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말들로 부르는 보편적인 노래 - 브로콜리 너마저 1집의 언어
시몬느
브로콜리 너마저의 1집은 ‘끝나버린 노래’들이다. 더 이상 음원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없고, 음반도 중고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가끔씩 팔린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컬인 계피가 소속사 문제로 밴드를 나간 이후로 계피 목소리가 들어간 1집 음원에 대한 접근이 전부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우연인지 가사에서도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없다며 앵콜요청금지를 외치는데, 사실 나는 그냥 계속 다시 불러줬으면 한다.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1집에는 보편적인 노래부터 안녕까지 총 12개의 수록곡이 실려있다. 대부분은 이별 노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슬프지는 않다.연극의 클라이맥스와 결말 이후, 등장인물이 나중에 어떻게 살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갈등이 결국 스쳐가고, 더 이상 인생이 극적이지 않을 때, 아주 잔잔하고 사소한 ‘아무거나’일 때. 그때의 순간을 포착하는 노래들이다.
친구가 내게 말을 했죠, 기분은 알겠지만 시끄럽다고.
음악 좀 줄일 수 없냐고. 네, 그러면 차라리 나갈게요.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 찬 방과, 그 방에 담겨있는 ‘나’와 룸메이트의 실랑이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별 후 힘든 나날도 지나고 고통도 지났는데 왠지 모를 애틋함과 우울함이 남아서 음악을 듣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순간에, 주인공은 방을 박차고 나간다. 룸메이트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을 수도 있고, 환기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래 알고 있어 한심한 건 걱정 끼치는 건 나도 참 싫어서
슬픈 노래 들으면서 혼자서 달리는 자정의 공원 그 여름날
밤 가로등 그 불빛 아래 잊을 수도 없는 춤을 춰
자정의 공원은 어떤 냄새가 날까, 하루가 마무리되어 모든 게 가라앉는 무거운 냄새가 날까, 혹은 또 다른 하루가 시작할 때 풍겨올 만한 상쾌한 냄새가 날까. 탄천을 걸을 때 맡았던 흙, 강, 풀 등의 냄새가 떠올랐다. 희미하게 빛나는 가로등 불빛이 날 것의 냄새들과 뒤섞여 정말 있었던 것인지 기억도 안 나는 오래전의 향수가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노래를 들으며 가로등 불빛 아래서 춤을 추는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옛사람과 춤을 춘 적이 있을까? 그때는 둘이었고 지금은 혼자인 상태로 옛날을 추억해보는 걸까? 어찌 되었든, 주인공은 밤 가로등 아래에서 춤을 춘다. 이별 후의 클리셰, 울고,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후회하고, 그런 자잘한 감정들을 직설적으로 뱉어내기엔, 장면 혹은 순간 그 자체가 더 감각적이다. 별거 아닌 말다툼에서 시작하여 자정의 공원으로 이어지는 행동의 흐름은 강렬하지는 않지만 저절로 스며드는 무언가가 있다. 어딘가 묻어있는 구질구질함, 내가 아무리 슬퍼도 어쩔 수 없이 밖에 나와야 하는 때가 있다는 민망함, 그럼에도 슬픈 건 어쩔 수 없는 짜증스러움. 이런 감정들은 표현되지는 않지만 가사를 통해, 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통해 어렴풋이 느껴진다.
음악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선율도 뜬금없이 발랄하다. 이별 노래라고는 믿기지 않는 통통 튀는 리듬과 멜로디 라인이 보인다. 심지어 이 노래는 어린 유승호가 나오는 야쿠르트 CF의 주제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uMMkuf9WcU)
밝은 멜로디는 노래의 정서와는 모순되지만 가사와는 잘 어울린다. 춤추는 박자대로 드럼과 피아노가 울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굳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내키는 대로 이상한 춤을 추는 어떤 사람의 마음. 그 마음과 잘 어울리는 곡조다.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내 기준으로 너무 많이 인용돼서 쓰면 부끄러울 것만 같은 이 가사를 어떻게든 이 자리에 써본다. 이 말도 역시 헤어진 이후, 끝내고 싶은 마음 혹은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그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담긴 말들이다. 상황이 있고, 대화가 있고, 잠시 멈췄다 입을 떼는 그 순간이 있다. 동시에 노래가 시작하고 ‘안돼요’라는 대답이 울리는 순간, 우리는 다시 그 순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차마 지나칠 수 없었던 사소한 순간들에 대해서, 구질구질하지만 애써 참고 숨기려고 했던 감정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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