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ós, Samantha Jones! - <Sex and the City> 사만다를 보내며 -
레몬밤
이 글은 드라마 및 영화 <Sex and the City>의 내용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 섹스하는 여자야!”
아부다비, 중동의 한복판. 히잡을 써야만 하는 여인들. 여자에게 금지된 팔, 가슴, 다리가 드러난 옷. 그런 옷을 입은 한 여자의 가방이 뒤집히며 콘돔이 쏟아진다. 정숙하지 못한 여자에 대한 남성들의 비난과 손가락질이 이어진다. 그러자 그가 가운뎃손가락을 들며 외친다. “Yes, condoms! I HAVE SEX!”
이처럼 속 시원한 장면이 또 있을까. 영화 <Sex and the City 2>의 후반부 장면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중동 남자들에게 크나큰 엿을 날려준 주인공은 바로 사만다. <Sex and the City>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다.
사만다에게 욕망의 발현과 충족은 때와 장소, 그리고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사만다는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 서러워 미란다 어머니의 장례식 도중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요가 수업 도중 옆 남자에게 “Wanna fuck?”을 외치기도 하며, 남자 수도승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사진] "남자가 보자마자 뿅 갈만한 거로 주세요." 속옷 가게 직원에게도 거침없는 사만다.
이렇게 단편적인 사실들만 늘어놓으니 마치 사만다가 성욕에 미친 소시오패스 같아 보이지만, 이는 연출에 불과하다. 사만다 역을 맡은 배우 킴 캐트럴이 나머지 출연진과 스태프들에게 오랜 시간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드라마 초창기 이미 유명 배우로 사랑받은 킴 캐트럴과 달리 라이징 스타였던 사라 제시카 파커(캐리 역)가 킴을 질투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한데, 사라는 친구 마이클 패트릭 킹과 함께 <Sex and the City>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면서 드라마에 자신의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고, 킴은 시즌이 흘러갈수록 점점 더 많은 노출을 감행하며 섹스에만 환장하는 듯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다. (각: 이건 정말 사라 제시카 파커가 못됐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캐리를 제외한 나머지 세 주인공은 드라마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상당 수준의 노출 장면을 찍었는데, 캐리는 같은 상황에서도 늘 속옷 차림이거나 다리만 나오거나 한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사만다를 매력적이라 말한다. 배배 꼬인 연출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랑스러운 것은 사만다라는 캐릭터에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I am 50 fucking 2 and I will rock this dress.”
사만다는 나이에 대한, 섹스에 대한 모든 사회적 편견을 온몸으로 거부한다. 사만다가 고정관념에 찌든(?) 가부장제의 공주 샬롯과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인 이유다. 사만다는 네 주인공 중 가장 나이가 많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인다. 36살이 되는 것에 기겁하는 샬롯과 달리 사만다는 안경을 쓴 자신을 멋진 45살로 칭한다. 52살이 되어서도 사만다는 십 대 스타가 입을만한 (혹은 모두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드레스를 입고 당당하게 시사회에 나간다.
[사진] 유방암에 걸린 여성들을 위한 격려 연설을 할 때도 “빌어먹을, (유방암에 걸린 여성) 그게 바로 나에요.”라고 시원하게 외치며 가발을 벗어 던지는 사람, 그가 사만다다.
자신의 건축가와 잠을 잔 ‘헤픈 여자’라서, ‘몸 팔아서 일을 구한 것 같아서’ 사만다를 고용하길 거부하는 리처드 라이트에게도 사만다는 자신이 남자였다면 진작에 리처드가 위스키 한 잔을 주면서 악수를 건넸을 거라고 쏘아붙인다. 뒤로 가서는 울고 말았지만, 거물급 사업가 앞에서도 당찬 사만다는 끝끝내 일을 따낸다.
[사진] 택배 기사에게 오랄 섹스를 해주다 캐리에게 들킨 뒤 말다툼을 할 때도 사만다는 “내가 숨을 쉴 수 있고 무릎을 꿇을 수 있는 한 오랄 섹스를 할거야!”라는 사만다다운 대사를 남긴다.
“I love you, but I love me more.”
결국, 사만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사만다는 순간순간 ‘나 자신’에 충실한 삶을 산다. 남자라는 것은 사만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취사선택 가능한’ 요소로 존재한다. (중간중간 사랑에 빠진 정말 몇 안 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사만다는 ‘벤츠’ 연하남 스미스 제로드에게 “I love you, but I love me more.”와 같은 명언을 날리며 이별을 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사만다의 친구들(특히 캐리)은 남자와의 관계에 매인 삶을 보여준다. 하버드 법대를 나온 능력 있는 변호사 미란다는 바람까지 핀 남편 스티브를 거둬주다 못해 그의 치매 걸린 시어머니까지 부양한다. (각: 스티브는 <Sex and the City> 전 시즌을 통틀어 최고의 똥차다. 관계가 이어지는 내내 미란다를 가스라이팅 하는 것을 보면 아주 기가 찬다.) 그리고 원치도 않았던 남자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브루클린으로 이사를 가고, 좋은 직장에서 작은 직장으로 이직한다. 명문 스미스 여대를 나와 갤러리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샬롯은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결혼 생활에 매진하다가 경력 단절이 된다. (각: 샬롯의 경력이 너무 화려해서 다른 갤러리에서 샬롯을 채용하는 것을 꺼린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샬롯은 유대교로 개종까지 하는 노력 끝에 재혼에 성공하고, 그렇게 원하던 아이를 둘을 키우게 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크림색의 빈티지 발렌티노 치마를 제물로 바치게 된다. 캐리는 여전히 작가 생활을 이어가지만, 자신의 주 무기였던 ‘싱글 걸’의 생활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면서, 칼럼 Sex and the City의 정체성은 사라지게 된다. (각: 그리고 캐리는 이미 작가의 수입으로 자신의 집을 살 만큼의 재산을 모으지 못해 미스터 빅을 찾아가 돈을 빌린 적이 있으며, 알렉산드르 페트로브스키를 따라 직장, 집, 친구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 파리로 떠난 적도 있다.) 굳이 드라마의 결말이 아니더라도, 사만다의 친구들과 사만다는 정말 다른 인간관계의 양상을 보여준다.
[사진] 캐리의 약혼 소식을 들은 사만다의 하소연
“We have it all? Samantha has it all!”
친구들이 이러한 길을 걸을 때 홀로 남아 수 백만 원 가까이 되는 집세를 내면서 자신의 사업체를 꾸준히 운영하는 사람은 사만다만이 유일하다. 사만다야말로 모든 걸 가진 “Fabulous”한 싱글 걸의 삶을 사는 것이다. (각: <Sex and the City>가 비혼주의 드라마는 아니지만, 주인공들이 결국 어떠한 관계에 매여버린 삶을 산다는 것은 화려한 싱글 걸들을 동경하며 바라봐 온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배신이 아닐까. 결국 ‘화려한 싱글 걸’의 유통기한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싱글 걸’로서의 미래나 희망이 안 보이지 않는가.)
[사진] 사만다는 자신이 멋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기 없는 베이비 샤워(I don’t have a baby shower)”를 여는 여자다.
“We are soulmates.”
사만다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우정을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사만다는 리처드 라이트의 바람기를 의심하며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를 일찍 떠나기도 하지만, “남자와 자식 때문에 우정을 버리지 않기로 했지 않냐”라면서 친구들과의 시간을 위해 남자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기도 한다. 사만다는 약혼했다는 캐리에게 “Fuck you”를 내뱉지만, 뒤에선 캐리의 남자친구가 프로포즈 반지를 고르는 것을 도와주며 누구보다 캐리를 응원한다. 사만다는 미란다의 아이가 브런치 자리에 와 있는 것을 대놓고 불편해하지만, 자신이 몇 달 전부터 예약해 둔 미용실을 미란다에게 양보하며 아이를 대신 봐준다. 셰익 칼리드가 아부다비에 있는 자신의 호텔에 사만다를 초대한다고 하자 그가 유일하게 내 건 조건이 “자신의 세 친구(캐리, 미란다, 샬롯)를 함께 초대하라”인 것만 보아도 사만다가 친구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다.
사만다는 그만의 방식으로 친구들을 사랑하고 위로한다. 사만다가 있기에 보수적인 샬롯은 수줍지만 편하게 친구들에게 자신의 욕구를 드러낼 수 있고, 캐리는 남자관계에 있어서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한 선택을 할 수 있으며 미란다는 ‘미혼모’라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사만다는 철부지 친구 같기도, 든든한 언니 같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사만다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뒤틀린 듯하지만 뒤틀리지 않은 당당함 때문이며, 그 속에 숨어있는 인간적인 면모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과한 자신감과 자기표현을 통해 우리는 대리만족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의 인간적인 따뜻함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고 말이다.
<Sex and the City>의 영화 3편 제작이 지난 2018년 최종무산 되었다. (각: 애초에 영화 2편부터 개연성이라고는 개나 준 전개가 계속되었고, 영화 3편의 시작이 미스터 빅의 죽음이었다는 데에서 판단하건대 3편이 만들어졌다 한들 완성도가 높지 못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무산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킴 캐트럴은 <Sex and the City> 리부트에 대해 자신의 나이가 이미 61살이며, 이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때가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드라마의 오랜 팬으로서 네 명의 싱글 걸들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못한다는 것은 아쉽지만, 수년간 지속된 따돌림이라는 수난 속에서 킴이 만들어 온 사만다를 이제는 놓아줄 때가 온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만다는 늘 내 마음속 ‘최애캐’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사만다로서의 킴 캐트럴이 아닌 배우 킴 캐트럴을 응원한다.
아디오스, 사만다!
'PEEP VOL.04 [2019-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묭(あいみょん)순애가 ~들어~ (0) | 2019.10.08 |
---|---|
펀치드렁크 러브, 찌질함과 답답함 (0) | 2019.10.08 |
Road to Vntrve Kvlt (0) | 2019.10.08 |
우주소녀의 판타지 – 케이팝 마법소녀의 연대기 (0) | 2019.10.08 |
김윤아가 노래하는 모순의 시- 김윤아 <노래가 슬퍼도 인생은 아름답기를> 후기 (0) | 2019.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