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 PICK






오버더펜스 : 신철규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주고 싶지만, 막상 상대방의 기호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주저하게 될 때가 있다. 종종 너무 맘에 들었던 시집이나 책을 골라서 건네주었지만 상대방의 질타를 받곤 했다. 내 취향이 점점 보편에서 유리되어 간다는 위기감이 드는 무렵, 내 우려를 불식시켜주는 대중적 문학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중적이지만 훌륭히 문학적이고, 문학적이지만 충분히 대중적이다. 물론 유명인의 언급에 의해 화제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다고 그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철규와 박준은 아직까지 한 편의 시집만을 낸 신인 작가들이지만, 데뷔 시집으로 단숨에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다. 이 풋내기 시인들의 ‘실존적 엄살’을 마음껏 향유하셨으면. 그리고 앞으로 이들이 걸어가는 길도 주목해 주셨으면.    








푸른수염 : Tablo+Pe2ny, <Eternal Morning>



에픽하이의 타블로와 프로듀서 페니(Pe2ny)의 프로젝트 그룹 이름이자, 이들이 2007년 발매한 앨범의 이름. 부제가 <Soundtrack to a lost film>인 만큼, 가상의 영화와 씬에 대한 가상의 영화음악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앨범을 사면 가사집에 가사 대신 각각의 곡에 해당하는 영화에 대한 간단한 설명(장르 등)과 연출된 스틸컷이 들어있다.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에서부터 스릴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어 개별 수록곡들의 분위기도 천차만별이다. 한창 에픽하이에 정신이 나갔던 시절 필자는 팬심으로 이 앨범을 골백번도 더 돌려 들었지만, 몇 년이 지나고 팬심을 빼도 충분히 좋은 앨범이라 아직까지도 많이 듣고(특히 카페에서 공부할 때에 매우 유용), 이번 핍에 쓰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특히 겨울에 들으면 정말정말 좋다. 가장 아끼는 트랙은 타이틀곡인 <White>. 곡의 전주 부분부터 마음이 서늘해진다. 이 곡은 타이틀이라고 나름 뮤비도 있다..! 뮤비는 그 무렵 나온 여느 에픽하이 뮤비들처럼 또라이같고… 어쨌든 한 번쯤 볼 만하다.

다른 추천 트랙은 <Holden Caulfield>, <Father’s Watch>, <Eternal Mourning>.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들어보시라. 장범준의 벚꽃연금처럼 매해 겨울 당신의 트랙리스트에 돌아오는 음반이 될지도 모른다.








양장피 : Ohashi Trio, <I Got Rhythm?>



트리오라고 적혀있지만, 본명이 오오하시 요시노리인 아티스트의 솔로 유닛이다. 재즈팀 형식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고, 한 사람이 트리오라면 더 기억에 남고 재밌지 않을까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는 재즈, 포크, 팝, 소울,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켜 특유의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I Got Rhythm?>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재즈의 스윙 리듬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그의 다른 앨범들에 비해 템포가 빠른 곡들이 많고 리듬이 강조되어 있다. 할 일을 하면서 틀어놓고 가볍게 리듬을 타기 딱 좋다. 초반부터 경쾌한 곡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느린 템포의 발라드도 수록되어 있어, 과하지 않을 정도로 텐션을 끌어올렸다가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나면 기분이 산뜻해진다. 각종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아티스트의 편안한 연주 센스에 집중하고 있자면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해진다. 곡 전체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건반 처리가 기분 좋다. 추천 트랙은 세련된 리듬의 <VOODOO>, 현악기 소리와 어우러지는 남녀 화음이 낭만적인 <나와 달의 왈츠>, 마지막 트랙인 <Lady>. 가을의 산들바람 같은 앨범이다. 사실 필자는 오하시 트리오의 전곡을 사랑한다. 딱히 듣고 싶은 노래가 없을 때면 늘 그의 노래를 랜덤재생한다. 그만큼 편하고, 그렇지만 질리지 않는다. 그의 앨범 중 가장 인기를 끈 건 특유의 어쿠스틱한 편곡으로 채워진 커버 앨범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작곡들이 더 좋다. 14개의 앨범을 다 들어볼 시간이 없으신 분에겐 베스트 앨범인 <Standard Best>를 추천드린다. 소개한 앨범보다도 더 세련된 오하시 트리오를 느끼고 싶다면 <PARODY> 앨범을 추천드린다. 혹시 한국 인디 보컬 CHEEZE의 <Be There>을 좋아한다면, 꼭 원곡자인 오하시 트리오의 버전을 들어보시길.








이제로: Goodnight Moon, <ASMR Summer in Portland>,

https://www.youtube.com/watch?v=wISgLn-dBNM



ASMR 중 단 하나의 영상만을 고를 수 있다면 단연 이 영상이다. <ASMR Summer in Portland>는 Goodnight Moon채널의 주인인 Erin의 포틀랜드 여행기이다. Goodnight Moon만의 빈티지함과 노스탤지어가 가득 묻어난다. 뛰어난 영상미 덕에 ASMR을 넘어 단편 필름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ASMR의 본분을 져버린 것은 아니다. 정원의 새소리, 밤 중 드라이브, 모닥불 등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ASMR은 우리가 그런 것들로부터 살면서 한 번쯤 느꼈을 듯한 기분 좋음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여러모로 필자가 진심을 다해 애정하는 영상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도 추천하지만, 이불 속에서 도무지 나오기 싫은 나른한 아침에 이 영상을 한 번 보길 권한다. 그날은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하루가 될 테니!







이르름 : 10cm - Good Night (10cm The First EP)

https://youtu.be/LrTSR1jJcGg



남들과 다른 것을 들으면 특별해진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인디씬을 헤매며 십센치의 나름-데뷔팬이 되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거의 음원만 들었으니 가수 입장에서는 상당히 실속 없는 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기나긴 안방팬 생활을 청산하고 인생 첫 콘서트를 다녀왔고, 콘서트가 끝난 후 관객들의 좋은 밤을 빌며 영상링크를 보내주는 그의 세심한 스윗함에 완전히 잠겨버렸다. (그렇다. 저 영상 영업글이다.) 물론 줄곧 권정열의 끈적함과 특유의 찌질한 감성에 붙들려버린 거지만, 요즘은 작자 본인의 고통에서 우러난 차분한 위로들이 간절하고 또 소중하다. 그래서 더더욱 지치고 잠들기 힘든 밤에 오래도록 함께할 것 같은 곡. 개강과 함께 시작될 전쟁 같은 날들을 보낸 후 잠들기 전 듣는다면 좋지 않을까. 험난한 세상에서 돌아와 마음의 먼지를 터는 기분으로 듣는다. 오늘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고요하고도 거친 밤공기, 바람 소리, 달빛에 너의 평화롭진 않았을 것 같은 어지럽고 탁한 긴긴 하루, 너의 새벽, 빈 창가. 나쁜 기억에 아파하지 않았으면, 숱한 고민에 밤새우지 않았으면.  





도리스 레싱 - 풀잎은 노래한다



내 맘대로 선정한 2017년의 책. (출판년도는 1949년이며 원서를 추천한다.) 아주 오랜 시간 쌓아 올려지는 고통스러운 고구마를 맛볼 수 있다. 아주 미묘하며 흥미롭게도 맛있는….고구마. 아프리카의 백인들을 작중 인물로 내세워 인종, 성, 자본에 따른 계급이 미치는 영향력을 독자에게 서서히 스며들게 한다. 밋밋한 일상에서 이끌어내는 장기적이고 세세한 심리 묘사가 최고였고, 훌륭한 소설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레몬밤: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막장보다 더한 막장. 막장이란 이런 것. 상상 가능한 모든 막장과 상상할 수도 없는 모든 막장의 총집합. “그 누구도 믿지 마라”의 표본. 시간은 때우고 싶은데 지루한 건 싫다면 추천한다. (그렇게 필자의 한 학기가 날아갔다.) 시즌 1 첫 화 첫 장면부터 어그로를 끌면서 시작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막장 전개에 뒤통수가 얼얼하다 못해 무감각해진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이게 말이나 돼?” ㅡ 어이가 없는 것을 넘어서서 작가가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작가의 떡밥 회수 능력이 수준급이라 정신 차려보면 귓가엔 오프닝 음악이 맴돌고, 다음 시즌이 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의 성격까지도 막장이다. 중반 이후 가브리엘의 캐릭터 붕괴가 아쉽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일관적이라 열심히 욕을 하며 볼 수 있다. 내 최애 캐릭터가 가브리엘이라면(인생은 가브리엘처럼 편법과 임기응변으로!) 최악은 톰 스카보다.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서 암살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막장에 가려져 있지만,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진한 우정을 다룬다. 나름대로 -특히 시즌 8 마지막 화에서는- 철학적인 고민을 던져주기도 하고. 에피소드 개수도 많고 시즌도 8개나 되지만 프링글스처럼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물론 시즌 7부터는 의리로 본 게 없지 않아 있다. 그렇지만 버티고 버텨서 시즌 8까지 보고 나면 위스테리아 가에 정들어 버린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끝까지 막장에 되먹지 못한 전개를 보여준다는 것은 안 비밀.





백예린 - square (미발표곡)
https://youtu.be/_md16sTcnPM (ⓒ cyidra)



사실 PEEP PICK으로 끝내기엔 부족해서, 좋아하는 보컬리스트들에 대해 짧은 글을 적는 코너를 기획해볼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동안 생각에만 머문 글들이 몇 개였던가. 백예린의 목소리와 감성은 혼자서만 간직하기 아깝다. 노래를 잘하는 건 기본값이다. 진정으로 노래와 하나가 되어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다 보면 이 아티스트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된다.

이 곡의 포인트는 청량하게 울려퍼지는 건반 소리다. 여기에 영어 가사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녀의 음색이 더해진다. 시원하게 부는 봄바람과 따뜻한 봄 햇살 속에서 도시 곳곳을 누비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밴드 사운드와 어우러지는 백예린의 목소리는 음원과는 또 다른 생동감이 있다. 공연마다 편곡이 바뀌기도 하니 이리저리 직캠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당신, 지금 당장 링크를 타고 들어가 유투브 탐험을 시작하라.







kㅏ구 : 김동률 <Reply(답장)> mv 4분 43초 (미니 앨범 <답장> 中)

https://www.youtube.com/watch?v=kMRLzSQorK0


(mv 4분 50초)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여자의 얼굴도 붉게 차오른다.

   매년 여의도에서는 불꽃 축제가 열린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다. 너무 붐빌 테니까, 또 매일 보던 서울 하늘에 하루 불꽃이 터진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다 싶어서 그랬다.  

   김동률이 3년 3개월 만에 신곡을 발표했다. 1주일가량이 지나서야 노래를 들었다. 어느 가수의 베스트 앨범 만을 계속해서 들었던 요즘이었다. 그녀의 베스트 앨범은 이미 30여 년 전의 것. 그때의 세상으로 도망가 잠시 살고 있었다.

  핍픽에 그것을 소개할까 싶기도 했다. 음악에 욕심이 많은 편도 아니라 신곡이 뭐가 나오는지, 트렌드가 무엇인지 살펴볼 여유도 없었고. 김동률의 노래라면, 굳이 여기에 소개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을 테고. 그래, 또 누군가에게는 그의 노래가 청승맞은 클리셰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러나 결심은 4분 43초에 무너졌다.

   김동률의 노래는 탄탄하고 조밀하다. 그는 5~6분에 걸쳐 노래를 짓는다. 선율과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간다. 이를테면 건물의 골조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점에 이르면, 그 뼈대 안에서 메이고 겨웠던 무언가는 터져 흐르고 만다. 'Replay'에서는 왜곡된 기억 안에 갇혀 버린 남자가 통곡을 하며 무너졌고, 이 직전의 타이틀 곡이었던 '그게 나야'에서는 남자의 눈물 대신 흐린 하늘에 빗줄기가 쏟아졌었다. 그의 노래를 듣는 일이란, 골조물 잔해만 남은 그 광경을 부러 찾아가는 일과도 같았다.

  그의 노래에 관한 후기를 찾아보다가, 걔 중에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난 듯 느껴지는 노래 속 화자의 이야기'라는 표현을 보았다. ‘참 옳다’ 싶었다. 그는 시공도 비껴간 채로, 자신의 마음만을 돌이켜 살펴본다. 때로는 그 시간을 되감고 싶어 하기도 한다. 자폐적인 세계 안에서 그는, 전하지도 못한 반성과 고백과 후회를 짓고 무너지길 반복했다.

   자, 그런 그가 이번에야말로 '답장'을 쓴다. 내가 '알다시피 좀 많이 느려서','미루고 미뤘지만',‘답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이제 다 소용없겠지만’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가지고서 말이다.

  여지껏 그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 융통성 없어 보이는 독백이 답답할 수도 있었겠다. 아니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에 ‘감동’을 연발하는 것도 이제는 지겨울 수 있겠다. 그래서 그만큼이나 흔해진 노래가 따분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이번에는, 같이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그가 어떻게 무너지고 쏟아지는지, 아니 쏘아 올려 터뜨리는지. 그가 보낸 답장을.



추신1. 그는 앨범을 발표한 직후, sns를 통해 故종현을 언급하며, ‘음악으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잘 살아가고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고 전했다.  

추신2. 여의도 불꽃 놀이를 보러 가실 분 구합니다.

 











왕수박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스트리밍 데이터로 선정한

2017년 올해의 K-POP / J-POP [TOP5]


*순서와 순위는 무관

K -POP


이달의 소녀 오드아이써클 - ‘Sweet Crazy Love'

‘이달의 소녀‘는 2016년 10월부터 한 명씩 솔로 데뷔를 통해 멤버를 공개, 총 12명의 완전체 그룹을 만드는 스토리텔링 아이돌이다. 완전체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는 시점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3인조 유닛 ‘오드아이써클’은 ‘이달의 소녀’ 기획의 탄탄한 자본과 프로듀싱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단숨에 이들을 2018년 가장 주목해야 할 신인으로 만들어주었다. 감각적인 스트링 루프로 시작하는 드림팝 <Sweet Crazy Love>는 이 웰 메이드 팝 앨범의 단연 주인공. 메인 스트링 사운드와 착 붙어있는 몽환적인 패드와 보컬 믹싱이 리스닝 포인트.


효린, 창모 - ‘BLUE MOON’

대중들에게 이미 수없이 검증받은 보컬 + 라이징 랩 스타의 피처링 + 흠잡을 데 없는 트로피컬 사운드와 드랍 편곡은 2017년 대중적으로 성공한 첫 EDM을 탄생시켰다. 2015년 샤이니의 'View', 2016년 태연의 'Why' 등 트로피컬 사운드 및 하우스 장르를 K-POP에 이식하려는 움직임은 있었으나, 후렴의 드랍 파트에서 보컬이 극도로 배제된 싱글이 이처럼 대중적으로 흥행한 케이스는 'BLUE MOON‘이 처음이라 하겠다. 선미의 ’가시나‘, EXO의 ’KoKo Bop'등 후발주자들의 히트는 분명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워너원 (Wanna One) - ‘Energetic’

이전 시즌의 프로젝트 그룹 'IOI'가 김이 몽땅 빠져버린 데뷔곡으로 화력을 날려버린 선례가 있기에 데뷔가 다가올수록 ‘국프’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나 미리듣기 투표로 선정된 ‘Energetic’은 이 걱정을 단번에 날려버리고도 몇 트럭이 남아버린, 올해 최강의 ‘남돌 명곡’으로 선정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싱글이었으니. 단 한 차례의 변주도 없이 밀고 들어가는 4-3-6 코드에 얹어진 스타카토 기법의 일렉트릭 피아노, 청량한 신스 사운드는 고막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특히 건조한 드랍과 함께 시작되는 1절 후렴구는 2017년 K-POP에서 가장 짜릿한 파트.


신해경 - ‘모두 주세요’

2017년은 인디 뮤직 혹은 뮤지션이 얼마나 모래밭 위에 서 있던 개념이었는지를 모두가 확인한 해이기도 했다. 소위 ‘페이스북 픽’으로 불리던 역주행 음원의 유행은 철저한 인디펜던트 뮤직과 대중성과 상업성을 확보한 중소기획사의 상업 음반이 사실상 구별할 수 없는 것임을 밝혀낸 것이다. 그러나 신해경은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도 어찌 되었든 후자에 속할 일은 없어 보이는, 그런 ‘힙하고’ ‘인디스러운’ ‘나만 알고 싶은’ 뮤지션으로서 적당한 관심을 받으며 뜨뜻미지근한 한 해를 보냈다. 홈 레코딩으로 만들어졌다고 믿기 힘든 독창적인 사운드와 탄탄한 곡의 짜임새는 어쨌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곡을 들을 수밖에 없게 했지만, 글쎄. 뭔가 역주행에는 어울리지 않는 갬성~ 그러나 직관적으로 좋은 음악.






아이유, 오혁 - ‘사랑이 잘’

4년 만에 발매한 정규앨범 ‘Palette'의 선공개 곡. 전작 ‘Modern Times’가 재즈, 블루스, 스윙, 보사노바 등 말 그대로 모던의 각종 장르를 총망라하며 수많은 작가진을 갈아 넣은 블록버스터였다면, ‘사랑이 잘’은 셀프 프로듀싱이 가능한 아티스트 이미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제작된 앨범 ‘Palette'의 가장 핵심이 되는 싱글이다. 2017년 현재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편곡, 멜로디, 가사, 보컬의 엑기스 그 자체. 모두가 많이 들을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 노래.






J -POP


DAOKO X 米津玄師(요네즈 켄시) - ‘打上花火’ (うちあげはなび, 쏘아올린 불꽃)

2017년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싱글. 애니메이션 영화 <쏘아올린 불꽃, 위에서 볼까 아래서 볼까?>의 주제가로 사용된 이 곡은 J-POP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이고 대중적인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히트했으며, 동시에 신인가수 DAOKO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영화의 일부를 편집하여 만든 뮤직비디오를 통해 감상하면 곡의 감성이 두 배가 된다. (링크) 이 뮤비는 현재 유튜브 조회수 1억을 돌파하였으며, 아직도 뮤비를 DVD로 파는 일본에서는 매우 기념비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 필자는 이 곡을 DAOKO의 내한공연에 방문하여 라이브로 들었음을 이 면을 빌어 자랑해본다^ ^)

(https://www.youtube.com/watch?v=-tKVN2mAKRI)



倉木麻衣(쿠라키 마이) - ‘渡月橋 ~君 想ふ~’ (도월교 ~그대를 생각하오~)

2017년 일본에서 위의 곡 다음으로 히트한 싱글.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주제가 전용 가수로 잘 알려진 쿠라키 마이의 화려한 재기작으로도 볼 수 있겠다. 이 싱글 역시 2017년 코난 극장판의 주제가로 사용되었는데, 동양풍의 영화 컨셉에 맞추어 제작된 트로트 혹은 엔카 풍의 J-POP이다. 애잔한 감성의 뽕삘이 한 바가지 들어있어 홍진영 혹은 장윤정이 불렀다면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했을 것임을 감히 예견할 수 있을 정도.


Perfume - If you wanna

EDM 아티스트로의 완전한 전환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는 Pefume의 2017년 하반기 싱글. 퓨처베이스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물론, 영어 가사의 EDM 드랍 파트를 후렴으로 사용하여 사실상 J-POP보다는 EDM 카테고리로 분류되어야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곡의 꽉 찬 드랍 사운드는 그룹의 라이브에 최적화되어있으며, 공연장을 클럽으로 만들어버리는 파워를 보여준다.


Polkadot Stingray - Synchronisica

시이나 링고를 연상시키는 보컬, 자극적이지만 흡입력 있는 기타 리프로 인디 락 씬에서부터 가파르게 인기를 얻은 밴드. 'Synchronisica'는 밴드의 메이저 데뷔앨범 수록곡으로 가장 자극적인 리프와 속도감을 보여주는, 가장 ‘Polkadot Stingray다운’ 트랙이다. 2015년 데뷔 후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어 2018년이 가장 기대되는 J-ROCK 밴드.



安室奈美恵 (아무로 나미에) - In Two

2017년 J-POP씬에서 단 하나의 사건을 꼽자면 바로 아무로나미에의 은퇴 선언일 것이다. 이 면에 아무로 나미에의 인생사와 은퇴의 의미를 줄줄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국민 가수였던 그녀의 은퇴 선언은 일본에 대국민적 충격을 선사했다. 뒤이어 커리어의 종점으로서 발표된 25주년 베스트 앨범 ‘Finally'는 2017년 11월 발매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판매량 1위를 차지했으며,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총판 200만 장을 돌파했다. 'In Two'는 이 앨범에 수록된 신곡 중 하나로, 아무로나미에의 2010년대 초반을 연상케 하는 강렬한 댄스 넘버이다. 코다 쿠미와의 콜라보레이션 루머가 돌았을 정도의 강렬함과 그녀의 제2 전성기 즈음을 연상시키는 사운드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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