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P - 그 오글거림까지 사랑해버린 거야


양장피





 

 2017SMTOWN 콘서트 유노윤호의 <DROP>* 무대 (사진 제공: 멜론매거진)

 


 

 동방신기가 제대했다. SM의 제왕이 돌아왔다. 20113명의 멤버가 탈퇴하고 2인조 그룹으로 돌아온 첫 앨범의 타이틀곡 전주에서 리턴 오브 더 킹을 외치던 분들 아니랄까봐, 리더 유노윤호의 솔로곡 컨셉은 무려 황제다. 2017925일 공개된 DROP의 뮤직 비디오에서 유노윤호는 월계관을 쓰고 황제 복을 입은 채 부조리한 어둠의 세계를 비판하며 희망을 외친다. 시작부터가 상식을 잊어버린 비정상의 아류만이 남았다. 그때가 틀렸고 지금이 바로 정상이다.’ 라는 비장한 나레이션이다. 강한 비트와 쉴 틈 없이 꽉 찬 화려한 안무, 비장한 멜로디와 사회비판적인 가사. DROP은 지금까지 동방신기가 해왔던 것이자 가장 잘하는 것인 일명 ’SMP'의 전형이다. SMPSM Music Performance의 약자로 SM 엔터테인먼트가 내세우는 퍼포먼스 특화 음악이다. SM 아이돌이라면 한 번씩 거쳐 가는 장르이며 SMP로 분류되는 많은 노래들은 SM 노래 같다.’라는 평을 받으며 SM 엔터테인먼트의 음악성을 대표한다. 예시를 들어보자면 보아의 Girls on top, 허리케인 비너스, 동방신기의 Rising Sun, (Keep Your Head Down),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 샤이니의 링딩동, 셜록, f(x)Nu ABO, Red Light, 엑소의 MAMA, 늑대와 미녀 등이 있다. 같은 소속사라도 각 그룹마다 내세우는 캐릭터가 다르고 데뷔한 시기가 다른 만큼 그 특징의 차이는 있지만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를 중점으로 만들어진 곡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SM 소속 아이돌이 수행하는 모든 댄스 곡이 SMP로 분류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특별히 SMP의 정수와 같다고 불리는 곡들이 존재한다. 듣자마자 아 이거 SM 노래다.’라는 반응이 오게 만드는 노래들이 있다


EXO의 MAMA 티저. MAMA에서 엑소 멤버들은 각기 다른 초능력을 가진 설정을 들고 나왔다.



 흔히 정통 SMP라 불리는 노래들은 사회 비판적이고 독특한 가사, 유영진과 Kenzie의 작곡, 화려한 퍼포먼스, 대략 세 가지의 공통적인 특징을 가진다. 우선 가사를 살펴보자면, 대부분의 대중가요가 사랑과 이별을 노래할 때, SMP는 부조리한 세상을 비판하고 혼란 속에서 자아를 찾는다. 동방신기는 인생은 마치 끝없는 궤도를 달리는 별과 같다며, 정말 혼돈의 끝은 어딜까 질문한다(Rising Sun, 부제-순수). 3<"O"-...>에서는 무려 헤겔의 변증법을 논한다. 갓 데뷔한 2012년의 엑소는 언젠가부터 01로 만든 디지털에 인격을 맡겨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인 우리들을 위해 절규한다(MAMA). 이런 가사들은 언뜻 보면 심오하지만, 재미있게도 가사 전체를 보면 일관성이 떨어진다. <Rising sun>, <"O"-...> 등은 모두 한껏 세상에 분노하며 거칠게 고음을 지르다 갑자기 느슨해지며 언젠가 평화는 온다는 희망을 내비친다. <"O"-..> 의 경우 실제 헤겔의 정반합 이론과 연관 지을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이번에 발표된 유노윤호의 <DROP> 또한 마찬가지다. 척박한 시대를 깨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게 주된 메시지인데, ‘언제 또다시 내던져버린 진실이란 넌 나를 찾게 될까.’, ‘다시 부활을 꿈꾸고 있다면 착한 가면을 쓴 채 기회를 본다면 No’라는 가사는 의미를 파악하기가 영 힘들다. 사실 주제가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인데 컨셉은 황제라는 것부터가 맞지 않는다. 이에 왜 굳이 거창한 주제들을 택하며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면서 오글거리는 가사로 거부감을 주나 의문을 가지는 팬들도 많다. 그러나 사회 비판적인 성격의 SMP들의 주제가 나름 발표 시기에 이슈가 된 사회 문제들을 반영해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단순히 차별화를 위해 그런 가사를 채택한 것은 아닌 듯하다. 20179월 촛불 시위가 이뤄낸 대통령 탄핵 이후 발표된 유노윤호의 <DROP>의 랩에는 ‘It started with candles’라는 가사가 들어갔다. 2014년 발표된 F(x)<Red Light>는 세월호 참사를 비판했다. ‘앞으로만 밀어대니 Yeah 밀어대니 Nah 아차 하면 밟혀.’, ‘Ay Ay It's a Red Light Light 이건 실제상황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몰라.’, ‘눈 크게 떠 거기 충돌 직전 폭주를 멈춰. 변화의 목격자가 되는 거야. 밀어대던 거친 캐터필러. 그 앞에 모두 침몰할 때.’ ‘니가 말한 최선이란 변명 내겐 의문투성이일 뿐.’ 이와 같은 가사에서 SM 측은 내부 논의를 거쳐 침몰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쓰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각주:1]


그럼에도 많은 SMP에서 발생하는 가사 의미 전달의 문제에 대해선, SMP 곡 중 대부분을 작곡한 유영진이 해명한 바 있다. 그는 2013년 인터뷰에서 작곡할 때 멜로디와 가사보다 리듬과 안무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사의 운율을 댄스곡의 리듬에 맞추다 보면 미리 써 놓은 가사 내용에서 몇 단어만을 발췌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그는 이것이 본인의 능력 문제라고 말했다.[각주:2]


 유영진은 SMP의 아버지라 불린다. <Rising Sun>, <(Keep your head down)>, <링딩동>, <Sorry Sorry>, <I Got a Boy>, <행복> 등 수많은 SM 아이돌의 타이틀곡, 히트곡들이 그의 작품이다. 특히 강렬한 SMP 작곡을 주특기로 한다. 유영진이 부드러운 곡을 내놓았을 때 SM 아이돌 팬들은 유영진이 드디어 세상과 화해했다.’며 놀라워한다. 그는 무대 위에서 가수가 드라마틱하고 화려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작곡을 한다. 일전에 완벽한 퍼포먼스를 위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MBC 무용단 출신으로서 춤에도 일가견이 있어, 미리 포인트 안무와 무대에서의 연출을 염두에 두고 곡을 쓴다. 확실한 무대의 기승전결을 위해 원래는 다른 곡이었던 두 곡을 섞기도 하고, 여러 장르를 혼합시켜 곡 분위기를 전환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들은 듣는 이들에게 혼란을 주거나, 신선한 충격을 준다. 유영진은 작곡가 이전에 정규 3집을 낸 R&B 가수다. 그래서인지 R&B적인 창법이 돋보이는 댄스곡이 SM 아이돌에게는 유난히 많다. 팬들 사이에서 유영진 특유의 R&B 창법을 가장 잘 소화하는 최강창민, 디오가 유영진의 뮤즈, 유영진의 사랑이라고 불린다.[각주:3] 디오는 유영진과 함께 SM station을 통해 R&B 듀엣 <Tell me what is love>를 발표하기도 했다.





 SMP의 또 다른 대표 작곡가로는 Kenzie를 꼽을 수 있다. 엑소의 <중독>, <Monster>, <늑대와 미녀>, 레드벨벳의 <Ice cream cake>, f(x)<Hot summer> 등이 그녀의 작품이다. 유영진보다 작곡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으며 더 복잡하고 독특한 느낌의 곡들을 만든다. 특히 SM에서 아방가르드를 맡고 있다고 평가되는 샤이니, f(x)와 합이 잘 맞는다. Kenzie의 주 무기는 복잡한 화성으로, 그녀의 능력은 SM의 곡들이 타 아이돌 기획사의 곡들보다 더 섬세하고 꽉 찬 화성을 보여주는 바탕이라 볼 수 있다. 유영진이 오글거리는(?) 사회 비판적 가사를 즐겨 쓴다면 그녀는 참으로 독특하고 난해한 가사를 선보인다. ‘땀 흘리는 외국인은 길을 알려주자. 너무 더우면 까만 긴 옷을 입자.’<Hot summer>의 가사는 정말이지 가사가 이상한 SM 노래의 대표로 꼽힌다. 샤이니의 <Why so serious?>의 가사는 무려 사랑에 빠진 좀비 컨셉이다. SM의 대표 작곡가로서 유영진과 KenzieSMP의 핵심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유행에 따라 그 형식을 변주한다. 두 작곡가의 꾸준한 활동은 SM 아이돌이 단단한 팬층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정통 SMP'가 타이틀곡으로 발표되었을 때, SM 아이돌 팬들의 반응은 흔히 역시 슴피(SMP를 칭하는 팬들의 용어)가 짱이다.’ 이거나 좀 대중적인 노래로 하지.’ 둘 중 하나다. SMP의 색깔이 너무 강한 노래들은 흔히 대중에게 SM이 이상한 노래 냈다.’라는 식의 반응을 얻는다. SM도 대중성 결여의 문제를 인식하는지, 최근 들어 강렬한 SMP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활동 연차가 쌓인 소속 가수일수록 더 중화된 세미 SMP'(?)를 부르는 추세다. 정통 SMP는 대부분 데뷔곡이거나 데뷔 후 두 번째 활동 곡으로 발표된다. H.O.T, 신화, 슈퍼주니어, 엑소가 SMP로 데뷔했다. 동방신기와 샤이니의 경우 보다 부드러운 데뷔곡을 들고 나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SMP를 들고 나왔다. 가장 최근에 데뷔한 SM 소속 그룹 NCT’Neo Culture Technology‘의 약자인 팀명에 걸맞게 한층 세련된 SMP를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SM은 소속 아이돌들의 데뷔마다 이 그룹은 SM 소속이라고 선포하듯 대중성과 조금 떨어진 SMP를 내놓는다. 실제로 이 곡들은 일반적인 아이돌 후크송보다 음원 성적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SM은 꾸준하다. 한국의 그 어떤 음악보다 대중적이고 진입 장벽이 낮은 것이 아이돌 음악인데, 최고의 아이돌 명문가라 불리는 SM이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부담스러운 노래를 내놓는다. 이미 확실한 팬층을 가진 대형 기획사로서 어떤 컨텐츠든 웬만하면 먹힌다는 확신이 있어서일까?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SMP의 코어 팬 층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이제 그 코어 팬 중 하나로서 필자가 느낀 SMP의 매력을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확실히 정통 SMP(특히 동방신기의 노래들)는 부담스럽다. 오글거린다. 한창 정통 SMP가 나오던 시기는 2010년 이전이라 지금 듣기에 조금 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중독적이다. SMP에 빠지면 그 세련되지 않음을 즐기게 된다. 그 강렬한 퍼포먼스와 과한 비장함에 처음엔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지 몰라도, 노래를 듣다 보면 홀린 듯 흥이 난다. 노래의 핵심 파트들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노래방에서 SMP를 부를 때엔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정통 SMP의 라이브 무대는 거의 종교의식 현장에 가깝다. 사회에 분노하는 SMP를 떼창할 때 관객들의 모습은 거의 혁명 전사다. 거기다 그 과격한 퍼포먼스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미인들의 모습이 주는 만족감이란. 꽉 찬 안무와 무자비한 곡의 구성은 간혹 이게 아이돌 무대인가 차력 쇼인가 의문이 들 정도다. 찌르는 고음, 칼군무, 당황스러운 내용의 가사, 어둡고 비장한 멜로디, 갑자기 바뀌는 곡의 진행.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SMP는 한마디로 자극적이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타 아이돌들의 무대와는 또 다른 쾌감을 선사한다. 어떻게 보면 헤비메탈 팬들의 심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 아이돌 노래라기에는 쓸데없이 과한 비장함엔 대체 불가능한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SMP의 골수팬들은 유영진이 세상과 화해하기보다는 대중과 SMP가 화해하길 바라며 지속적인 SMP의 등장을 바란다. 엑소의 MAMA 이후 이렇다 할 정통 SMP가 등장하지 않았는데, SMP의 적자인 동방신기의 제대는 SMP 코어 팬들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그리고 유노윤호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물론 음원 성적은 저조했다. 모든 음원 사이트에서 차트 인을 실패했으니. 팬들도 좋은 음원 성적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러나 유노윤호와 유영진은 2017년에도 정통 SMP를 시도했다. 이젠 세상과 화해한 듯 했던 유영진이 다시 척박한 세상에 분노하는 곡을 쓴 이유가 그저 코어 팬들 때문일까? 1996H.O.T의 데뷔 이후 2017년 현재까지 SMP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러한 뚝심은 코어 팬층의 존재와 대형 기획사로서 가진 보장된 성공 가능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수많은 논란과 조롱을 뒤로 한 채 SM은 그들이 추구하는 완벽한 퍼포먼스를 위해 20년간 비장함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물에 오랜 팬들은 열광한다. SMP에 열광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SMP에 한번만 열광해본 사람은 없다고 감히 말해본다.






  1. 2015년 11월 이성수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싱본부장의 동아일보 인터뷰 [본문으로]
  2. 2013년 유영진의 텐아시아 인터뷰 [본문으로]
  3. 최강창민은 항상 SMP에서 빠지지 않는 절규 파트를 담당한다. 뭐니뭐니 해도 주문에서의 고음 애드리브가 레전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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