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를 통해 삶을 기억하고 전달하는 우리들에 대하여  >

Stories We Tell 영화 리뷰

 

 

르네오

 사라 폴리의 Stories We Tell 제목 그대로 ‘”우리들 들려주는 이야기들 구성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야기의 주제는 사라 폴리가 11 세상을 떠난 어머니 다이앤의 삶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storytellers) 모두 다이앤을 가까이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다이앤과의 추억이라는 공통 분모 때문에우리 묶일 있는 사람들이다. 다이앤의 남편이자 사라의 아버지인 마이클 폴리, 아버지는 다르지만 사라의 형제자매인 조안나, 수지, 마크, (다이앤은 번의 결혼과 이혼 끝에 마이클을 만났다), 다이앤의 형제 자매들, 그리고 연극 배우이자 캐스팅 디렉터였던 다이앤의 직장 동료들까지사라 폴리는 이들을 명씩 인터뷰하면서,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어머니에 대해 물을 것이니 알고 있는 이야기 전부(the entire story)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들은 다이앤이 어떤 성격의 사람이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해, 다이앤이 마이클을 만나 결혼하고, 사라를 낳고, 번의 연극을 하고, 암에 걸려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날까지의 일들에 대해, 그리고 남겨진 마이클과 사라가 년간 조금은 우울한 상태로 서로 의지하며 지낸 시간들에 대해, 하나하나 기억을 되짚어가며 이야기해준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잔잔하고 애틋하게 흘러온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이야기의 주제는 다이앤 사후에 밝혀지기 시작한 어떤 충격적인 비밀로 전환된다. 다이앤이 죽고 나서 가족들 사이에서 사라의 아버지가 마이클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았던 , 사라가 자신의 친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고 다이앤과 몬트리올에서 함께 공연했던 제프 보우스를 찾아가기까지 했던 (그러나 사라는 예상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몬트리올에서 다이앤과 친분이 있었다는 영화 제작자 해리 걸킨을 만나 이야기하다 사실은 그가 다이앤의 애인이였음을 알게 , 해리와 차례 만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류한 , 유전자 검사를 통해 해리와 사라가 부녀 관계임이 확실해진 , 해리는 사라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사라 앞에 나서는 것을 다이앤이 원치 않았기 때문에 혼자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왔다는 , 사라는 마이클에게만큼은 모든 것을 비밀로 하고 싶었지만 사실을 기사로 쓰고 싶어하는 기자 때문에 어쩔 없이 그에게도 사실을 직접 알리게 , 해리와 마이클이 각자 놀라운 사건을 기록하고 다이앤과 함께한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회고록을 쓰기 시작한 , 그리고 사라 역시 어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구상하기 시작한 그들은 모든 일들을 각자의 기억에 의존하여 조금씩 각색해가며 이야기로 들려준다. 이야기들의 편집자인 사라 폴리는 버전의 이야기들을 뒤섞고 재구성하여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Stories We Tell’ 완성한다.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면, 알고 있는 전부를 이야기해달라는 사라의 요구에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던 인터뷰이들의 표정을 이해할 있게 된다. 어디선가 들어본 같은 통속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놀라움과 상처를 남겼을 충격적인 사건이니 말이다. 마이클이 말한 것처럼 사라는 모두에게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잔인한 인터뷰어. 다이앤이 죽을 때까지 밝히지 않았던 비밀을 거침없이 파헤치는데, 그것도 가장 충격 받았을 사람들의 입으로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특히 다이앤과 가장 가깝고 깊은 관계를 맺었을 마이클은 이야기의 메인 스토리텔러일 아니라 내레이터로, (사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 자신의 회고록 일부를 직접 읽도록 요구 받는다. (: 사라는 마이클이 녹음실에서 자신이 글을 줄씩 읽어나가는 현장을 지켜보다 중간중간아빠, 방금 다시요같은 디렉팅을 내린다. 조금 짓궂기는 하지만 그의 거침없고 당찬 모습이 너무 좋다.) 

 

사라는 이렇게까지 모두를 동원하여 다이앤의 비밀을 들춰내는 걸까? 해리가 자신이 글을 출판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을 가족들의 사생활을 지켜주어야 한다며 화를 장본인이 이렇게 모든 것을, 모두의 기억을 기록하여 세상에 내놓다니. 인터뷰이들도 다큐멘터리의 의도가 궁금한 의문을 표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가 무엇에 대한 것이라 했지?’, ‘ 이렇게까지 하는 거니?’ ‘남의 멍청한 가족사를 대체 누가 궁금해할지 하는 생각이 들긴 ’…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사라의 대답은, 자기도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 입장이 뭔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우리 모두를 드러내는 제가 정말 당황스러워요. 이렇게 과거를 재건하고 엄마를 재조명하는게 잘한 짓일까요? 모든 것이 엄마가 떠나며 남긴 쓰나미 같아요. 아직도 필사적으로 그리워하며 잔해 속에서 조립하려 하는데 자꾸만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네요. 이제 겨우 얼굴이 보이려 하는데…” 

어쩌면 사라는 자신이 아주 어릴 , 심지어는 이렇게 충격적인 비밀을 남긴 해명도 없이 세상을 떠나버린 다이앤을 간절하게 이해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라에게 다이앤은 아주 그리운 사람인 동시에 가족들도 모르는 비밀을 마지막까지 품고 있었던 낯선 사람이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지금까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충격과 함께 무수한 질문들이 마치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이다. 마이클이 회고록이 무수한 의문들을 해소하고 다이앤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면, 필사적으로 잔해들을 조립하려 하는 다큐멘터리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이앤과 25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한 마이클과 달리 사라에게는 다이앤과의 개인적인 경험과 추억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다이앤을 알고 지냈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이앤의 진정한 모습의 단편들이라도 발견하려 시도한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배우 집안의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사에 대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들을 해왔을 것인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다이앤의 가족과 친구들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다이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제대로 그려내겠다는 오기가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Stories We Tell에는 이제는 흔적만 남은 다이앤을필사적으로 그리워하며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간절함이 담겨 있는 같다.  

그래서인지 분명 사라를 포함하여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꾼(storyteller)들은 다이앤의 삶을 최대한 그의 입장에서 공정하게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세월 가족들을 속인 다이앤을 원망하거나 격한 감정을 내비치는 대신 담담하게, 종종 유머를 곁들여가며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회상할 뿐이다. 어쩌면 다이앤이 죽은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에 그토록 침착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들은 단순히 침착하기만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다이앤의 입장에서 그의 심정을 추측하고 그의 선택들을 이해하려 시도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다이앤의 결핍과 상처를 헤아려 보기도 하면서 그의 전체를미처 알지 못했던 다이앤의 비밀과 이면들까지 포함하여 - 일관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다이앤을 누군가의 아내 혹은 어머니로서 평가하거나 자신에게 이런 상처를 남겼다고 나무라기보다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지만 번의 실수를 거듭한 개인으로서 그려낸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다이앤의 번의 외도와 이혼은 그의 전체를 구성하는 국면으로 그려질 뿐이다.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감독이 이야기를 편집하고 재구성할 수는 있어도, 인터뷰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내용 자체에는 관여할 없었을 텐데, 어쩜 이렇게 따뜻하고 성숙한 사람들뿐인지 불가사의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따뜻하고 사려 깊은 이야기들을 통해 영화는 다이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진실에 근접할 있었을까? 영화 도입부에서 마이클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는다. “본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이야기라기보다는 혼돈이라 있다. 어두운 포효, 맹목, 산산 조각난 유리 잔해, 쪼개진 나무조각, 회오리바람에 휩싸인 , 빙산에 충돌한 , 아니면 급류에 휩쓸린 배처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멈출 힘이 없다. 시간이 지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때에서야 이야기의 형체를 갖추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이앤의 삶을 회상하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다이앤이 남긴 혼돈에 분명한 형체를 부여할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렇지는 않은 같다. 그도 그럴 것이 Stories We Tell 마이클과 해리의 회고록처럼 사람이 1인칭 시점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마다 고유한 관점을 갖고 다이앤과의 고유한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뒤섞고 재구성한 결과물인 Stories We Tell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정리되지 않는, 혼돈에 가까운 이야기다. 이야기들은 종종 서로 어긋나고 때로는 모순되기까지 하기에, 다이앤의 형체는 이야기들이 쌓이고 겹쳐 놓일수록 점점 모호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다이앤이 모든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투명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한편, 다른 누군가는 다이앤이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다이앤은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위기 메이커로 기억되기도 하고, 항상 불안했고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바쁘게 살아간 사람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다이앤이 사라를 임신했을 어떤 심정이었는지(마냥 기뻐했는지), 그리고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을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이처럼 어긋나는 이야기들을 연속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불일치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점이다. 언뜻 인터뷰의 내용을 되짚어보면, 사라 폴리는 가족들을 포함하여 다이앤의 주변인들이 (이제는 모두에게 공공연히 밝혀진) 다이앤의 비밀에 대해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흥미로움을 느꼈고 그때 비로소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사라가 해리에게 보낸 편지를 직접 읽는 장면에서, 사라는 영화의 초점이 이야기들의 불일치에 있다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앞서 살펴 장면에서는 다이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형체를 필사적으로 조립하고 있다고 말했던 그가 여기서는 이야기들의 불일치를 강조하는 걸까? 사실 이상한 점은 두가지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사라 폴리는 이야기의 화자로서는 등장하지 않고 물러나 있지만, 예외적으로 그가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있다. 사라 폴리 자신이 해리나 마이클에게 보냈던 편지를 읽는 장면이나, 인터뷰이의 기습적(?) 질문에 대답하는 장면이 바로 그런 장면인데, 이런 예외적인 장면들에서 그는 다큐멘터리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던진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대답들은 조금씩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앞선 장면도 그런 경우다. 장면에서 사라 폴리는 영화가이야기들 속에서 사람을 되살리려는 시도라고 말하지만, 다른 장면에서는 영화가믿을 없는 기억과 덧없는 진실 대한 영화라고 말한다. 그나마 중립적인 표현으로, 영화가사람들이 이야기를 통해 삶을 기억하고 전달하는 방식 관심을 두고 있다고도 말한다. 사라 폴리는 다이앤의 삶의 진실을 재구성해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런 진실을 가려내는 일의 불가능성을 주장하고 싶은 걸까?

 

Stories We Tell에서는 이처럼 감독의 직접적인 대사에서뿐만 아니라 연출(이야기의 편집과 배치) 측면에서도 단편들을 조립하여 진실을 재구성하려는 충동과 모든 것을 부수고 무효화하려는 충동이 번갈아 나타난다. 예컨대 누군가 다이앤에 대해 A라는 기억을 회상하면, 바로 다음 장면에서 다른 사람이 ~A라는 기억을 회상하고, 다음 장면에서는 다른 사람이 어쩌면 A ~A 모순이 아닐 있다고 주장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야기들의 충돌과 경합 속에서 다이앤의 형체는 완전히 무너지는 같다가 다시 조금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같다가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이처럼 조립하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연출은 특히 과거 영상을 담은 장면들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다. Stories We Tell 다이앤 주변인들의 인터뷰와 마이클의 내레이션을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중간중간 이야기의 내용과 관련된 저화질의 사진과 영상이 삽입된다. 홈비디오 형식의 흐릿한 영상들은 다이앤 생전에 촬영된 영상처럼 보인다. 다이앤이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상념에 빠지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영상은 인터뷰이들이 회상하는 내용의 진정성을 입증해줄 뿐만 아니라, 내용을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에 대한 몰입감을 높여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과연 영상이 과거에 촬영된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다이앤이 죽은 후에 사라가 제프 보우스를 찾아가고, 해리를 찾아가 이야기하고, 나중에는 마이클을 찾아가 모든 사실을 직접 밝히는 장면들이 모두 동일한 저화질 형식의 영상으로 담겨 있는데, 아니, 순간들을 모두 영상으로 담았다는 말인가? 사라 폴리는 그때부터 영화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엄청난 기록 변태인 건가? 이런 의문들이 쌓인 상태에서, 영화가 끝날 때쯤 사라의 언니 조안나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의견이 제각각이야. 엄마에 대한 오해도 많고. 각각의 상황과 진실이랄 것이 있으니 과거의 진실을 재구성해야만 . 처음부터 수많은 시각이 존재했으니 답을 없어. 이제 알아냈다 치자 무슨 일이 있었고 엄마가 어떤 분인지 알아도 전부 환상에 불과해.”

  말과 동시에, 과거를 기록하고 사람들의 추억을 담은 것으로 여겨진 영상들이 실은 감독의 디렉팅 하에 배우들이 재연한 연출 영상이었다는 사실이, 촬영현장 전체를 보여주는 영상을 통해 드러난다. 지금까지 영상 이미지들에 기반해 관객들이 나름대로 쌓아 올리고 조립해왔을 다이앤의 형체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심지어 관객들은 무엇이 연출된 영상이고 무엇이 실제로 다이앤 생전에 촬영된 영상인지 구분할 수도 없다. 여기까지 보고 나면, 사라 폴리는 이야기들 속에서 다이앤을 되살리고 싶다고 말했지만 실은 다이앤이 남긴 모든 충격적인 진실들을 부정해버리고 싶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누구도 다이앤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며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심지어는 도대체 이들 누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분간해낼 없다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말이다. 장면에서 마이클은 사라에게 이렇게 묻는다. ‘친부를 발견한 것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네가 받은 충격과 깊어질 걱정을 덜어내기 위한 것이니? 그래서 왜곡되는 진실과 믿을 없는 기억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한 거니? 친부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사라는 그럴 지도 모른다고, 부정하고 싶은 숨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분명 사라 폴리에게는 다이앤의 비밀까지도 온전히 마주하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다이앤의 진정한 모습을 재구성해내고 싶으면서도 불가능성을 주장하고 싶은 모순된 갈망이 공존하고 있는 같다. 

  그러나 혼돈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단순히 다이앤과 관련된 믿을 없는 진실들을 부정하기 위한 방어기제 같은 것이라고 보기에는 찜찜한 점이 많다. 인터뷰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의 진실로 수렴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이앤이라는 사람에 관한 진실에 근접해가고 있는 같은 느낌, 다이앤이 이야기들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같은 느낌이 분명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단편적인 이야기들은 서로 충돌하면서 하나의 진실을 부정하고 무너뜨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간절하게 찾아나서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사라 폴리가 영화의 초점이덧없는 진실믿을 없는 기억 있다고 말했을 , 어쩌면덧없음믿을 없음만큼이나진실기억에도 방점이 찍혀 있는 아닐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다이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불변하는 하나의 진실을 도출한다면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겠지만, 각자의 상황에서의 단편적 진실들을 수집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 분명 우리를 다이앤에게 더욱 가까이 데려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아닐까?

 

   어쩌면 진실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은 언제나 그처럼 덧없고 단편적인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순간순간의 감정과 의도를 오해 받으며 살아간다. 순간 보여준 사소한 단면만으로 나라는 사람 전체에 대해 특정한 평가와 해석을 내리는, 오해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은, 사람에게 순간 보여준 모습과 다른 순간, 다른 이에게 보여준 다른 모습 어떤 것이 진심이고 진정한 나인지 스스로 헷갈리기도 한다.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고, 스스로도 완전히 이해할 없는 나를, 남들이 하나의 모습으로 이해해줄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의리에 연연한 거짓말이나 기억의 왜곡이나 오해 때문이 아니더라도, 인터뷰이들이 다이앤과 공유한 유일무이한 경험 때문에라도 이야기들의 불일치는 불가피하고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이앤에 대한 하나의 일관적인 이야기를 조립해내는 대신 혼돈에 가까운 상태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이 어쩌면 다이앤이라는 사람의 덧없는 진실들에 더욱 근접할 있는 길일지 모른다. 저마다 다른 관점의 이야기들이 중첩되면서 다이앤의 형체는 모호해졌지만 오히려 더욱 입체적이게 되었다고도 말할 있지 않을까? 이렇게 봤을 영화가이야기들의 불일치 초점을 두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이야기를 통해 되살리는 시도라는 설명이 이상 모순처럼 들리지 않게 된다.

 

  그런데 사실 누군가를 이야기 속에서 되살린다는 말은 사람을 정확히 기억해낸다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사람과 함께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특정한 순간들을 머릿속에서 되풀이하고 사람의 잔상을 오랫동안 품고 있는 상태 혹은 실천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Stories We Tell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도 그처럼 다이앤의 잔상을 오랫동안 품고 있는 사람들, 다이앤이 남긴 흔적들을 더듬고 되짚어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덕분에 Stories We Tell 혼돈과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심지어는 기억의 왜곡과 오해들 속에서도 어떤 진정성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인터뷰이들은 모두 다이앤과 함께한 저마다의 경험과 역사를 갖고 있으며, 시간들 속에서 다이앤이 남긴 흔적들은 모두 유일무이하다. 그들은 자신의 기억과 해석을 기반으로 다이앤에 대한 각자의 버전의 이야기를 구성해가면서 흔적을 가늠하고 음미해본다. 다이앤의 어떤 실수들은 이해해주기도 하고, 당시 심정을 추측해보기도 하고, 그의 비밀이 자기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라의 언니 조안나는 어머니의 비밀이 밝혀진 후에도 가족들의 사이는 변하지 않았지만, 딸들이 모두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마이클은 다이앤이 자신에게 처음부터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라도 사라를 자신의 자식으로 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고, 자신이 그만큼 충분한 사랑과 신뢰를 주지 못했음을 되돌아본다. 분명 다이앤의 비밀을 알고 충격을 받았으며, 어쩌면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고록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덕분에 오랫동안 다이앤이 바랐던 대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삶도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나름의 방식으로 다이앤의 삶을 재평가하고 그가 자신에게 남긴 흔적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각각의 이야기들 속에 담겨 있다. 사라 폴리 역시 다이앤이 자신에게 남긴 쓰나미를 어떻게든 이해해보고자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편집하고 재조립한다. 이처럼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삶을 전달한다는 것은 과거에 사람이 남긴 흔적을 현재에 곱씹어보고, 현재 알게 사실들을 기반으로 사람의 삶을 다시 재평가함으로써, 안에 있는 사람의 상을 다시금 재정립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이렇게 다이앤의 흔적을 뒤적여 과거를 재평가하고 재구성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은, “아직도 필사적으로 그리워하며 잔해들을 조립하고 다는 사라의 말에서 엿볼 있듯, 무엇보다도 다이앤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삶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일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그리고 사람을 아끼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동력으로 하는 관계적 실천이라고 있을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는 인터뷰이들의 모습이 하나씩 비춰지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똑같이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는 다이앤의 흑백 영상이 나타난다. (아마도 영상은 배우였던 다이앤의 오디션 영상인 같다.) 마치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다이앤도 새롭게 되살아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이야기가 다이앤의 죽음에 이르면서 인터뷰이들이 하나같이 말을 멈추고 상념에 빠지거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담긴다. 영화는 순간만큼은 사람도 편집하지 않고, 같은 마음으로 슬퍼하고 다이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 보여준다. 그리고 무거워진 분위기는 마이클과 사라의 부녀지간에 관한 귀엽고 위트 있는 이야기로 풀어진다. 장면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다이앤에 대한 애정이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애정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여준다. Stories We Tell 다이앤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다이앤을 기억하는우리들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자신의 치부일 수도 있는 가족사를 거침 없이 드러내면서도 개인적인 감정에 매몰되지는 않는,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고 전달하는 방식자체를 무대에 올려 탐구하면서도 이야기들 하나하나의 따뜻한 온도와 유머와 진심 같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Stories We Tell 적절한 거리감이 좋다. 다이앤이 그립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이앤의 진정한 모습을 되살리고 싶지만 쉽게 흩어지는 진실을 붙잡기 어려운 모호한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라 폴리의 솔직함이 좋다. 감독으로서 사라 폴리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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