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가 노래하는 모순의

- 김윤아 <노래가 슬퍼도 인생은 아름답기를> 후기

 

블루문

 

 

0. 노래가 슬퍼도 인생은 아름답기를

 노래가 슬퍼도 인생은 아름답기를이라는 거짓된 문장이 공연의 시작부터 관객에게 던져진다.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인생이 슬프기에 노래는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이 슬플수록 노래는 아름답다. 그러나 김윤아는 시작부터 거짓과 모순의 문장을 던지며 공연을 시작했다. 그는 인생과 예술이 모순이라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일까, 모순에 관한 노래를 불러보이고 싶었던 걸까.

 

1.

 

 그는 <Summer garden> <증오는 나의 >으로 공연을 열었다. 영원히 자신을 떠나지 말아달라는, 버리지 말아달라는 애원을 담담하게 뱉어내는, 옷을 입은 여름정원 안의 소녀와, 내일이면 아버지를 죽이리라고 다짐하는 증오에 가득 . 대조적인 오프닝이었지만 꽃에 둘러싸인 옷을 입은 무대 위의 김윤아와 어울리는 오프닝 곡들은 공연이라는 거대한 시를 알리는 거대한 서론과 같았다.

 먼저 <Summer Garden>에서는 여린 소녀가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애원섞인 말을 뱉는 내용이지만, 반주는 느리고, 음색은 담담하면서도 몽환적이다. 말로는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미 놓아주고 상대에게 미련을 갖지 않은 것만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속이라고 해도 믿을 있을 법한, 신비로운 여름정원에 있는 소녀가 실제로 가진 마음이 무엇인지, 소녀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지는 상상하기 나름이지만, 확실한 것은 김윤아는 소녀가 되어 모순과 거짓을 품고 노래했다는 점이다.

 <증오는 나의 > (각주 : 매일 내일은 당신을 죽이리라 / 마음에 마음을 새겼어 / 만의 생각이 / 머리 속을 헤엄치며 / 무력한 비웃고 // 매일 내일은 구차한 생을 / 고요히 끝내리라 꿈꿨어 / 만의 생각이 / 머리 속을 헤엄치며 / 비겁한 비웃고 / 고맙고 고마운 아버지 / 당신을 죽도록 이토록 / 증오한 덕에 아직 살아있고 / 증오는 나의 / 배신하지 않을 나의 아군 / 나의 주인 나의 // 나는 자아를 잃은 증오의 하수인 / 눈엔 칼을 심고 / 가슴엔 독을 품은 / 꿈에도 잊지 않을 / 사무치는 증오 / 당신을 해하리라 날이 오면 / 증오는 증오를 낳고 / 증오는 증오를 낳고 / 증오는 증오를 낳고 / 증오는 증오를 낳고 // 검은 증오의 불길이 언젠가는 / 삼키고 멸하고 말겠지 / 이미 지옥 가운데 발을 딛고 / 웃으며 가려 파국에 - 김윤아 <증오는 나의 >) 에서 딸이 김윤아는 매일 같이 아버지를 죽이리라 다짐한 덕분에 살았다고 말한다. 그는 증오가 결국 새로운 증오를 낳고 언젠가 자신을 멸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웃으며 파국에 나아갈 것이라 다짐한다. 자신의 영혼을 죽어가게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에 대한 복수의 다짐이 삶의 원동력이 되고, 다시 삶은 파괴와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그에게 고마워하고, 다시 그를 미워하고, 인정할 없지만 그를 사랑하는, 딸의 이러한 복잡한 감정은 증오가 사랑과 맞닿아있고, 죽음이 삶과, 그리고 삶이 다시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모순된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고 있다. 일관되지 않아 거짓되게 보이는 감정들이 역설적으로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

 김윤아는 이렇게 삶의 진실이란 모순되어 있고 때로 거짓되기 까지 하며, 그런 모순과 거짓을 온몸으로 체화하여 드러내는 것이 노래이고 예술이라는 것을 서론에서부터 암시했다.

 

2.

 서론의 곡을 부른 김윤아는 공연의 구성을 증오/파괴, 사랑, 죽음, (자아) 등의 카테고리로 나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카테고리의 시작에서 준비해 시나 , 혹은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앞으로 부를 곡들을 소개했다는 점이다. 글에서는 여러 카테고리 특히 사랑 카테고리와 죽음 카테고리에 주목해 보려고 한다.

 사랑의 파트를 열며 김윤아는 자신이 공연에서 부를 곡들을 분류하며 그동안 사랑에 관한 노래를 생각보다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자신은 아름답고 상대에 대한 믿음만이 가득한 사랑을 경험해 적이 없고, 또한 그런 사랑을 아직은 믿을 수도 없기에 그런 사랑 노래들을 없었다고 한다. 그가 사랑 카테고리에서 부른 <> 가사를 보자.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내가 하는 말이

당신에게 닿지 않아요

내가 말하려 했던 것들을

당신이 들었더라면

당신이 말할 없던 것들을

내가 알았더라면

(중략)

 

<>에서 화자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지만, 연인 사이에는 낮은 담이 있기에 서로의 내밀한 말도, 부서진 마음도, 진실도 없다. 완전히 서로를 수도 없도록 높게 뻗은 담이 아니라낮은 이기에,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자리한 담은 때로는 보고 지나쳐지고,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중요한 삶의 순간에서 존재를 빼꼼히 드러낸다. 전통적으로 사랑은 상대와 모든 것을 공유하고 서로가 둘이 아니게 되는 인간의 최고의 진실된 감정인 것처럼 찬양되어 왔다. 그러나 김윤아는 결국 사랑의 감정은 이별과 거리, 나아가 죽음까지도 내포하고 있는 모순된 감정임을 알고 있다. 그가 카테고리를 열며 말했던 것처럼 사랑은 아름답기만 것이 아니라, 동시에 추악하고 슬프며 외롭고, 언제나 소멸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감정인 것이다.

 사랑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던 다른 , <비밀의 정원>에서도 사랑이 내포하는 진실은 위와 같다. “다른 모든 이야기처럼 시작은 소녀와 소년이 다른 모든 사람들 몰래 사랑에 빠지는 이지만, 영원을 꿈꾸고 사랑을 구하는 그들의 소원과 달리 사랑의 시작과 함께슬픔의 열리고 '사랑의 이름을 잔인한 놀이 서로를 부수게 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이야기들처럼 결론은 순결하던 소년과 소녀가 어른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아이와 같은 순결함, 무구함에서 시작한 사랑은 맑은 특성으로 인해 더욱 잔인하고, 그렇기에 사랑에 빠졌던 아이 같은 영혼들의 결말은 사랑의 진실을 모두 알아버린, 지치고 무딘 어른의 영혼이 되는 . 달콤하게 보이는 사랑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이러한 쓰디 진실이, 바로 김윤아의비밀의 정원 들어있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김윤아는 사랑에 대한 모순된 진실을 알고 있으므로, 마치 태엽을 돌리면 반복되어 흘러나오는 오르골 소리처럼 섬뜩하고도 달콤한 목소리로 비밀의 정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언제든 당신이 원한다면 가혹하고 잔인한 사랑의 진실에 대해 들려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이.

 

 마지막으로 죽음 카테고리의 도입부에서 김윤아가 읽은 시를 인용해 보려고 한다.

 

이렇게 늦게 어둠 속의 바람을 가르며 

말을 달리는 자는 누구일까? 

그것은 아이를 따뜻하게 품에 안고 

말을 타고 달리는 아버지이다. 

 

아가, 너는 무엇이 그리 무서워서 얼굴을 가리느냐? 

 

아버지, 아버지는 마왕이 보이지 않습니까? 

관을 쓰고 옷을 늘어뜨린 마왕이... 

 

귀여운 아가, 이리 오너라.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 

 

곳에 아름다운 꽃이 많이 피어 있고 

너의 어머니는 많은 금으로 옷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 아버지는 들리지 않습니까?

마왕이 귀여운 소리로 속삭이고 있는 것이...

 

가만히 있거라 아가. 걱정하지 말아라. 

마른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이다. 

 

귀여운 아가. 

나와 같이 가자. 

소녀들이 너를 즐겁게 주리라. 

밤에 춤추는 가서 즐겁게 줄테니...

 

아버지, 아버지, 어두운 곳에 

마왕의 소녀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아가. 아가. 아무 것도 아니란다. 

그것은 잿빛의 오래 버드나무란다. 

 

나는 네가 제일 좋다. , 오라.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억지로 끌고 가겠다. 

 

아버지, 아버지, 지금 마왕이 나를 잡아요. 

마왕이 나를 심하게 해요.

 

아버지는 무서워서 급히 말을 달린다.

팔에는 떨면서 신음하는 아이를 안고서...

지쳐 집에 도착했을

사랑하는 아들은 품에서 이미 죽어 있었다.

 

김윤아는 별다른 부연 설명도 없이 오로지 시를 통해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자 했다. 우리의 주변에, 삶에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함께 하고 있고, 때로 죽음의 유혹은 무서우면서도 너무나 달콤하다는 . 특히나 아이와 같이 연약하고 세계에 예민한 존재에게서 더욱 그렇다는 . 세상의 흘러감에 적응한 아버지와 같은 존재들에게 죽음을 보는 아이의 눈에 비친 세계는 자체로 거짓말이고 모순이지만, 결국 그러한 망상이 세계에 대한 진실인 것이다. 김윤아는 자신도 마른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에서도, 잿빛의 오래된 버드나무에서도 죽음을 발견하는 연약한 영혼의 존재임을 은유적으로 고백하며, 죽고자 하는 욕망, 죽은 이에 대한 애도와 추모, 죄의식, 다시 없다는 알면서도 기다리는 남겨진 이들의 감정을 노래한다.

 

3.

 <노래가 슬퍼도 인생은 아름답기를> 이렇게 공연 내내 거짓과 모순으로 점철되어 슬픈 인생에 대한 노래로 가득 있었으며, 노래들은 담담하게 아름다웠다. 김윤아는 공연 내내 거짓과 모순이 실은 삶에 대한 가장 진실한 태도이자 진술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목소리로 보여준 것이다. 그는 언젠가 아름답기만 사랑 노래를 불러보는 것이 꿈이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했지만, 나는 안다. 그가 세계의 거짓과 진실을 모두 보는 연약한 영혼의 소유자로 남는 이상, 모순이 없이 아름다움만 있는 노래는 결코 울려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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