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시나요? 

히가시노 게이고 읽기의 기록

아게추

 

 

* 아주 주관적인 독해와 감상에 기반하고 있는 글임을 밝힙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주요 작품들의 줄거리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현저히 독서량이 줄긴 했으나 한때 하루에 권씩 책을 읽기도 했던 나의 독서 편력을 기억나는 시점부터 기술하는 것은 너무나 지루한 일이겠지만, 그중에서 개의 터닝 포인트를 발견할 있다면 아마 가장 최초의 것은 일본 추리소설과의 만남일 것이다. (각주 1: 여담이지만 개인적인 회고를 위해 첨언하자면 번째는 사르트르의 『구토』이다. 번째는 배수아의 『북쪽거실』이었다.)

셜록 홈즈로 생애 추리소설을 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기점으로 일본 추리소설의 열렬한 독자가 되었다. 3 위의 언니와 같은 책을 읽었으니 당시 나이(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시절에 일본 추리소설을 가장 열심히 읽었다)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을 텐데, 많은 사춘기 아이들이 그렇듯 그때는 자신이 굴었으므로 다소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을 일종의 훈장처럼 여기기도 했던 같다.

나는 글의 이해도와는 관계없이 글자를 읽는 속도 하나만큼은 빠른 편이었고, 게다가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모조리 읽어야 성에 찼기 때문에 좋아하는 몇몇 추리소설 작가들의 작품들을 섭렵하듯이 읽어댔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에서 시작하여 이사카 고타로, 오츠 이치나 아야츠지 유키토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 아주 조악하고 주관적인 분류이긴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과학적 전문성을 소재로 삼아 이론적으로 치밀한 추리소설을 쓴다면 미야베 미유키는 조금 인간적인 면모를 중시하는 추리소설을 쓴다는 대립적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미지는 내가 이후 접하는 작품들을 분류하는 스펙트럼의 양극을 이루었다.

 

 

2. 내가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들의 성격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블랙 코미디: 『흑소소설』, 『독소소설』, 『괴소소설』

갈릴레오 시리즈: 『탐정 갈릴레오』, 『용의자 X 헌신』, 『예지몽』, 『갈릴레오의 고뇌』, 『성녀의 구제』, 『한여름의 방정식』

가가 형사 시리즈: 졸업』, 『잠자는 숲』, 『둘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그를 죽였다』, 『거짓말, 개만 더』, 『악의』, 『붉은 손가락』

과학/의학적 소재에 상상력을 더한 작품군: 『레몬』, 『숙명』, 『변신』, 『플래티나 데이터』(절판된 2018 『미등록자』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라플라스의 마녀』

사회 문제를 소재로 삼은 작품군: 『방황하는 칼날』, 『붉은 손가락』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작품군: 『백야행』, 『환야』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대표작인 『용의자 X 헌신』이 처음 국내에 발행된 것은 2005년이지만, 내가 처음 접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 경향 속에서도 예외적인 블랙 코미디 『흑소소설』(2007)이었다. 뒷맛이 씁쓸한 웃음을 주는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작품들인 『흑소소설』, 『독소소설』, 『괴소소설』을 접한 뒤에야 그의 데뷔작인 『방과후』를 읽었는데, 전자와 후자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 이게 같은 작가가 거라고? 하며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아래는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가지 지점들에 대한 코멘트이다.

 

몇몇 추리소설 작가들은 소설 속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인물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전에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같은 것을 삽입하여 추리에 필요한 요소는 모두 갖추어졌으니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보라는 요청을 하기도 하며,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이런 실험을 행한 적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품 속에서 내세우는탐정역할의 인물로는 대표적으로갈릴레오유가와 마나부와가가 형사가가 교이치로가 있는데(아가사 크리스티에게 포와로, 코난 도일에게 홈즈 같은 존재라고 있다), 가가 형사 시리즈의 몇몇 작품들(『둘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그를 죽였다』 ) 사건의 진상과 범인을 밝히지 않고 끝난다. 추리를 독자의 몫으로 돌린 것이다. 작품 뒤에 붙어 있는 부록에도 힌트가 법한 내용만 아리송하게 쓰여 있을 뿐이다. 

사실 나는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를 붙였다기보다 매력적인탐정인물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라 이런 류의 추리소설에서는 결국 범인을 알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사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추리를 제시하고 있어 참고할 있을 테지만, 사실에 생각이 미쳐 책을 검색해보았을 때는 이미 책을 읽은 시간이 너무 지나 등장인물들이 누가 누군지 분간할 없게 후였다.

 

추리소설에서 명석하고 이지적인탐정 다정한 성품에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파트너의 존재는 셜록 홈즈와 왓슨 이래로 거의 필수적인 요소가 듯하다. 갈릴레오 시리즈에서 유가와와 쿠사나기, 다른 일본의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에서 히무라와 아리스가와( 작가는 자신의 필명과 같은 이름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관계가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 역시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작품들에서 유미노스케와 헤이시로라는 인물들을 통해 관계성을 구현하고 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고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에서는 과학 분야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갈릴레오 시리즈, 특히 『예지몽』 같은 작품이 그러했고, 『변신』에서는 사고 때문에 이식을 받은 주인공이 본래의 자신을 잃어가고 이식받은 주인의 사고와 성격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편 『플래티나 데이터』는 모든 국민의 DNA 국가가 관리하게 사회에서 정말로 DNA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의 문제를 다룬다. 

이렇게 과학적 소재를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이것이 초래하는 사회적 결과에 초점을 맞춰 히가시노 게이고는 현대의 체계의 한계에 대한 통찰을 작품에 담아내기도 했다. 자신의 딸을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들을 대신 심판하려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면서 법이 범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복수는 정당화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방황하는 칼날』이 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다수는 영화나 연극 등으로 제작되어, 원작과 이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표적으로는 『용의자 X 헌신』이 일본에서 영화로, 한국에서 동명의 뮤지컬과 <용의자 X>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된 있다. 또한 『유성의 인연』이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는데, 드라마에서는 묘한 개그 코드와 빠른 사건 전개로 원작보다 뛰어난 편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플래티나 데이터』는 일본에서 영화화되었는데 원작과는 인물 설정을 조금 바꾸고 원작의 복잡한 인물 관계를 간결하게 만들었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갑작스러운 교훈 전달은 어색하지만 감안할 만하다. 사실 좋아하는 영화라 봤다. 

『방황하는 칼날』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영화로 제작되었으나 책만 읽었고,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라플라스의 마녀』도 영화화되어 2018 일본에서 개봉했다. 한국에서도 개봉한다는 소식이 작년부터 있어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백야행』은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영화화되었는데, 한국판 <백야행> 손예진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했다. 

가장 최근에 제작된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영화는 아마 <매스커레이드 호텔> 것이다. 지금은 해체한 아이돌 SMAP 멤버였으며 배우로도 활발히 활동해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으로, 2019 1 18 일본에서 개봉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읽지 않게 되었는데, 한때 한국에 번역된 작품들에 약속이라도 것처럼 불륜을 저지르는 유부남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언제쯤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권의 책에 연속해서 그런 소재가 등장하자 그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과는 심정적으로 작별을 하고 말았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으로 책을 고르는 취향이 바뀌기 시작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3. 그런데 한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과 거리를 두고 있었던 나에게도 그의 유명세를 분명히 느끼게 작품이 있었다. 바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이전에도 추리 소설 층에게서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던 히가시노 게이고를 대중적인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있을 것이다. 작품은 2012 처음 출간된 이후 국내의 각종 서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일본에서는 영화, 한국에서는 연극으로 만들어져 인기를 누렸다. 작품을 계기로 국내 번역 문학 시장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 불패 신화가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를 보다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교보문고, 알라딘, 인터파크 이렇게 인터넷 서점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점하고 있는 위치를 살펴보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2019 1 23 기준 1주일간 가장 많이 판매된 ) 4위에 올라 있다. 6위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인 『마력의 태동』이다.

 

 

알라딘 스테디셀러 15위에 올라 있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인터파크에서는 2018 베스트셀러 10위에 올라 있었다. 내친김에 2017 베스트셀러를 찾아보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순위가 조금 높아 7위였다. 2012년에 처음 책이 출간된 것을 감안하면 정말 꾸준한 인기라고 있다.

 

특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인기는 한국에서 이례적인 것으로, 일본에서는 이정도의 인지도는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일본 아마존 홈페이지에서 문학 도서 분야의 랭킹을 살펴보면,

 

순위권에 올라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작품은 『매스커레이드 호텔』이다. 이는 최근 일본에서의 영화 개봉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40위까지 살펴보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랭킹은 2019 1 23 9시경을 기준으로 것이며, 아마존에 따르면 시간마다 갱신된다고 한다).

 

이쯤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지 않은 독자(바로 나처럼)라면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대체 어떤 책이길래? 그래서 글의 초기 목적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한국 독자들에게 이렇게나 어필할 있었던 이유를 나름대로 고찰해보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아주 열심히 읽었다가 그러지 않게 후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유명세를 탔기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지 않았었고, 도대체 어떻길래 이렇게 인기가 있나 하는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 동안이나 읽지 않고 버텼던(이쯤 되면 스스로에게 이상한 고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나로서는 작품이 그토록 유명해진 특별한 이유를 짐작해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작품성이 부족하다거나 재미없다는 의미의 평가는 결코 아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는

1)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20 전과 현재의 시간이 만난다는 비현실적인 요소와

2) 20 전의 시점에서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 상담을 보내는 사람들과 20 폐점한 나미야 잡화점에서 고민 상담에 답장을 쓰는 아이들이 자란 보호 시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가 밝혀지는 과정이 기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적절히 섞여 있어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있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경향에 비추어 보았을 , 본격 추리소설과는 조금 거리를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있으면서 나름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으로 읽혔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앞에서 언급한 분류 항목 중에서 어떤 것에도 만족스럽게 들어맞지 않는다. 굳이 비교할 만한 작품을 찾자면 『유성의 인연』과 비슷한 느낌이라고도 있겠으나 『유성의 인연』에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등장하지 않으며, 『유성의 인연』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보다 조금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유는 아닌 듯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체 작품 경향 속에서도 꽤나 예외적인 작품인 셈인데, 바로 이런 사실이 한국에서의 성공 요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머리를 굴려서 알리바이와 트릭을 검토하지는 않으면서 적당히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낄 있고, 마지막에는 따뜻한 감동이 전해지는 .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 나미야 씨는 익명의 고민 투고에 진지하게 고민한 따뜻한 답장을 주는 인물이다. 그의 성품과 업은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쇼타, 아쓰야, 고헤이라는 인물들에게로 이어진다. 이들은 일종의 강도 짓을 20 폐업한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드는데, 나미야 잡화점에서 몸을 숨기는 밤의 시간 동안 과거로부터 고민 상담을 받아 그에 답장을 쓰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란 고아원을 누군가가 사들여 러브호텔을 세우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사업가의 집에 숨어들어가 강도 짓을 상태이고, 답장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고민 상담을 상대가 바로 자신들이 해코지를 사람이며 사람은 러브호텔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비리와 방만 운영으로부터 구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식으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모든 이야기가 결국에는 연결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방식은 악의나 분노, 증오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애정과 타인을 향한 온기 어린 마음 씀씀이이다. 이러한 요소가 단발적으로 반짝 등장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마치 유산처럼,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다는 점은 상당히 희망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나미야 같은 인물이니까 이런 일을 있었던 거야, 아니라 누구나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까닭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가진 이러한 분위기는 많은 추리소설들이 범인이 밝혀진 씁쓸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는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한국 사람들이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나 류의 도식적인 결론이나 국민성을 운운하는 결론을 내고 싶지 않아, 한국 번역 문학 시장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성공을 한국 독자들의 특성과 연결 짓는 식의 논의를 쓰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느꼈던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들의 경향을 정리하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특징은 어떤지를 살피는 선에서 글을 마무리하여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나름의 개론을 세울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한국 번역 문학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인기를 누리는 역시 사실이므로, ‘가장 인간적인 증오나 분노가 아니라 애정, 연대, 보살핌 등의 요소에서 찾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힘이 얼마나 오랜 영향력을 가질지 기대해볼 일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시나요, 그의 작품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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