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 PICK
레몬밤 - <오션스 8>
산드라 블록, 케이트 블란쳇, 민디 캘링, 사라 폴슨, 아콰피나, 리한나, 헬레나 본햄 카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해?
산드라 블록과 케이트 블란쳇은 2018년 최고의 듀오가 아닐까. 그들의 투샷은 정말이지... 사람을 감격하게 한다. 그 외 킬링 파트를 꼽자면 결말 부분 주인공들의 모습. 다만 스펙터클하거나 다이나믹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과 번역가가 박지훈이란 점은 꼭 알고 볼 것.
레몬밤 - <선택! 줌보의 디저트(Zumbo's Just Desserts)>
영국의 요리 연구가 레이첼 쿠와 호주의 디저트 왕 아드리아노 줌보 앞에서 펼쳐지는 디저트 “덕후”들의 디저트 경연. 파티시에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단순히 디저트를 만드는 일이 너무 좋은 후보들이 모여 매 주 한 명씩 탈락하는 스릴 넘치는 대결을 펼친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을 연상시키는 세트장. 화려한 색감과 센스 있는 소품들, 그리고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디저트 재료들은 내 마음 속 “찰리”를 불러온다. 단순히 저 세트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연을 하는 후보들이 부러울 정도.
비 전공자에 아마추어일지라도 누구보다 창의력 넘치고 누구보다 실력있다. 주제에 맞는 창의력 발휘하기, 단순하지도 그렇다고 조잡하지도 않은 디스플레이 보여주기, 맛의 밸런스 맞추기, 시간에 맞게 완성하기, 기본 요리법에 충실하기 등 멀티태스킹을 한번에 해 내야 하는 상황속에서 약간의 스릴도 느낄 수 있다. “저게 맛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기하다못해 기괴한 재료 조합을 보여주는 줌보 테스트 미션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호주 예능의 뻔하지만 반전있는 편집은 보너스.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하다.
익명 z - 이영도 판타지 장편들
군대에서 힘들어하는 전(前)동거인한테 드래곤 라자 양장본 시리즈(무려 9만원이었다. 중고는 8만 5천원.중고? ㅋ?)를 사줬다. 일주일 뒤, 다 읽었으며 이제 눈물을 마시는 새를 주문할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집에 가보니 미모의 50대 여인, 우리 엄마가 두 시리즈를 끝장내고 피를 마시는 새를 주문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읽고 있다. 중학교 때 텍스트본에서 시작해서 5번쯤 읽고 있는거 같은데 언제 봐도 명작이다. 우리 학교 관정도서관 7층인지 8층인지에도 있으니 추천한다. 이제 우리 아버지만 읽는다면… 이영도 당신… 우리 가족의 마음을 겟-또…….
사이숏 - 네이버 완결 웹톤 <마스크걸> (글 매미/ 그림 희세)
1부 7화 <모미 vs 아름>(위)과 1부 28화 <죄와 벌>(아래) 중에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일어나는 분위기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소개) ‘끝내주게 못생기고 끝내주게 몸매 좋은 여자’, 김모미는 평범한 20대 후반 여성 직장인으로 밤이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마스크를 쓰고 인터넷 성인 방송을 진행하는 BJ ‘마스크걸’이다. 얼굴이 못생긴 그녀에게 이 사회는 유독 혹독하고 적대적이지만, 정작 모미 자신도 주변 여성들에 대한 혐오적 시선과 편견 안에 갇혀 있다. 성형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직장 상사와 남성 동료들의 온갖 ‘빻은’ 소리들을 견뎌 가며, ‘잘생긴 품절남’ 부장님과 열애하는 공상으로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보내던 모미는 어느 날, 한 사내 동료로부터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협박성 쪽지를 받게 되는데…
총평) 1, 2부의 <마스크걸>은 주인공 모미를 비롯한 작중 여성들을 무조건 피해자화하거나, 남성을 일방적으로 가해자화하는 문법을 채택하는 대신에 개별 캐릭터들의 언행에서 드러나는 여러 모순적인 측면들을 재치 있는 통찰력으로 그려내는 데 역점을 둔다(이것이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반응은 현실에서 여성들이 당면한 생존과 폭력의 문제를 손쉽게 뭉뚱그리는 담론 틀을 제공할 뿐이다). 여성의 몸을 둘러싼 문제적 상황 및 현상 들에 대한 희극적 스케치로 출발한 소극이 2, 3부에 이르러서는 서사적 무게감을 한층 더하게 되면서, 초반의 시니컬하면서도 유머스러운 활력을 잃고 어쩐지 한 편의 모성 멜로드라마 대장정으로 마무리된 듯한 인상이 없지 않아 들기도 하지만, 결국 딸과 어머니의 관계가 두 세대에 걸쳐 단절 혹은 실패로 끝난 자리에 여성 연대의 또 다른 가능성이 대안 가족의 형태로 제시되는 대목은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나름의 타협점을 찾고자 하는 이 작품 고유의 역량을 보여 준다. 별점은 다섯 개 만점 중 세 개 반.
콩브레과자점 - 2018상반기 밴드 내한 공연 中 Mogwai
밴드 내한은 Mogwai - Ride - Arch Enemy - Phoenix - Pvris - Turnstile 정도를 봤다. (일본 밴드와 국내 밴드를 보지를 못한 게 조금 아쉽다.)
Mogwai가 내가 본 2018 첫 내한 공연이었는데, 양일로 진행되었으나 Ride 공연일자와 겹쳐 하루밖에 보지 못했다. 솔직히 이전 한국 내한에서 티켓이 거의 팔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틀이나 공연하는 게 신기하다. 어쩌면 이제 안 올 생각일지도 모른다.
본지 6개월 정도 된 Mogwai를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이야기하는 건.. 그들이 출력하는 평균 130db(준 제트엔진;;)의 소음의 경험과, 몸을 죽기살기로 울리는 그 드럼소리가 아직도 떠오른다. 미소를 머금고 허공을 바라보며 몸을 흔들고 있는 기타리스트와 발을 무대에 박고 같은 동작만 반복하는 베이시스트가 만들어내는 소리도 물론 아름다웠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처음 곡부터 이를 악물고 죽기살기로 탐이랑 베이스를 때리고 있는 드러머의 얼굴 표정이 아직도 무브홀에 서려있다! Pvris 공연을 보러 무브홀에 갔는데, 그곳에서 다시 한번 그녀(?)/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원래 드러머는 남자인데, 이상하게 내가 본 날에는 드러머가 아팠는지…. 중성적으로 성별이 잘 구분이 안 되시는 분이 드럼을 치고 계셨다. 여자로 추정. 아닐 수도 있음.)
달 - 다음 완결 웹툰 <바토리의 아들> (글 호르자 / 그림 영광)
네이버 연재 웹툰 <그 판타지 세계에서 사는 법(그판세)> (촌장)
<바토리의 아들> 썸네일(위) / <그 판타지 세계에서 사는 법> 13. 수도의 겨울 편(아래)
그대, 판타지를 좋아하는가? 중세풍이면 더 환장하는가? 그렇다면 이 웹툰들을 봐야한다!
<바토리의 아들>은 피의 백작여인 바토리 에레제베트에 관한 전설을 각색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인의 아들인 미겔은 식인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습성을 가지고 있고, 부인은 어쩔 수 없이 시체를 공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있던 세력들은 시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추문을 이용하고자 한다. 이렇듯 작품은 “어쩔 수 없음”과 그 부조리 때문에 무너져 내려가며, 이에 저항하기도 하는 캐릭터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이 외에도 신의 이름으로 부를 쟁취하고자 하는 자(주교 베르나르 기), 형제들 간의 권력 다툼에서 살아남아 이후에도 생존을 위해 탑을 오르는 인물(페렌츠 공작) 등 여러 인물들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들어가면서 스토리의 감칠맛을 더한다. 작화도 훌륭하고 인물들과 스토리의 격정성 때문에 볼 때 마다 피가 끓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품과는 관계 없을 수도 있지만 재학중인 두 대학생이 만든 작품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퀄리티를 자랑한다.
<그 판타지 세계에서 사는 법(그판세)>의 어법은 <바토리의 아들>보다는 덜 비극적이다. 하지만 거대한 시류 아래에서 휘둘리는 가운데 자신의 목표를 성취해나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금지된 마법에 대한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왕가의 두 세력 가운데 주인공들은 모험을 이어나간다. 아내를 찾고자 하는 아크 메이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로얄 가드를 나와 일개 길드에서 보수를 받는 검성이, 신의 이름으로 금지된 마법을 막고자 하지만 이해관계에 휘말려 수렁에 빠지는 성기사 마크, 그리고 수녀보다 도적이 더 어울리는 마크의 동생 체니 이 네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해관계, 모호한 선악의 경계, 액션 씬에 있어서 탁월한 디테일이 그판세의 매력이다.
이르름 - <권정열 고영배의 십란한 밤> https://youtu.be/2CxwFQ9q9Ts
브이앱에서 매주 화요일 ‘십’센치의 권정열과 소’란’의 고영배가 한 시간 남짓 진행하는 일종의 보이는 라디오. 브이앱이란 머나먼 요즘 애들의 문물이라 생각했으나 콘서트 이후로 10cm 사랑은 멈출 줄 몰랐고… 한편으로는 한동안 종현의 발자취를 찾아 유투브에서 <푸른밤 종현입니다>의 클립들을 찾아 들었다. 게스트는 소란의 고영배와 커피소년. 자연스레 십란한 밤이 추천영상에 떴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되게 별 거 안하고, 가끔 게스트 나오면 놀려먹고, 자기들 노래 서로 틀고 부르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지각도 하고 (권피치씨,,), 그러니까 그냥 친한 친구들끼리 떠드는 내용인데, 재밌다. 그래서 없는 용량에 브이앱도 깔고, 시간 맞춰 하트 눌러 보내며 방송도 봤다. 덕분에 혼자 떠난 해외여행, 숙소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유투브에 틀어놓고 다른 창 띄워서 단순작업하기에도 딱! 이번 학기 십란한밤 들으며 행정업무 버텨냈다^^! 권정열과 고영배의 팬이 아니더라도, 권정열의 귀여움과 대중적인 고영배의 입담, 그리고 십년이 넘은 이들의 우정에서 묻어나는 애정어린 드립들은 누구에게나 재밌으리라고 자신한다.
>전체를 듣고싶다면 브이앱 깔아서 ‘캐스퍼 라디오’를 추가한 후 매주 기다리기!
나처럼 집중력이 부족하거나, 일/공부하며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 편집된 영상들이 많다. 유투브의 ‘CASPER RADIO’ 공식 채널, 그리고 자막과 *씹덕 포인트*가 깔끔한 채널 ‘십란’의 영상들을 추천한다. 추가적으로 <푸른밤 종현입니다>중 고영배와 커피소년의 코너는 유투브의 ‘채널48’에 야속할 정도로 유쾌하게 정리되어 있다.
시나인 - <미션 임파서블: 폴 아웃>
진부한 액션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클리셰들을 전부 새롭게 엄청나게 근사하게 만들어냈다. 미션 임파서블(이하 미임파) 시리즈의 장르는 ‘톰 크루즈’다. 그가 선보이는 고난이도의 액션은 앉아있는 나를 움찔거리게 만들고 땀나게 한다. 오프닝 테마곡 하나로 한 시리즈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이 시리즈와 같은 시기를 살고 있음에 감사를 느낀다. 이렇게나 노력하는 캐릭터(에단)의 존재는 뭐든 쉽게 해결하는 히어로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열심히 달리는 에단과 함께 달리는 톰 크루즈의 발전하는 액션은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이번 시즌을 본인이 더 주목한 이유는 멋진 카메라 연출에 있다. 런던과 파리를 격렬하게 여행하고 온 듯 착각을 일으킨다. 유명한 장소를 뛰고 달리는 에단과 함께 말이다.
새롭고 참신한 향기가 나는 영화가 아니라 정직하고 땀냄새나는 영화이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다!
양장피 - <허스토리>
왜 지금까지 이 대배우들을 ‘엄마’ 역으로밖에 만날 수 없었을까. 그리고 왜 여태껏 역사의 피해자들을 이렇게 담담하게 그려낼 수 없었던 걸까. 허스토리 이전 내가 봐온 영화 속 역사 인물들은 드라마를 위한 양념 정도에 불과했던 것 같다. 여성 서사와 역사라는 소재를 숙고를 거쳐 섬세하게 어우른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이 아닐까 싶다. 부산 사투리로 거칠게 소리치는 김희애의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심장이 뛴다.
아게추 - <언내추럴>
TBS 드라마 <언내추럴>. 부자연스러운(unnatural)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부검팀 UDI의 이야기이다. 보다 보면 주 스토리의 흐름이 조연인 남자 캐릭터의 서사에 있는데도 철저히 여성 주인공 미코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시점의 균일함, 여러 가지 사회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면서도 흡인력이 있는 점들이 좋아서 날 잡고 하루만 앉아 있으면 금방 다 볼 수 있다. 일본 드라마들이 거의 그렇듯이 10부작. 주연 배우 이시하라 사토미의 웃는 모습이 무척 행복하게 해준다. 다 보고 나면 ost인 레몬을 세뇌라도 당한 것처럼 흥얼거리게 된다.
민쵸 - The Script의 <The Script>
벌써 발매된 지 10년이 넘은 음반을 아직도 전곡 재생하게 만드는 명반. 어떻게 내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왔는지도 모르는 <The Man Who Can’t Be Moved>를 듣다가 지하철에서 입을 틀어막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노래가 수록된 <The Script> 앨범은 아일랜드 얼터너티브 록밴드 The Script의 데뷔 앨범. 데뷔하자마자 영국을 씹어먹은 이 앨범 덕에 밴드는 미국 진출뿐만 아니라 전세계 공연을 다니고 있다.
지금까지 발매된 앨범이 많지만 <Talk You Down> - <The Man Who Can’t Be Moved> - <Breakeven>으로 이어지는 이 앨범의 345 트랙은 다른 앨범들과 비교할 수 없는 최강 클린업 트리오다. 밴드 특성상 노래에 팝적인 요소가 많아 진성 락 덕후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편하게 듣기 좋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 앨범은 전주부터 멜로디에 홀리는 경험을 하게 해 줄 것이라 자신한다.
푸른수염 - 유덕화
양조위, 주윤발, 금성무, 장국영 등 8-90년대 홍콩영화계가 배출한 보석같은 남배우들을 다 꼽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지만, 그 중간지의 영역에서 최고는 아무래도 유덕화가 아닌가 싶다. 그의 전성기 시절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멋짐이라는 것이 폭발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조각 같은 미남들이 득시글대는 고전기 헐리우드에서도, 온갖 아이돌 및 배우들이 대세에 맞는 미모들을 각기 뽐내는 2018년의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생소한 미감이라고 감히 말한다. 여기까지 읊었는데도 고개를 갸우뚱거릴지 모를 당신을 위해, 이번 핍픽에서는 유덕화 덕질에 입문하기 좋은 영화 네 편을 꼽아보았다.
1. <무간도>, 2002
기가 맥히는 수작이다. 네 영화 중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가장 최근작으로, 중년이 된 유덕화의 중후한 멋을 감상할 수 있다. 홍콩 느와르가 낳은 명작이며 <신세계>가 이 영화를 리메이크 했다고들 한다.(실제로 둘 다 보면 많이 비슷하다고들 하던데, <신세계>는 안 봐서 모르겠다.) 비록 여기서 고른 네 편의 영화들이 영화의 퀄리티보다는(그렇다고 구리다는 말은 아님) 철저히 유덕화의 멋이라는 순수한 미적 기준에 따라 선택된 것들이지만, 그 중에서 <무간도>만은 영화의 만듦새와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덕질 입문용으로 권한다.
* 주의 : 뜻밖에 유덕화 대신 양조위에 치일 수 있다.
2. <열혈남아>, 1987
필자가 유독 편애하는 왕가위 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왕가위는 말할 것도 없이 홍콩 최고의 감독이므로(ㅎ)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왕가위와 유덕화의 만남은 1990년의 영화 <아비정전>에서도 목격할 수 있으나 <아비정전>은 누가 뭐래도 장국영의 영화이기 때문에 유덕화 덕질이라는 목적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사실 필자는 처음 봤을 때까지만 해도 <아비정전>의 무매력 경찰이 유덕화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열혈남아>의 유덕화는 정말이지 아름답다. 스토리도 괜찮고, 왕가위답지 않게 액션씬이 많아 그 시기 홍콩영화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무엇보다도 유덕화와 장만옥의 리즈시절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다.
* 주의 : 장학우의 진상짓과 유덕화의 호구짓이 초래할 답답함과 분노로 잠이 오지 않을 수 있다.
3. <지존무상>, 1989
<영웅본색>류의 으리으리-한 홍콩영화를 좋아한다면 답은 <지존무상>이다. 두 친구의 우정과 도박 이야기를 다룬 볼거리 많은 영화. 하지만 홍콩영화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입문용으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데, 왜냐하면 다른 많은 홍콩영화들처럼 약간의 항마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현대적 감각의 <무간도>나 왕가위 특유의 세련된 스타일로 다듬어진 <열혈남아>보다는 좀더 보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홍콩영화 특유의 어이없음에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보기 몹시 즐거운데다가, 필자가 이 영화를 유덕화 덕질용으로 추천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어마어마한 유덕화의 자켓핏... 이 영화에서 유덕화는 청자켓과 가죽자켓, 온갖 종류의 항공잠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켓을 돌려가며 입고 나오는 자켓부자로 나온다. 매 씬마다 엄청난 핏을 자랑하며 카지노에서 총을 쏘는 젊은 유덕화의 모습을 박제했다는 데에 이 영화의 숨겨진 의의가 있다.
* 주의 : 막 엄청나게 큰 재미가 있고 그렇지는 않다. (☆713☆ 장면 예외)
4. <천장지구>, 1990
필자의 이번 핍픽이 이 영화 때문에 기획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망의 <천장지구>. 왠지 개연성을 개나 줘버린 것처럼 느껴진다면, 기분 탓이다. 유덕화가 바로 개연성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절대로 이 세상 간지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몇몇 아끼는 장면들과 사랑하는 포인트들이 있지만, 직접 볼 때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해칠까봐 말을 아낀다. 스토리와 만듦새와 완성도 등등을 다 떠나서 유덕화의 미를 무목적적으로 감상하고 싶다면, 무조건 이 영화다.
* 주의 : 여기 나오는 유덕화가 좀 많이 못되게 굴어서 얄밉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있어서 더 얄밉다. 옛날 영화임을 감안하고 봐야 화가 덜 나는 장면들이 조금 있다.
금송 - 뱃사공의 첫 번째 정규 앨범 <탕아>
뱃사공이라는 랩퍼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조금의 애정과 인정이었음이 드러났다. 몇 년을 걸쳐 서서히 수면으로 올라오던 그와 그의 친구들의 음악은 이번 앨범을 통해서 고유의 멋을 거침없이 폭발시킨다. 한국힙합 씬의 많은 랩퍼들은 이중의 기믹을 가지게 된다. 힙합이라는 장르에서 살아 남기 위한 고유의 캐릭터가 그 첫번째 기믹이라면 그 캐릭터를 실제 삶에서 구현하기 힘든 데서 오는 곤란이 두번째일 것이다. 이 두번째 곤란에 대해 랩퍼들은 그들 삶에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음악에 전부 드러나기 마련이다.
뱃사공은 자신에게 기믹 따위는 없음을 앨범 전체를 걸쳐 뱉어내는데 그것은 단지 그가 캐릭터와 삶을 일치시켰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캐릭터라는 것이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혹자가 랩퍼의 캐릭터는 힙합의 가장 원천적인 요소라고 말한다면 뱃사공은 과감히 힙합이 자신을 떠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결심 혹은 정체성의 확립은 음악의 스타일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검정치마를 꼽았던 그는 실제로 ‘축하해’ ‘돈이 없어도’ ‘진심’과 같은 곡들과 기타 곡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밴드 사운드로 정형화된 사운드에서 벗어난다. 이로서 그의 음악은 뱃사공이라는 사람이 느끼는 삶에 대한 감성이 진하게 담기게 되었고 그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엄청난 ‘힙합’ 이 되었다. 진심의 힘을 본인의 스웨거로 삼는 독보적인 랩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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