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백: 내 안의 un-PC함에 대하여


레몬밤




머리를 감는 시간은 일상적인만큼이나 비일상적이라서, 샴푸로 시원하게 두피 구석구석을 닦아내다 보면 바깥에서 가져온 먼지들과 함께 숨어있던 기억들이 거품에 하나 둘 섞여 나오곤 한다. 그토록 기억해내고 싶던 순간에는 절대 떠오르지 않았던 노래의 제목이라든지, n년 전에 배웠던 수학 공식이라든지, 잊고 싶었던 과거의 순간들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더불어 머리를 감는 순간만큼은 인간의 창의력이 배가 되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일상적으로 지나쳤던 것들에 반짝하는 통찰력이 발휘되기도 한다. 어떤 것들은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샴푸와 함께 씻겨 내려가지만 다른 것들은 오랜 시간 머릿속을 맴돈다. 이 글은 샴푸와 트리트먼트와 샤워기의 물에도 떨어지지 않고 그의 머리에 들러붙어 그를 간지럽히던 생각에 대한 글이다.

그가 머리를 감고 나서도 개운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의 가치관을 그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가치관이 무엇이길래 그러느냐 묻는다면 그는 아마 PC라는 짧은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인 올바름. 조금 더 설명해달라 부탁하면 그는 한 번에 정리되지 못한 말들을 고르며 자신만의 기준을 나열할 것이다. 그러니까, 혐오발언에서 자유로운 것.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 대상화 하지 말 것. 예컨대 칭찬을 포함한 외모 평가 하지 않고, 여자는~ 남자는~ 하면서 인간을 생물학적 성별로 환원 시키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가치관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것.


적어도 그는 대외적으로 PC한 삶을 표방하고 있었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어느 수준 요청하며 지내왔다. 사실 남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아직 그에게 힘든 일이었다. 그 자신도 un-PC함[각주:1] 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매일매일 스스로의 사고와 언행을 돌아보며 조심하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자신이 정한 기준 이상으로 친밀한 사람들에게는 속으로 어느 정도의 기준을 들이미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다 그 사람의 PC 수치가 기대보다 낮으면 속으로 실망하거나 혹은 그 사람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un-PC함을 목도한 경우에는 조용히 연을 끊기도 했다. un-PC함이 부재하는 세계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바람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소우주일지언정 PC함으로 가득 찬 공간이 필요했고, 작게나마 자신의 어항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그는 조금 더 깊은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숨을 시원하게 쉴 수 없었다.


여느 때처럼 일과를 모두 마친 저녁 머리를 감던 그가 본 것은 그의 내면에 깊게 뿌리내린 un-PC함이었다. 사실 un-PC함을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왜 올바르지 않은지 알아냈다면 마음에 새기고는 다음부터 조심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그는 돌이 아니라 깊은 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져 버렸다. 그 나무는 10년 이상 그의 삶에 뿌리 내리고 있었고 앞으로도 쉽게 뽑히지 않을 나무였다.


         “내 삶은 덕질로 점철되어 있어.” 그는 자랑스레 말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최초의 덕질은 아이돌덕질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그의 아이돌 덕질은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어 그의 삶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 그는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면 그저 앓고 좋아하고 새우젓이 되어 버리는 것이 덕질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는 공개 방송 방청을 간다든지 하는 적극적인 덕질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덕질에 꾸준하게 지출을 하고 있었다.



         아이돌은 상품이지.


머리를 감던 도중 그에게 떠오른 생각은 간단하게 이 한 문장이었다. 김이 샐 만큼 당연한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뭐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PC함을 추구하던 자신이 너무나 당연하게, 무비판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덕질에 임하고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어느 시기부터 그는 뭐랄까, 일종의 심사위원, 평론가 같은 느낌으로 아이돌을 좋아하고 있었다. 아이돌 산업의 상품으로써, 아이돌들은 조금이라도 더 잘 ‘팔리기’ 위해 자신의 상품가치를 증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들이 증명에 실패하면, 그는 가차없이 지갑을 닫았고, 일기장에 아무도 보지 않을 비판들과 개선 방안을 적어 내려가곤 했다.



그가 생각하던 아이돌의 상품가치는 크게 세 가지였는데, 1순위는 외모였다. 외모보다는 실력으로 주목받는 멤버라도 어느 정도 그가 수긍할 수 있는 얼굴과 몸매를 가져야 했고, 소위 ‘방송물’을 먹은 티가 나야 했다. 얼굴이나 키, 몸매가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 그는 속으로 “쟤는 아이돌을 할 애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활동기에 외모 관리를 하지 않은 티라도 난다면 그것은 아이돌로서 실격이었다. 그는 아무리 콩깍지를 끼고 봐도 “00가 휴식기 동안 잘 먹어서 얼굴 살이 붙었다. 볼살 오른 모습도 귀여워!”와 같은 말은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에게 외모로 먹고 사는 자가 관리를 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인 셈이었다.


다음으로는 실력이었다. 엄청난 실력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실력이어서도 안 됐다. 또 데뷔 이후 꾸준히 실력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관심이 없던 아이돌 그룹 멤버도 실력이 는 것이 눈에 띄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곤 했다. 적어도 퍼포먼스에서 못해서 튀는 것은 그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콘서트에서 가사나 안무를 숙지하지 못한 것이 티가 나서도 안 됐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포장이 될 수 있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돈 값’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니까.


사실 그는 외모나 실력 어느 한 쪽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인정했지만, 속으로는 아이돌들이 둘 다 평균 이상을 갖추기를 바랬다. 그가 가장 애정을 쏟는 멤버들만 봐도 그룹에서 외모와 실력 모두가 아쉬운 소리를 듣지 않는 멤버들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남들을 재단하고 있었고 아이돌들에게 자기가 가진 이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이미지 관리였다. 그는 아이돌의 인성을 보고 좋아한다거나, 유사연애처럼 덕질을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에게 아이돌은 그저 판타지와 이미지를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고 그도 철저하게 그들의 이미지만을 소비했다. 아이돌이 뒤돌아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든지 간에 그것이 공개되지 않는다면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임을 들키지 않는 것. 그저 보여지는 존재. 대중에게는 항상 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그의 또다른 자아로 –그것이 자신의 본래 성격과 닮았든지 닮지 않았든지 간에- 나타날 것. 그것이 그가 아이돌에게 암묵적으로 바라던 것이었다. ‘인간미’는 아이돌에게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었다. 아이돌은 항상 완벽하게 만들어진, 하지만 닿을 수 없는 곳에 진열된 제품이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던 그의 덕질 기제였다. 막상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바로 나올 수 있는 답안들이었으니까. 어쩌면 그가 un-PC함에 대한 항체를 너무나도 적게 가지고 있기에 심각하게 생각한 것일지도 몰랐다. 잠시 상품이 되면 어떤가? 우리가 감히 상상도 못할 금액을 벌어가는데. 어찌됐든 간에 이론적으로 PC함을 추구하는 그는 다음과 같은 비판을 제기해야만 했다. 어떻게 인간을 상품으로 볼 수 있는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외모 평가를 할 수 있는가? 아이돌이 이미지로 먹고 살지언정 ‘사람’인 티를 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이성의 언어로 자신의 덕질을 표현하는 버릇이 있어서 아이돌을 평가하는 위치에서 덕질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정제된 언어로 왜 그 노래가 좋은지, 왜 그 가수가 좋은지를 정리하고 싶어하던 그였으니까. 새로운 ‘떡밥’이 뜨면 하염없이 앓았지만, 끝까지 새우젓으로 남기에는 그의 평론가적 기질이 너무 강했다. 혹은 그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방어할 기제를 만드느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이돌의 인성을 좋아하거나 아이돌을 유사 연인처럼 생각하면 나중에 실망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소위 ‘현타’라 불리는 현실 자각 시간을 맞고 지난 세월을 부끄러워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 것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아이돌보다 우위에 놓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는 이런 자신이 변하지 않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 거슬릴 수 밖에 없었다. 덕질과 un-PC함은 떨어질 수 없었고 그는 덕질과 떨어질 수 없었으니까. 그는 생각했다. 그들을 ‘사람’으로 좋아할 수 있을까. 그들의 외모가 아니라 퍼포먼스만을 멋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들과 나는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까. 그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아무리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아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몸에는 먼지들이 들러붙기 마련이고 두피에서는 기름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몸을 씻는다. “덕질 할 때 나의 un-PC함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는 말했다. 그는 도저히 자신은 아이돌을 완벽한 상품으로 생각하는 입장을 버리고 덕질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러한 un-PC함을 머리 유분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머리에 기름이 돈 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적어도 매일 깨끗하게 샴푸를 하지 않겠냐며 말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머리를 감으며 구석구석 숨어있는 un-PC함과 마주한다.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를 블루투스 스피커로 크게 틀어놓은 채.


  1. 이미 명사화 된 것에 또다시 명사형 접미사를 붙이는 것은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거슬리지만 많이들 이렇게 쓰고 있고, 본인 입에도 붙은 형태라서 어쩔 수 없다고, 그렇지만 꼭 이 내용을 글에서 언급해 달라고, 그는 말했다. 의외의 곳에서 고지식한 그다. 아마 un-PC함라는 단어도 문법적으로 이상하다며 속으로 찝찝해 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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