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그 사이에서 추모하기

- ‘망각의 방법: are you okay?’를 보고 -

 

녹턴

 


 내가 사라지고 잊힌다는 건 슬픈 일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서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쩌면, 로봇처럼 모든 순간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고 조금씩 기억들은 바래지고 잊히기에 우리는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김동현 연출 1주기 추모공연, 이라는 주제 하에 공연된 망각의 방법의 첫 번째 작품이었던 ‘are you okay?’는 이런 기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시간, 그가 살아온 기억들과 만들어 온 역사.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한 공연이라니, 그저 그의 삶 이야기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는데, 러닝타임 내내 그를 진심으로 추모하고 있는 배우들과 스탭들, 그리고 그의 주변인들의 향기가 너무도 가까이 느껴졌다. 누군가를 아름답게 기억하기 위해 오히려 그를 이 시간에서 잊는 방법. 그 과정을 극 하나로 이토록 벅차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극은 크게 세 장으로 나뉜다. 이 장들은 모두 관객들이, 배우들이, 우리 모두가 김동현 연출을 잊어가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그 사이, 그리고 현재. 첫 장에서는 김동현 연출의 작품들 속 인물들이 스쳐 지나간다. 근대부터 우리나라 민족들이 겪어온 아픔과 슬픔들을 담아낸 연극의 등장인물로서 배우들이 등장하고, 모두 다른 작품에서, 다른 인물로서 분한 그들은 장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점차 마치 하나의 작품에 존재하는 것처럼 무대에 함께 올라온다. 그리고 각자의 대사를 부분적으로 읊고, 그럼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대사로 받아치고, 또 받아치고의 반복이다. 조용히 그 대사들을 읊조리는 그들은, 한 무대 위에 함께 서면서 김동현 연출의 기억의 일부가 된다. 그가 살아있을 적 한 글자 한 글자 무대 위에 열정적으로 담아냈던 순간들이, 이제는 모두 하나가 되어 온전한 그에 대한 기억만으로 남는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할 때 매 순간을 모두 머리에 담을 수 없듯이, 1장도 그랬다. 인물들이 자신의 대사의 몇 단어만, 몇 문장만 툭툭 내뱉는 그 소리들이 합쳐지면서 어떤 부분은 잊히고 어떤 부분은 기억된다. 기억하기 위해 잊는 셈이다. 점차 김동현 연출이 담아냈던 과거의 이야기들은, 과거로서 잊히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에 대한 기억으로서 망각되어 간다.


 그리고 두 번째 장은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순간들에 대해 말한다. 무대 위 배우들은 서로 사랑을 했던, 사랑을 하는, 사랑을 할 인물들로서 등장하는데 아마도 이들은 김동현 연출 곁을 스쳐 지나갔을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계속 자신을 보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보고 있는데도 지금과 같은 방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봐달라고 외친다. 그 방식은 아마도 변해가는 자신을 보아달라는,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그 순간을 모두 눈에 담아달라는 뜻일 것이다. ‘본다는 행위는 행해지는 순간, ‘보고 있던대상은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계속 나를 보라는 비슷한 어구들을 외치는 인물들의 말은, 처음엔 다소 생소하지만 점차 리드미컬한 노래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장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계속 자신을 제대로 좀 보라고 외치던 인물들의 간절했던 표정은 점점 가벼워지고 밝아진다. 여기까지 보면 우리는 과거를 잊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주제도 망각의 방법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무대 위 인물들은 극이 아무리 진행되어도 상대가 자신을 현재의 모습으로 봐주기를 끊임없이 갈망하며 서로를 다른 방식으로 보지 못한다. 그리고서 그들은 말한다. ‘괜찮다. 우리는 변해가고, 변해가는 우리의 모든 순간들을 눈에 담을 수 없지만 과거만 기억해도 괜찮다고, 현재를 놓치고 있더라도 과거는 천천히 잊어 가면 되니까 괜찮다고 말이다.


 약간은 아이러니하다. ‘망각의 방법을 주제로 하고 있고, 1장에서도 김동현 연출의 작품들 속 인물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옅은 기억으로서 남기 위해 조금씩 잊혀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2장에서 말하는 게 과거를 기억해도 괜찮다는 거라니. 사실 생각해보면, 이 극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모두 망각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는 김동현 연출을 끊임없이 회고한다. 그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연기하는 이 모든 과정이 어쩌면 보다 그를 잘 보내주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온전히 그 시간을 돌아보고 기억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 거니까 말이다. 그렇게 2장에서 배우들은 김동현 연출의 삶 속 사랑을 나누었던 수많은 이들로서도 존재하는 한편, 그러한 그의 과거 모습들을 자꾸만 되새김질하고 기억하려 몸부림친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배우들은 자신의 본모습으로 돌아온다. 비로소 현재로 돌아온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잊는 과정을 반복하며, 그들은 3장까지 다다랐다. 배우들은 각자 무대 위에서의 삶, 사소한 인생 이야기, 자신에게 중요했던 사건 등을 관객에게 대화하듯이 내뱉는다. 그러나 서로 너무도 달라 보이는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에는 그들 사이를 연결지어주는 하나의 주제가 존재한다. 바로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 누군가는 자신이 무대 위에 서는 그 순간, 현실에서의 자신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대 위에 시간을 두고 오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아무리 그리워하는 곳이 있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 바로 자신의 집이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자신이 인사를 하지 못하고 보냈던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떠올려 보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과거를 지나왔고, 역사를 살아왔다. 그러나 이들이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지금 이 곳, 현재다. 마지막 장은, 이제 현재에 남은 배우들 그리고 우리가 사라진 이를 놓아주어야 할 때인 것이다.


 극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과 함께 어떤 시간을 보냈던 이 세상에 없는 그를 기억하고 또 망각했다. 다소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이 극은 이 묘한 지점을 마치 그의 머릿속에 담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듯 잘 표현해냈다. 어쩌면 망각한다는 것은 곧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추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are you okay? 라는 이 극의 제목은, 꼭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아직은 조금 과거를 기억해도 괜찮다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잊어버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 역시도 괜찮다고. 아꼈던 사람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은 어떤 방식이든 다 괜찮은 일이니 말이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도 누군가 이렇게 나를 추모해준다면, 어딘가에서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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