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려준 기다리는  

임영웅 연출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보고

 

시나인

   세상의 전부가 자신이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세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자신을 만나게 되는 순간으로 알려진 사춘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 합니다.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당시 저는 세상의 중심이 제가 아니라는 사실 자체에서 오는 괴로움을 견뎌내느라 참으로 버거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진학 이후,  자신과 타협하면서 애써 숨구멍을 마련하고 숨통을 트일  있었습니다. 사춘기를 무사히 극복하고 성장한 것은 아니었지요.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작은 사람이라고 자각하면서 스스로를 위한 안식처를 마련했을 뿐이었습니다.

   자존감을 잔뜩 움츠러들게 만드는  자위적 안정은 저에게 이상한 버릇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 능수능란하고, 세상에 온전히 적응하며 모든 상황 속에서 넉살 좋은 사람들을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하게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  주어진 역할을 어려움 없이 매끄럽게 수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고민 없이, 자신을 믿고 무엇이든지 쉽게 해결하고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그들을 경이롭게 바라본 것도  보기에 옥에  하나 없는 삶의 모습 때문이었겠지요. 이렇게 저는 어른이란 무릇 고민도 불안도 없는  완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 대학생이 되고 보니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은  커져버렸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근사한 어른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들 저마다의 삶을 멋지게 살고 있는  같았습니다.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어느새 스물다섯이나  저를 뒤돌아보았지만 저는 변함없이 그대로였습니다. 어렸을 때엔 지금쯤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알았는데 말입니다. 저는 여전히 ‘배워야  것이 많은 사람은 완벽할  없어.’라는 얄팍한 타협 뒤에 숨은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에 대한 고민이 끝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고민을 끝내지 못한 저를 애써 모른    같아  안식처가 사실은 도피처가 아닌지 의문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만   같은 조급함을 느끼던 요즘이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눈을 감고서도 이어지는  답답한 마음은 악몽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당신을 만난 날에도 저는 그랬습니다. 어른이 되어야한다는 고민이  어깨 위에 앉아있었습니다. 당신을 충분하게 감상하고 최선을 다해 완벽히 해석해내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만난 순간  바람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2  앞자리에서 당신을 내려다본 저는 당신의 능숙한 모습에 압도되어 그만 반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보았기에 전체적으로 완벽한 짜임새와 매끄러운 흐름을   있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3시간이라는  시간동안  눈과  그리고 마음까지 사로잡으셨습니다. 언제나 “고도를 기다려야지.”라고 외치는 블라디미르(이하 디디) “ 그렇지.”라고 답하는 에스트라공(이하 고고) 주고받는 모든 대화에는 사랑스러운 운율이 넘쳤습니다. 글로는 표현할  없는 음의 고저와 언어의 장단이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배우들의 연기는 어색함이 없이 유려했습니다. 마치 광대 같은 디디와 고고의 과장된 몸짓과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는 점점 익숙해져서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  배우들이 천천히 걸으며 등장하자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는 아마도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 배우들 덕분에 제가연극을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기 때문이겠지요. 마치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한  꿈을 꾸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모든 면에서 완결된 연극이었기에 저는 당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외에는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현실성도 맥락도 없는 인물들의 행동과 대화가 웃음을 유발하고,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의상도 웃음을 연발케 했습니다. 당신을 보는 내내  또한 많이 웃었습니다. 구두를 벗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다시 그것을 신는 고고, 이야기하다 말고 갑자기 모자를 벗어서 안을 긁어대는 디디, 방금까지 쥐고 있던 시계가 없어졌다며 찾는 포조, 괴상하고 단순한 춤을 추는 럭키. 이런  광대의 모습과 행동은 자연스레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이상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제가 사랑하지 않을  없는 기억을 선물해주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완벽하게 보여준 당신의 능력은 제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어른이었습니다. 연극 티켓을  쥐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티켓 위에 쓰인 50주년이라는 글자에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시간 동안 자연스레 당신 속에 존재하며 함께 시간을 지내온  배우들의 시간들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살았던 시간의   .  시간 동안 함께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고도는 무대  디디와 고고에 의해서만 기다려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에게도 나름의 고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0주년을 맞이한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의 모습에 만족하신가요?” 라고 말입니다. 아마도 고도를 기다리는 디디와 고고에게 찾아왔던 소년처럼 대답하리라 감히 생각합니다. “오늘 밤에는  오고 내일은  오시겠다고 전하랬어요.”

   당신은 제가 보기에 이미 충분하지만, 지금도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나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리란 생각에  또한 기다리다 보면 만족스러운 자신을 만날  있겠지 라고 안도했습니다. 고민으로 짓눌렸던 어깨가 조금 가벼워져 안식처의 존재가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른에 대한  생각을 완벽한 당신으로부터 확인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너무나 포근했기에 하루가 흘러가기  다시 당신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곳에서 보았던 처음과 달리,  번째 만남에서 저는 당신을  누구보다 가깝게 마주할  있었습니다. 무대 바로 앞에 앉은 저는  당신을 만날 생각에 설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신과 너무도 가까워진 탓일까요. 그저 완벽하게만 보이던 당신의 이야기가  귀에 들려왔습니다. 이제야 당신이 무대 위에 심어 놓은 나무  그루가 보였습니다. 우뚝  있는 굽은 소나무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연륜이 느껴졌습니다. 곧고 수려하게 자란 소나무는 사람들이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 베어가 버리고,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나무는 분재용으로 송두리째 뽑혀져 버린다고 합니다. 때문에 못난 소나무만이 모진 고생을 견디며 그곳에 머물러 오래도록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못난 소나무와  닮아 오랜 시간 그곳을 지켜낸 앙상한 나무처럼 보였습니다. 당신이   비루한 나무를 심어두었는지 이제야 궁금해졌습니다. 나이  나무도 근사한 모습을 갖지 못한  여전히 삶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의미일까요. 어른의 완벽한 모습에 대한  환상에 작은 파동이 일었습니다.

    당신이 시작한다는 종소리가 울리고 암전되었습니다.  짧은 순간이 마치 악몽과 현실의 경계에서 불안해하며 제가 견뎌내던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조명이 서서히 켜지며 현실에서 고고와 마주했지만 꿈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동안의 혼란에서 벗어나 못난 나무 곁에 앉아있는 고고에게 초점을 맞추며 정신을 차릴  있었습니다. 그는 낑낑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두를 벗으려 버둥거렸습니다. 그런 그를 보고서 달려오는 디디는 반가워하는 손짓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인물의 대화에 집중하려고 하였으나 이해되지 않는 내용의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어제는 분명 웃게 했던 광대를 연상케 하는 행동들이나 느닷없는 대화가 마냥 웃기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초조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던 고고의 걸음걸이는 사실 세상에 발을 딛는 자체가 불안했기 때문이었고, 시원하게 웃지 못하는 디디의 모습이 실제로는 고통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점령할 것처럼 강인했던 포조가 하루아침에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장님이 되며 찾아온 불안함과, 폭발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던 럭키가  순간에 벙어리가 되어버리면서 느껴지는 허무함은 완성된 것처럼 보이던 당신조차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는 그들을 보면서  사람이 지내왔을 수많은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있는 일이라곤 고도를 기다리는  뿐이기에 무료하고 지루한  날들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안함을 애써 웃음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나누었을 수많은 대화와 고도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고통에 사무쳐 무의미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당신이 보여준 디디와 고고의 이틀이라는 시간은 다르지만 결국 비슷했습니다.  사람이 고도를 기다리는 곳으로 포조와 럭키가 찾아와  무료함을 달래주고, 그들이 떠나가면 해가 저물어 노을이 집니다. 고도가 오늘이 아니라 내일 온다는 소식을 전하는  소년이 찾아왔다가 그들을 떠나면 그렇게 밤이 찾아옵니다. 디디와 고고는 “이제 가자.”라고 서로를 재촉하지만, 나무 아래에 고개를 떨구고 멈춰버립니다. 고도는 오지 않았기에 기다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멈추었더라도 기다림에 지쳐 포기하거나 나무에 목을 매다는 선택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날이 밝으면  사람은  자리에서 다시 고도를 기다릴 것이라 예감했습니다.

     당신을 만나고 나서야  만남에서의 웃음과 안식이 자기기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어른이라고 감탄한 존재는 그저 겉모습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말이죠. 완벽해 보였던 당신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고뇌하고 혹시나 오지 않을지도 몰라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엉뚱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대화들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로서 저는 어른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은 어린 아이를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사실과,  눈에는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도 여전히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가르쳐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잠자리에 들며 저처럼 고민을 하겠지요.

   기다림은 반복되지만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것을, 매일같이 웃어 보이지만 갈등하고 고민하며 불안한 밤을 맞이하는 디디와 고고의 모습으로 보여주었지요. 이를 통해  안식처가 도피처였음을 깨달았고 제가 여전히 고민하는 것은 사춘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니란 사실 덕분에 후련해졌습니다. 저도 이상하고 아름다운 당신처럼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이상 숨기지 않으려 합니다. 작은 시간 속에서라도 불안한 자신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진짜 첫걸음일 테니까 말입니다. 당신은 디디가 소년에게 하는 말을 빌려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나를 만났다고만 .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야.” 모든 것이 불확실한 대화로 채워졌던 당신 안에서 이것만은 확실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분명히 만났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수없이 많은 불안을 느끼고 하염없이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진짜 어른의 이야기가 저에게 응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분명히 마주할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불안이든, 고민이든 말입니다.

   당신을 만난 후에 저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약속한 시간보다 30 정도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기에 숨이 트이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시간을 그대로 느끼고,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저를 애써서 감추려 하지 않으면서요. 당신이 알려준 기다림을 위해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스스로 선물하고 있습니다. 그저 작은 여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순간들이 쌓여 당신이 무대 위에 심어 놓았던 나무처럼 많은 것을 겪고 견디어낸 사람으로, 완벽해 보이지 않더라도 항상 고민하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어른으로 성장할  있겠지요. 당신의 가르침을 받을  있었던 봄날의 소중한 이틀을, 제가 진정으로 사랑할  있는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까지 기억하겠습니다.

2019 바람이 기분 좋게 머리카락을 스치던 어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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