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대중·문화·예술지 <PEEP>

V-A-D-A V-A-D-A!

콩브레과자점

“90년대 영국? 뉴스쿨 펑크?” 이제까지 봐왔던, (아름다운 얼굴의) 뉴스쿨 펑크 키드의 전형이라고 생각하며 그가 내민 사진에 한 마디 했다. 하지만 얼굴에서 음악을 들을 수는 없었던지,

“틀렸어. 요즘 캘리포니아 힙스터 아이돌이야.”

그들의 얼굴을 보고 당연하다는 듯 자신하던 내 얼굴에 물음표 여러 개가 달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왼쪽 눈에 붙은 ‘저들이 요즘 사람인가?’, 오른쪽 눈에 달린 ‘저들이 미국 사람이라고?’, 콧구멍 사이를 뚫는 ‘라나델레이 같은 힙스터들의 마더 어스(Mother Earth)인가?’, 입에 걸린 ‘도대체 펑크가 아니면 뭔데?’.

The Garden. 그는 더 이상 저들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고, 찾아보라며 이름만 남겨주었다. 나는 여전히 물음표를 얼굴에 단 채로 돌아섰다.

Mirror Might Steal Your Charm. (거울이 너의 매력을 앗아갈거야. 이하 MMSYC) 그들의 이름을 입력하자마자 얻은 저주(?)였다. 저주 아래에 적힌 트랙리스트를 보며, ‘음... 확실히 내 생각과는 다르군.’이라고 생각하며, ‘노래는 별로겠군.’이라는 생각도 추가했다. (이 앨범에는 별-나의 초기적인 좋은 노래 판별 기준-이 있는 노래가 No Destination밖에 없었다!) 별 기대 없이 별이 박혀있는, 그 노래를 재생했고, 처음의 ‘F# G# A# C# D# F# G# A# F F# F’의 신스 진행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져 별을 눌렀지만 이내 곧 눈의 근육은 아래로 풀렸고, 입꼬리도 아래로 향했다. 별도 취소했다.

한 곡만 듣기는 아쉬워 Make a Wish 라는 트랙도 재생했다. 제목이 특별히 눈에 띈 건 아니었고, 앨범 커버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B A# B D# E D# E D# E D# E . 음계로 환원하는 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 이들의 노래는 항상 정석적인 음계보다는 약간 낮은, 사실은 계이름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소리로 귀에 입력되었다. ‘이들의 노래‘라 함은, 그들의 직접적인 성대의 떨림도 포함하는 것인데, 노래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성대가 그리는 자취가 선명해졌다. 그 자취는, 일종의 x, y, z 그래프의 모습으로, 양탄자가 구불구불한 상태로 대충 펼쳐지는 모양새였다. 양탄자 위에는 빛을 잃어가는 일곱 개의 금빛 별들이 있었다. 

이들은 내가 익숙해져 있었던 기존 음계의 장막을 걷고, 우리가 음정 튜닝으로 바로잡으려고 하던 일곱 개의 정칙적인 음정 이외의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펼쳐진 양탄자에 기분 나쁜 진동을 선사하는 불협화음은 일지 않았다. 개별적인 그들의 목소리와 신스사운드는 예측 가능한(기존에 알던) ‘그 지점‘까지 음높이를 도달시키지는 않지만, 내가 재생한 트랙 위에서 별수 없이 끝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는 그 소리들은 시시하지는 않은 협화음을 터뜨렸다.

이 트랙 이후의 다른 트랙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흘려 넘겼기 때문에 꽤 긴 감상을 Make a Wish에 할애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No Destination, Make a Wish, 이후 트랙들(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제목들을 구분하지 못했다.)의 재생이 반복되었다. No Destination은 마지막 트랙이고 Make a Wish는 두 번째 트랙이었는데, 마지막의 것을 두 번째 것 앞으로 끌어와 매일 재생했기에, 정작 실제 첫 번째 트랙인 Stallion은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어느 순간 The Garden의 NDMW(No Destination Make a Wish) 재생 방식은 나의 (적어도 내 휴대폰의) 일상적 의식이 되었다.

고전적인, 우리에게 친숙한, 정직한, 황금 별들에서 이탈한 노래들은 The Garden 말고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시도했다. 이들 이전, 이후의 시도들이 이들보다 못한 것도 아니다. (내가 다 알 수도 없다.) 기존의 시도가 대개 기교나 특정 분위기를 내기 위한 시도, 아니면 ‘음을 맞출 능력이 부족한 것이지만 좋게 들림‘이었다면, 이들은 그것이 노래의 본성이다. 모든 음은 대개 이탈 속에서 구성되며, 아예 음이 아닌 목소리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 목소리에 대한 의존은, 메탈/하드코어 장르의 언클린(그로울링, 스크리밍 등 ‘소리 지르는 양식‘의 보컬)과는 또 구분된다. The Garden은 그냥 말을 한다. 오로지 그들의 목소리에만 의존하고, 그 톤을 정확히 재현하지 않으면 같은 느낌을 얻기 힘들다.

VADA VADA(이하 VV)를 알게 된 건 후의 일이었다. MMSYC에서는 VV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알 일이 없었다. VV는 Haha의 Together We Are Great에서 처음 발견했다. “I reside in the VV. I’ll raise my family here.“ 처음에는 VV가 신개념 컨테이너 박스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왜 컨테이너 박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여겼고, 이를 수정하게 된 계기는 한참 뒤에 그들의 Youtube 채널명이 VADA VADA인 것(사실 이때에는 Fletcher의 여자친구가 Youtube를 관리한다는 근본을 알 수 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여자친구 이름이 Vada인가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했다.)과 공연 월포스터에 VADA VADA라고 적힌 것을 보고 나서야 찾아왔다. 그리고 그 뜻을 알게 된 것은 이보다도 더 뒤의 일이었다. 

The Garden의 노래들을 아주 아름답다고 선뜻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들은 습관화와 일상화가 쉬운 노래들을 만들어낸다. 곳곳에 섞인 ‘펑크‘가 눈여겨 볼만한 요소인데, Fletcher가 구사하는 높은 수준의 펑크 드럼과 별다른(별다른) 감정적 격동을 일으키지는 않는 Wyatt의 지기징징 베이스는 처음 듣고 푹 빠지기에는 어려운 요소들이다. (클래식을 처음 듣고 나서부터도 물론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만, 대개 많이 듣던 사람들이 그 장르에서 요구되는 요소적 훌륭함을 잘 찾아내는 것과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Garden은 스스로의 음악을 펑크로 규정하지 않으며, 나 또한 그들을 펑쓰(Punx: 펑크를 하는 사람들)라고 부르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Wyatt은 자기의 음악을 VADA VADA라고 부르며 이렇게 설명한다. “It is an idea that represents pure creative expression that disregards all previously made genres and ideals.” (기존 장르가 쌓아올린 벽을 허물고, 새로운, 창조적인 표현을 하고자 하는 움직임.) 이제 Together We Are Great에 등장한 VV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I. reside. in. the. VV. (나는 VV에 살아. VV가 내가 사는 곳이야.)

앞서 The Garden의 독특한 점을 나는 화성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밝혔다. 사실, 그들의 많은 것들이 충격적이다. 가사, 공연, 심지어 피지컬 앨범조차도. 일단 그들의 충격적인 미모도 나의 쇼크에 한몫을 하겠고, 그들의 복장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의상은 대개 DIY(Do It Yourself)로 만들어지고, 성별을 넘나든다. 또한, 그들의 주특기는 광대분장이다. MMSYC 표지의 광대(MMSYC 앨범 소개의 사진 참고)는 Shears 쌍둥이가 일렬로 서있다가 각자 왼쪽과 오른쪽으로 흩어졌을 때, 남은 잔상처럼 보인다. 타인의 시각에서 얼굴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쌍둥이가 레플리카를 생성해내는 거울을 소재로, 광대를 배치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Wyatt과 Fletcher 누가 거울 안의 인물이고 누가 밖의 인물인 것일까?

가사의 충격적임은 그 내용에서의 자극성 때문이 아니다. The Garden의 노래에는 여타의 펑크와는 다르게 욕설, 포르노적이거나 잔인한 내용이 거의 없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함에서 첨언하자면, straight-edge punk 등에서는 마찬가지로 깨끗한 가사를 지향한다. 하지만 많은 펑크 서브 장르들은 아직까지도 저런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오히려 그 내용은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다. 한 트랙 안에서 내용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그 시점의 리듬에 알맞은 발음들을 침 뱉듯이 적절한 템포로 퉤퉤 뱉는다. (궁금하다면, Stylish Spit과 Haha, 그리고 All Smiles Over Here을 들어보라.)

그들의 공연은 동영상만 봐도 나를 돌아버리게 만든다. Wyatt과 Fletcher은 무대 위에서 서로를 뜀틀 넘듯이 넘고 다니고, 둘 다 앞으로 굴렀다 뒤로 굴렀다 하는가 하면, 광대 분장을 하고 관중과 어깨동무를 하고, 마이크는 땅바닥으로 던져버렸으면서도 마이크 스탠드 앞에서 바락바락 악을 쓰며 괴상한 춤을 춘다. 관중은 그들이 바쿠스인 양, 미친 신도들처럼 노래를 따라부르고, 눈을 감고 혼미해진 상태로 실신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접신 상태가 정말 있었다면 딱 저것이겠구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피지컬 앨범. The Garden의 MMSYC와 Haha, 그리고 The Life and Times of a Paperclip(이하 TLTP)을 구매했다. (TLTP는 중점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VADA VADA라는 트랙이 들어있는, The Garden의 핵심적인 초기 앨범이다.) TLTP는 앨범이 다소 허술하게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별 특징이 없었지만 일단 Haha는 가사집의 노래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정원에서 미로를 찾는 것처럼 그들이 뱉는 단어의 한 숟가락을 삼켜 가사집에서 그것이 무슨 노래인지를 찾아내어야 했다. (물론 나는 이미 노래들 대부분을 알고 있었기에 쉽게 찾았다.) 가사를 일부러 틀리게 쓴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틀리게 부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All Smiles Over Here에는 shake your ass를 shake your hands로 써놓았고, Together We Are Great에서는 in which we trust를 in in which we trust라고 적어놓았다. 가장 엽기적인 것은 MMSYC에 수록되어있는 :(라는 곡은 아예 가사집에 수록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트랙리스트도 적혀 있지 않아서 온라인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그 노래의 제목을 확인할 길은 없다. 적혀 있는 노래들도, 가사를 쓰기 귀찮았던 것인지 몇 곡은 가사가 중간에 끊겨 있었다. (참고: 이들은 Epitaph 소속으로 인디가 아니다. 의도된 것이지, 실수는 딱히 아닌 것 같다.)

VADA VADA는 이전의 시도에 비비지 않고 탄생하는, 그런 창조를 목표로 하기에, The Garden은 자주 앨범을 세상에 내어놓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일단 양산하고 보는 각자의 솔로 프로젝트가 있다. Wyatt은 enjoy, Fletcher는 puzzle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enjoy, puzzle, The Garden의 삼각형 속에서 나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일주일마다 괴상한 의식을 치르는 데에 이르렀다.

Now Playing: All Smiles Over Here. Track. 01/17

“All! Smiles! Over! Here!” 두 명의 광대가 나타난다. 하나는 남색 옷을 입고 베이스를 잡고, 다른 하나는 노란 옷을 입고 드럼 스틱을 잡는다. 입안에 숨은 살을 꺼내 입술은 두껍게, 얇고 넓은 혀도 가운데로 모아 입 밖으로 내 통통하고 길게 만든다. 일종의 로딩 과정이다. 로딩이 끝나면, 두꺼워진 입술이 뱀처럼 움직이는 혀를 뱉어내고, 소리가 들린다. 

Wyatt: (양팔을 동시에 앞뒤로 흔들다가 멀리뛰기를 하며) Hip swing, hip swing means nothing if you don’t have thighs. 

Fletcher: (무릎을 꿇는 시늉을 하다가 앞구르기를 해버리며) Bend knee, bend knee means nothing if you don’t think twice. 

Hahahahahahaha. 

웃음소리가 들려 잔뜩 취한 채로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살짝 눈을 떠보면, 주위에 나와 같은 포즈로 두둥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잔뜩 있다. 이러다 모두가 하늘로 떠올라 태양을 가려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피어오른다.

Now Playing: Gift. Track. 17/17

Wyatt: (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Focus in Focus on

앗,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다. 어설프게 입 모양을 따라하지만 혀를 벌써 자기 키만큼 뱉어낸 광대의 입술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쉬이익. 핑그르르. 살짝 눈을 떠서 아래를 보니, 이곳이 우리 집 거실에서 내가 올라올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줄자처럼 빠르게 거실로 되감긴다. 앞서 두 광대, 아니 The Garden을 신봉하는 데 사용하였던 카펫에서 벗어나 소파에 앉아 경건해진 마음을 다스린다. 이런 의식은 일요일마다 벌어진다. (원한다면 참석해도 좋다.)

The Garden은 이제는 정말로 나를 미치게 한다. 장갑 낀 손으로 양쪽에서 둘이 나를 사정없이 후려쳐 영혼을 육체에서 분리시킨다. 떨어져나온 영혼은 구타당해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상반신을 어쩔 줄 몰라하며 바라본다. 나를 괴롭히는 두 광대들이다. 그 구타는 잊을 수 없다. 그 구타에 이글거리는 복수심을 품은 것인지, 아니면 변태적으로 도취된 것인지, 이런 미스테리어스한 감정이 지나가면, 내 손가락이 그들의 노래를 재생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절대로! 이제는 나도 VV에 산다! 어쩌면 당신도!