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ke this Waltz : 그 틈을 완전히 메울 수는 없겠지만 >

르네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원제는 <Take this Waltz>다. 4분의 3박자의 경쾌한 음악에 맞춰 두 사람이 원을 그리며 도는 춤인 왈츠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과 같은, 인생의 행복한 순간들을 응축시켜 표현하는 낭만적인 춤으로 여겨진다. 이 영화에서도 왈츠는 사랑에 대한 비유이다. 그런데 영화가 왈츠에의 비유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응축된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축 늘어진 권태의 시간이다. 영화 속에서 왈츠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충만한 순간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충만함을 조금씩 풍화시키는 시간의 흐름 혹은 반복되는 일상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의미가 겹쳐지면서 왈츠는 두 사람 사이 강렬한 감정들로 꽉 채워졌던 시간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흩어지고 끝내 권태의 시간에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Take this Waltz>는 이처럼 사랑의 시작이 곧 해피엔딩인 영화들이 보여주지 않는 사랑의 씁쓸한 이면, 열병 같은 사랑이 식고 난 후의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미 매력적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보고 싶을 만큼 좋아한 이유는 영화의 주제 자체보다도 주제를 다루는 방식 때문이었다. 영화는 분명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여러 상징적 장면들을 통해 사랑의 유효기간과 권태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결국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이란 무의미한 것인지, 사랑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에 대해 단정내리지 않는다. 단지 권태의 시간 앞에서 어쩔 줄 몰라 괴로워하는 인물들의 감정 상태와 그들이 주저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후회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 속 여러 비유적 장면들은 사랑에 관하여 미리 정해진 결론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랑이 변색되어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감정 상태를 세밀하게 그려내는 과정 자체를 통해 사랑의 한계에 대해 사유해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결론은 우리 각자가 내려야 할 것으로 열어둔 채 말이다. 따라서 이 글 역시 사랑은 어떤 것이라는 혹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필자의 주관적 믿음은 일단 차치해 두고, 영화의 주요 장면들이 묘사하는 감정들을 따라가는데 주안점을 두려 한다.

   이쯤에서 밝혀야 할 사실은, 영화 속에서 왈츠가 스토리 전개를 위한 핵심적 소재로 등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마고와 남편 루가 왈츠를 추는 장면이나, 마고와 대니얼(각 - 마고가 루와의 결혼생활에서 권태를 느끼던 중 호기심을 갖게 된 남자이다. 루이스버그 여행 중 마주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옆 자리에 앉게 되며, 알고 보니 마고의 앞집에 살고 있었다는 우연이 겹치면서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진다.)이 왈츠를 추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왈츠를 떠올리게 만드는 시퀀스는 영화 후반부에, 마고가 루에게 이별을 고하고 대니얼을 찾아가 대니얼의 스튜디오에서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 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레오나드 코헨의 ‘Take this Waltz’가 배경음악으로 나오면서, 카메라는 마치 왈츠를 추듯, 서로를 애무하는 마고와 대니얼을 둘러싸고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카메라가 한 바퀴 돌아 건물 기둥을 지나칠 때마다 마치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의 장면으로 전환된다. 초반의 장면들은 마고와 대니얼이 사랑을 나누는 나날들을 보여주지만, 카메라가 몇 바퀴 더 돌면서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마고와 대니얼의 몸동작은 점차 굼떠지고, 어느새 둘 다 옷을 걸치고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장면에 이르게 된다. 또 다음 턴에서는 마고와 대니얼이 각자 소파에 누워 책을 읽거나 쉬고 있는, 정적인 일상의 장면이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두 사람이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대신 TV를 보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각 - 비슷한 장면이 영화 전반부에서 마고와 루의 권태에 빠진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때 마침 음악이 끝나고 그에 맞춰 카메라 움직임도 멈춘다. 이 왈츠 장면은 6분 정도의 음악이 재생되는 짧은 시간 동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스파크가 튀던 날들이 어느새 모든 긴장이 사라진 푹 퍼진 일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빨리 감기로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과 ‘일상의 반복’,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권태’. 이런 주제를 다루거나 암시하는 장면은 왈츠 장면 외에도 영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고와 제리(각 - 마고의 시누이, 즉 루의 누나이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가 수영장 샤워실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은 아주 직접적으로 그러한 주제를 다룬다. 제리가 자신의 외적 상태에 대해 무관심해진 남편 이야기를 하며 한탄하자, 그 옆의 친구가 “가끔은 새로운 것에 혹해. 새것들은 반짝이니까.”라고 말한다. 반대편에서 샤워를 하고 있던 노년의 여자들 중 한 명이 대화에 끼어들어, ‘새것도 헌 것이 된다’고 말한다. 제리는 잠깐 생각에 빠지더니 “그러네요. 헌 것도 원래는 새 것이었죠.”라고 말한다. 그러자 카메라는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늙은 그녀들의 몸을 보여준다. 그녀들의 몸은 마고나 제리의 몸과 분명히 대조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의아한 점은 ‘새 것도 헌 것이 된다’고 말하는 그녀들이 우울하거나 허무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들은 새것이 헌 것으로 변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경험했고, 그녀들의 육체 역시 낡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들의 표정은 허무하고 씁쓸하기보다는 담담하다. 오히려 그녀들은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면서 자신들이 한 말을 가볍게 넘겨버린다. 그에 반해 마고와 제리는 ‘새것도 헌 것이 된다’는 그 말에 동조를 하면서도 그녀들의 담담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해한다. 지금 추고 있는 왈츠가 점점 느려지고 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마고와 제리는 불안하고 두렵고 이미 조금은 허무하다. 그런데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겪었을 저들은 허무해 하지 않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한 번도 상실을 겪지 않은 사람마냥 명랑한 걸까?

   새것도 언젠가는 헌 것이 된다는 주제는 영화의 또 다른 배경음악인 ‘Video Killed the Radio Star’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래 제목부터 이미 새것(비디오)이 오래된 것(라디오)을 대체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이 노래는 마고와 대니얼이 데이트의 마무리로 스크램블러를 타는 장면에서 삽입된다. 마고와 대니얼의 데이트 장면은 마고와 루 사이의 권태를 보여주는 장면 바로 다음에 나오기 때문에 그 대비가 더욱 두드러진다. 결혼기념일 5주년을 맞이한 마고와 루는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마고는 자신이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 루에게 서운함과 외로움을 느끼고는 왜 아무런 말이 없냐고 루에게 불평한다. 루는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습관처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마고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다음날 마고는 대니얼을 찾아가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마고의 표정은 그 전날과는 달리 설렘으로 가득하다.

 

 

   데이트의 마무리로 마고와 대니얼은 스크램블러(각 - 2명이 앉을 수 있는 놀이기구들 여럿이 중앙기둥을 중심으로 빠르게 도는 놀이기구)를 타러 가는데, 이때 스크램블러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동시에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재생된다. 끊임없이 바뀌는 어두운 조명 아래 빠르게 돌아가는 기구 안에서 마고와 대니얼은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고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다 마고는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며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듯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갑자기 음악이 멈추고 창백한 흰 색 조명이 켜지면서 스크램블러가 멈추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러고는 마고와 대니얼이 어색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스크램블러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꽤 오랫동안 담긴다. 음악이 갑자기 끊긴 후 정적 속에서의 어색한 분위기는 마고와 대니얼의 사랑마저 진부해져 버리는 왈츠 장면을 예고하는 것 같다.

 

 

   마고와 대니얼이 스크램블러를 타는 장면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이 퇴색되어가는 점진적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긴장과 설렘이 넘치던 순간과 그것들이 모두 사라진 순간 사이의 간극을 부각시킨다. 그 결과 사랑과 열정이 응축된 시간으로서의 왈츠가 끝난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 외로움, 불안과 같은 감정들이 전면에 드러난다. 그런데 왈츠 혹은 놀이기구가 끝나는 순간은 관계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순간이라기보다는, 두 사람의 결합이 느슨해지고 그사이의 간격이 드러날 때마다 어김없이 불쑥 덮쳐오는 순간들일 것이다. 그리고 마고에게는 그처럼 느슨해진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이 관계의 끝만큼이나 두렵고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점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도 사랑일까>는 마고가 루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거리감과, 그로 인해 마고의 불안과 외로움이 불어나는 과정을 영화 곳곳에서 차곡차곡 묘사하고 있다.

   하염없이 짓궂은 농담들을 주고받는 마고와 루는 죽이 잘 맞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마고는 루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고 – 더 정확히는 자신들의 관계가 정말 사랑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 불안해한다. (적어도 영화에서 비춰지는) 루는 그들 사이에 오가는 장난이 사랑의 확실한 징표라도 된다는 듯이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다. 루는 마고가 샤워할 때마다 몰래 찬물을 끼얹는 장난을 10년 후까지 계속하려 생각했을 만큼 마고와의 사랑에 대해 안정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마고는 루와 공유하는 장난스러운 일상들로는 메워지지 않는, 둘 사이의 간격을 종종 느끼고 불안해한다. 마고는 루가 닭 요리책을 쓰기 위해 등을 보이고 요리를 할 때마다 너무 쉽게 불안해져서, 자기를 봐 달라고 떼쓰는 아이처럼 루의 등에 매달리거나 화를 내버린다.  

 

   이 간격은 마고가 대니얼에게 흔들리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지치지 않고 마고의 뒤를 따라오고 마고의 사소한 행동들의 이유를 궁금해하는 대니얼과, 마고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려서 둘이 껴안을 때 마고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요즘 마고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루가 분명히 대비되기 때문에, 그 간격은 마고에게 더욱 두드러져 보였을 것이다. 마침내 마고와 루가 크게 싸운 후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둘 사이에 더 이상 메울 수 없는 간극이 그려진다. 루는 창문 안쪽에서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마고를 바깥쪽 테라스에서 바라보면서 마고를 따라 고개를 흔들고 입 모양을 따라해 보지만, 마고가 듣는 음악은 루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마고는 루를 옆에 두고 왜 그렇게 불안해하고 외로워하는 걸까? 마고가 말하듯 루는 한결같은 좋은 남편이기 때문에, 사소한 것들로 그렇게나 불안해하는 마고가 너무 어리석거나 히스테릭해 보일 수 있다. 혹은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은 마고와는 달리, 루는 상대방과 반복되는 일상을 공유하면서 점점 그 자체로 일상이 된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둘은 처음부터 사랑의 방식이 너무 달랐던 것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들은 잠시 제쳐두고 왜 그토록 마고가 쉽게 불안을 느끼고 외로워했는지 그 마음을 가늠해보자.

   마고가 루와의 관계에서 감지한 간격이 대니얼의 등장으로 점점 더 벌어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대니얼을 알게 되기 전부터 이미 마고는 루와의 관계에 있어 불안정한 상태였던 것 같다. 마고와 루의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첫 장면에서부터 마고는 침대 위에서 루에게 등을 보인 채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도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겠다’는 (거짓말인 게 분명한) 말을 한다.

 

   마고의 불안정한 상태는 영화 도입부에서부터 강조된다. 영화는 마고와 대니얼이 루이스버그에서 처음 마주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만나 대화하는 시퀀스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마고는 이제 막 알게 된 대니얼에게 자신의 특이한 공포증에 대해 털어놓게 된다. 루이스버그 성에서는 멀쩡히 걸어 다니던 마고가 공항에서는 승무원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에 타는 모습을 본 대니얼이 그 이유를 물었기 때문이다. 마고는 적당히 둘러대다 결국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비행기를 갈아타는 게 무서워요. 이 비행기에서 저 비행기로 가느라 잘 모르겠는 곳을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시간 안에 갈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도 두려워요. 제 시간에 못 가면 길을 잃고는 공항의 버려진 터미널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서 썩어가겠죠?...[그렇지만] 비행기를 놓치는 것이 두려운 건 아니에요. 비행기를 놓칠까봐 걱정하는 상태가 두려워요. 사이에 끼어서 붕 떠 있는 게 싫어요.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상태가 제일 두려워요.’ 

 

마고가 느끼는 두려움은 비행기를 놓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결과를 예기하면서 느끼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그런 두려움의 감정을 느낄까봐 걱정하는 마음, 그런 감정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달리 말하면 마고는 언제든 길을 잃고 중요한 것을 놓칠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는 상태 자체가 두려운 것이다. 마고는 루의 마음이 언젠가는 식을까봐, 언젠가는 둘 사이에 어떤 감정도 남지 않을까봐 불안해지는 상태를 견딜 수가 없어서 그토록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루와의 관계야말로 마고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그런데 마고가 자신의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또 다른 장면을 보면, 마고의 불안은 루를 만나기 전부터도 항상 존재했던 것 같다. 대니얼은 마고와 몇 차례 만나면서 마고에게 장난스럽고 명량한 상태와 불안한 상태가 공존함을 발견한다. 대니얼은 마고에게 왜 그렇게 항상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안해하는지 묻는다. 이때 마고는 뜬금없이 사촌 토니의 이야기를 꺼낸다.

 

   ‘토니가 계속 우는데 왜 우는지 이유를 도저히 찾아낼 수 없을 때가 있어요. 가끔 보도 위로 한 줄기 햇살이 떨어지면 그냥 눈물이 날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은 금방 끝나고, 어른이니까 순간적 멜랑콜리에 빠져 울면 안 된다고 마음먹어요. 토니도 아마 가끔 그런 순간에 처했던 것 같아요. 왜,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없고, 누가 더 나아지도록 해줄 수도 없는 상태. 살아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는 상태...’ 

   이 대사는 마고의 당시 상황과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루와의 관계에서 권태와 외로움을 느끼는 한편 대니얼에게 조금씩 흔들리는 과정에서 마고가 느끼게 됨직한 불안과 두려움은 이유가 분명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루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며 루와의 관계가 곧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루와의 관계가 이제는 식어버린 사랑을 감추기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는 두려움 등. 그렇지만 마고는 자신이 불안해하고 종종 울고 싶어지는 이유를 특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고의 불안은 특정한 종착지에 도달하지 못할까봐 느끼는 두려움, 혹은 구체적인 두 선택지 사이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갈팡질팡하면서 느끼는 불안이 아니다. (각 - 그런 점에서 마고의 불안을 이해한다는 듯 말하는 대니얼은 사실은 마고의 불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니얼은 ‘사이에서 붕 뜬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말을 루와 대니얼 사이에서 고민하는 마고의 상황이나 루와 마고 사이에 끼어서 애가 타고 있는 자신의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이라는 의미로 특정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고가 토니 이야기를 꺼내며 이유를 알 수 없이 엄습해오는 불안의 존재에 대해 말했을 때 대니얼은 ‘어쩌면 당신이 그 이유를 아직 모르는 걸 수도 있죠’라며 그 가능성을 일축해버린다.) 나아가 마고는 그처럼 문득문득 마주치게 되는 불안과 멜랑콜리의 상태가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되는 보편적인 상태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마고의 불안은 루와의 느슨해진 관계 때문에 비로소 생긴 것이라기보다는 그 전부터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불쑥불쑥 찾아오는, 어떤 견디기 힘든 상태인 것 아닐까?

   마고가 느끼는 불안, 외로움, 멜랑콜리가 특정한 관계에서 느끼는 것이기 이전에, 살아있는 한 겪게 되는 ‘실존적 불안’ 같은 것이라면, 앞서 마고가 가장 두렵다고 말했던 ‘사이에 붕 뜬 상태’ 혹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상태’ 또한 비슷하게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마고가 두려워하는 그 상태란 두려워할만한 무언가가 있는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감정상태가 아니라, 이미 항상 마고와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잊고 있다가도 금세 불쑥 찾아오는 감정상태인 것이다. 그 이유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마치 사이에 붕 뜬 것처럼 기반을 잃어버린 느낌을 주는 그 상태는 우리를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편하고 괴롭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얼른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붙잡아줄 구체적인 기반을 찾아 나선다. 마고에게는 그 기반이 사랑이었던 것일 테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사랑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기반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반이 되어주길 바라는 관계에서 오히려 메워지지 않는 간격을 발견할 때마다 견딜 수 없는 그 감정상태가 다시금 마고를 덮쳐왔을 것이고, 그 때문에 마고는 항상 그토록 불안해했을 것이다.  

   이쯤 되니 처음의 주제였던 사랑과 권태로부터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마고가 루와의 관계에서 외로움과 권태를 느끼게 된 이유가 소위 ‘실존적 불안’ 때문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마고는 분명 루의 특정한 행동과 말들로 인해 그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일상이 루로 하여금 마고를 관성적으로 대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혹은 설령 반복되는 일상이 루의 행동이나 속마음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마고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마고와 루 사이의 간격이 드러날 때마다 마고를 덮쳐온 불안은, 루가 더 이상 마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만으로 환원시켜 설명할 수는 없다는 점이 앞서 마고의 대사들에서 분명해졌다. 마고에게 사랑은 익숙해지고 진부해질 수 있는 것이지만, 불쑥 찾아오는 불안의 상태만큼은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의 상태야말로 사랑이 느슨해지는 권태의 시간이 못 견디게 두려운 이유다. 마고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권태의 시간 앞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생각해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즉 우리는 눈앞의 사랑이 언젠가 진부해질 것이고 그 결과 혼자가 되거나 혼자나 다름없는 외로움 속에서 길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듯 보이지만, 사실 불안과 외로움이라는 틈은 이미 항상 우리 안에 있었고 사랑이라는 특별한 관계가 그 빈 공간을 잠시나마 채워주고 있던 것이라는 생각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불안이 이 영화에서 사랑만큼이나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사실이 더 이상 뜬금없지는 않은 것 같다.

   흥미롭게도 영화 속에서 불안이라는 주제를 마고와 공유하는 인물은 루도 대니얼도 아닌 제리이다. 앞서 언급했듯 수영장 샤워실 장면에서 제리는 새것이었던 남편과의 사랑이 헌 것이 되어가는 과정을 불안하고 허무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당시 제리는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금주 중이었는데, 하루는 마고에게 자신이 잘 견디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누군가 자신이 결국 실패하기만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제리가 대체 무엇을 견디기 위해 술에 의존하게 되었는지는 언급되지 않지만, 그녀가 마고만큼이나 불안하고 비틀거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해 보인다. 영화 중반부쯤 제리는 목표한 금주일수를 달성하여 축하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런데 마고가 루를 떠나고 꽤 시간이 흐른 뒤에 제리는 다시 술에 취해 사고를 치게 되며, 이때 마고는 루의 연락을 받고 그녀를 찾아온다. 제리는 오랜만에 마고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다가 자신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마고에게 화가 나서는, 루를 떠난 마고야말로 자기보다 큰 실수를 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이렇게 말한다.

 

   ‘인생엔 당연히 빈틈이 있게 마련이야. 그걸 미친놈처럼 일일이 다 메울 순 없어.’

 

 

   제리가 말하는 빈틈이 마고가 말하는 ‘사이에 붕 뜬 상태’와 같은 것이라면, 마고와 마찬가지로 제리 역시 그런 상태가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불안의 상태에 빠지는 것이 두려워 루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약간의 틈도 견딜 수 없었던 마고에게, 제리는 매번 새로운 것에 기댐으로써 그 틈을 메울 수는 없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점은, 마고를 비난하는 제리 역시 자기 앞에 드러난 빈틈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다시 술에 의존하는 선택을 해버렸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제리의 비난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비난처럼 들리기도 한다. 혹은 그 틈을 일일이 다 메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틈 사이로 덮쳐오는 불안을 견디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나 역시 또 이런 선택을 해버렸다는 푸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제리가 가족들에게 기대어 불안이 새어나오는 빈틈을 메워보려 시도하지만 다시금 벌어지는 틈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술에 취한 채 나타나는 결말은, 마고가 자신의 틈을 메워줄 새로운 사랑을 선택하지만 결국에는 그 사랑 역시 권태에 빠져 다시금 불안과 외로움을 마주하게 되는 결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두 인물 모두 불안과 외로움의 상태에서 시작해서,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간다. 영화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그 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마고가 컵케이크를 구우면서 우울한 표정으로 오븐 속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동일한 장면으로 끝난다. 그동안 사랑의 상대는 바뀌었지만, 결국 마고는 그때와 같은 외로움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결말은 앞으로도 마고의 외로움과 불안은 그 어떤 특별한 관계를 통해서도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며, 잠시 메워졌던 틈이 벌어지면서 그 사이로 불안은 또 다시 덮쳐올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결국 사랑은 아무 의미 없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세우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영화의 진짜 마지막 장면은 마고 혼자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스크램블러를 타는 상상적 장면이다. 스크램블러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마고는 두려운 듯 경직되어 주위를 살피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그러다 어느새 눈을 감더니 미소를 지으며 스크램블러에 몸을 맡긴다. 마고가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지 아니면 쓴웃음을 지으며 자포자기한 상태인지 분명치 않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음악이 끊기지 않은 채 바로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때문에, 어쩐지 마고가 타고 있는 스크램블러가 영원히 돌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마고는 눈을 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마고의 표정은 결국 누구와 사랑을 하더라도 다시 자기 안의 불안을 오롯이 혼자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 표정 같기도 하다. 아니면 한결같았던 옛사랑을 떠난 것을 후회하는 표정일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마고의 옅은 미소는 언젠가 끝날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불안을 덮어주는 관계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즐기는 표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마고는 앞으로도 자꾸만 벌어지려 하는 틈들을 잠시라도 메워줄 새로운 관계들에 기꺼이 뛰어들 수 있을까? 다시 왈츠를 추고 또 추고 또 추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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