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대>를 보내며

(부제: 너무 이르게 송지원을 애도한다)

 

이르름

 


*이 글은 <청춘시대> 시즌12의 세부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꽤 가까운 미래도 미지수로 느껴지곤 한다. 2020년쯤 누구누구가 결혼하면 웃기겠다, 몇 년 뒤 연휴엔 여기로 같이 여행가자, 따위의 모호한 상상계획들 끝에 그때 내가 살아있다면이라는 조건을 뜬금없이 덧붙이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세상의 균형 맞추기


 "사실 서동주라는 캐릭터를 죽이려고 했었다. 한 사람 정도는 죽여야 세상의 균형이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동주가 죽고, 강이나가 '오늘의 사망자수'를 바라보는 장면을 실제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인물에 대한 애정 때문에 차마 죽이질 못했다."[각주:1]

 

 <청춘시대> 시즌1이 종료된 후 공개된 박연선 작가의 인터뷰는 시청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죽음을 통한 세상의 균형이라니, 이 무슨 하이킥 엔딩[각주:2]같은 소리인가. 이 발언은 시즌2 7회에서 하메들의 묘비명이 에필로그로 등장하자 다시 주목 받게 된다. 단순히 묘비명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생몰년도가 함께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태어난 해와 묘비명의 내용에서 묻어나는 특징으로 다섯 묘비의 주인은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가장 주목 받은 것은 매 순간이 행운이었다는 말과 함께 1995-2025(!)라 적힌 유골함의 주인공이 극중 95년생인 송지원(박은빈)이었다는 점이다. (95년생 동갑내기 룸메이트 정예은(한승연)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십자가 모양 묘비의 주인이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송지원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은 묘비명에서 그치지 않는다. 13회의 에필로그에서는 한 여자아이가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의 손을 잡고 여기가 엄마가 살던 곳이냐고 묻는다. 시점은 8년 후, 2025년이고 남자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송지원의 학보사 동기이자 로맨스를 넘어선 인생 조력자로 등장하는 임성민(손승원)이다. 러브라인이 본격화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극이 끝난 후에도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남길 바라는 시청자들의 희망이 산산이 조각난 순간이었다.

 



우리 하메들 꽃길만 걸어


 야자 시간에 다같이 몰래 하이킥 마지막화를 시청하던 날, 마지막 장면을 본 같은 반 친구들은 교실에서 웅성거리거나 수군대며 복도를 배회하다 걸려서 기합을 받았다. (어차피 그 날의 야자는 전교적으로 망해버렸지만.)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라는 대사가 불러 일으킨 파장의 바탕에는 극중 인물들의 행복한 미래를 기원하는 시청자들의 바람이 놓여 있었다. 느닷없이 던져진 극중의 죽음에 대한 이런 격한 반응은 그만큼 캐릭터들이 사랑 받았음을 (다분히 변태적인 방식으로) 증명한다.

 


 

  유은재, 윤진명, 정예은, 송지원, 강이나, 조은. 12회로 구성된 두 시즌 동안 여섯 명의 하우스메이트(이하 하메’)들은 셰어하우스 벨 에포크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남녀 주연 및 주인공의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로 이루어진 구도가 기본적인 드라마들 사이에서 <청춘시대>는 다수의 주인공들이 제공하는 풍부한 경우의 수를 영리하게 활용한다. 인물의 수가 많은 만큼 저마다 다른 성격, 다른 입장, 다른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쌓아 올려야 하지만, 이 관계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특별한 사건 없이 같이 노는 것만 봐도 재미있고, 에필로그로 제시되는 짤막한 인터뷰나 트리비아들(프로필사진, 전생, 술버릇, 묘비명 등등)까지 재미를 더한다. 가상의 인물들이 정말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인물들간의 케미스트리에 의존하는 쉬운 길을 가는 대신, 하메들은 저마다 극복하고 성장해야 하는 큰 줄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각자의 삶을 사는 와중에 거실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시간을 보내며 관계가 깊어지는 쪽에 가깝다.) 이들의 이야기는 닮음으로 공감을 자아낸다고 보긴 어렵다. 은재(박혜수/지우)는 너무 소심하고, 진명(한예리)은 너무 딱딱하며, 예은은 너무 얄밉고, 지원은 너무 노골적이고, 이나(류화영)는 만사가 너무 쉽고, 은이(최아라)는 너무 어리다. 절절한 첫사랑과 첫 실연, 복잡한 가정사,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어디선가 들어본 듯도, 있을 법도 하지만 왠지 아득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 너무들로 이루어진 결점투성이들은 너무 사랑스럽다. 서로를 아끼고,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나와 다른 타인들을 예뻐하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함께 보낸 시간만으로 많은 결점들을 슬쩍 봐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 사실 장점이 더 많은 그런 너와 나와 우리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가장 사랑했던 인물이 송지원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송지원은 극에 생기를 불어넣는 밝은 캐릭터다. ‘이라 불리우며 여자 신동엽으로 소개되고 인생 최대고민이 모쏠탈출인 것으로 그려지는 이 인물은 언뜻 극의 호흡을 위한 밝은 개그 캐릭터로 보이지만, 극중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가까운 이의 죽음과 관련된 무거운 비밀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던 시즌1에서 송지원은 유일하게 시시한 비밀만을 공개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다른 하메들이 각자의 삶에서 큰 사건과 변화를 겪는 동안 도움이 되는 말을 몇 마디 턱턱 던지면서 벨에포크의 공용 공간에 존재한다. 이야기가 밝혀지지 않는 것이 더 비밀스러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궁금한 인물. 그리고 시즌2에서는 시즌1에서 암시만 되었던 그녀의 과거가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자꾸만 들리던 이명들과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 송지원은 고군분투한다. ‘문효진성적 트라우마.’ ‘예쁜 구두로 좁혀지는 이 기억들의 조각을 열심히 찾아 다니지만, 어린 시절 친구였던 효진이가 중학교 때 집을 나갔다가 연락이 끊겼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진실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다른 하메들이 시즌을 통해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결점을 극복한 모습으로 성장했다면, 송지원의 이야기는 인격적인 성숙보다는 특정 사건의 해결에 더욱 집중되어 있다. 은재는 이별을 겪으며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예은이는 데이트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서서히 극복하며 자신의 불행에 집중하는 대신 그곳에서 나오는 것을 택한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던 진명은 숨을 돌리고 다른 하메들을 돌볼 여유가 생긴다. 은이는 상처 받지 않으려는 어설픈 무관심에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모두 자신에게 없던 능력을 키워낸 것이다. 반면 송지원은 온갖 상황에서 하메들을 도우며 보였던 추진력, 추리력, 뻔뻔함 등 자신이 가진 장점을 최대치로 밀고 나간다.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게 된 다른 하메들과는 달리 지원은 과잉의 습관들을 덜어낸다.



 지원은 쉬운 길을 선택하는 대신 정면돌파를 선택한다. 송지원은 누구보다 차근차근 자신의 과거를 직면한다. 억압했던 기억들이 몰아치기 시작할 때, 모른 척하는 대신 여기로 와서 입을 연다. 가해자인 한관영이 좋은 선생님으로 축하 받는 중에도, 시간이 부족해서 다음 순서로 넘어가자고 재촉할 때도, 그녀는 손을 들어 증언한다.[각주:3]


 아무도 지원을, 그리고 하메들을 구원해주지 않는다. 친구도, 가족도, 연인도 조력자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 자기 몫의 괴로움은 자기가 지고 가야 한다. 그래서 차곡차곡 쌓인 인물들 간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청춘시대>가 로맨스물이 되긴 힘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남녀관계보다 더 끈끈한 사람 사이의 연결, 그 와중에 주체적으로 갈등을 헤쳐나가는 인물들. 그 바쁜 틈바구니에서 송지원은 시즌1에서는 하메들의 복잡다단한 관계의 중심에서 균형을 맞춰주었고, 시즌2에서는 분홍 편지라는 중심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주연이 없는 극이라지만, 그녀는 늘 중심에 놓여있었다.

 


관객의 특권, 작가의 권한


 이런 송지원이 죽었다.


 극에서 적당한 불친절함은 환영이다. 엄마가 섭렵하고 있는 6-70년대 배경의 아침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그 명확한 선악구도와 절대 숨기거나 암시되는 법 없이 명확한 독백으로 표현되는 주인공들의 속마음,주어진 상황에 대한 정형화된 반응과 그 이후에 주고 받는 예상 그대로의 대사까지. 악역은 너무 당연하게 오해를 만들고 주변 사람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오해에 빠져든다. 시청자들의 쉽고 빠른 이해를 위한 장치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이런 친절한 연출이 시청자의 자율성이자 특권을 줄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극 바깥에서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오랫동안 시청자의 특권이었다. 아무리 꽉 닫힌 엔딩을 제작진이 방영한다 하더라도,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마음껏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의 삶과 행동과 미래에 대해 마음 편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아무런 구체적인 설명 없는 단호한 죽음은 이 특권을 무시한다. 아니 누가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걸 모르는가. 세상이 잔인하기도 하고, 불운은 선악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을 모르나. 이런 불편한 진실만을 굳이 닫힌 현실로 보여주는 것에 한숨짓지 않기 힘들다.

 


“ 저는 시청자들이 왜 그렇게 주인공한테 자기를 감정이입 하는지 모르겠어요. 주인공한테 조금이라도 못되게 구는 사람을 같이 욕하는데, 그런 나는 주변사람이지 않나 싶은 거예요. 저는 누구 한 사람이 주인공이라서 주목 받는 드라마도 싫고 그런 현실도 싫어요.”

 


 어처구니 없지만 주어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또 다른 말이 힌트가 될 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청춘시대>의 다인물 구도가 가지는 장점이 비틀려서 나타난 결과가 송지원의 죽음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사랑하는 이의 상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허구적 인물의 죽음 앞에서도 무력하다. 송지원의 갑작스런 죽음에 받은 충격과 부정은, 이런 상실의 구조를 굳이 가상의 이야기 안에서도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배경과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는, 적어도 직접적인 이유가 주어지는 극중의 죽음보다도, 정말 손쓸 수 없고 설명조차 되지 않는 미래의 죽음을 알려준다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불친절은 캐릭터에 대한 예의가 부족한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야기 속에서 가장 생동감 넘치던 인물이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과정은 아무런 맥락 없이 에필로그 몇 개로 던져진다. 우리는 단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상상의 여지를 남겨준다는 것이 이런 의미는 아니었을 테지만. 한 인물의 서사는 작가의 의지로서 완결된다. 작가는 쏭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성장기이자 생존기


어렸을 적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내가 잠들면 세상도 움직임을 멈추는 줄 알았다

세상은 나를 위해  움직였고

나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 시절

세상 모든 것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존재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 없는 곳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그저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다른 사람을 내 세상의 중심에 놓기 시작한 것은


간절히 원해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분한 마음에 차라리 나를 미워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오늘 나는 다시 아프게 깨닫는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미움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

 -<청춘시대> 시즌2 7-

 


 청춘들의 소소한 일상물을 기대했다면 <청춘시대>는 조금 다르다. 일상 그 자체보다,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들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시즌2에서 새로운 하메 조은의 등장은, 모두 아주 무서운 증오가 집약된 분홍 편지때문이었다. 살벌한 저주와, 미움과, 죽여버릴 거라는 협박이 담긴 무서운 편지.


 어쩌면 이것은 사랑보다는 미움에 대한 이야기다. 예은의 목소리로 읽혀진 위의 나레이션은, 사실 하메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었다. 다소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시즌2의 중심에는, 자신을 중심으로 두는 것에서 벗어나 미움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의 자신을 돌아보고, 그 가능성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하메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미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 주인공()에게 집중하느라 주변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인물들이 자신의 삶 그 자체로 보인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인물들의 내적 변화를 통한 성장기지만, 어찌 보면 주인공이라 해서 특별히 친절할 것 없는 세상을 살아나가는 생존기에 가깝다. 사랑이 아닌 미움, 사랑을 통한 미움에 대한 것이었기에 청춘의 찬란한 면 너머 갑작스런 죽음이 비집고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날카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꿈도 희망도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제멋대로고, 알지 못한 채 남들에게 상처를 주고 다니는 이들을. 그러고는 너무 쉽게 다치고 죽어버리는 이들을. 그래도, 여전히, 이 쉐어하우스의 이름은 벨 에포크(Belle Epoque), ‘아름다운 시절이다. 하루하루가 아름답다거나, 찬찬히 뜯어보면 구석구석 썩 아름답지는 않은 자질구레한 삶이지만, 청춘은 가히 아름다운 시절이다. 부디 이 시절의 매 순간이 행운으로 기억되길. 쏭의 남은 8년은 누구보다 행복할 것이다



  1. 마이데일리(16-09-06), '청춘시대' 박연선 작가의 아직 못다한 이야기 (종합) [본문으로]
  2.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본문으로]
  3. 그러나 송지원의 진실 밝히기 에피소드 전반에서 느껴지는 과정상의 헐거움은 큰 문제다. 법과 같은 현실적인 연결고리들을 꼼꼼히 구성하지 않는 것이 작가의 오랜 약점이라 생각하지만 이 글의 요점을 빗나가므로 상술하지 않겠다. [본문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