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청춘들은 아직도 1994년 홍콩에 사는가

영화 <중경삼림>

 

 푸른수염

 

  *

Mama’s and Papa’s<California Dreamin’>에 맞춰 흐느적대며 춤을 추는 여자, 제복을 입은 경찰관, 쌓여있는 파인애플 캔, 어수선한 패스트푸드점. 영화 <중경삼림>을 떠올렸을 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영화 안에서 이러한 이미지들은 홍콩이라는 특수한 공간적 배경, 그리고 20대 특유의 불안정한 감성과 함께 이 작품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한 축이다. 또한 왕가위 스타일로 일컬어지는 세련된 미장센과 독특한 카메라 기법은 <몽중인夢中人>, <California Dreamin’>, <Things in life>와 같이 이 영화만을 위해 작곡한 듯한 영화음악과 어우러져 영화 자체를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느껴지도록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중경삼림>이미지와 음악과 분위기의 영화이다.

 


1994, 중국에 반환되기 직전의 홍콩. 그 정신 없이 혼란스러운 도시에 네 명의 남녀가 있다. 그들은 서로 순간적으로 사랑에 빠지거나, 이별하거나,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거나, 연인으로 발전한다. <중경삼림>은 그들의 관계와 소통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극적 특징을 분석해보고, <중경삼림>이 나온 지 이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되며, 청춘영화의 대표격으로 거론될 수 있는 것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1. 옴니버스 형식의 플롯

 

<중경삼림>은 별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두 개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여 있는 독특한 플롯을 보여준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실연당한 경찰 223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극복하려 노력하다 마약 밀매상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들은 곧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역시 실연당한 또 다른 경찰 633이 여러 사건을 거쳐 그가 자주 들르던 패스트푸드점의 종업원 아비와 연인이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이 두 이야기는 두 경찰이 애용하는 패스트푸드점을 통해 연결되며, 경찰 223의 내레이션이 두 에피소드에 연관성을 부여하고 둘을 매끄럽게 연결한다.



경찰 223과 마약밀매상 여자가 처음 길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갔을 때 나오는 경찰 223의 내레이션 우리가 가장 가까이 스쳤던 순간에는 서로의 거리가 0.01cm밖에 안되었다. 57시간 후, 나는 이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가 마약밀매상 여자와 헤어지고 난 후 패스트푸드점을 들러 새로 온 종업원 아비와 만났을 때 우리가 가장 가까이 스쳤던 순간에는 서로의 거리가 0.01cm밖에 안되었다. 난 그녀를 모른다. 6시간 후, 그녀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로 반복·변주되어 나타난다. 이 내레이션 이후 카메라는 아비가 사랑에 빠지는 다른 남자경찰 633을 화면에 잡고,  영화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에피소드로 넘어가게 된다. 그의 내레이션은 두 이야기가 유사한 주제의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면서, 옴니버스식 구성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다수의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흔하지만, 여러 인물과 그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춘 플롯들은 대개 영화 안에서 교차편집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차편집이 사건 진행의 속도감을 높여줌으로써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경삼림>은 사건의 진행 자체보다는 그에 따른 인물의 내면 표현주로 내레이션을 통해 이루어지는에 집중하면서 두 에피소드를 완벽히 분리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플롯을 채택한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관객들이 탄탄하게 짜인 내러티브가 제공하는 사건들의 연속을 따라가기보다, 네 명의 인물 각각에 좀더 집중하도록 한다.

  

 



2. 외로움에 휘청대는 인물들, 그리고 우리

 

이 작품에서는 네 인물의 이야기가 거의 균등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같은 이유로 어떤 주인공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모두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동시에 어느 누구에게도 특별히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많은 영화에서 주인공만의 특권으로 여겨지는 내레이션을 <중경삼림>에서는 네 명이 번갈아 가며 한다는 것이 그 방증일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의 경찰 223과 항상 금발 가발과 선글라스, 레인코트를 착용하는 마약 밀매상 여자, 두 번째 이야기의 경찰 633과 패스트푸드점 여종업원 아비는 사실 서로서로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인물들이다. 먼저 경찰 223과 경찰 633은 둘 다 최근에 실연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둘 다 아비가 일하는 패스트푸드점을 애용한다. 그들은 모두 아비의 존재를 인식하지만, 결국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는 경찰 633뿐이다. 또한, 경찰 223과 마약밀매상 여자는 모두 199451일을 유통기한으로 가지는 통조림과 연관이 깊다. 그리고 이 네 명의 가장 큰 공통점은, 그들 모두 무언가 결핍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갈망하는 것을 잃어버렸거나 손에 넣지 못한 인물들이다. 경찰 2235년간 사귀었던 여자친구에게 나를 잘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버림받는다. 마약 밀매상 여자가 공들였던 마약 밀매는 동료들의 배신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가고, 그녀의 백인 남자친구는 금발 가발을 쓴 다른 동양인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경찰 633과 동거하던 스튜어디스 여자친구는 어느 순간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난다. 아비는 꿈의 도시 캘리포니아를 항상 꿈꾸지만, 그곳에 갈 수는 없다.


이들의 결핍은 결국 외로움으로 나타난다. 네 명은 서로의 연결고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의 외로움을 깊은 곳까지 보듬어주지 못한다. 마약 밀매상 여자는 경찰 223이 갖고 있는 이별의 상처를, 경찰 223은 여자의 직업, 그리고 동료들과 남자친구의 배신을 뜻하는 통조림 캔의 의미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나누었던 하룻밤의 온기는 따뜻할지언정, 찰나적이고 피상적이다.


그들은 외로움을 혼자 극복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으며, 그들의 외로움은 홍콩이라는 화려하지만 병리적인 도시 안에서 다소 병적인 극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먼저 경찰 223은 외로움을 잊기 위해 아무에게나 습관적으로 전화를 건다. 숙모에서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후 연락이 끊어진 짝꿍에까지 시도 때도 대상도 가리지 않는 그의 전화는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하기 일쑤이며, 외부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번번이 좌절된다. 또한 그는 애인이 떠나버리자 자신의 생일인 199451일까지 그녀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녀를 잊겠다는 다소 황당한 철칙을 세워 놓고, 애인이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 그것도 유통기한이 9451일까지인 것들을 하루에 하나씩 사 모은다. 그리고 약속했던 51, 여자친구가 돌아오지 않자 그는 삼십 개의 통조림을 앉은자리에서 전부 먹어치운다.

 


경찰 633 역시 애인의 부재로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그는 자신의 집안 곳곳에 묻어 있는 애인의 흔적을 잊기 위해 밤마다 집 안 사물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그 말들비누에게 예전에는 보기 좋았는데 왜 이렇게 뚱뚱해졌냐며 그녀가 없어도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잔소리를 한다든지, 물을 뚝뚝 흘리는 걸레에게 그만 울고 강해지라고 윽박지른다든지은 실은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그가 말을 거는 사물들은 결국, 애인이 떠나도 그 슬픔에 흠뻑 젖지도 못하는, 감정을 건강한방식으로 표현하고 해소하지 못하는 병든 자아의 대리물과 같은 것이다.


패스트푸드점 종업원인 아비의 경우 외로움은 지나친 집착으로 나타난다. 그녀가 집착하는 대상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캘리포니아와 경찰 633이 그것이다. 먼저 그녀가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은 캘리포니아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고, 아비는 The Mamas & Papas<California Dreamin’>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행위를 통해 그것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녀가 가고 싶어 했던 곳은 캘리포니아라는 상상 속의 낙원이지 진짜 캘리포니아라는 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비는 경찰 633이 왜 그곳에 가고 싶은지 물어도 구체적인 이유를 대지도 못하고, 막상 다녀와서는 별 것 없었다며 실망하기도 한다.


또한 경찰 633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결국 그의 전 애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의 집을 주인 몰래 하나 둘씩 뜯어고치는 비정상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녀의 집착은 몰래 그의 침대를 뒤지다 전 애인의 긴 머리카락을 발견한 후 히스테리를 부리듯 엉엉 우는 장면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결말 부분에서 아비가 경찰 633의 전 애인과 같은 스튜어디스가 되어 캘리포니아에 다녀오는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두 가지 집착이 섞여 나온 결론이자, 그녀가 평소에 품고 있던 환상을 끝내 이룬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감독은 이들이 가진 결핍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외로움의 문제를 전통적·감정적·서술적인 방식을 통해 드러내는 대신 관객들에게 인물들의 특수한 행동을 통해 객관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별다른 영화적 설명 장치 없이 그저 개성 강한 네 인물의 극적 행동을 그대로 화면에 담는 방식은 <중경삼림>이 이 작품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세기말 홍콩의 비틀대는 청춘들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여과 없이 보여줄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중경삼림>을 끝까지 보고 나면, 네 인물이 마냥 어둠 속에 잠겨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사랑스럽고 발랄하며, 엉뚱하다. 사랑하는 여자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도 그녀의 손 끝 하나 건드리지 않은 채 샐러드를 네 접시나 비우고 여자의 구두나 닦아주는 경찰 223이 그렇고, 한없이 차갑고 쌀쌀맞다가도 술에 취해 경찰 223의 어깨에 슬며시 머리를 기대는 마약 밀매상 여자가 그렇고, 밖에서는 무심하고 무뚝뚝한 경찰이면서 집에 와서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곰인형에게 말을 거는 경찰 633이 그렇고, 크게 틀어놓은 <California Dreamin’> 노래에 맞춰 휘적휘적 춤을 추는 몽상가 아비가 그렇다.


이렇게 섬세한 인물 표현은 화려한 도시 속 외로운 이들을 향한 감독의 연민과 애정이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며, 네 명의 청춘남녀에 대한 연민과 애정은 결국 관객에게까지 전염된다.

 

 


3. 시공간에 대한 여러 은유들

 

<중경삼림>은 유독 시공간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 번쩍이는 네온사인, 들떠 있고 어딘가 뒤숭숭한 거리들, 다양한 언어와 인종, 유흥과 오락, 마약, 세기말적 우울과 방황하는 젊은이들 등은 이 작품의 배경이 된 1994년의 홍콩이라는 시대상황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시공간이 단순히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확장되어 다양한 은유와 표현법을 통해 드러나며 플롯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본 글에서는 감독이 작품 전체의 배경을 비롯한 시간과 공간에 대해 어떻게 고민하는지, 또 그 고민들을 영화라는 특수한 매체 속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시공간에 대한 은유와 그 의미를 효과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분리해서 분석해야 한다. 먼저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소재는 통조림, 더 정확히 말하면 199451일을 유통기한으로 하는 통조림이다. 199451일은 경찰 223의 생일이자, 그가 전 애인과 헤어진 지 한 달째 되는 날로, 전 여자친구에게서 그때까지 연락이 없으면 그녀를 잊기로 정해진 기한이기도 하다. 또한 그 날은 마약 밀매상 여자에게는 그녀를 배신한 애인이자 마약 중개인을 죽이기로 한 날이다. 그녀는 (아마도 그에게서) 전달받은 통조림 캔에 쓰인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 그를 죽이고, 시신 옆에 통조림 캔을 놓아두고 떠난다.


영화 <중경삼림>,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유통기한은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경찰 223은 유통기한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는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10000년으로 하고 싶다.”는 대사를 읊기도 하고, 요즘 누가 유통기한 다 된 통조림을 파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말에 벌컥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옛사랑에 한 달이라는 유통기한을 정해 놓고 약속한 기간이 지나자 파인애플을 먹어치우듯 고민 없이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다. 그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유통기한으로 대표되는 물질문명에 잠식되는 현실을 거부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기한이 있는, 그래서 이번 사랑이 끝나면 자연스레 다음 사랑을 찾아나가는 물질화된 관계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도 하다. 이러한 방식의 관계 맺음이 낯설지 않은 것은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약속한 51일의 유통기한이 지나고 태연히 바에 앉아 첫 번째로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경찰 223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인 탓이다.

 


시공간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들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캘리포니아라는 공간에 대한 열광이다. 아비는 캘리포니아를 갈망하면서도 진짜캘리포니아라는 도시에 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단지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의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는 세 가지 캘리포니아가 나온다고 볼 수 있겠다. 진짜 도시 캘리포니아, <California Dreamin’> 속 아비가 꿈꾸는 실체 없는 공간 캘리포니아, 그리고 바(bar) 캘리포니아.


자신에 대한 아비의 마음을 알아차린 경찰 633은 아비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저녁 8시까지, 술집 캘리포니아로 나올 것. 그러나 아비는 오지 않고, 패스트푸드점 사장이 대신 와서 편지를 전해준다. 그 편지에는 그녀가 술집 대신 진짜캘리포니아로 떠났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녀가 홍콩으로 돌아오기까지의 1년 동안, 경찰 633은 패스트푸드점을 넘겨받아 아비가 좋아하던 <California Dreamin’>을 들으며 그녀를 기다린다. 이제 아비 대신 경찰 633이 두 번째 캘리포니아, 그 꿈속의 공간에 살고 있다. 1년은 조금씩 어긋나 있던 그들이 자신들만의 시차를 줄이는 기간이다. 아비는 경찰 633이 그리워하던 존재인 스튜어디스가 되었고, 경찰 633은 그녀가 일하던 가게에서 일하며 자신을 좋아하던 아비와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비로소 돌아볼 시간을 가진다. 인물들에게 1년의 기간을 줌으로써, 감독은 그들이 좀 더 서로를 위해 준비된 상태에서 재회할 수 있도록 하며, 사랑을 시간의 문제로 생각하는 본인의 철학을 영화에 녹여낸다.

 

 


*

지금까지 <중경삼림>에서 눈에 띄는 극적 요소들, 즉 플롯, 인물과 행동, 시공간을 세분화하여 살펴보았다. 필자가 보기에 이 중에서 <중경삼림>을 가장 <중경삼림>답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특색 있고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네 인물은 다들 어딘가 나사라도 하나 빠진 듯 불안정하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우울에 젖어 있기도 하고, 사회적 상식에서 어긋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영화를 더욱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막상 본인들은 서로의, 혹은 자신의 그런 행동들을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도 없이 자신의 빈 집에 찾아와 물건들을 바꿔놓는 가끔 인사만 하는 정도인 사이의여자를 발견해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 경찰 633처럼 말이다. 그리고 관객들이 네 명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인물들에 쉽게 몰입하고 그들을 이질적으로 느끼지 않는 이유는, 관객들 역시 그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경삼림>은 흔들흔들 위태위태한 현대인의 초상이다.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허황된 유토피아를 꿈꾸고, 유통기한으로 대표되는 물질문명을 거부하면서도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 있으며, 때로는 말할 사람이 없는 나머지 방 안 사물들에게까지 말을 거는 영화 속 인물들은, 사실 알고 보면 화려한 도시를 살아가지만 어딘가 곪은 내면을 지닌 우리 자신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불편한 거울을 들이대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대신, <중경삼림>에서 집중하는 것은 파편화된 개인들 간의 관계 맺음이다. 네 명은 비록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고 조건 없는 위로를 서로에게 건넬 수 있기도 하다. 같이 하룻밤을 보낸 뒤 경찰 223이 마약 밀매상 여자를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가볍고 찰나적인 관계였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밤 내내 그녀의 존재 자체에서 충분한 위안을 얻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네 명의 남녀가 서로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어딘가 자신과 닮아있는 상대방에게서 따뜻함을 찾듯, 관객 역시 그들 자신들과 닮은 <중경삼림>의 청춘들과 공감하고 그들에게서 위안을 얻게 된다는 것, 이것이 이 영화를 지금까지도 이토록 매력적으로 만드는 힘인 듯하다.




 

 

* 참고

지용신, 왕가위 초기 영화 연구 : 아비정전중경삼림을 중심으로, 동서문화연구, : 韓南大學校 東西文化硏究所, 2009.

이전영, 닫힌 사회의 소멸에 대한 화려한 진술중경삼림, 월간 사회평론, , 1995. 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