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차 아이돌의 New Chapter
양장피
출처: https://klyrics.net/boa-boa-one-shot-two-shot/
2018년 2월 21일, 보아가 데뷔 18년만에 첫 미니앨범 <One Shot, Two Shot>을 발매했다. 같은 해 3월 28일 데뷔 15년차인 동방신기는 제대 후 첫 국내 앨범인 정규 8집 <New Chapter#1: The Chance of Love>를 발매했다. 10년 이상 정상의 위치를 지켜온 두 아티스트의 반가운 신보다. 물론 음원 순위만 따지자면 전성기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여전히 두터운 팬 층을 유지하고 있으며 가요계에서 단순히 연차에만 기인하지 않는 존경을 받으며 력을 인정받고 있다. 데뷔 15년차의 오래된 가수가 새로운 커리어를 보여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두 아티스트 모두 예전의 기량을 활용하여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http://www.ohfun.net/?ac=article_view&entry_id=18099
보아는 미니앨범 발매에 앞서 <키워드 보아>라는 리얼리티를 브이앱으로 공개하였다. 보아의 오랜 팬인 샤이니 키가 보아의 일상과 음반 제작 과정을 관찰하는 형식이다. 보아는 키와의 대화에서, 앨범 프로듀서와의 대화에서 꾸준히 ‘대중성’을 말한다. 그는 높은 완성도의 어려운 음악이 보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지만 그만큼 대중과의 선을 긋게 되었다고 냉정히 자신의 커리어를 평가한다. 그는 왜 이 시점에서 보아의 노래를 다시 들어야 하는지를 자문하며, 현 시점에서 자신의 신보에 대중의 흥미를 끌 신선함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래서 대중이 따라 출 수 있는 쉬운 안무를 후렴구에 넣기를 단호히 요구한다. 어려운 안무는 어디든 넣을 수 있으니 후렴구만은 쉽게 해달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그에 맞춰 안무를 직접 수정하기도 한다. 수록곡은 힙합, 딥하우스 등 트렌디한 장르로 채웠다. 그러나 <CAMO> 한 곡만은 보아가 지금껏 해온 화려하고 강한 노래, 기존의 팬들이 보아에게 기대했을 법한 노래다.
출처: https://klyrics.net/tvxq-the-chance-of-love-unmyeong/
동방신기 또한 이번 앨범에서 보아가 집중한 대중성에 초점을 맞췄다. 스윙재즈 기반의 타이틀곡 <운명>은 그간 동방신기가 선보인 강하고 비장한 댄스음악과 사뭇 다르다. 언뜻 들으면 소위 ‘뽕짝’처럼 느껴질 만큼 중독성이 강하고 퍼포먼스도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앨범 전반에서 힘을 빼되, 동방신기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도회적이고 화려한 이미지는 유지했다. 음악 활동 외에도 신비주의를 버리고 <나 혼자 산다>등의 리얼리티 예능에 출연하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동방신기의 72시간>이라는 자체 예능도 약 9년만에 선보였다. 예능 출연은 그간 팬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두 멤버의 성격차와 관계성을 15년 만에 대중에게 알렸다. 이러한 변화는 그들의 앨범에서 드러나는 음악적인 변화와도 맞물린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 중 하나인 <평행선>은 동방신기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와 이미지 변화를 동시에 보여준다. 동방신기는 이 곡으로 미니멀한 미디엄 템포의 팝을 처음 시도했다. 가사 또한 예능에서 보여준 두 멤버의 이야기를 담아낸 듯하다.
하루종일 고민을 해봐도 너를 잘 모르겠어
알듯 말듯 한 걸
넌 참 특이한 걸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또 시험에 들게 한 너
Woo woohoo 우린 참 다르지만
왜 이리 끌리는지
Woo woohoo 머리론 이해해도
말로는 설명 못해
너와 난 평행선 그 위를 따로 걷다
그 길 끝에서 함께할 길을 찾아
지금 너와 나 조금 서툴지만
내게 점점 다가와
동방신기-평행선 中
출처: https://www.vlive.tv/video/65388
<평행선> 뮤직비디오에서 유노윤호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금발을 선보여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영상 또한 격한 댄스 중심에 어두운 색감 위주였던 이전의 뮤직비디오와 달리 두 멤버의 일상을 청량한 색감으로 잡아낸다. <왜>, <Catch me>, <Humanoid> 같은 강렬하고 비장한 분위기의 퍼포먼스 곡들을 줄곧 타이틀곡으로 삼던 기존의 앨범 노선에서 동방신기가 변화를 준 것은 스윙 재즈 기반의 정규 7집 타이틀곡 <Something>부터 이다. 8집의 타이틀곡 <운명>은 <Something>에 이어 나온 <수리수리>, 그리고 입대 전 스페셜 앨범이었던 <Rise as god>으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흐름을 계속 이어간다. 이번 8집은 동방신기가 성숙한 30대 남성의 노련함, 여유, 젠틀함이라는 컨셉을 그들의 새로운 상징으로 만들어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과도 같다.
<One Shot, Two Shot>에서의 보아의 새로운 음악 또한 한 번의 새로운 시도 정도로 기획한 것이 아니다. 보아만이 할 수 있는 퍼포먼스의 최종 단계라 볼 수 있는 <Hurricane Venus> 이후 보아가 새로운 노선을 계속해서 고민해왔다는 흔적은 <Only One>과 <Kiss my lips>로 이어지는 앨범 분위기의 변화에서 여실히 느껴진다. 앨범 전체 트랙에서 자작곡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이지 리스닝을 목표로 하는 곡들도 많아진다. 특히 2015년 발매한 <Kiss my lips>에서 보아는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하고 작사 작곡에 참여했는데, 기존의 앨범들보다 남성 가수의 피쳐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보아의 새로운 음악’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동방신기와 같이 2018년에는 보아의 예능 출연도 늘어났다. 앞서 말한 <키워드 보아> 같은 자체 예능부터 시작해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다 올해 5월부터는 tvN의 <식량일기>에서 고정 출연을 하게 되었다. 그간 보아는 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이나 진행자로 출연해왔기에, 버라이어티 고정 출연은 대중에게 보아의 새로운 이미지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한 수단이 된다. 보아가 그토록 원하던 ‘친근한’ 이미지를 얻기에 잦은 예능 출연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다. 가수이자 방송인으로서 보아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보아는 SM의 이사가 아닌 가수고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출처: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mode=sub_view&nkey=201802191014533
출처: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mode=sub_view&nkey=201802191014533
보아와 동방신기는 어려운 음악을 하는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공통적인 이미지를 가졌다. (아직까진) 구설수 없는 사생활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대중에게 인정받지만, 그 인정이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두 아티스트 모두 충성도 높은 코어 팬덤으로 그 위치를 유지해왔다. 보아와 동방신기는 그 고정적인 이미지를 활용하면서도 대중성을 얻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을 데뷔 15년을 넘어선 현재 고민하고 있다.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음원 성적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두 음반 모두 기존에 아티스트가 가지고 있던 음악적 개성과 일렉트로닉 장르를 접목시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SM과 오래 손 잡아온 두 아티스트는 꾸준히 유지해온 이미지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른이 넘은 사회인,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가진 성인으로서 커리어를 오래 끌어나가기 위해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주체적으로 타협한다. ‘마의 7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명이 짧은 아이돌 업계에서 두 아티스트의 고민과 그에 따른 커리어 수행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이돌은 잠시 반짝였다 잊혀지는 존재가 아니며, 충실한 고민과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15년째에도 새로운 이미지와 팬층을 얻어낼 수 있다. 아마 두 아티스트 모두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20년차의 아이돌, 30년차의 아이돌을 기대하게 한다.
다만 2018년 그들의 행보를 소속사가 전력으로 푸시해 주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소속사의 다른 스케줄로 인해 보아는 1주, 동방신기는 2주만에 음악방송 활동을 마무리해야 했다.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에 대한 예우로서라도, 두 아티스트가 바라보는 먼 미래를 걸어갈 수 있도록 소속사가 신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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