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대만 청춘영화에 설레는 이유

-‘나의 소녀시대’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이제로



대만 청춘 영화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 대만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대만 청춘 영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청설(2009)’,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나의 소녀시대(2015)’가 있다. 이중 우리나라에 대만 청춘 영화라는 것을 알린 영화는 아마 ‘말할 수 없는 비밀’일 것이다. 나의 학창시절 때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친구들은 책상에 화이트로 하트를 그리곤 했고, 피아노 꽤나 친다는 친구들은 말할 수 없는 비밀ost를 연주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는 최근작 두 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나의 소녀시대’를 조명하고자 한다. 두 작품은 대만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제목이 알려진 꽤 유명한 영화이다. 두 영화는 학창시절 첫사랑이라는 주제 하에 매우 닮아있지만, 한편으론 매우 다르다. 나는 내가 소위 애정하는 두 영화를 글로써 분석하여,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설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미리 경고하자면, 본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 자전거와 교복


대만 청춘 영화에는 반드시 자전거와 교복이 등장한다.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말간 얼굴은 우리들을 학창시절로 소환시킨다. 첫사랑은 새하얀 교복과 나른한 자전거 소리처럼 그 나이대만이 갖고 있는 때묻지 않은 그 무엇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첫사랑을 말하기에 앞서 대만 청춘 영화는 학교와 학생, 그리고 사춘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만 청춘 영화 속 학교에는 모범생, 문제아, 인기학생 등 어느 학교에나 있었을 법한 다양한 학생들이 등장한다. ‘나의 소녀시대’에서 임진심(여자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은 공부보다는 연예인을 좋아하는 평범한 여학생들인 반면, 서태우(남자 주인공) 무리는 문제아 집단이다. 또 다른 주연인 구양과 도민민은 학교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모범생들이다. 마찬가지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이하 그 시절)’에서 션자이(여자 주인공)는 학교 최고 모범생이자 인기학생인 반면 커징텅과 그의 친구들은 장난끼 많은 평범한 학생들이다. 이처럼 다양한 성격의 학생들은 영화 속 학창시절에 현실감을 부여함과 동시에 현실과는 괴리된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일진과 평범한 학생, 모범생이 한 무리로 어울리는 모습은 응당 비현실적이지만 일단 보기에는 좋다.


학생들의 순수함은 학교의 경직된 제도와 선생님의 권위에 대비된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자의적으로 체벌을 내리고,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권위에 복종한다. 그러나 그 권위의 부당함이 극에 달했을 때 학생들은 반항하고 도전하고 바꿔나간다. 이 과정에서 평범하고 모범적이었던 학생들은 변화하고, 또 성장한다. 즉 대만 청춘 영화는 그저 공부만 하고, 연예인만 좋아할 줄 알았던 학생들을 성장시킨다.



# 유덕화와 왕조현


나의 소녀시대와 ‘그시절’에서는 9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나의 소녀시대의 경우는 행운의 편지, 주성치의 영화, 롤러장, 프로필자료, 서점, 야영과 진실게임 등 끊임없이 90년대를 추억할만한 소재를 등장시키며 보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이런 점에서 ‘나의 소녀시대’는 응답하라 시리즈와 많이 닮아있다. 응답하라 1997에서 정은지가 HOT의 광팬이었듯, 나의 소녀시대에서 임진심은 유덕화의 열렬한 팬이다. 유덕화는 90년대 대스타로 그 시절을 추억하는 장치이자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소재이다. 유덕화 스티커로 두 주인공의 인연이 시작되고, 서태우는 유덕화 열쇠고리와 입간판으로 임진심에게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언젠간 유덕화가 너를 위해 노래하게 해줄게’라는 대사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그 시절’은 나의 소녀시대만큼 시대적인 소재가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남자주인공은 장만옥을 보며 혼자만의 즐거운 시간(?)을 갖고 이소룡을 사부라 칭하며 격투왕이 되길 꿈꾼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시대를 정확히 재현해내며 향수를 불러일으켰듯이, 그리고 당시의 순수한 첫사랑을 예쁘게 그려내었듯이, 두 영화는 1990년대 대만을 소환하며 그 시절을 미화시킨다. 그 시절 대만이 아시아의 문화 중심지였고, 대만 스타가 곧 아시아 스타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대만 청춘 영화가 그토록 우리에게 인기 있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그 시절 유덕화 노래 한 번 안 듣고 왕조현 한 번 안 좋아해 본 남자가 어디 있으랴. 대만 청춘영화가 대만을 넘어 온 아시아에 사랑 받는 이유가 있다.



# 도시 괴담


‘나의 소녀시대’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는 공통적으로 특이한 장면이 등장한다. 나의 소녀시대에서 학생들이 야영을 다녀온 직후, 뜬금없이 임진심의 가족들이 미스터리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스터리 전문가는 학생들의 야영 사진을 보고 서태우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임진심을 비롯한 친구들은 그 말을 믿고 서태우를 걱정한다. ‘그 시절’에서도 마찬가지로 전날 방영한 미스터리 프로그램에 대해 션자이와 후지웨이가 심각하게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극중에서 강시에 대한 괴담이 꽤나 비중 있게 다뤄져, 강시가 산을 넘어오다 요구르트 병을 밟고 넘어지는 신이 삽입되기도 한다. 선뜻 극의 흐름을 깨는 듯한, 이해하기가 힘든 이러한 장면들은 그 시대를 추억하기 위함이자 학생들의 순수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90년대 대만에서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강시, 홍콩할매 등의 도시괴담이 대유행 하였다고 한다. 우리의 학창시절에 빨간마스크가 대유행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얼핏 수긍이 간다. 그 시절 우리가 빨간마스크를 피하기 위해 손등에 犬을 쓰고, 분신사바를 하며 펜이 스스로 움직일까 걱정했듯이, 이들은 강시가 밤중에 산을 넘어올까 마음 졸였던 것이다.



# 예쁜 장면

대만 청춘 영화에는 예쁜 장면이 등장해야 한다. 우리들의 청춘과 첫사랑은 아름다운 것으로 기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소녀시대는 그야말로 예쁜 장면들로 가득 차있다. 임진심과 서태우는 서점에서 처음으로 서로에게 두근거림을 느끼는데, 이 장면에서 해질 무렵의 따뜻한 햇빛이 말 그대로 쏟아진다. 서태우가 임진심을 데려다 주는 장면에서는 밤 골목이 주는 특유의 감성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두 사람이 밤에 빈 공원에 가서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예쁘게 연출되었다. 형형색색의 조명은 놀이공원의 야경처럼 로맨틱하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의 아름다운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최고의 명장면인 유성에게 소원을 비는 장면은 설명도 필요 없이 그저 예쁘다.









‘그 시절’에서도 예외 없이 예쁜 장면이 등장한다. 주인공 둘이 함께 공부하는 장면, 친구들이 다같이 해변에 앉아 꿈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 두 사람이 처음으로 데이트 하는 장면, 지진 후 두 주인공이 밤하늘을 보며 통화를 하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나의 소녀시대'가 빛과 분위기를 통해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냈다면, ‘그 시절’에서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배우들의 맑고 순수한 얼굴이다. 극중 아허가 션자이에게 ‘유치하다고 말을 하는 너의 모습이 너무 예뻤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에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다. 션자이 역의 배우의 깨끗한 피부와 솜털 같은 머리카락은 그 자체로 청춘의 아름다움을 대변한다.











# 그 시절엔 알지 못했던


인연의 시작은 늘 그렇듯 악연이다. 영화 초반의 두 사람은 늘 다투지만 일련의 소소한 사건들을 거치며 두 사람은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두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남자가 여자를 대신해 혼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여자 주인공들은 처음으로 남자주인공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여자주인공은 남자주인공을 위해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용감한 행동들을 감행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반하게 된다. ‘나의 소녀시대’에서 임진심은 서태우에게 부당한 벌을 내리는 선생님에 대항하여 전교생 앞에서 당당한 발언을 한다. ‘그 시절’에서 모범생이었던 션자이는 친구들을 서로 의심하라는 선생님에게 반항하고, 결국 남자주인공 무리와 함께 벌을 받는다. 이처럼 남녀는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 변화하고 가까워지며 닮아간다. 그리고 결국 서로를 좋아하게 되지만, 첫사랑 영화가 늘 그러하듯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변해버린 자신의 마음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상대방의 마음을 알 길이 있으랴. 사춘기인 그들에게 진심을 말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소년과 소녀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늘 진심을 숨기고, 늘 돌려 말한다. 우리의 첫사랑이 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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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소녀시대’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두 영화를 본 후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나의 소녀시대는 두 학생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라면, ‘그 시절’은 우리의 아름다운 청춘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나의 소녀시대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 시절은 우리에 관한 이야기이며, 나의 소녀시대가 사랑에 좀 더 집중했다면, 그 시절은 청춘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나의 소녀시대’는 온전히 두 사람의 관계와 두 사람의 감정에 주목한다. 영화는 여자 주인공 임진심의 시선을 따라가기 때문에 처음 볼 때는 자연스레 임진심에 감정 이입하여 그녀의 시선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보게 된다. 그러나 두 번째로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남자의 시선과 감정변화에 주목하게 된다(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때서야 비로소 알 수 없었던 남자의 행동과 표정을 이해하게 된다. 즉 ‘나의 소녀시대’는 다시 볼 때 보이는 것이 많은 영화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의 소녀시대는 예쁜 장면들로 점철된 영화이다. 그래서 사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장면이 너무나 많다. 평범한 학생과 일진의 우정과 사랑, 선생님에 대한 전교생의 반항과 도전 등 이 영화는 사실 판타지에 가깝다. 이 영화가 유치하다는 평가는 아마 이러한 장면들 때문에 나오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판타지이기에 아름답고, 판타지이기에 설렌다. 우리에게 있었을 것 같지만 절대 없던 첫사랑의 이야기이다. “학창시절을 기억 조작시켜주는 영화”라는 누군가의 리뷰는 이 영화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반면 ‘그 시절’은 두 사람 위주로 서사를 이끌어가면서도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있다. 커텅의 친구인 아허, 쉬보춘, 라오차오, 랴오잉홍과 션자이의 친구인 후지웨이까지 영화는 일곱 명의 청춘을 빼놓지 않고 그려낸다. 그래서 제목의 “좋아했던”은 커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섯 남학생 모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첫사랑을 앓았고, 영화는 예민한 시선으로 이를 포착한다. 커텅은 짓궂게, 아허는 성숙하게, 쉬보춘은 멍청하게, 라오차오는 엉뚱하게, 랴오잉홍은 유쾌하게 션자이를 좋아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도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녀”가 아니라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이다. 마지막 션자이의 결혼식에 다섯 명이 모두 모여 션자이를 좋아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모습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그 시절’ 두 사람의 첫사랑은 ‘사랑’보다는 ‘첫’에 방점이 찍혀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청춘과 사춘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그래서인지 2차 성징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수업시간에 자위하는 장면, 쉬보춘이 발기하는 장면, 나체 장면 등 자칫하면 더러워 보일 수 있는 장면들을 영화는 유쾌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성적인 장면은 되려 순수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끊임없이 이들이 이제 막 2차 성징을 시작한 어수룩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그래서 이들의 사랑도 미숙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명대사 중, “그 시절 여자는 남자보다 성숙하고, 그 성숙함을 견딜 남자는 없다는 것이다”라는 대사는 청춘의 사랑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커진텅과 달리 션자이는 너무나도 성숙하다. 션자이는 커진텅의 유치한 모습에 끌리지만, 결국 그들은 유치함의 차이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션자이는 커진텅이 마음이 진지한 것이 아닐까 봐 두려웠고, 남자는 여자의 진지한 모습에 겁을 먹는다.


그러나 실상 두 사람이 이루어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커진텅에게 션자이는 청춘 그 자체였으며, 커진텅이 좋아했던 것은 션자이를 사랑한 자기 자신이었다. 커진텅의 대사 중 “만약에 너가 사라지면 내 추억도 사라지는 거니까”, “나도 널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내가 좋아”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있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그 시절’은 ‘나의 소녀시대’와 같은 둘만의 에필로그가 필요가 없다. 첫사랑은 그 시절일 뿐이다.


요컨대 ‘나의 소녀시대’는 예쁜 첫사랑 판타지라면, ‘그 시절’은 우리 모두에게 있었을 법한 첫사랑 이야기이다. 두 영화를 비교하자면, ‘나의 소녀시대’는 더 재미있는 영화고, ‘그 시절’은 더 좋은 영화이다. 나는 분명 ‘그 시절’에 더 높은 평점을 줄 것이지만, ‘나의 소녀시대’를 더 자주 꺼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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