들은 너무나 짧고, 다시 마주해야 하는 불행은 너무 깊고 어둡다. 그럼에도 이들과 함께했던시시했던 행복”(각주 8 : 영화 『꿈의 제인』의 대사 ) 가끔씩, 오래오래 켠에 머무르겠지만, 그렇게 제멋대로 흘러가버리는(정확하게는 흘러가게 되는) 과정은 나를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한다. 박상영의 소설에 대해 말하고 싶은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감정 상태에 관한 것이다. 조금 넓게 보자면, 흘러가야할 시기에 남겨진 상황과 아직 남들만큼 비워내지 못하고 홀로 넘쳐흐르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 

#시기(時期) : 과도기. 과도(過渡)이기도 하고, 과도(過度)하기도 .

「자이툰 파스타」205p. “내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그가 이상 세상에는 없는 존재라는 것도 있었다. 그때의 우리가 느꼈던 감정은 모래바람처럼 한순간에 우리를 휩쓸고 지나가버린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정말 눈물이 같았지만 울지는 않았다. 신파는 영화로 족했다.”

211p. “ 시절의 그와, 나아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조차 제대로 받아들일 없었던 시절의 자신과 화해하기로 결심했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햄릿 어떠세요? 277p. “마지막 무대를 녹화할 , 나는 내가 떨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이라는 예감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었으니까. (…) 스물넷. 누군가는 아직 아무 시작도 하지 않았을 나이에 나는 포기와 체념이 때로는 나를 위한 최선일 있음을 배웠다. 

위의 문장들에서 공히 읽어낼 있는 것은 시기가 지나갔다는 , 경과(經過) 몸으로 거부하고 밀어내고 저항해보려 해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이툰 파스타의 냉소적인 마지막 문장들이 암시하듯 이러한 인식이 통상적인 의미의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상컨대 그들은 자신들이 발붙이고 있는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을(못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나에게 거의 세대론처럼 보이는데, 그런 의미에서 박상영의 소설은 예술가(소설가) 소설이기도 하지만, 세태소설로 읽을 여지도 다분하다. 특정 사건이나 실패를 계기로 각성하게 되는 인물이 결국 진창에서 도약하고 곳을 벗어나는 성장 드라마 따위야말로 진정한 판타지라는 . 박상영 소설의 인물들은 진창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진창에서 몸부림친다. 

우리 이렇게 태어났냐.” (p.38,「재희」) 라고 자학하는 동시에, 유채영의 노래에 맞춰 몸으로 춤추는 인물들. 사실 부분에서 독자들의 호오는 크게 나뉠 있다고 생각한다. 실패에 찌들어 그것에서 파생하는 자기 연민을 스스로 즐기는마조히스트-나르시스트 경멸하거나그것이 무슨 자랑인가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기에. 

박상영 역시 모두에게 자신의 작품과 인물이 이해되기를 바라는 같지 않고, 보편적인 문학적 진실을 탐구한다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듯하다. 번째 장에서 언급했듯 박상영의 화자들은 모두 자의식 과잉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인물들에게 “(즉각적으로) 설득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작품에 대한 개개인의 평가로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설명과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박상영의 작품이 때는 별로였지만 해석을 보고 좋아질 있는류의 작품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각주 9 : 남상영, 「별 있나요, 끝없이 흔들리며 흘러갈 수밖에」에서 수정.) 앞의 인용문은 대만 감독 차이밍량((蔡明亮) 작품이 담고 있는 기이한 정서와 흐름에 대한 단평인데, 이것은 각자가 가장 좋아하는 그래서 이유를 낱낱이 전달하거나 설명하기 힘든 작품들에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고유의 영역과 그것에 대한 설명의 불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존중하고 지지하지만, 촌스럽게 작품이 좋았던 이유를 찾아보는 것도 가능할 같다. 

어떤 책이 누군가를 위로할 있으려면 작품이 누군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과감히 말하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 다는 것이고, 이해란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인식이며 인식이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있다.”(각주 10 : 신형철, 위의 )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번도 사랑해 적이 없다.” 

박상영 소설의 정수를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문장 정도가 되지 않을까. 박상영의 인물들이라면 문장을 읽고 질색을 하면서 조롱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문장을 벗어나지 못한 채로 살아갈 것이다. 누군들 아니겠는가. “결국에 우리는 따뜻한 파스타 접시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 다시금 실패하고 남부끄럽게 남을 것이다. “신파는 영화로 족하다는 박상영의 소설이 가장 신파적인 문장으로 정리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다르게 있을는지? 그렇다면 아무 없이 이들의 춤사위에 동참해보는 어떠신지. 물론불행은 끊기고 계속 이어지겠지만”, 혹시 이들과의 시간에아주 가끔 드문드문 있는 행복”(각주 11 : 『꿈의 제인』 대사.) 발견하게 지도 모른다. 

ps. 박상영은 「우럭 점과 우주의 맛」으로 2019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젊은 작가상 최초의 중편소설 대상작이기도 하다.

주님 이번엔 제발 탈케이팝하게 해주세요.

양장피

 

 

출처: http://www.keepcalmandposters.com/poster/5888952_i_cant_keep_calm_cause_i_love_kpop

 

먼저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서 글이 두서 없기 짝이 없는 고해성사임을 유념해주시길 바란다. (그러나 글쓴이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마음의 짐이 많지만 차마 성당에 찾아가 이런 얘기를 용기는 없어서 가상의 신부님께 고백하는 형식을 선택했다. 천주교 신자 여러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글은 혼돈의 케이팝 판에서 짧은 시간- 판의 수많은 고인물 여러분들에 비하면 비교적으로- 몸담으며 느낀 온갖 감정들, 혼란과 분노와 절망과 자책과 그럼에도 놓을 없는 일말의 기쁨을 140자의 트윗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답답하여 늘어놓게 일종의 신세 한탄이다. 따라서 생산적인 결론 같은 것은 없으니 부디 편한 마음으로 징징대는 글을 읽어주시길 바란다. 글의 울분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같이 손잡고 울어주신다면 감사할 것이다.

 

 

신부님, 주님께서 오늘도 저를 시험에 들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은혜로운 얼굴을 가진 이들에게 가무로 저희를 즐겁게 하는 소명을 내리사 저희의 일상에 단비를 내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갤러리 n 장의 사진과 유투브 추천영상의 풍요 속에서 잠시 현실을 잊고 말초적 자극에 미소 지었습니다. 험한 세상에서 화면만 보면 웃을 있다는 얼마나 은혜인지요. 제가 이렇게 누군가를 사랑할 있는 사람이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안에 숨쉰다는 것을 깨달은 것까진 좋았는데, 사랑이 루키즘에 근거한 것이었던 문제였을까요? 좋자고 시작한 일에 빠져들수록 고민만 많아지는 합니다. 

 사실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취미임을 알고 있습니다. 일단 아이돌은 사람을 가지고 하는 장사가 아니던가요? 대상화와 상품화의 정점에 있는 산업의 생산품을 소비한다는 자체가 따져보면 비윤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아이돌 산업은 단순히 춤과 노래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그들의 외모와 성이 상품화되는 것은 이제 당연하고 일상생활, 인격, 인간관계까지 각종 예능을 통해 완벽히 대상화되어 소비되고 있지요. 우리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하고 시장은 욕구에 응답합니다. 아이돌 시장은 결코 대중이 개인의 어떠한 재능의 결과물을 향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재능 있는 개인 자체, 그의 존재를 소비합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가수아이돌 구분하는 여러 기준 하나로도 제시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주제와 출연진의 다양화로 아이돌이 아닌가수' 정의되는 사람들도 예능을 통해 아이돌과 유사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긴 하지만요. 아무튼 신부님께 고백하고 싶은 것은 아이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의 고뇌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식의 기형성과 그것에 일조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자본주의 사회의 대상화 논리에 적극 기여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대중과 팬들이 원하는 이미지로 박제되어 남아있어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사라진 사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성적 대상화의 불쾌함을 아이돌이라는 직업인들에게 선사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이고 그렇기에 편리한 의견을 제시하자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돌 시장의 완전한 소멸입니다. 그건 제가 미워하는 사람을 그만 미워하기 위해서 그를 죽여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요? 신부님, 압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겠지요. 그리고 제가 산업의 종사자들에 대한 사랑을 버릴 없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제가 자극에 약한 단순한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하거니와(아이돌 동지 여러분들을 비꼬려는 의도가 결코 아닙니다. 그냥 제가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애정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놓을 있는 감정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저는 점진적인 문제 개선을 위하여 가지 실천을 결심했었습니다. 공항 사진 보지 않기, 공식 스케줄 수행을 제외한 목격담 소비하지 않기, 아이돌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찰 해보기, 아이돌 음악과 시장에서 발견되는 정치적인 이슈들에 대하여 발언하기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벽은 당연하게도, 실효성의 부재였습니다. 아이돌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결정권을 쥐고 있는 연예기획사는 이러한 실천이 지향하는 바를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제작자의 입장에선 그러한 것들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편리하게 생산할 있는 컨텐츠의 폭이 좁아질 테니까요. 음원 하나보다는 사진 하나를 찍거나 아이돌 개인의 사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쉽고 편리합니다. 어쩌면 화제성도 더욱 크고요. 그러나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같을 있습니다. 아이돌 산업의 여러 부조리한 지점들을 말랑하고 부드러운 환상의 일부로 포장한 것은 그것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화려함입니다. 그러나 결국 기획사가 이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주류 문화로 세우기를 허락한 것은 한국 사회 전반의 분위기였습니다.

아이돌의 기본적인 활동인 춤과 노래는 시청각을 자극합니다. 더욱이 인간의 몸을 활용하는 퍼포먼스를 수행하며 타자의 시선에 해당하는 매체인 카메라에 비춰지기 때문에 거의 필연적으로 대상화됩니다. 카메라를 통해 대상화된 이미지는 소비자의 눈을 마주하며 한번 대상화됩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이미지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다는 점에서 아이돌 산업의 부조리함을 방관합니다. 오히려 자극적인 이미지를 요구하고, 외모뿐만 아니라 발언과 태도까지 편리하게 대상화할 있게 재단하여 제공하기를 원합니다. 아이돌 전문 리얼리티 예능의 증가가 이와 연관되어 있다고 있겠죠. 그리고 한국 사회에 범람하는 습관적인 대상화의 구체적인 사례들은 한국 사회의 다른 사회적 문제들과 필연적으로 연결됩니다. 부분에서 특히 페미니스트로서의 저의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한국 방송계에서 여자 아이돌을 대우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여성혐오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아이돌 산업 자체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는 백래시적인 성격을 가질 밖에 없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화면 속의 여성은 주체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성적인 매력이라는 요소를 표현의 방식에서 제외시킬 없고 남성 소비자의 시선을 피할 없으니까요. 스스로 그렇게 보여지기를 선택했다는 말은 순진하고 게으른 책임전가입니다. 아이돌 시장 내의 여성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자신을 꾸며야 하고, 성적인 매력을 직간접적으로 어필해야 합니다. 노래 가사, 의상, 안무가 모두 그러한 목적을 가지도록 관습화되어 있지요. 그리고 이것이 남성 소비자(이자 동시에 제작자) 시선에서 만들어졌음은 자명합니다. 여자 아이돌들은 성공한 직업인이 되기 위해 이를 필수적으로 수행해야만 합니다. 대중은 그동안 이를 성공을 위한 자의적인 선택이라고 여기며 여자 아이돌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왔습니다. 현재 일부 페미니즘 진영도 여자 아이돌들은 여성 억압을 재생산하는 페미니즘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관습화된 시장의 룰에서 자유로울 없는 여성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엉뚱한 곳에 돌을 던지는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남자 아이돌도 여자 아이돌처럼 성적 대상화를 당하기에 아이돌 산업이 특별히 여성 억압적이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자 아이돌의 대상화와 소비는 남자 아이돌의 그것보다 한층 복잡하고 심각한 사안이지 않나요? 성차별의 유구한 역사가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말이죠. 이는 2천년 넘게 남성으로 정의되고 계신 주님이 누구보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페미니즘 담론만 끌어들여도 아이돌 산업에는 비판점이 차고 넘칩니다. 

 

출처 https://blog.kpopviral.com/post/167301519446/k-fan-exposes-dark-side-of-kpop-talks

한편, 아이돌의 산업의 가장 단단한 뿌리이자 강력한 소비자인 팬덤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유효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서 결정권을 것이 기획사이기에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들이 실효성을 가지지 못해 피로감을 느낀다고 고백한 있습니다. 사실 벽은 기획사뿐만이 아닙니다. 아이돌 상품화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모순점을 인지하지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팬덤 다수입니다. 혹은 이를 인지한다 해도 침묵합니다. 저처럼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어떤 이들은 아이돌의 직업윤리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팬의 덕목을 특정한 사건에만 적용하여 문제를 더욱 모순적으로 만듭니다. 아이돌의 연애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팬들의 집착이 그러한 사례 하나입니다. 아이돌은 화면 속에만 존재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이자 직업인으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는 전제까진 좋습니다. 하지만 전제는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가령 아이돌을 팬들에게 성장서사와 유사연애를 제공하는 직업이라 정의한다면, 아이돌의 공개연애는 직무유기다, 라는 결론이 나와버립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아이돌 팬들의 모든 실천은 결론적으로 모순을 마주하게 됩니다. 모든 덕질은 대상화되고 박제된 특정인의 이미지 또는 재능에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과정엔 소비자 개인의 판타지가 작용하고 있죠. 하지만 아이돌과 사이에 아무리 정제된 대상화의 레이어가 겹겹이 쌓여있다 해도, 그들의 관계는 본질적으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것입니다. 따라서 팬은 높은 확률로 아이돌에게 흥미 이상의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성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말입니다. 다시 말해 100% 순수한 대상화를 기반으로팬질 하기란 어렵습니다. (물론 아이돌은 오로지 얼굴이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팬들도 존재하긴 하지만요. 대다수의 경우를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팬들은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당신을 응원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착취하는 거야라니 이건 무슨 고전 야오이의 집착공 같은 태도인가요. 그런데 제가 역할을 맡고 있는 같습니다. 주님께서 죄를 사해주실까요? 

문제는 기획사와 팬덤과 아이돌 당사자 모두가 크리피한 관계를 내면화했고 그래서 내부 비판이 차단되었다는 겁니다. 마치 종교 언어처럼, ‘아이돌계 언어는 안에서만 통용되는 논리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아이돌과 팬의 관계와 팬덤의 유대는 같은 대상에 대한 유사한 감정의 공유를 기반으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자들이 종교적 체험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종교인들의 간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팬덤에 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가 정확히 어떤 경험과 감정을 지시하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이돌을 향한 애정어린 언어는 이해한다 치더라도, 개인 팬이 아닌팬덤이라는 집단의 행동방식과 논리를 정의하는데 있어서는 확실히 그러합니다. 아이돌 팬덤 문화는 한국 사회의 주류 문화라 있을 정도로 널리 확산되었지만 여전히 폐쇄적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돌 산업과 팬덤 문화에 대한 비판은 더욱 차단됩니다. 따라서 유효한 비판을 이끌어내고 공론화하기 위해선 팬덤 문화를 재정의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과정에는 내부자들의 풍부한 논의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거대한 하위 문화(이자 이제는 주류 문화) 대표자들을 선출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미 팬덤 내에선 성향이 다른 집단들이 형성되어 있고 집단의 규율이 비공식적으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집단들 사이에서의 갈등도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고요. 기본적으로 합의할 있는 사항들을 추려서 아주 간단한 아이돌 인권 조례라도 만들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그게 성공한다 하더라도 기획사와의 협상이 어려울 겁니다. 기획사와 아이돌 당사자, 팬덤이라는 아이돌 산업의 구성요소들이 자리에 모여 나라의 문화를 개선할 건설적인 얘기를 하는 풍경을 주님의 땅에선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천방지축 얼렁뚱땅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을 바라보며 결국 아무 말도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아이돌을 좋아하냐는 질문에잘생기고 예뻐서 좋아한다’, ‘실력이 좋아서 좋아한다’, ‘인성이 좋아서 좋아한다 어떤 대답도 없게 되었습니다. 가지 모두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빈약한 상상력이 다른 대답은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케이팝이 주는 말초적 자극엔 분명 뭔가가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언어로는 설명할 없는 그런 가치가 있는 해요. 하지만 이제 저는 모르겠습니다. 가치가 다른 가치보다 우선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지켜내야 모르겠어요. 그래서 일단은, 당장 앞에 보이는 위로와 기쁨을 찾습니다. 저는 자극에 약한 사람이고 지금 글을 쓰느라 머리가 아프니까요. 그래서 트위터에올해는 진짜 탈케이팝 한다.’라고 다음 음악방송 직캠 영상을 리트윗했습니다. 나태함이 7 죄악 하나 아니던가요? 아무래도 지옥행은 확정인 같습니다. 

무용에 대한 소고 – 왜 나는 무용을 사랑하는가?

 

 자취방 문을 열고 신발을 벗은 뒤 걸어 들어가 흰 옷장 문을 열고 겉옷을 벗어 넣는다. 그리고 침대 사이와 책상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에 요가 매트 한 장을 깐 뒤 스트레칭 밴드를 든다. 타이머를 2분으로 맞추고, 양다리를 옆으로 벌린 뒤 스트레칭 밴드를 양발에 걸고 상체를 앞으로 숙인다. 사이드 스플릿 스트레칭. 언젠가 180도로 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몇 달 해봤는데 잘 안 된다. 실제로 늘어나지는 않고 찢어지듯 아프기만 한 햄스트링을 주무르며 갑자기 드는 생각은, 내가 이걸 지금 왜 하고 있는 거지? 그야 발레를 더 잘 하고 싶어서. 왜? 발레가 좋으니까.

그러니까, 왜?

나는 왜 무용을 좋아하는가? 이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처럼 답 없는 물음일 지도 모른다. “그냥.”이라는 반응이 가장 적절한 대답인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묻고 싶다. 자의식을 파헤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변태 같은 성정 탓이다. 수상소감에서 나올 법한 “좋아합니다. 그냥, 다 좋아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같은 멘트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왜, 라는 물음은 지워지지 않고 머리를 맴돈다. 결국 되든 안 되든 내 취향에 대한 물음에 답하지 않고서는 내 의식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나는 왜 무용을 좋아할까. “소질이 있어서.”라는 대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1여 년간 발레를 배웠다. 글쎄, 소질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전문 무용수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기에 나 자신을 좀 너그럽게 대한다면, 1년 동안 배운 것 치고는 꽤 만족스러운 편이다. 발레라는 것이 피아노와 비슷해 몇 번 배웠다고 해서 배웠다는 티도 내기 어려운지라 아직도 동작이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것이 실감이 나기 때문이다. 겉 근육이 아니라 속 근육을 쓴다는 것, 몸에 힘을 바짝 주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전달하여 표현한다는 것, 그런 것들을 배워가는 중이다.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배운다는 사실은 나를 우쭐하게 만들고, 엄밀히 말하면 나는 춤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춤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하지만 이는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니다. 잘 하지 않아도 좋아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잘해야만 좋아할 수 있다면 100m를 뛰는 도중 중간에 넘어져버릴 것만 같은,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중년의 남성이 야구 경기나 축구 경기에서 열광적인 응원을 하진 않을 것 아닌가. 또는 자신이 춤을 잘 추거나 노래를 잘 부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외모 천재라서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결국에 내가 무용을 좋아하는 이유를 밝히는 데 있어 소질은 설득력 있는 요인이 아니다. 춤을 추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몸을 가지더라도 얼마든지 춤추는 것을 좋아할 수 있다.

Erik Cavanaugh, from his Instagram.

예를 들자면 에릭 카바나우(Erik Cavanaugh)는 거대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춤을 추며 여러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다양한 미가 존중되는 현대 사회라 할지라도, 마르고 단단한 체격이 여전히 선호되는 무용의 세계에서 그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묻는다. 나는 왜 무용을 좋아하는가. 아마도 무용이 갖는 원초적인 느낌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용에는 그 어떤 기구도, 장비, 매체도 필요하지 않다. 물론 사용할 순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당신이 춤을 추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당신의 육체만 있으면 된다. 팔을 뻗고, 젓는다. 다리를 구부리고, 땅을 밟고, 구르고, 대지를 박차고 뛴다. 몸의 중심을 잡고 호흡을 느낀다.

James Whiteside - American Ballet Theatre - photo by Nisian Hughes

인간의 의식이나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확정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인간이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가장 확실한, 태초부터 있어왔던 사실. 그건 인간이 육체를 가진 유기체라는 것. 무용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각인한다. 책상 앞에 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키보드만을 두드려온 내게 무용은 내가 이 세상을 발 딛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데카르트적 인간이 아닌 하이네적 인간이니, 아폴론적인 것이 아니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니, 어려운 말을 하고 싶진 않다. 다만 모든 생각을 잊고 자신의 온 몸에 집중하는 경험, 자신을 잊는 경험을 하게 되면 알 수 있는 진실이 하나 있다.

춤을 출 때 나는 살아있다.

하지만 원초성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내가 직립 보행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필라테스나 요가, 또는 체조만으로도 충분할 지도 모른다. 그것이 굳이 무용이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자세를 교정한다든가, 코어 근육을 단련한다든가, 그러기 위해 내 의식을 몸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이런 것들만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Akua Noni Parker and Jamar Roberts in After the Rain Pas de Deux, photo by Paul Kolnik

 

그렇다면 무용을 좋아하는 이유는 좀 더 확실해진다. 그건 무용이 몸을 통해 무엇을 전달한다는 사실이다. 무용은 몸으로 말한다. 아니, 온 몸으로 전달한다. 언어로 명확히 규정될 수 없는 어떤 기운, 감정, 에너지, 좀 더 과장하자면 혼, 그런 것들이 뒤섞여 온 신경으로 전달한다. 언어는 필요 없다. 악기도 필요 없다. 춤은 온 몸으로 실감하는 것이며, 그런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고, 그런 사실을 서로의 몸과 몸을 통해 공명하는 것이다. 춤을 출 때의 나는 다른 행위에서 얻을 수 없는 흥분과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아, 이것이 내가 무용을 사랑하는 진정한 까닭인 것 같다.

무용의 소통은 분명 인간의 원초성과 맞닿아 있다. 언어를 사용하기 이전의 인류가 북소리에 흔들리는 심장과 함께 서로의 것들을 몸짓으로 나누는 비슷한 경험을 2018년 맥북을 만지작거리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것이다. 무용은 가장 솔직한 의사소통이다. 몸짓의 세계엔 언어의 기만이 관여하지 못한다. 의식이 모두 관장할 수 없는 무의식, 무정형의 덩어리들을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행위가 무용인 까닭이다.

그러나 내가 무용을 사랑한다 해서 언어로서의 의식을 평가 절하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다. 무용이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무엇을 전달한다 할지라도, 분명히 언어로써 그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무정형의 덩어리들을 언어로 설명하기를 완전히 포기해버린다면, 전달되는 대상의 깊이는 얕을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의 의사소통 수단이 하나밖에 존재 하지 않는다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몸짓은 어쩌면, 무용이라는 예술장르로 포장된 고상한 서커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Cacti choreographed by Paul Ekman, Netherlands Dans Theater 1.

 

현대무용이 가지는 피상성에 대한 논의는 NDT 안무가 중 한 명 알렉산더 에크만의 <Cacti>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몸짓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심지어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안무가가 아닌 무용수는 그 몸짓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이런 본질적 논의를 그는 아름답게, 그리고 조금은 짓궂게 제시한다. 그는 무용수들이 안무를 연습하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삽입한다. 무용수들은 동작의 의미를 탐색하지 않고 단지 카운트를 세며 순서를 외우고 연습한다. 미니멀리즘 전시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흰색의 큐브들이 무대에 널려 있다. 작가정신의 파괴라는 성취를 거둔 역사적 조형물이 물화(物化)되어, 그 역사성은 사라지고 단순함이라는 미학 하에 아름다운 조형물로 가공된다. 무용수들은 명확한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 선인장 오브제를 가지고 춤을 춘다. 작품은 상징과 은유, 비정형으로 뒤덮여진 포스트모던 댄스가 정말로 유효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의미의 모호함의 문제는 춤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정된 의미를 해체하고 창작자로부터 감상자로 무게중심을 옮겨놓고자 하는 예술, 그러니까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라면 언제나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인 것이다. 의미 해석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감상자에게 내맡겨버리고 번드르르한 스펙타클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상업성을 획득하게 되는 위기적 상황은 어느 예술 장르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Prince Credell in Stop-Motion choreographed by Sol León and Paul Lightfoot

 

무용이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매체인 것은 사실이지만, 안무가가 의미를 뜯어보고 표현하는 과정을 신중하게 거쳤다면 그 작품은 반드시 무언가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솔 레옹과 폴 라이트 풋의 <Stop Motion>은 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함께 이별의 의미를 탐색한다. 무용수는 기억의 잿더미 가운데로 뛰어 든다. 재만이 남은, 버려진 기억들 속에서 몸부림에 가까운 무엇을 춘다. 그가 돌고, 차고, 뛰는 가운데 흩날리는 재들은 온몸을 덮는다. 마치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며 회개했던 유대인처럼, 그는 기억들 사이로 뛰어 들어가 눈물 젖은, 어쩌면 폭력적이다 싶을 정도로 아픈 애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런 몸부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정서는 다른 장르에서는 표현될 수 없는 차원인 것이며,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된 점이 하나 있다. 그건 단순히 내가 춤을 추고 싶어 하는 이유를 밝히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이를 밝히며 다른 사람들 또한 나와 같은 경험을 해보기를 권유하고 요청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다. 춤을 통해 자신의 몸을 자각하는 경험. 말을 하지 않은 채 몸과 몸으로 무엇이 전달되는 경험, 오히려 말이 필요 없는 경험, 그럼으로써 살아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는 경험. 당신도 나와 같이 몸을 가진 인간이라면 분명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험하길 바란다.

금이 간 아름다운 세계

채혜선 세 번째 개인전 <다시 피어나는 이야기 숲> 전시 리뷰

시나인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좋아하는 것들만으로 가득하다면 누구나 ‘행복하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자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은 있게 마련이니까. 따라서 모든 사람이 각자의 삶 가운데 완벽한 만족을 느끼는 세계, ‘유토피아’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미완의 존재다. 서로의 꿈이 각자에 의해 무너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중 영생에 대한 꿈은 인류 보편적이라고 하지만 그마저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온전한 행복을 경험할 수 없기에 사람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주어진 세상에 맞춘 반쪽자리 행복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순간이라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갈 것인지’를.

  실제 세계가 아닌 꿈꾸는 세계를 우리는 소설, 그림, 영화 등에서 간접적으로 만나고 경험하며, 이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러한 예술 작품은 대개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잠시나마 그러한 세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편안하면서도 기분 좋은 ‘꿈’을 선사한다. 이는 충분한 만족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잠깐의 안식과 여유로 위로의 시간이 되며 또는 그런 세상에의 동경과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용기를 응원해준다. 하지만 그 꿈은 이따금 현실 감각을 둔하게 만들거나 현실과 이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만들어 형용할 수 없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만들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영생의 꿈을 표현한 회화가 있다. 바로 ‘십장생도(十長生圖)’다. 십장생도는 한국인의 토속 자연물 숭배 사상을 기반으로 중국의 신선 사상을 수용하여 16세기 궁중 회화로 제작 사용되었으며, 19세기에는 민간에까지 널리 확산되었다. 십장생도는 장수를 상징하는 장생물(長生物)을 그린 것이며, 주로 병풍으로 제작되어 방안을 장식하였다. 십장생은 오래도록 지속되거나 생명이 유지된다고 믿어지는 열 가지의 자연물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해, 구름, 산, 물, 바위, 학, 사슴, 거북, 소나무, 불로초를 꼽지만 유동적이다. 또한 동방삭이 훔쳐간 신선 세계의 천도복숭아와 대나무, 영지(靈芝)도 함께 그려지면서 열 가지를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십장생도는 산, 바위, 소나무, 구름, 바다 등으로 배경이 환상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그 사이를 학, 사슴, 거북 등이 노니는 선경(仙境)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불로장생과 태평성대의 염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비현실의 이상 세계로 일종의 유토피아다. 8폭 또는 10폭 병풍의 장대한 화면에 장생을 상징하는 자연물들이 화려한 채색으로 위풍당당하게 그려진 환상의 공간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는 깊은 숲 속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지만, 조선인이 꿈꾸었던 상상 속의 선계가 분명하고 그러한 세계의 논리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물의 크기나 원근의 왜곡, 또는 과장까지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완결된 불로장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다시 피어나는 이야기 숲>전시에 소개된 19점의 회화는 소재의 종류나 표현이 조선시대와 달라졌지만, 맑은 색채로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 아늑한 풍경을 배경으로 노니는 장면을 그린 채혜선 작가의 작품들로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바람과 이상 세계가 현대판 십장생도처럼 펼쳐졌다. 평면적인 화면과 선명하지만 투명한 색채감각은 현대화된 민화가 어떤 모습인지 알려주며, 그 세계 안에 존재하는 납작하고 만화처럼 귀여움이나 사랑스러움을 극대화시킨 ‘동물 친구들’은 많은 사람이 채혜선 작가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다. 조선시대 십장생도에서의 동물은 장생으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위엄 있고 당당하고 화려한 모습이라면, 채혜선 작품에서의 동물은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을 드러내며 보는 이에게 편안하게 다가선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발걸음을 멈춘 채 응시한 작품들에서는 작가와 함께 그녀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계를 노닐고 있다는 착각을 경험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그림의 배경은 자연 속 골프장이다. 그래서 들판이 주로 그려진 그림들이 많은데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연못을 그린 풍경에서 시선이 멈추었다(도2). 부드럽고 아기자기한 구성과 특유의 민화적 색채감각으로 인해 감상자들이 저절로 ‘예쁘다’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게 만드는 그림이다. 거대한 초록빛 언덕들은 일렁이는 자태를 뽐내며 그 안에 골프장을 품고 있다. 언덕을 올라가는 골프 카트는 굉장히 작게 그려지고, 주변에서 노니는 오리들은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실제와는 달리 크기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언덕 아래 넓게 펼쳐진 연못의 연꽃과 연잎들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그 사이를 하얀 강아지(이하 룽키)(각-하얀 강아지는 채혜선 작가의 반려견이며 이름은 ‘룽키’라고 한다. 작가와 가장 가까운 친구라는 의미에서 등장하는 도상이라고 짐작된다.)와 오리들이 헤엄치며 연못에 빠진 골프공을 꺼내기 위해 발을 들여놓은 사람을 쳐다보고 있다. 그 옆으로 머리를 연못에 처박고 뒤집어져 있는 오리의 모습은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했다.

  자연스럽게 언덕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연못을 배회하던 내 시선은 골프 홀 주변에 머물렀다. 그곳엔 사람 대신 주둥이로 골프공을 물고 있는 오리 한 마리가 있을 뿐 아주 특별한 구석이라곤 없었다. 다만 오리가 자기 부리만한 골프공을 물고 있는 모습은 위태로워 보였고, 오리가 골프를 하고 있다는 유아적 상상보다는 인간으로 인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새들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겹쳐보였다. 때문에 이 그림을 바라보면 볼수록 왠지 모를 불쾌함 내지는 의아함이 생겨났다.

  “사람만한 오리라고 한들, 정말 ‘골프공’이 오리에게도 장난감이 될 수 있을까.”

 

  이유 모를 불쾌한 의문을 뒤로 한 채 몇 걸음 옮기자, 또 다른 환상의 세계가 펼쳐졌다. 꽃이 가득 핀 동글동글한 푸른색의 거대한 선인장이 등장하는 그림이었다(도3). 작가는 맑지만 쨍하지 않은 색감을 주로 사용하여 마치 숲 속에서 있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편안함을 선사한다. 이때 노란색, 빨간색 꽃들이 예쁘게 핀 선인장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연의 푸른빛이 감도는 다른 작품과 다르게 따뜻하고 환상적인 노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선인장 주변을 보게 되면 선인장 꽃보다도 작은 사람들은 골프채를 들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고,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룽키, 청설모, 캥거루는 흙더미 혹은 선인장 뒤에 숨어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기 주머니에 새끼가 있는 캥거루 한 마리는 저 멀리 골프 홀 주변에서 골프공 하나를 손에 들고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설모의 주변에는 그들이 열심히 모은 밤들이 놓여 있고,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 잔디밭을 파헤치면서 생긴 흙 잔해들이 흩어져있다. 그 중 왼쪽 모퉁이에서 구석을 향해 서 있는 청설모 한 마리가 모은 밤들 사이로 분홍색 골프공과 하얀색 골프공이 보인다. 해가 지고 있어 전반적으로 난색계열의 색채가 지배적인 가운데에도 골프공은 도드라진 색감과 두꺼운 칠에 의해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분홍색 골프공은 형광색으로 주변 색감과의 괴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이때 다시금 불편한 의문이 수면 위로 올라와, 죽은 야생 동물의 뱃속에서 발견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자꾸만 의식하게 되었다. 생명과 직접 연결되는 음식 곁에 놓인 작고 동그란 모양의 놀이 도구가 실제보다 더 무겁고 더 강하게 느껴졌다.

  좁은 공간이라 작품들이 가까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세계에 빠져드는 순간에 금이 가는 것을 의식적으로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려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로 연출된 자작나무 숲에 다시 빠져들었다(도4). 앞선 그림들은 놀이터처럼 활기찬 움직임으로 가득 채워진 반면, 이 그림은 정적인 자작나무 사이로 피어 있는 억새들이 바람소리를 연상시키며 고요하면서도 쓸쓸한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더구나 자작나무 사이로 길이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도 없어 누구나 가고 싶은 데로 가면 될 것 같다. 그곳에서 공작들은 자작나무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니며 당당한 자태와 화려한 색채로 그들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그 뒤로 멀리 그려진 룽키와 고양이 한 마리, 새 세 마리는 공작들을 응시하고 있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 등장한 사람은 골프에 심취해 있다.

  자작나무 숲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룽키의 시선이 머무는 중앙부의 공작새 무리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되었다. 공작새가 낳은 알들이 골프공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알은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으로, 여리고 약해서 보호받아야 하고 섬세한 온기로 품어주어야만 한다. 그런데 비슷한 크기와 모양새의 그저 스포츠 도구에 지나지 않는 딱딱한 골프공이 그 옆을 지키고 있기에 채혜선 작가의 이상 세계에 생긴 틈은 더욱 넓어진다. 그 배신감으로 숲 끝에서 골프를 치고 있는 불특정 사람에게 근거 없는 미움이 싹 트게 된다. 이 숲 속은 아름다운 이상적인 세계로 완결된 공간이 아니라는 자각이 선명해지는 그 순간 그녀가 화폭에 담아낸 이상 세계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골프장은 사람들이 골프를 치는 그들의 유희 공간이지, 동물들의 삶의 터전이 아니라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채혜선 작가는 <Friends> 시리즈를 통해 반려견 룽키를 비롯한 모든 동물들이 편안하고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기를 희망하며, 사람들에 의해 고통 받는 동물들과 그들을 보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만의 목소리로 그림이라는 매체를 통해 조용히 위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녀는 맑고 투명한 색채감각으로 조선적 유토피아를 대표하는 ‘십장생도’의 장생물과 유사하게 자연 풍경 속의 골프장으로 자신만의 이상 공간을 만든 다음, 그 안에 동물들과 골프를 치는 사람들의 위계를 나누지 않고 오밀조밀하게 배치하여 그녀만의 세상을 그려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모두가 ‘친구’가 되기를 소망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유토피아적 공존은 결국 미완으로 끝나고 있다. 조선시대의 십장생도는 장생물이 하나같이 ‘장수’라는 동일한 염원을 상징하며 이상 세계를 완전하게 대변하지만, 채혜선 작가의 그림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소하고 부자연스러운 지점에서 그 불편함은 드러나는데, 그것은 골프공으로 대변되는 사람과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문명이다. 동물들과 직접 맞닿아 있는 골프공은 장난스럽게 바라볼 수 없는 무거운 존재이며, 표현적인 부분에서도 다른 것들에 비해 두껍게 칠해져 그 무게감을 더해준다. 채혜선 작가의 유토피아에서 ‘골프공’은 마치 영화 <인셉션>에서 그곳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팽이처럼, 깨어진 꿈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드는 장치가 되어 결국 이상 세계의 부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위로 받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한 대중문화는 점차 단순해지면서 해석의 여지가 없어지거나, 심지어 그것이 이상 세계이며 허구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각자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상 세계 속 모순이나 허점을 알아차리는 예민함과 같은 감각은 점차 무뎌지고 있다. 채혜선 작가의 작품 속 작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는 그러한 퇴보까지도 지적한다.

  19점의 회화를 모두 감상하고 전시실의 한 벽면을 채운 유리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큰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일렬로 심어진 은행나무와 당당하게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피해 날아다니는 비둘기들이 있는 인사동의 거리 풍경은 그녀가 만든 꿈에서 깨어난 나를 또 다시 깨어나게 만들고, 그 광경까지도 하나의 ‘전시’로 다가왔다.

Pod Castaway: 나의 팟캐스트 표류기

nutsGangs

 

 언제부턴가 사람의 말소리가 없는 순간의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작은 그렇듯 미미한 것이었다. 초등학생 우리 집과 학교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어서 나에게 등굣길이라는 것은 언제나 출근하는 엄마의 안이었다. 당시 엄마는 <황정민의 FM 대행진>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다. 나는 황정민 아나운서가 중간중간에 꽁트를 하면서 내는 이상한 목소리를 좋아했고, 엄마는 김원장 기자, 정재승 과학자 유명한 전문가들이 나와 다양한 지식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코너를 좋아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도 후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학교 앞에 도착했는데도 설명하던 것을 마저 듣겠다고 떼를 써서 엄마는 종종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했다.

중학생 때도 초등학교 시절의 영향인지 라디오를 듣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공부를 때면 책상 왼편에 놓인 노란색 라디오를 항상 켜놓았다. 완자, 오투 같은 문제집을 풀거나 학원 숙제를 하는 것은 너무 지루한 일이었고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하자는 가장 이유였다. 음원 사이트가 대중화되고 MP3 노래를 다운받는 가능했던 시기 같은데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몰랐던 같다. 연예인들의 왁자지껄 웃긴 이야기, 청취자들이 보내는 다양한 사연들, 때로는 유명한 가수들이 나와 신곡 홍보를 하면서 재롱을 피우는 듣는 즐거웠다. 그리고 진짜 재밌는 방송은 항상 12시부터 시작하는지 . 한창 성장해야 시기에 거의 매일 새벽 2시까지 라디오를 듣고 잤다. 아마 당시에는 얄팍한 감수성에 취해 새벽까지 깨어있는 자신에게 만족감을 느꼈던 같기도 하다. 듣지 못하더라도 항상 켜놓고 잠이 들어서, 다음날 일어났을 가장 먼저 듣는 소리도 라디오 소리였다. 

고등학생 때는 누군들 아니겠나 싶지만 공부를 정말 싫어했다. 기숙사 생활을 덕분에 부모님과는 떨어져 지낼 있어서 정말이지 하고 싶은 , 좋아하는 하면서 살았다. 물론 그래서 수능을 봐야 했다. 이런 불량한 학생이었던 만큼 자율학습 시간은 정말 고역이었다. 많은 경우 엎드려 잤고, 깨어있을 때는 귀에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그리고 바로 시기에 팟캐스트를 처음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기자인 김혜리 씨가 라디오에서 영화 관련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때 찾아 들은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였다. 당시 라디오는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정한 시간에 라디오 앞에 앉아있어야 한다는 한계를 벗어나 노래처럼 다운로드를 받아서 마음껏 들을 있도록 것이었다. 떨어지는 청취자 수도 늘리고, 생방을 들었던 사람에게는 마음에 들었던 방송을 언제든 다시 들을 있게 해주는 유용한 기획이었다. 나는 글로만 읽던 김혜리 씨의 목소리를 접하기 위해 팟캐스트라는 신문물과 첫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김혜리 씨는 금요일마다영화, 사람을 만나다라는 코너의 게스트로 나왔다. 매주 영화 하나를 선정해서 줄거리와 작품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해주었다. 특히 영화의 줄거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영화의 장면부터 결말 직전까지 영화적 디테일에 대한 세심한 묘사를 곁들어서 말해주었는데 영화 하나를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토요일 아침에 금요일 방송분이 언제 올라오나 조급해하며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코너 외에도 문천식 씨가 나와서 웃긴 사연을 기깔나게 읽어주었던 문천식이야’, 음식 전문가 노중훈, 이현주 씨가 테마에 따라 각자 맛집을 추천해주고 승자를 가리던대결, 음식도시 거의 모든 코너에 애정을 갖고 들었다. 다양한 성격의 게스트 사이에서 맛깔나게 진행하던 성시경 씨의 능력도 언제나 감탄의 대상이었다.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 내가 챙겨 들었던 마지막 라디오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의미로 남아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재수생 시절에는 매일 수능 기출 문제와 학원에서 쏟아지는 숙제들에 정신을 차릴 정도였다. 생애 가장 많이 울었던 해이다. 나는 아픈 연기를 잘해서 학원의 엄중한 출석 시스템을 뚫고 부모님 몰래 자주 조퇴를 했다. 그런 방황 속에서도 내게 힘이 되어준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였다. 다소 야하게 보이는 타이틀과 달리 나름 진지하다면 진지한 프로그램이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가 본인이 직접 선정한 문학, 비문학 책을 두고 소설가 김중혁 씨와 거의 2시간가량을 이야기 나누는 방송이었다. 다루는 책들은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의 것이 많았고, 평소의 나라면 손도 대지 않았을 법한 두껍고 딱딱한 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마치 책을 읽고 함께 수다를 떠는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처량하고 희망 없던 재수생에게 마치 지적인 대학생이 것만 같은 만족감을 들게 해주었던 같다. 당시 다녔던 학원에서는 영어 듣기 공부를 하는 아니면 자습 시간에 이어폰도 꽂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영어 문제집을 펴놓고 몰래 팟캐스트를 들었다. ‘남들은 모두 수능 문제집을 풀고 있을 나는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대한 대화를 듣고 있다 유치한 스릴감을 좋아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한동안 팟캐스트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재수한 새내기에게 그것 말고도 즐거운 충분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도 결국 비슷비슷한 것의 반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재밋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 다시 팟캐스트로 손을 뻗었다. 세상사 다양한 관심사와 분야의 팬들이 자신의 사랑을 뽐내겠다고 방송까지 만드는 곳이 팟캐스트라는 세계다. 여기는 문자 그대로 다도해다. 제대로 섬을 찾아 도착만 잘하면 한동안 일상의 즐거움을 보장해주는 낙원을 만날 있다. 그렇게 도착하게 곳이 <오지은 정바비의 어쩌다 日本語>였다. 팟캐스트는 뮤지션 오지은, 정바비 씨가 일본 음악에 대한 애정을 표출할 길이 없어 자체적으로 만든 방송이었다. 시기에 나는 정바비 씨가 만든 노래와 가사를 너무 좋아했고, 팬심으로 이런저런 서핑을 하던 우연히 방송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타이틀만 봤을 일본 음악 팟캐스트인지도 몰랐다. 뮤지션은 일본에도 좋은 음악과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에 쉽게 접근할 길이 없다는 것이 진심으로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들에게 일본 대중음악의 매력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덕력을 뽐내며, 소수의 일본 음악 팬덤으로부터는 소소한 반향을 일으켜보고자 슬며시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오지은 정바비의 어쩌다 日本語>만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소개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온전히 담겨있었다는 점이다. 오지은, 정바비 씨는 사비로 저작권료를 지불하면서까지 방송에 노래들을 집어넣었다. 국내에서는 일본 음악을 접할 방법이 거의 없어서 일반 청취자들로서는 따로 찾아 듣는 힘들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일본 음악의 세계를 아주 얕지만, 충분히 맛볼 있었다. 팟캐스트에서 다뤄진 아티스트로는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Pizzicato Five, Aiko, Southern All Stars, Spitz, AKB48, 노나 리브스, 히로스에 료코 시기나 장르의 면에서 무척 다양했다. 외에도 특정한 주제를 정해서 거기에 맞춤 선곡으로 구성한 특집들도 있었는데, ‘큐슈 지방 출신 아티스트’, ‘발렌타인 데이에 어울리는 사랑 노래’, ‘작사가 마츠모토 타카시가 참여한 노래 베스트등이 있었다. 방송을 진행한 뮤지션의 매력도 몫을 했다. TV 나오지 않는 인디 뮤지션이라 평소의 말투나 성격에 대해서는 아는 없었는데 까불 까불거리며 농담을 치다가도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을 해주는 덕분에 사람의 수다를 듣는 재미가 상당했다. 방송의 인기는 생각보다 높아서 오프라인 공연도 이뤄질 정도였다. 그러나 팟캐스트는 언제부턴가 특별한 공지 없이 업로드가 중단되었고, 기존 파일들도 삭제되었다. 저작권 관련 문제가 발생했던 같기도 하고 사람이 싸웠을 수도 있고 이유는 모르겠다. 뮤지션이 소개해주는 일본 음악이 그쪽 문화로 접근하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에 이후로는 일본 음악을 전혀 듣고 있지 않다. 당시의 경험이 종종 그립고 다시 시작해주었으면 따름이다.

이제 다시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그래서 팟캐스트를 뒤지기 시작했고 그러다 새롭게 도달한 곳은 미국 프로 스포츠라는 신대륙이었다. 시작은 <농구토크 버저비터>라는 방송이었다. 팟캐스트는 NBA 대한 팟캐스트였는데, 처음 듣기 시작할 내가 아는 미국 농구선수는 은퇴한 오래인 마이클 조던뿐이었다. 그럼에도 남자가 매주 2시간 30분가량 농구 얘기만 하는 방송에 빠지게 되었다. 구성은 동안 있었던 NBA 소식을 알려주는이슈 Up & Down’, 주의 주요 경기에 대한 리뷰인 매치 Replay’, 다음 주에 예정된 특정 경기에 대한 프리뷰인위클리 Pick & View’, NBA 더욱 재밌게 즐길 있도록 여러 지식을 알려주는 ‘NBA 스쿨 이뤄졌다. 나는 진행자들이 말하는 선수가 누구인지도, 사용하는 농구 용어가 무슨 뜻인지도 전혀 몰랐지만 그래도 열심히 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대상에 대해,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품고 있는 열렬한 사랑을 내뿜으면서 나누는 열정적인 수다를 듣는 좋았다. 그런 에너지 자체가 내게 매력이었고 그게 필요했던 같다. 장르가 스포츠였기 때문에 예술에 대해 말할 때와는 사용하는 용어부터 방송하는 진행자들의 에너지까지 완전히 다른 성격이었고, 그래서 더욱 재미있었다. 이후엔 NBA 매력에 빠져버렸고, 그것을 넘어 스포츠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NBA 하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리그로 손을 뻗쳐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NFL(미식축구) NHL(아이스하키)에도 손을 댔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새로운 경기와 관련 뉴스를 따라잡는데 많은 시간을 날리고 있으며 각각의 리그에 대한 팟캐스트도 듣기 시작했다. 요즘 삶의 가장 즐거움이다.

이렇게 여러 팟캐스트들 사이에서 정처 없이 표류해온 끝에 나는 이제 무언가를 듣고 있어야만 마음이 편한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자취방에는 언제나 팟캐스트가 틀어져 있다. 샤워할 때에도, 설거지할 때도, 학교 가는 길에서도, 특별히 시간이 떴을 때도, 밥을 먹을 때에도,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도 핸드폰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흘러나오고 있다. 새로 업로드된 에피소드는 처음 듣는 내용이기 때문에 온전히 집중해서 듣는 매력이 있고, 이미 들었던 다시 들을 기울일 필요 없이 편안하게 흘려보낼 있어서 좋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누군가의 대화에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끼고, 내가 모르는 영역에 대해 새로운 알아가는 좋았다. 팟캐스트를 듣다 보니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과 혼자만의 묘한 친근감도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는 방송 초반에 인트로 격으로 시작하는 진행자끼리의 근황 토크가 진심으로 궁금해지고 재미있다. 이렇게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같은 따뜻한 느낌이 때가 있다. 그렇게 이제는 사람의 말소리를 듣는 행위 자체가 일상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중독이라면 중독이다. 그런데 문득 이렇게 쓰고 나니 정도로 사람 말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냥 내가 외롭기 때문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찌할 모르고 그냥 팟캐스트를 듣게 되겠지.

V-A-D-A V-A-D-A!

콩브레과자점

 

 

 

 

“90년대 영국? 뉴스쿨 펑크?” 이제까지 봐왔던, (아름다운 얼굴의) 뉴스쿨 펑크 키드의 전형이라고 생각하며 그가 내민 사진에 마디 했다. 하지만 얼굴에서 음악을 들을 수는 없었던지,

틀렸어. 요즘 캘리포니아 힙스터 아이돌이야.”

그들의 얼굴을 보고 당연하다는 자신하던 얼굴에 물음표 여러 개가 달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왼쪽 눈에 붙은저들이 요즘 사람인가?’, 오른쪽 눈에 달린저들이 미국 사람이라고?’, 콧구멍 사이를 뚫는라나델레이 같은 힙스터들의 마더 어스(Mother Earth)인가?’, 입에 걸린도대체 펑크가 아니면 뭔데?’.

The Garden. 그는 이상 저들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고, 찾아보라며 이름만 남겨주었다. 나는 여전히 물음표를 얼굴에 채로 돌아섰다.

 

Mirror Might Steal Your Charm. (거울이 너의 매력을 앗아갈거야. 이하 MMSYC) 그들의 이름을 입력하자마자 얻은 저주(?)였다. 저주 아래에 적힌 트랙리스트를 보며, ‘... 확실히 생각과는 다르군.’이라고 생각하며, ‘노래는 별로겠군.’이라는 생각도 추가했다. ( 앨범에는 -나의 초기적인 좋은 노래 판별 기준- 있는 노래가 No Destination밖에 없었다!) 기대 없이 별이 박혀있는, 노래를 재생했고, 처음의 ‘F# G# A# C# D# F# G# A# F F# F’ 신스 진행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져 별을 눌렀지만 이내 눈의 근육은 아래로 풀렸고, 입꼬리도 아래로 향했다. 별도 취소했다.

곡만 듣기는 아쉬워 Make a Wish 라는 트랙도 재생했다. 제목이 특별히 눈에 아니었고, 앨범 커버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B A# B D# E D# E D# E D# E . 음계로 환원하는 의지가 아니었다. 이들의 노래는 항상 정석적인 음계보다는 약간 낮은, 사실은 계이름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소리로 귀에 입력되었다. ‘이들의 노래 함은, 그들의 직접적인 성대의 떨림도 포함하는 것인데, 노래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성대가 그리는 자취가 선명해졌다. 자취는, 일종의 x, y, z 그래프의 모습으로, 양탄자가 구불구불한 상태로 대충 펼쳐지는 모양새였다. 양탄자 위에는 빛을 잃어가는 일곱 개의 금빛 별들이 있었다. 

이들은 내가 익숙해져 있었던 기존 음계의 장막을 걷고, 우리가 음정 튜닝으로 바로잡으려고 하던 일곱 개의 정칙적인 음정 이외의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펼쳐진 양탄자에 기분 나쁜 진동을 선사하는 불협화음은 일지 않았다. 개별적인 그들의 목소리와 신스사운드는 예측 가능한(기존에 알던) ‘ 지점까지 음높이를 도달시키지는 않지만, 내가 재생한 트랙 위에서 별수 없이 끝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는 소리들은 시시하지는 않은 협화음을 터뜨렸다.

트랙 이후의 다른 트랙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흘려 넘겼기 때문에 감상을 Make a Wish 할애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No Destination, Make a Wish, 이후 트랙들(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제목들을 구분하지 못했다.) 재생이 반복되었다. No Destination 마지막 트랙이고 Make a Wish 번째 트랙이었는데, 마지막의 것을 번째 앞으로 끌어와 매일 재생했기에, 정작 실제 번째 트랙인 Stallion 번도 듣지 않았다. 어느 순간 The Garden NDMW(No Destination Make a Wish) 재생 방식은 나의 (적어도 휴대폰의) 일상적 의식이 되었다.

고전적인, 우리에게 친숙한, 정직한, 황금 별들에서 이탈한 노래들은 The Garden 말고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시도했다. 이들 이전, 이후의 시도들이 이들보다 못한 것도 아니다. (내가 수도 없다.) 기존의 시도가 대개 기교나 특정 분위기를 내기 위한 시도, 아니면음을 맞출 능력이 부족한 것이지만 좋게 들림이었다면, 이들은 그것이 노래의 본성이다. 모든 음은 대개 이탈 속에서 구성되며, 아예 음이 아닌 목소리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 목소리에 대한 의존은, 메탈/하드코어 장르의 언클린(그로울링, 스크리밍 소리 지르는 양식 보컬)과는 구분된다. The Garden 그냥 말을 한다. 오로지 그들의 목소리에만 의존하고, 톤을 정확히 재현하지 않으면 같은 느낌을 얻기 힘들다.

 

VADA VADA(이하 VV) 알게 후의 일이었다. MMSYC에서는 VV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일이 없었다. VV Haha Together We Are Great에서 처음 발견했다. “I reside in the VV. I’ll raise my family here.“ 처음에는 VV 신개념 컨테이너 박스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컨테이너 박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여겼고, 이를 수정하게 계기는 한참 뒤에 그들의 Youtube 채널명이 VADA VADA (사실 이때에는 Fletcher 여자친구가 Youtube 관리한다는 근본을 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여자친구 이름이 Vada인가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했다.) 공연 월포스터에 VADA VADA라고 적힌 것을 보고 나서야 찾아왔다. 그리고 뜻을 알게 것은 이보다도 뒤의 일이었다. 

The Garden 노래들을 아주 아름답다고 선뜻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들은 습관화와 일상화가 쉬운 노래들을 만들어낸다. 곳곳에 섞인펑크 눈여겨 볼만한 요소인데, Fletcher 구사하는 높은 수준의 펑크 드럼과 별다른(별다른) 감정적 격동을 일으키지는 않는 Wyatt 지기징징 베이스는 처음 듣고 빠지기에는 어려운 요소들이다. (클래식을 처음 듣고 나서부터도 물론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만, 대개 많이 듣던 사람들이 장르에서 요구되는 요소적 훌륭함을 찾아내는 것과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Garden 스스로의 음악을 펑크로 규정하지 않으며, 또한 그들을 펑쓰(Punx: 펑크를 하는 사람들)라고 부르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Wyatt 자기의 음악을 VADA VADA라고 부르며 이렇게 설명한다. “It is an idea that represents pure creative expression that disregards all previously made genres and ideals.” (기존 장르가 쌓아올린 벽을 허물고, 새로운, 창조적인 표현을 하고자 하는 움직임.) 이제 Together We Are Great 등장한 VV 이해되기 시작한다! I. reside. in. the. VV. (나는 VV 살아. VV 내가 사는 곳이야.)

 

앞서 The Garden 독특한 점을 나는 화성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밝혔다. 사실, 그들의 많은 것들이 충격적이다. 가사, 공연, 심지어 피지컬 앨범조차도. 일단 그들의 충격적인 미모도 나의 쇼크에 한몫을 하겠고, 그들의 복장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의상은 대개 DIY(Do It Yourself) 만들어지고, 성별을 넘나든다. 또한, 그들의 주특기는 광대분장이다. MMSYC 표지의 광대(MMSYC 앨범 소개의 사진 참고) Shears 쌍둥이가 일렬로 서있다가 각자 왼쪽과 오른쪽으로 흩어졌을 , 남은 잔상처럼 보인다. 타인의 시각에서 얼굴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쌍둥이가 레플리카를 생성해내는 거울을 소재로, 광대를 배치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Wyatt Fletcher 누가 거울 안의 인물이고 누가 밖의 인물인 것일까?

가사의 충격적임은 내용에서의 자극성 때문이 아니다. The Garden 노래에는 여타의 펑크와는 다르게 욕설, 포르노적이거나 잔인한 내용이 거의 없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함에서 첨언하자면, straight-edge punk 등에서는 마찬가지로 깨끗한 가사를 지향한다. 하지만 많은 펑크 서브 장르들은 아직까지도 저런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는 사실이다.) 오히려 내용은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다. 트랙 안에서 내용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시점의 리듬에 알맞은 발음들을 뱉듯이 적절한 템포로 퉤퉤 뱉는다. (궁금하다면, Stylish Spit Haha, 그리고 All Smiles Over Here 들어보라.)

 

그들의 공연은 동영상만 봐도 나를 돌아버리게 만든다. Wyatt Fletcher 무대 위에서 서로를 뜀틀 넘듯이 넘고 다니고, 앞으로 굴렀다 뒤로 굴렀다 하는가 하면, 광대 분장을 하고 관중과 어깨동무를 하고, 마이크는 땅바닥으로 던져버렸으면서도 마이크 스탠드 앞에서 바락바락 악을 쓰며 괴상한 춤을 춘다. 관중은 그들이 바쿠스인 , 미친 신도들처럼 노래를 따라부르고, 눈을 감고 혼미해진 상태로 실신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접신 상태가 정말 있었다면 저것이겠구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피지컬 앨범. The Garden MMSYC Haha, 그리고 The Life and Times of a Paperclip(이하 TLTP) 구매했다. (TLTP 중점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VADA VADA라는 트랙이 들어있는, The Garden 핵심적인 초기 앨범이다.) TLTP 앨범이 다소 허술하게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특징이 없었지만 일단 Haha 가사집의 노래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정원에서 미로를 찾는 것처럼 그들이 뱉는 단어의 숟가락을 삼켜 가사집에서 그것이 무슨 노래인지를 찾아내어야 했다. (물론 나는 이미 노래들 대부분을 알고 있었기에 쉽게 찾았다.) 가사를 일부러 틀리게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틀리게 부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All Smiles Over Here에는 shake your ass shake your hands 써놓았고, Together We Are Great에서는 in which we trust in in which we trust라고 적어놓았다. 가장 엽기적인 것은 MMSYC 수록되어있는 :(라는 곡은 아예 가사집에 수록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트랙리스트도 적혀 있지 않아서 온라인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노래의 제목을 확인할 길은 없다. 적혀 있는 노래들도, 가사를 쓰기 귀찮았던 것인지 곡은 가사가 중간에 끊겨 있었다. (참고: 이들은 Epitaph 소속으로 인디가 아니다. 의도된 것이지, 실수는 딱히 아닌 같다.)

  

 

 

 

 

VADA VADA 이전의 시도에 비비지 않고 탄생하는, 그런 창조를 목표로 하기에, The Garden 자주 앨범을 세상에 내어놓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일단 양산하고 보는 각자의 솔로 프로젝트가 있다. Wyatt enjoy, Fletcher puzzle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enjoy, puzzle, The Garden 삼각형 속에서 나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일주일마다 괴상한 의식을 치르는 데에 이르렀다.

Now Playing: All Smiles Over Here. Track. 01/17

“All! Smiles! Over! Here!” 명의 광대가 나타난다. 하나는 남색 옷을 입고 베이스를 잡고, 다른 하나는 노란 옷을 입고 드럼 스틱을 잡는다. 입안에 숨은 살을 꺼내 입술은 두껍게, 얇고 넓은 혀도 가운데로 모아 밖으로 통통하고 길게 만든다. 일종의 로딩 과정이다. 로딩이 끝나면, 두꺼워진 입술이 뱀처럼 움직이는 혀를 뱉어내고, 소리가 들린다. 

Wyatt: (양팔을 동시에 앞뒤로 흔들다가 멀리뛰기를 하며) Hip swing, hip swing means nothing if you don’t have thighs. 

Fletcher: (무릎을 꿇는 시늉을 하다가 앞구르기를 해버리며) Bend knee, bend knee means nothing if you don’t think twice. 

Hahahahahahaha. 

웃음소리가 들려 잔뜩 취한 채로 (술은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살짝 눈을 떠보면, 주위에 나와 같은 포즈로 두둥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잔뜩 있다. 이러다 모두가 하늘로 떠올라 태양을 가려버리는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피어오른다.

Now Playing: Gift. Track. 17/17

Wyatt: (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Focus in Focus on

, 내가 모르는 부분이다. 어설프게 모양을 따라하지만 혀를 벌써 자기 키만큼 뱉어낸 광대의 입술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쉬이익. 핑그르르. 살짝 눈을 떠서 아래를 보니, 이곳이 우리 거실에서 내가 올라올 있는 마지노선이다. 줄자처럼 빠르게 거실로 되감긴다. 앞서 광대, 아니 The Garden 신봉하는 사용하였던 카펫에서 벗어나 소파에 앉아 경건해진 마음을 다스린다. 이런 의식은 일요일마다 벌어진다. (원한다면 참석해도 좋다.)

The Garden 이제는 정말로 나를 미치게 한다. 장갑 손으로 양쪽에서 둘이 나를 사정없이 후려쳐 영혼을 육체에서 분리시킨다. 떨어져나온 영혼은 구타당해 없이 돌아가는 상반신을 어쩔 몰라하며 바라본다. 나를 괴롭히는 광대들이다. 구타는 잊을 없다. 구타에 이글거리는 복수심을 품은 것인지, 아니면 변태적으로 도취된 것인지, 이런 미스테리어스한 감정이 지나가면, 손가락이 그들의 노래를 재생하는 막을 수는 없다. 절대로! 이제는 나도 VV 산다! 어쩌면 당신도!

푸른사막 아아루- 새로운 마법소녀의 이야기

시몬느

 

 내가 엄마말을 아주 듣던 8 , 태권도 학원을 빼먹는 최초의 일탈을 시도하면서까지 기필코 본방사수했던 만화들이 있다. 인어들이 노래를 부르며 악당을 퇴치하는 <피치피치핏치>, 윙크하면서 사람들의하트 뺏어가던 꼬마마녀가 주인공인 <슈가슈가룬>, 고양이꼬리를 소녀가 외계인과 맞서 싸우던 <베리베리 뮤우뮤우> . 만화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나랑 비슷하게 소심하고 서투르게 보이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아주 반짝이는 모습으로 변신해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무엇보다 마법소녀들이 끊임없이 외치던사랑’ ‘희망’ ‘우정 같은 긍정적인 구호, 혹은 가치들은 만화를 내가 그런 아름다운 말들 속에서 영원히 것만 같은, 혹은 살아야만 같은 환상을 빌려주곤 했다. 물론 나이가 들고 다른 관심사들이 생겨나면서 마법소녀들로부턴 조금 멀어졌지만, 그때부터 판타지물 여자 주인공에 대한 막연한 향수는 계속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푸른 사막 아아루> 판타지 기근을 겪고 있는 웹툰계에 얼마 안되는 정통판타지 작품이다. 제목에 나오는아아루 <푸른사막 아아루>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배경으로, 원래 푸른 별이었으나 지금은 저주에 걸려 사막으로 변해버린 불운의 땅이다. 황폐화되기 태초의 아아루에 물과 생명을 선사한 물의 정령의 힘은 아아루 왕녀의 피를 타고 이어져왔다. 주인공소티스 바로 왕녀 하나로, 물을 샘솟게 하는 주술능력을 타고났어야 했었다. 하지만 쌍둥이 언니이시스에게로만 능력이 쏠려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웹툰은 주인공 소티스가 역모의 모함을 받아 쫓기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소티스는 전형적인 주인공 캐릭터이다. 당차고, 착하고, 정의로운 마법소녀. 왕녀의 혈통을 타고나서 고귀한 캐릭터. 왕녀로서 아아루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어서 모험을 떠날 사람들이 위험해질 때마다 특별하게 강한 힘으로 그들을 구해내고 만다. 아아루의 개의 부족 악의 중심인마아트족이 흑주술을 통해 오염시킨 정령들을 마주할 때에도 그들을 무서워하기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치유하려 노력한다. 

    

우리는 마음 구석에서 순수함을 꿈꿔도, 순수함이 세상에서는 약할 수밖에 없다는 알고 있기 때문에 순수한 것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소티스의 순수함에는 힘이 있다. 순수하게 아아루를 사랑하는 마음, 모든 존재가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진실된 마음은 소티스의 왕녀로서의 운명과 결합하여악함 개입한 문제를 해결할 있는 힘을 만든다.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적인 주인공 서사가 인기를 끄는 와중, 순수한 사명의식과 강인한 마음으로 괜히 일을 꼬는 없이 해결해버리는 소티스라는 캐릭터는 어쩐지 통쾌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마주할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런 소티스의 한결같은 캐릭터가 요즘은 조금씩 변주되고 있다. (스포주의) 소티스가 한계를 맞닥뜨릴 그의 전생인네이트 소티스의 몸을 빌려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소티스가 네이트로 변신하는 장면들은 드라마로 치면 아마 동시간 최고 시청률을 찍을 수도 있을 만큼 강렬하고 극적이다. 그래서인지 웹툰에서도 항상 마지막 컷에 나오는 같다. 독자들은 그저 궁금해 미칠 수밖에 

            

한없이 순수하고 맑은 소티스 옆에는 이시스가 있다. 이시스는 쌍둥이 동생 소티스 대신 왕위에 오른 아아루의 지도자이다. 소티스와는 다르게 이시스는 조용하고, 속을 없는 캐릭터이다. 처음에는 신비주의를 고수했지만, 최근에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시스의 강인한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시스는 소티스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소티스가 없으면 없지만, 소티스의 존재는 이시스를 죽음으로 이끌 뿐이다. 이시스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담담하고 비장하며, 그렇기 때문에 되려 이시스가 겉으로 보여주는 여유로운 모습 속에 감춰져 있는 슬픈 운명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나아가는 이시스를 보면 독자는 소티스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소티스보다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시스를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시스의 분량은 소티스에 비해 적은 분량으로 등장한다. 이때 이시스의 운명을 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호위 무사히뎁트와의 러브라인이다. 이시스에게 히뎁트는 자신을 어린시절부터 지켜온 소중한 사람이자, 운명에서 벗어날 없는 자신이 유일하게, 온전히 자신만의 의지로 선택한 사람이다. 히뎁트와 이시스 모두 인지하고 있는, 이시스의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비극이 둘의 관계를 아프게 만들지만 둘은 그래도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다. 이시스는 자신의 죽음을 걸고 푸르름을 되찾은 아아루에서 살아갈 히뎁트의 모습을 꿈꾸며, 히뎁트는 이시스가 꿈을 이룰 있도록 항상 옆에서 그를 돌봐 준다.  

              

                                                

           

 

소티스의 사랑은 이렇게 절절한 이시스의 사랑과는 결이 조금은 다르다. 소티스가 사랑하는카라크라는 캐릭터는 많은 학원물 남주가 그렇듯이 틱틱거리면서 소티스에게 접근한다. 싸우다가 정드는 필연적인걸까? 카라크가 소티스를 좋아하게 거라는건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되어있던 것일 지도 모른다. 둘은 모험을 겪으면서 급격하게 가까워지게 되는데, 작정하고 슬픈 이시스와 히뎁트의 사랑과는 달리 둘은 독자들의 설렘지수를 급격하게 상승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달꽃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설렘 씬들(주로 키스신) 어찌보면 뻔한 구도인데 뻔한 알면서도 그냥 설렌다. 

 

 카라크라는 캐릭터 자체에도 소티스의 전생과 마아트족의 과거에 관련된 많은 사연이 있지만 (스포), 카라크에게는 유독미인’ ‘아름다운이라는 외모에 관한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그만큼 카라크는 예쁘다. 예쁘고 꾸며져있는 남자주인공은 푸른사막 아아루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여주인공은 외모가 아닌 행동에 대한 수식어가 붙고, 남주인공에게는 외모에 관한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뿐만 아니라 사건을 이끌어가는 캐릭터가 대부분 여성이며, 여주인공이 위험에 빠진 남주인공을능력으로 구해주는 , 기존의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관계를 아주 자연스럽게 속에서 드러내 주곤 한다. 

 이런 면은 소티스나 카라크의 관계 뿐만 아니라 최근에 자주 나오는 캐릭터인자냑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자냑은 마아트 족의 지주로서, 피에 미친 순수한 악을 상징하는 캐릭터이다. 심심하면 죽이고, 거슬리면 베어버리고, 왕녀인 소티스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확실한 악이다. 그럼에도 자냑이 어딘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가 악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자냑은 77화에서 소티스를 때려눕힌 것에 분노하는 타히르 (소티스를 짝사랑하는 의술사)에게 키스한다. 사랑은 부질없는 것이라 말함과 동시에 타히르에게 키스하는 자냑의 모습은 그야말로 욕망과 본능적 감각에 충실한 그의 모습을 드러낸다. 자냑의 기습키스에 당황하여 뒤로 물러서는 타히르의 모습은 그간 미디어에서 되풀이되어왔던 여성 캐릭터와 남성 캐릭터의 위계를 보란듯이 비튼다. 차후 행보가 기대되는 인물이다.

 

밖에도 아아루에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다. 방금 언급한 타히르, 퉁퉁이, 누르, 카나스를 포함한 아아루의 귀족들과 소티스의 모험 도중에 나오는 초록 날개 회원들과 정령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아아루의 세계관을 완성시킨다. 호흡으로 지켜봐야 하는 판타지 대서사가 인기가 없어지는 요즘 웹툰 시장에서 푸른 사막 아아루는 정통 판타지의 맥을 계승하면서,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여성서사를 도입해 신선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볼거리를 함께 보여준다. 푸른 사막 아아루 소티스와 이시스는, 어렸을 때의 즐겨봤던 마법소녀가 성장한 나와 같이 함께 걸음 나아가는 기분을 들게 한다. 다만 아쉬운 있다면 작품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글을 보고 아아루의 독자가 한명이라도 생긴다면 그걸로 충분할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지금 당장 네이버 수요 웹툰을 클릭해 <푸른 사막 아아루> 열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PEEP PICK


콩브레과자점 -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 _ 이창래

헨리 박은 어디의 이름인가? 미국인이지만 그를 완전히 미국인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Julia를 ‘줄-야’로 정확히 발음하는 그의 언어는 어디의 것인가?

혼란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어디에 속할 것인가’는 역사 속의 질문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나의 것에 나를 집어넣을 필요가 사라지고 있다. 이제 밀려온 질문은,

무엇이 내게 속할 것인가.




마노

PRS Custom 24-08


 기타 여행의 끝! (물론 순도 100% 본인 기준) PRS Guitars의 창립자이자 CEO이자 기타 제작자인 폴 리드 스미스가 1980년대 초부터 연구를 거듭하여 만들어낸 혁신적인 결과물인 408 픽업 시스템을, 1985년 처음 공개된 이래 현재 진행형으로 전설적인 명기 Custom 24에 적용하여 만들어진 지구 최강의 기타! (역시 순도 100% 본인 기준) ‘악기 하나 정도 배워보자’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 정도는 질러줘야 하지 않나. (※ 아닙니다.)



 … 농담입니다. 하지만! 추천은 진심입니다. ‘여기에서 기타를 추천해도 괜찮을까?’ 싶은 걱정이 앞서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나만이 추천할 수 있는 무언가(아마도)’를 뽑자면 이것 말고는 없다는 생각에 선정했습니다. PRS Guitars의 Custom 24-08은 2016년에 한정판으로 첫 선을 보였으며, 2018년부터 정식으로 출시되기 시작한 일렉트릭 기타 모델입니다. ‘4개 픽업, 8가지 소리 조합’이라는 뜻을 가진 408 픽업 시스템의 이름에 걸맞게 상당히 다양한 소리를 내주는 악기입니다. 특히 펜더와 깁슨의 장점을 합쳐놓은 듯한 PRS 특유의 하프 톤을 4종류나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Custom 24-08의 최고 장점입니다. 다만 존 써나 탐 앤더슨과 같은, 소위 ‘세션 기타’처럼 일렉트릭 기타에서 기대되는 모든 소리를 85% 정도의 유사도로 재현해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악기 자체의 개성이 상당히 강하면서도 그 범주 안에서 상당한 바리에이션을 확보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비유하자면……. 50가지 종류의 핑크를 섬세하게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 같은?

 저는 2004년 서태지 7집 《Issue》에 거하게 덕통사고를 당하고서, 그가 레코딩 영상에서 사용하던 검붉은색 PRS Custom 24에 반한 것을 계기로 기타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맘에 든다 싶은 뮤지션들이 죄다 PRS 유저인 것을 보면서 ‘나도 저 기타를 사용하면 저 소리가 날 거야!’ 하는 근거 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살다가 결국은 밥을 굶어가며 모은 돈으로 Custom 24를 지르고야 말았습니다. 그 이후 5년째 Custom 24를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진짜 좋은데 뭔가 내 취향과 2% 정도 어긋나는 느낌’이 있었는데, 작년 여름에 2년간의 군대월급(+ α)과 등가 교환하여 이 악기를 들이고 나서 그 느낌이 말끔하게 해소되었습니다. 이후 이 악기는 제 메인 기타로 정착했습니다.

 레코딩이면 레코딩! 라이브면 라이브! 최고의 연주감과 안정성! 클래식, 재즈, 블루스, 펑크, 록, 메탈, 앰비언트 등 다양한 장르에 대응할 수 있으면서도 본인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확립할 수 있는 악기를 찾고 있는 연주자에게 PRS Custom 24-08을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무엇보다…….  너무 예쁘지 않나요?


Steven Wilson의 《Insurgentes》

 동시대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 주자인 스티븐 윌슨의 첫 번째 솔로 정규 음반입니다. 2008년에 발매된 음반을 뭐하러 이제야 추천하냐 싶겠지만, 아무리 록의 불모지임을 고려해도 유독 한국에서 인지도가 낮은 스티븐 윌슨을 꼭 소개하고 싶어서 선정했습니다.

 보통 ‘스티븐 윌슨’ 하면 2011년 이래 활동을 중단하고 있는 밴드인 ‘포큐파인 트리’를 떠올립니다. 스티븐 윌슨이 수많은 프로젝트를 이끌거나 참여했고, 현재는 솔로 활동에 집중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포큐파인 트리의 작사가 겸 작곡가 겸 프로듀서 겸 보컬리스트 겸 기타리스트 겸 키보디스트 겸…….’으로 소개되는 건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02년 ≪In Absentia≫에서 포큐파인 트리는 프로그레시브 록, 사이키델릭 팝, 얼터너티브 록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던 기존의 스타일에 오페스, 메슈가 등의 영향을 받은 메탈을 흡수한 음악을 선보여 평단과 청중 양쪽의 극찬을 받게 됩니다. 이후 ≪Deadwing≫(2005), ≪Fear of a Blank Planet≫(2007), ≪The Incident≫(2009)를 거치면서 포큐파인 트리의 음악은 점점 다크해지고 메탈릭한 색채가 강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포큐파인 트리 활동 중간에 발표된 음반 ≪Insurgentes≫는 상당히 재미있는 음반입니다. 흔히 명반으로 손꼽히는 ≪In Absentia≫가 아직 거칠고 레퍼런스가 되는 장르들이 완전히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못한 채로 뒤섞여 있는 느낌이라면, ≪Insurgentes≫는 포큐파인 트리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색채의 상당히 정제되고 응집된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렇다고 완료된 실험을 바탕으로 안주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티븐 윌슨은 프로그레시브 록과 사이키델릭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또 다른 주특기이지만 포큐파인 트리의 음악에는 제한적으로 도입되었던 앰비언트, 드론 및 소음 음악을 이 음반에서 적극적으로 실험합니다.

 개인적으로 ≪Insurgentes≫를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제 마음에 드는 소리들로 가득한 음반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타 소리가 그런데요. 만약 누군가가 ‘당신이 추구하는 기타 소리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고민 없이 이 음반을 들어보라고 할 겁니다. 각종 공간계 이펙터들을 축축하게 느껴질 정도로 묻혀서 알록달록하면서도 너저분한, 클린 톤과 크런치 톤의 중간 정도의 기타 소리는 정말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잔뜩 왜곡되어있는 거칠고 환각적인 느낌의 퍼즈틱한 기타 소리 또한 아주 매력적입니다. 싱글 커트 된 <Harmony Korine>에서 이 두 가지 기타 소리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잘 들을 수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그보다는 여섯 번째 트랙인 <Significant Other>를 꼭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때로는 아름답고 몽환적으로, 때로는 거칠고 폭발적으로 다가오는 스티븐 윌슨의 숨은 명반 《Insurgentes》, 너무 겁 먹지 말고 차분한 마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양장피

LUCKY TAPES-dressing






밴드뮤직의 쫄깃함과 시티팝의 힙함, 알앤비의 달콤함과 제이팝 특유의 감성을 사랑하는 당신을 위한 단 하나의 완벽한 앨범…!이라 말할 수 있다. 2018년 10월 발매한 일본 팝 밴드 LUCKY TAPES의 첫 정규앨범. 힙합까지















밤톨뿡:

-검정치마 <Thirsty> +  영화 <아메리칸 뷰티>


기다리고 기다리던 검정치마의 3집 파트 투가 발매되었습니다 !!!!!! 파트 원 <Team baby>가 ‘사랑’이야기였다면, <Thirsty>는 ‘사람’이야기라고 해요. 처음 쭉 들어보고 1집, 2집, 3집 파트 원의 액기스만 뽑아서 섞어놓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좋아요… 저는 다낭에서 이 앨범을 처음 재생했는데요, 해변을 걸으면서 9번 트랙 ‘하와이 검은 노래’를 들었는데 정말 잘 어울렸어요. 비행기가 뜨는 순간에는 12번 트랙 ‘피와 갈증’을 들었답니다.

2번 트랙의 제목인 ‘Lester burnham’은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남자주인공의 이름인데 처음에는 왜 뜬금없이 저 이름이 나오지? 싶었습니다. 근데 앨범 전체를 재생하며 가사를 읽다보니 ‘아…’하게 되더라구요.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아메리칸 뷰티>와 매우 닮아있어요. <아메리칸 뷰티>를 본 상태에서 <Thirsty>를 들으니, 영화와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감상이 더욱 풍성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참고로 2번트랙은 저의 최애 트랙이기도 해요 >.<


-마카롱_메종 드 조에 (maison de zoe)

한국에서 라뒤레 마카롱을 먹을 수 없어 슬퍼하던 저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습니다. 마카롱은? 메종 드 조에 !!!  



레몬밤

레이디스 나잇(Rough Night, 2017)


주인공 제스의 처녀 파티(?)를 위해 마이애미로 놀러간 다섯 명의 친구들이 겪는 길고 긴 하룻밤 이야기. 스칼렛 요한슨의 B급 코미디 도전기. 일단 어이가 없다. 어이 없는데 웃기다. 한국어로 번역 된 제목보다는 원작이 더 잘 어울린다. PC함이라고는 개나 줘버린 미국식 코미디가 궁금하다면 추천! 대학시절 친구였던 주인공들의 다양한 삶과 끈끈한 우정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필자의 최애 캐릭터는 호주에서 온 피파. 가장 웃긴 장면은 영화 속 스페인어.


꼼 다비뛰드(Comme d’habitude)

꼼 다비뛰드의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직 인생빵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빵을 위해 한 시간 이상 웨이팅 할 자신이 있는 자만이 꼼 다비뛰드의 값진 빵들을 먹을 수 있으리라. 잘 만든 빠작한 바게뜨에 신선한 재료들이 함께하는 샌드위치, 퐁신하면서도 버터의 풍미가 살아있는 마들렌, 신들린 맛 밸런스를 자랑하는 타르트 류까지. 이것들을 위해 전국에서 온 빵순이들이 오픈 시간 11시 전부터 길게 늘어선 줄을 형성하는 집. 줄 설 만한 가치가 있는 집.

1시간 줄 서서 산 빵을 10분만에 먹어버리는 데에서 오는 현타 따위 끄떡 없다. 갓 나온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오는 희열과 환희 때문에 또 다시 1시간 거리의 빵집에 아침부터 찾아가게 될테니. 한 번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빵에 몇 만원을 지르고 나오게 되는 기적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필자의 추천 메뉴는 무화과 프로슈토 샌드위치, 피스타치오 타르트(계절 한정), 쑥 캬라멜 마들렌, 휘낭시에 살레.




오버더펜스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 2018)



송곳니(2009), 더 랍스터(2015), 킬링디어(2017)라는 기괴하고 자기 색깔 확실한 필모그래피의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신작. 전작 킬링디어의 작위적인 느낌에 다소 어색함을 느꼈던 관객들에게 다시한번 신뢰를 품게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들부터 서사까지 온전히 여성들의 영화인데, 미묘하면서 동시에 기괴한 감독의 장기가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다. 레이첼 와이즈, 엠마 스톤, 올리비아 콜먼 누구하나 뒤지지 않는 배우들의 앙상블은 황홀한 수준이다. 반드시 극장에서 한 큐에 보시길!

nutsGangs



1) Travis Scott _ <Astroworld>


Travis Scott의 <Astroworld>는 작년 한 해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이다. 지금까지도 첫 트랙인 ‘Stargazing’이 시작되면 소름이 돋는다. 정말 다양한 매력의 사운드들이 가득한 이 앨범은 Travis Scott이라는 마에스트로의 지휘로 하나의 정체성을 갖는다. Frank Ocean, James Blake, Stevie Wonder, Drake, Swae Lee, Kid Cudi, The Weeknd, Pharrell Williams, 21savage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17명의 개성 강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하고 있음에도 Travis Scott이 만든 거대한 세계를 벗어나지 않고 탄탄히 조화를 이룬다. 또한. 휴스턴에 있었던 놀이공원의 이름에서 가져온 타이틀답게, 이 앨범은 하나의 롤러코스터로 기획된 듯하다. 트랙과 트랙 사이의 연결이 무척 매끄러워 통일된 무드를 자연스럽게 형성할 뿐만 아니라 한 트랙 내에서도 비트나 사운드의 색채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바뀌며 기분 좋은 쾌감을 자아낸다. 화려한 피쳐링진을 일부러 표기하지 않은 것도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 어떤 아티스트가, 어느 타이밍에 등장할지 예측 못하게 할 의도였다고 한다.

“Who Put This Shit Together? I’m the Glue!”

이 가사는 Travis Scott이라는 뛰어난 아티스트의 자신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야심은 (내 기준) 뛰어난 걸작을 탄생시켰다. 난 이 앨범의 모든 트랙을 빠짐없이 사랑한다.

P.S) Travis Scott은 그래미에서 또 한 번 외면당했고 방송에서도 그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작이 후보 지명조차 받지 못하자 절치부심하여 만들었다는 이 앨범. 그가 너무 안쓰럽지만, 지금의 심정으로 <Astroworld>를 뛰어넘는 더 대단한 음반을 만든다면?!




2) The Athletic


 미국 프로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추천하고픈 온라인 기반 스포츠 저널리즘 미디어. 이들은 단순히 누가, 몇 분에 득점하여, 어느 팀이 이겼는지만을 늘어놓는 수준 낮은 기사를 거부한다. The Athletic의 목표는 전술에 대한 정밀한 분석, 긴 분량, 독창적인 주제 선정을 포함하는 스포츠 분야의 진정한 저널리즘 구현이다. NHL, NFL, NBA, MLB  각 프로리그에 대한 전국 규모 보도뿐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의 각 지역, 전 구단에 담당 전문 기자들을 보유하여 수준 높은 기사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대학 리그(미식축구와 농구), 판타지 스포츠, MLS까지 커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EPL, La Liga 등 해외 축구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특히 여러 대형 매체 및 지역 신문의 신뢰받는 전문가들을 전국에서 빼앗아 오다시피 하는 공격적인 영역 구축으로 현지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그만큼 필자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신의 관심 리그, 구단을 설정하면 관련 기사들을 편집된 피드에 배열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실시간으로 모든 경기의 스코어 박스를 제공한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구독료는 일 년에 5만 원 정도이며, 한 달간 무료체험도 가능하다. 독자적인 어플도 보유하고 있어 핸드폰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점은 콘텐츠 내에 어떠한 광고도 없다는 사실이다. 오직 깊이 있고 수준 높은 기사만 깔끔한 디자인으로 정돈하여 제공한다. 미국 프로스포츠의 진정한 팬에게 The Athletic은 필수다.

Tip. 무료체험 기간 마지막 날에 구독 취소를 하려고 하면 한 달의 기회를 더 준다!



시몬느



넷플릭스에서 시대물 찾다가 발견한 개꿀잼 시간여행 이야기.. 타임머신 타고 도망간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서 주인공들이 미국의 과거로 돌아가 세계를 좌우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마주하는데 미국 역사 하나도 몰라도 재밌다. 알면 배로 재밌을듯. 프로그래머, 역사학자, 군인이 한 팀이 되어서 시간 여행을 하는데, 얘네들이 과거로 갈 때마다 유명한 인물을 만났을 때 호들갑 떠는게 너무 재밌다. 마치 내가 옛날 세종대왕을 본 느낌?? 그리고 역시나 ‘거대한 음모’ 가 존재하는데 그걸 파헤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시간여행물 특성상 시간대가 꼬이면서 재밌는 사건들이 발생하는데 그것도 재밌다. 실수로 바뀐 과거의 사소한 사건이 나중에 엄청난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등..

또 캐릭터 하나하나의 개성이 살아있다. 주인공 3인방 뿐만 아니라 악당과 조력자까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무엇보다 주체적 여성 주인공-빌런이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것도 매력포인트.

지금 마지막화를 아껴보고 있는 중인데 이제 타임리스와 작별을 해야한다는 게 너무 슬퍼지고.. 시즌 3가 왜 캔슬됐는지 모르겠고… 그렇다. 이렇게까지 감정이입하지 않는데 뭔가 벌써 캐릭터와 이야기..고철덩어리같은 타임머신에게도 정이 들었나보다. 시즌은 2까지 있다. (시즌3 취소 말이 됩니까ㅠㅠㅠ엉엉)

































시나인

연극 슬립노모어(Sleep No More)


연극 슬립노모어를 추천 하면서도 참 아쉬운 마음이다. 현재로서는 미국 뉴욕과 중국 상해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추천하는 이유는 필자가 기묘하고 모호한 존재로 이 공연에 참여하게 되었던 경험에 있다.

이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Macbeth)>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강렬하고 자극적인 장면이 많아 수위가 높은 편이다.(입장 전 신분증 검사를 하고 있다.) 연극의 무대로 사용되는 5층정도의 호텔 안에 배치된 모든 것(가구부터 작은 소품까지)은 전부 만져볼 수도 앉아볼 수도 심하게는 누워볼 수도 있다. 언제나 무대 밖 존재인 공연의 관람객과는 다른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유로운 상태로 호텔 곳곳을 샅샅이 살펴보게 된다. 다만 사진 속 가면을 쓰고 말을 걸수도 대답을 할수도 없다는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다 가면을 쓰지 않은 배우를 갑자기 만나게 되면 그의 퍼포먼스를 아주 가까이서 보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 무언극으로 진행되며 그나마 하는 대화도 음성을 내는 수준이다. 연극이 꽤나 진행되기 이전에는 자신이 만나게 된 배우가 주연일지 조연일지는 알 수 없다.(굳이 알고자 한다면 보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알아 볼 수는 있지만.) 운이 좋다면 그들의 퍼포먼스에 도움을 줄 수도, 속삭임을 들어볼 수도 있다.(필자는 한 배우의 도움으로 하이라이트 부분을 수많은 인파를 지나 맨앞에서 볼 수 있었다!)

‘공연이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보게 되는 공간, 공연의 순서, 보게 되는 배우, 장면 모두 그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점이 정말 매력적이다. 하지만 또 이 특징 때문에 어렵게 혹은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떠먹여주는 식의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뛰어다니며(말 그대로 달린다.) 직접 겪어내야  한다. 만약 동행이 있다면 공연 이후 무엇을 보았는지 대화한다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공유하는 것들보다 서로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더 이상의 정보 전달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만하려 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라고 장담한다. 공연의 많은 부분에 참여하지만 또 이방인이 되는 이상하고 독특하고 강렬한 경험을 주는 연극. 몇번을 보아도 똑같지 않을 연극. 혹시 뉴욕이나 상해 여행을 떠나신다면 꼭 보시길 추천한다.

-필자의 한줄평 : 이렇게나 불친절하고 친절하다니!











  1. 마영신. <아티스트>


순수문학을 고집하다 부모와 의절하고 번번한 작품 한 번 내지 못해 무농약 현미로 끼니를 때우는 소설가 신득녕(44세. 미혼.).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 허장성세 부리며 강의를 하지만 실상 머릿속엔 여자랑 섹스할 생각밖에 없는 화가 곽경수(46세. 이혼.). 개나 소나 싱어송라이터가 된다고 욕하지만 실제로 자기 안엔 열등감밖에 없는 뮤지션 천종섭(42세. 미혼.).

나이 마흔이 넘은 셋은 곽경수의 작업실에 모인다. 어쭙잖은 안주와 함께 종이컵에 술을 따라 마시며 시답지도 않은 얘기를 하다 어느 누가 여자를 몇 명 부르면 찌질하게 수컷 기싸움을 한다. 예술. 그 단어 누가 고귀하다 했는가. 마영신 작가가 실제로 겪어본 진상들의 엑기스만을 모아놓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극도의 리얼리티를 자랑하는 <아티스트>는 대한민국의 예술계의 비릿한 면모를 낱낱이 파헤친다.  



2. 김인태. <식스틴>




- 나는 차가운 당신에게 무척 의지했고, 그런 당신은 나를 야멸차게 배신했다. 기억이 희미해지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이제는 다 극복했다 싶었을 때, 나와 함께했던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린 당신이 순진한 모습으로 내 앞에 문득 나타났다. 내가 느꼈던 고통, 당신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복수심이 끓어오른다. 하지만 도대체 왜, 당신은 그래야만 했는가. 당신을 이해할 수 없는 나를 견딜 수 없다. 이해하고 싶다. 그래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아니, 이건 아직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증거일까. 어지러운 마음을 수습할 수 없다.

-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나는 내가 사랑하지 않는 남자의 아이를 낳은 싱글 맘이 됐다. 견딜 수 없는 외상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렸고 사람들은 내게 오해의 딱지를 붙여댄다. 상관없다. 내 딸이 이런 일을 모두 잊고 잘 자라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우뚝 서 이 세상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사랑이 문득 의무로 느껴질 때  무한한 고독감을 절감한다.

<식스틴>은 서른 근처 남녀의, 그러니까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당신이 그 나이를 겪어봤다면, 혹은 그에 가까워진다고 느낀다면 알 것이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어설프게 배운 예의 아래 꿈틀거리는 감정의 선들을 이다지도 잘 그려낸 웹툰은 <식스틴>외에 아직 본 적 없다. 5화 정도만 꾹 참고 보시길. 확신하건대, 당신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함께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을 것이다.


뜸부기

코코(Coco, 2017)

한국에 설날이 있다면 멕시코에는 'Dia de Muerto', 죽음의 날이 있어요. 1년에 한번 조상을 기리는 날이에요. 제단에 살아생전 사진을 놓고 기립니다.

신발 공장 가업을 4대째 잇고 있는 미구엘의 가족은 음악이라곤 질색팔색하는데요. 음악을 하겠다며 집을 내다버린 고조할아버지 때문에 그렇습니다.

소년 미구엘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가가 되고자 저승의 고조할아버지를 찾아나섭니다.

저는 설날 TV 특선 영화가 눈에 차지 않아서 IPTV를 결제했어요. 그런데 어머니, 할머니가 함께 보시고는 동네에 소문이 났어요. 저한테 그 만화영화 제목이 뭐냐고 연락이 오더라구요.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정,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가족의 우애라는 주제는 만국공통인가봐요.

애니메이션이 갖는 장벽을 깨고 전 세대 전 문화가 고개를 끄덕일만 해요.

영화 전반에 가득한 멕시코적 모티프 또한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왕수박


애플뮤직



평생 멜론 외길만 걸어온 나에게 최근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준 음악 플랫폼이다. VPN 우회 등으로 스포티파이를 이미 사용하고 있던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슨 애플뮤직이냐, 하겠지만. 애플뮤직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플레이리스트에 있다. 원하는 장르, 무드, 상황에 따른 추천곡 리스트가 엄청나게 많은 데다, 매주 업데이트까지 된다! 데이터베이스 자체는 멜론에 비해 많이 부족한 편이지만, 이 플레이 리스트를 활용하면 언제나 내가 원하는 스타일 혹은 느낌의 음악을 랜덤으로 추천받을 수 있다. 심지어는 내가 자주 듣던 음악을 기반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멜론 차트에 염증을 느꼈거나, 숨겨진 노래들을 찾는 재미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한 번 쯤 꼭 이용해 볼만 하다. 심지어 첫 3개월은 무료. 물론 필자는 유료 회원으로 남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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